경제학의 부스러기

<경제학에서의 합리성>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경제주체가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논리를 진행해나갑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 유도하는 대부분의 이론적 결론도 합리성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성을 근거로 경제학에서 유도된 결론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여러 가지 심리테스트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경제학이 바탕으로 하는 경제주체의 합리성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유도된 각종 결론들도 잘못 됐다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합리성을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성 가정은 ‘모든 경제 주체가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는 ‘대표 경제주체’(representative economic agent)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소비자인 경우에는 ‘대표소비자’(representative consumer)가 되고, 생산자인 경우에는 ‘대표생산자’(representative producer)가 됩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 도입하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가정은 이 대표 경제주체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 경제주체는 어떤 사람일까요? 대표 경제주체는 일종의 그룹이나 무리를 대표하는 사람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가령 n명으로 이루어진 소비자 그룹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을 대표하는 소비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비량이 가장 많은 소비자가 대표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그룹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대표는 평균 정도에 해당되는 소비자일 것입니다. 물론, 평균이 그룹을 대표하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만, 그나마 평균이 개별 경제주체의 편향성을 줄이고 그룹의 특성을 가장 반영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해당 그룹의 평균적인 소비자를 ã라 하면, 경제학에서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n명의 모든 소비자들이 항상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표 소비자인 ã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사해 보이지만,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모든 소비자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은, 한 사회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입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소비자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습니다.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항상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구성원은 다른 사람과 얼마든지 다르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원이 있으면, 모든 구성원이 항상 합리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가정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평균적인 소비자를 전제하면, 소수의 예외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소비자의 행동은 거의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아래 그림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림에서 붉은색 원안에 그려진 화살표와 같은 예외적인, 큰 흐름과는 맞지 않는 현상이 현실에서는 항상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모든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입니다. 하지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일부 소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은 우측 윗 방향으로 향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rationality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위의 그림에서 붉은 원 속에 있는 화살표와 같이 전체 방향과 맞지 않는 예외적인 사례가 있으므로 합리성을 전제로 한 경제학 이론도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작은 화살표가 모두 동일한 방향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가령, 어떤 소비자는 상품 a보다 b를 선호하고, b보다는 c를 선호한다고 할 때, 만약 이 소비자가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이 소비자는 a보다는 c를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즉, a≺b이고 b≺c이면, a≺c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합리성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a≺b이고 b≺c인데, a≻c인 경우입니다. 또한, a≺b인 경우에도, 소비자들이 항상 이런 선호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소비자는 소주와 맥주 가운데, 소변 문제 때문에 거의 항상 소주를 맥주보다 선호하지만, 운동경기 직후라면, 이 소비자는 소주보다 맥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가 소주보다 더 큰 효용을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b라는 선호체계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처음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적인 소비자 가정과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이 소비자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상식선에서 판단할 때, 이 소비자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주와 맥주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할 때, 소비자가 직면한 상황과 무관하게 항상 소주를 선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무리한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개인들의 행동들을 심리적 및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입니다. 행동경제학은 미국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심리학과 연계시켜 분석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1970년대 시작됐습니다. 캐너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들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 자제심, 이기심을 부정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비합리적, 비자제적, 비이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전 합리적, 완전 자제적, 완전 이기적이라는 점만을 부정할 뿐이다.” (행동경제학, p. 35)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행동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합리성이 지켜지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으므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경제이론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이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성을 오해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동안 경제학이 가정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a≺b이고 b≺c이면, a≺c인 선택을 합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일부 예외적으로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혹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합리적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경제학은 다수(majority)에 대한 학문이지 개별 구성원(everyone)에 대한 학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행동경제학에서 추구하는 내용 자체를 보면, 그동안 경제학에서 전제로 하고 있던, 다수의 학문이라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의 경제학 이론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이유도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된 경향도 일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원칙을 만들 때,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 수학에서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사례를 모두 포함하는 아주 일반화된 원칙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원칙이나 정리 등은 아주 일반적이면서도 모든 경우를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경제학도 모든 경우를 모두 포함하려면 당연히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수에 대한 합리성만을 가정하면,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아주 정교하고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어긋나 있는 화살표들까지 모두 포함하기 위한 수식을 찾아내려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만,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다수의 화살표만를 대상으로 한다면, 동일한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 하나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흐름만 나타낼 수 있으면, 경제학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수학적으로 정교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합리성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문제가,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누구 입장에서 합리적인가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고려해보겠습니다. 어떤 여학생의 가정은 형편이 어렵습니다.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금액의 학자금 대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고가의 핸드백과 고가의 화장품을 소비합니다. 이 학생의 행동은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비합리적일까요?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여학생의 행동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학자금 대출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절약하고 아껴 쓰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학생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시 고려해보겠습니다. 해당 학생은 소비를 하기 전에, 현재에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소비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합니다. 만약 미래를 중시 여기는 학생이라면,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해 미래에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을 더 늘리려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합리적인 행동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의 소비보다 현재의 소비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 보다는 현재 소비를 늘릴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저가의 가방과 저가의 화장품을 사용할 경우, 주위의 사람들이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학생의 경우, 비록 부담은 되지만, 고가의 핸드백과 화장품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절약하고 아껴 생활하면서 얻는 효용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해당 여학생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 됩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자신의 만족도를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소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합리성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측면에서의 합리성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이런 논쟁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성과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여학생의 행동이 비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회의 시각일 뿐입니다. 해당 학생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여학생의 이런 행동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비합리적이라거나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여학생의 행위는 아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논의되는 많은 합리성과 관련된 논쟁들을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혹은 학문적 측면에서의 합리성이라기보다는, 사회 통념에 맞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와 더 밀접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전제의 의미>

1.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일까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뜻하므로 부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부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이 부족하거나 풍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입니다. 그릇에 물이 반밖에 안 차 있다면 부족한 것이고, 가득 차거나 넘친다면 풍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릇의 크기가 모두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그릇에는 넘치는 양의 물도 더 큰 그릇에 담는다면 부족하게 됩니다. 사람도 이와 동일합니다.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훨씬 많은 돈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부족하다거나 풍족하다고 이야기할 때의 ‘부족하다’라는 말은, 그릇과 같이 부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뜻이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혹은 충분치 않다고 이야기할 때도 그 판단의 기존이 필요합니다. 예시의 하나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전세계 인구는 약 70억명 정도이고, 곡물 생산량은 22억 톤 가량 됩니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소비 가능한 곡물량은 0.314톤이 됩니다. 1인이 1년에 314kg의 곡물을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류 소비가 많지 않던 1970년에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했던 곡물량이 219㎏였습니다. 따라서 300kg라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소비량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곡물 생산량만을 기준으로 1인당 소비량을 판단해보면, 지금 우리가 생산하는 곡물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의 ‘부족’의 기준은, 먹어서 배가 부르는 것과 같은 생물학적으로 먹을 수 있는 물량이 그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고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들의 욕구, 욕심이 기준이 됩니다. 돌려 말하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 만큼 부족하지 않게 생산되지만, 사람들의 욕구와 욕심을 모두 채울 만큼 풍족하지는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들의 욕구 혹은 욕심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곡물 대신 육류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kg의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kg 이상의 곡물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1년치 만큼의 곡물이 아니라 재난에 대비해 3년치 곡물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1년에 314kg으로는 부족하고 600kg 이상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가 사람들의 욕구이고 욕심에 해당됩니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실에 60명의 학생이 있고, 과자가 100개 있다고 할 때, 선뜻 생각하기에 과자가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학생 1명당 1개 이상의 과자는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는 1∼2개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3개를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고, 5개를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또한, 10개 이상을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집에 있는 동생에게 주기 위해 6개의 과자가 필요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내일 먹을 과자까지 4개의 과자가 필요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을 안 먹은 학생도 추가적인 과자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욕구를 모두 반영한 물량은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1인당 1∼2개 먹을 수 있는 과자의 수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줄 과자의 수는 300개가 될 수도 있고, 500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에는 당연히 과자가 부족합니다.

경제학적으로 자원이 희소하다 혹은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절대적인 자원의 양이 부족하다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모든 욕구와 욕심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 혹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욕심을 모두 충족시켜줄 만큼 자원이 풍부한 세상, 혹은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는 세상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인류가 겪고 있는 자원 부족 문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이라는 학문도 영원히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2. 누군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시작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출발점인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갖지 않는 한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더 갖는 사람이 생기면, 반드시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지면, 다수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먼저 부를 가져가는 사람이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가령, 100명으로 구성된 사회의 전체 자산이 200이라고 할 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가지면, 1인당 2의 자산을 가지게 되고 자산이 0인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20을 가져가게 되면, 이제 99명이 남아있는 180의 자산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90명이 자산이 2씩 가지면 나머지 9명의 자산은 0이 됩니다.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20의 자산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빼앗아오지 않는 한,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산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20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자산을 나눠줄 리도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산을 가지기 어렵게 됩니다.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Well-I-Left-You-Half

<출처: http://www.ahhthesimplelife.com/why-simple-living-is-better-for-everyone/>

자산과 분배와 관련된 위의 이야기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난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난이 개인적인 문제가 되려면, 개인이 가난해지는 원인이 개인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라야 합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게으르고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새벽 같이 일어나 일을 나가고,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렇게 열심히 삶에도 불구하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산을 가지지 못한 데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직면한 가난이라는 문제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들이 가난한 것은 이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정된 자산을 가지지 못한 데 따른 원인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지 않는 한, 누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자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자원을 협소하게 해석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상품의 재료를 뜻할 수도 있지만, 광의로 해석하면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자원을 적게 가진 사람은 그만큼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적게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자원 혹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만큼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인의 가난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은 본질적으로 자원을 가져갈 기회를 잃은 누군가를 구조적으로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가난은 개인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개선의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잘 살고 못 살고는 개인들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정 정도는 개인의 노력으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총량에 한계(자원이 한정돼 있다)가 있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두 일정한 부를 창출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수준 혹은 작은 규모에서의 개인적인 노력은 쉽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사회적으로 큰 자산이나 부를 얻기 위한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노력의 합이 총량의 제한을 받지 않을 때는 개인들의 노력이 쉽게 보상 받을 수 있지만, 총량에 제한을 받게 되는 순간 개인들의 노력은 보상 받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자원의 총량,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구성원이 10명으로 이루어진 자원 규모가 100인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사회가 가진 자원을 10명에게 분배하는데, 5명에게는 10개, 나머지 5명에게는 5개씩 분배를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75(=5*10+5*5)가 분배되고, 25개가 남습니다. 아직까지는 총량에 제한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10개 가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노력을 더 해 35개를 얻고, 나머지 네 명은 이전과 동일하게 10개를 가져가고, 5개를 가졌던 사람들도 이전과 동일하게 5개씩을 가져간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전체 100개의 자원은 모두(100=1*35+4*10+5*5) 분배되고 여유분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이 수준까지는 개인들이 노력을 하면, 과거 10개를 가져갔던 사람이 노력을 통해서 35개로 자원의 갯수를 늘렸듯이,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에 여유 자산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자원을 5개를 가진 사람이 다소 늦었지만, 더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노력을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사회적으로 여유 자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를 빼앗아오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의 부를 강제로 빼앗아오지 않는 한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자신의 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사라지게 됩니다. 부의 총량이 한정되어 더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 혹은 기회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달리 말하면, 개인들이 노력을 하더라도 자원의 총량이 제한을 받으면, 개인들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난이나 빈곤이 철저하게 개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던 이전 글과도 서로 통하는 내용입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글자 그대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원이 배분되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들의 노력은 부를 만들어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원이 한정돼 있고 분배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개인들이 노력한다고 그 상황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력한다고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자원이 한정돼 있는 전제의 세 번째 의미입니다.

4. 분배체계가 필요하다

경제의 가장 큰 전제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임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는 한정된 자원이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의 네 번째 의미는 분배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큼 자원이 충분하다면 별도의 자원을 분배할 장치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분배해야 합니다. 분배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강제로 동일하게 분배할 수도 있고, 선착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시험을 치러 그 결과에 따라 분배할 수도 있고,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특정한 숫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우선 분배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학점이라는 자원은 시험 결과에 따라 배분됩니다. 또한,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유명화가의 그림은 소더비 등의 경매기관을 통해 가장 고가를 부른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일부 공립유치원은 신청한 순서에 따라 유치원생의 입학이라는 자원이 분배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대부분 자원은 한정돼 있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분배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배방식은 자원의 특성, 사람들의 선호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모든 분배방식에는 그 분배방식을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듭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류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분배방식을 채택해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채택한 가장 일반적인 자원 분배 방식은 바로 ‘가격(price)’를 통한 분배 방식입니다. 가격을 통한 분배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지불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 자원을 분배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시장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지불하지 못 한다면, 그 사람은 해당 자원을 구매하지 못 하게 되어 자원을 획득하려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년 등록금이 500만원인 대학이 있다고 할 때, 해당 대학에 입학이라고 하는 자원은, 등록금이라는 ‘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시험 성적에 의한 합격 이후의 문제입니다.) 즉, 500만원이라는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대학생이라는 자원이 배분됩니다. 이제 대학 정원은 한정돼 있는데, 입학하려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런 경우, 대학이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등록금이라는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1년 등록금이 1,000만원으로 두 배 오르면, 1,000만원의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대학 입학이라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등록금 1,000만원에도 입학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등록금은 1,500만원으로 올라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가격을 책정하고,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장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방식입니다. 따라서 ‘가격을 통해 자원을 분배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경쟁에서 탈락시키겠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알고 있는 ‘가격’의 가장 큰 역할은 해당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는 일입니다.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연히 자원의 가격은 올라가고, 상승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자원 획득 경쟁에서 탈락하기 시작합니다. 한정된 자원과 그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맞을 때까지 가격은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 결정된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 자원이 배분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 방식은 철저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가격을 통한 분배는 철저하게 부자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된 분배방식입니다. 왜냐하면, 부자일수록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고, 그에 따라 자원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결과 다시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공급이 증가한다면, 더 낮은 가격에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을 활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켜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늘릴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산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대량 생산이 되지 않았다면, 시장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소수의 부자들만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혁신 등이 이루어지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자원 분배과정에서 탈락되는 일 없이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대량 생산이 생산자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켰지만,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확대시켜 주었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도록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한평생 돈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려고 몸 아픈 것도 참아가며 일을 합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모두가 돈 걱정 없이 고생하지 않으며 잘 살 수 있는 ‘천국’을 생각해봤을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말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천국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림을 그리듯, 천국의 모습을 한 폭의 도화지 속에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온화한 모습으로 행복한 모습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걸까요.

[2] 경제적으로는 천국을 정의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살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으며,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을 다를 겁니다. 경제적인 천국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이런 세상이 되려면, 먼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3] 첫째,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A라는 사람도 풍족하게 사용하고, B라는 사람도 풍족하게 사용하려면, 해당 상품의 공급이 한정돼 있지 않고 무한해야 합니다. 자원이 무한해야만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가질 수 있습니다. 자원이 무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어떤 형태로든 분배 체계가 필요해지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고 덜 가지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시 불평등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누구나 필요할 때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원이 무한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공짜 혹은 무료로 무한히 제공되어야 합니다.

[4] 에너지도 무한해야 합니다. 석유나 석탄과 같이 고갈되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써도 써도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빵이나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 고플 때 혹은 먹고 싶을 때,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빵과 고기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5]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원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자원의 일부를 소유하거나 소비하더라도 무한히 공급되고 있고, 다른 사람들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자원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을 더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면, 소비의 배제성(exclusiveness in consumption)도 성립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즉, 내가 빵을 먹었다고 누군가가 먹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자원을 분배할 사회적 장치도 필요 없게 됩니다. 가격도 필요 없고, 시장도 사라지게 됩니다.

[6] 둘째는 모든 상품 생산이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상품들은 누군가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가령,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다면, 누군가는 가축을 사육해야 하고, 누군가는 도축을 해야 하며, 누군가는 도축된 가축을 먹기 편하도록 손질해야만 합니다. 또한, 손질된 고기를 우리가 살 수 있는 장소까지 배달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빵을 먹고 싶다면, 누군가는 밀을 키워야 하고, 누군가는 수확을 해야 하며, 누군가는 수확된 밀을 가루로 만들어야 하며, 누군가는 가루로 만들어진 밀을 반죽하여 빵으로 구워야 합니다.

[7]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일 하기 싫어한다면, 자원이 아무리 무한히 제공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어떤 사람도 가축분뇨 냄새를 맡으며 가축을 사육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벼를 키우고 밀을 재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축을 도축하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굽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런 활동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의 양은 많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소비할 만큼 무한히 생산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8]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자원이 무한해야 할 뿐 아니라, 자원을 이용한 상품 생산 과정도 완전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공상과학영화 등에서 보이는 자동화된 음식제조기 등이 존재하여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음식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노동에 의존하여 상품이 만들어진다면, 누군가 그 노동력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무한히 만들어내지 않는 한, 모두가 풍족하게 살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노동력을 제공하던 사람이 더 이상 무언가를 생산하려 하지 않으면, 해당 생산물은 공급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족한 상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대두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에 의존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자동화되어야만 우리가 상상하는, 누구나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경제적인 천국을, 누구나 필요할 때 풍족하게 사용하며 사는 세상이라고 전제한다면,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해야 할 뿐 아니라, 생산과정 또한 모두 자동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 조건, 자원이 무한해야 하고, 에너지도 무한히 공급되어야 한다는 조건부터 현실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조건입니다.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으면 분배의 문제가 다시 나타나고,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 누구에게 얼마만큼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분배방식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 분배 체계가 모든 사람에서 동일한 양을 나누어주는 형태일 수도 있고,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나누어주는 체계일 수도 있고, 부자에게 더 많이 주는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또 다시 많이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고, 적게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심화되면 현재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다시 겪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10]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천국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누구나 풍족하게 사용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욕심 없이 착하게, 그리고 궁핍하고 불편하게 사는 세상일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욕심 없이, 가난하게, 그리고 불편하게 사는 세상이 과연 가능할까요?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고 사람들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세상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들이 발생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11]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이 남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바탕을 보면, 편하게 살고 싶고, 굶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살고 싶고, 더울 때 시원하게 살고 싶고, 추울 때 따뜻하게 살고 싶은 개인들의 욕구와 욕망이 모여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욕구와 욕망을 구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우리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경제는 모든 사람에게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을 어떻게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역시나 천국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의 효율성과 비효율성>

일반적으로 시장의 효율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됩니다. 하나는 자원의 낭비가 많은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원이 배분되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장에 자원의 낭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시장경제 처제에서는 자원의 낭비가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와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생산자가, 각각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열심히 해도 그 결과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든 생산자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노력의 대가가 자신에게 귀속된다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고, 따라서 자원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경제에서는 자원이 상당히 효율적인 분배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측면, 즉,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사람에게 자원이 배분되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란 분배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원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장경제에서 그러한 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격’입니다. 즉,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이 분배됩니다. 문제는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해당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많아서 남들보다 훨씬 넓은 토지가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해당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해당 토지가 누구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해당 토지를 구매할 능력, 즉, 시장가격에 해당되는 토지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없다면, 해당 토지는 그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습니다. 해당 토지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될 뿐입니다. 만약 해당 토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토지가 분배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토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몸이 많이 아파서 큰 수술을 하거나 오랫동안 입원 치료를 해야 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의 경우도,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수술도 하고 목숨을 구하고 장기간 입원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주위에 보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거나 돈이 없어 필요한 수술을 받지 못해 병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의료서비스 또한 토지와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됩니다. 가장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제공되었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자원을 배분하는 시장경제에서는 오직 해당 자원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배분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분배 체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 교육 서비스도 동일합니다. 배우려는 열의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반드시 대학의 교육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등록금이라는 대학 교육서비스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입학할 성적이 되는 학생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주위에는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주 흔했습니다. 그만큼 대학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서비스라는 상품도, 그 교육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선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서비스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가 가장 효율적인 분배구조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는 철저하게 부자에게 유리한 분배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가격을 지불한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배분합니다. 하지만 그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가장 원하는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장경제가 현재까지 나온 다양한 경제 체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효율적인 체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분배 시스템으로써의 가격의 역할>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무한합니다. 선착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시험을 치뤄 성적순에 따라 분배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권력자가 임의로 나눠줄 수도 있고,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줄 것인가는 경제학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분배방식에 따라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되기도 하고, 사회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집에 아이들이 여럿인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 아이 정도는 대학에 보낼 정도는 되지만 모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형편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경우, 부모님들은 집안의 자산 혹은 재산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예전 부모님들은 큰 아들에게 집안의 가용한 자산을 배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는 했습니다. 자산의 분배 권한을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자원은 시장이라는 기구를 통해 배분되지 않고 분배권한을 가진 부모님의 결정으로 분배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결국은 자원의 분배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경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효율성’입니다. 자원을 배분하는 데, 낭비적인 요소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분배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발생하면 실제 분배를 통해 얻는 효용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분배상의 비용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현실에서는 분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매우 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저소득층이나 노령층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업의 경우, 자원봉사자 등의 노동력이 없다면 정상적으로 배달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도시락을 배달하는 비용은, 배달 인력의 인건비에 도시락 가격이 더해져 결정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도시락 가격보다 인건비가 더 많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업의 경우, 분배과정에서의 비효율이 지나치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자원 분배 체계는 분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고려해야 할 기준은 ‘투명성’입니다. 누가 어떤 자원을 얼마나 가져가는지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입니다. 대부분의 분배체계는 분배주체를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착순이라는 분배체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분배할 때도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유지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을 나누어준다고 할 때도 나누어주는 주체는 필요합니다. 혹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필요량만큼을 나누어준다고 할 때도, 사람들의 수요를 파악할 주체는 필요합니다. 자원을 배분해줄 주체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자원을 분배해줄 주체를 가정하게 되면, 분배 주체의 이기적 (selfish) 성향이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원을 분배해줄 권한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욕심이 전혀 없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분배 권한을 독점하게 되면, 분배 주체가 분배 이전에 자신의 몫을 떼놓거나, 주체와 이해 관계가 있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리하게 배분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배 권한을 가진 주체가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원이 투명하게 배분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자원의 분배 권한이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게 주어지는 경우, 분배 권한을 가진 주체가 자원을 임의로 분배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에 분배의 투명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자금 배분 과정을 봐도 유사합니다. 여러 가지 장치와 투명한 과정을 통해 자금을 분배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해당 부처의 이해관계자나 사전에 의견이 조율된 개인이나 단체에 배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명성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고려해야 할 기준은 ‘공정성’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기준인데, 이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부에서는 분배라는 것 자체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이지 공정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공정성은 어떤 주체가 개입해야 하는 정당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정성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노력을 많이 한 사람에게 많이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분배과정에 개입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투명성 문제가 다시 대두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타적(altruistic 또는 unselfish)이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도 나타나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적(selfish)인 인간이기 때문에 분배권한을 가지면 이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 분배 권한을 주는 행위는 다른 측면에서 분배의 투명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market)이라는 분배기구는 어떨까요. 누군가의 개입 없이 비용과 수익을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효율성이 매우 높은 분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수익보다 많다면, 해당 주체는 분배과정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직 비용보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만 분배과정에 참여합니다. 또한 강요하는 주체도없습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분배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용도 최소화됩니다. 또한, 특별한 분배 주체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투명성도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라는 기구에서는 누가 어떤 자원을 가져가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시장이라는 분배 시스템이 채택하고 있는 분배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시장이 채택한 분배 시스템은 ‘가격’(price)입니다. 가격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는 하지만, 가격이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원을 배분하는 일입니다. 선착순에 의해서도,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서도, 달리기 경주를 통해서도, 시험성적을 통해서도 자원을 배분하지 않고, 오직 가격을 통해서 자원을 배분합니다. 가격에 의해 자원을 배분한다고 할 때의 자원의 배분 기준은, 해당 가격을 지불할 ‘경제적 여력’이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해당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해당 자원을 가져갈 수 있고, 지불할 수 없다면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가령, 대학이라는 상품이 있다고 할 때, 대학의 가격은 등록금이 됩니다. 성적 등의 입학 기준을 충족하는 학생들 가운데, 등록금이라는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학생은 대학이라는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여력이 안 되는 사람은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즉, 가격은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을 탈락 혹은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나 이용할 만큼 공급이 많다면, 가격은 저렴하게 결정되고 그만큼 소비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갖고자 하는 상품이라면 가격은 상승할 테고, 상승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원 배분과정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자원이 배분됩니다. 따라서 귀한 자원일수록, 누구나 원하는 상품일수록, 돈 벌 가능성이 높은 기회일수록, 가격은 올라가게 되고, 해당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사 두면 큰돈이 될 것 같은데 돈이 없어 살 수 없다는 것은, 해당 상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배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가령, 금을 사두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금을 살 돈이 없다면, 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고, 모 지역의 아파트를 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배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고급승용차의 분배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학원이라는 자원 분배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살 때 항상 지불하는 가격이라는 것은, 단순한 물건값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당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은, 해당 상품을 분배하는 시스템에서 탈락하지 않고 해당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로, 돈이 부족하여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했다는 것은, 시장이라는 기구가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돈이 부족한 나를 배제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채택하는 자원 분배방식은 시장을 통한 분배방식이고, 시장은 가격을 통해 분배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가격을 통한 분배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한 분배방식일까요. 시장을 통한 분배방식은 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분배 체계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분배체계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 즉 돈 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유도 이런 분배 시스템에서 좀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고 남들보다 더 유리한 자원을 가져갈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인간>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기적(selfish)인 주체로 설정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자기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로, 모든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가정입니다.

경제 주체의 이기심은 Adam Smith가 처음 제기했습니다. 그는 1776년에 발간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the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유인호 옮김, 동서문화사, 2008)라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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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살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면,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기존에는 남을 위하는 행동이 뭔가를 나누고 베푸는 것이었다면, 아담 스미스 이후에는 굳이 남에게 베풀려고 하지 않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위하는 행동이 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착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며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는 많이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이후 경제학은 이기적인 인간을 아주 당연한 가정으로 받아들였고, 이 가정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는 ‘이기적 인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 이기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이기적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기적이다’라고 할 때의 이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이기심보다 넓은 의미의 이기심입니다.

먼저, 이기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착하지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가장 우선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내 이익이 항상 앞서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나의 이익이 먼저 확보된 이후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내가 일단 먹고 살 만해야 다른 사람을 살필 여유가 생기는 것도 동일한 이유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의미의 ‘이기심’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욕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의 이기심은 단순히 개인들의 행위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기심은, ‘나’의 이익만을 취하는 행동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 우리 집안, 우리나라 등을 위한 행동도 모두 포함합니다. 흔히들,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한 행동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행동이나 생각 자체도 모두 이기적인 행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이익을 취하는 주체가 ‘나 자신’에서 ‘우리’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남보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크고 좋은 비싼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 내 자식만큼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는 생각, 돈이 풍족하다면 아픈 부모님 병원에 모시고 가고 싶다는 생각, 자식 결혼할 때 전세라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 자식 결혼할 때 상대방 집에 비해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 생각, 자식들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많이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 연봉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다니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등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이기심에 해당되는 생각들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의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이기적인 생각에 해당됩니다. 이익을 위하는 주체가 개인이든, 가족이든, 집단이든, 나라든, 이익을 취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이기적인 행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할 때의 이기심(selfishness)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이기심도 포함되지만, 가족, 집단, 그룹, 국가 등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행동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히 ‘자기 자신만 안다’ 혹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한다’ 정도의 의미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이기심’은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반영한,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기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 혹은 속세와 초월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재물을 모으고 먹고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고, 모든 것에 벗어난 사람만이 비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설령, 단순히 먹고 사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인들의 이기심이 모여 시장에서 수요를 만들고 공급을 만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내가 더 잘 살 수 있다면, 더 만들고, 더 생산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물건을 실어나르고, 휴일도 없이 가게 문을 엽니다.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편히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식당을 가고, 물건을 사고, 여행을 갑니다. 이렇게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모여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그 가격에 따라 자원이 배분됩니다. 따라서 ‘이기적이다’라는 가정 자체가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경제학이 일반 학문과 달리, 인간은 이기적이다, 즉 인간은 착하지 않다, 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착하지 않다 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그 속에는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 등 개인들의 욕구가 모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을래야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입니다. 단지, 학자들이 경제현상을 이론화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을 뿐입니다. 사람의 심리를 읽고, 잘 살고 싶은 욕구를 이해하는 것을, 굳이 수학적 표현으로 어렵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가장 쉬울 수 있는 학문이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윤리나 도덕과 달리, 재미가 없,을 수 없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득을 버는 두 가지 방법: 노동과 자본>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분류하면,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돈을 버는 자본(capital)을 통해 수익을 얻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노동과 자본을 생산수단으로만 봅니다만, 이것은 기업이나 생산자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개인 입장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돈을 버는 두 가지 방법에 해당됩니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임금(w)과 노동시간(L)을 곱하면, 노동소득을 얻는데, wL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소득도 이자율과 같은 자본의 가격(r)을 자본(K)에 곱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자본이 가격을 r이라 하고 자본을 K라 하면, 자본소득은 rK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소득은 그 원천에 따라 (wL+rK)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식이 의미하는 것은, 개인들의 소득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아주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위의 수식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령, 자본소득(rK)이 0인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전적으로 노동소득(wL)만 가진 사람이 됩니다. 만약 이 사람이 나이 들어서까지 자본소득이 0원이라면, 이 사람의 노년은 어떻게 될까요. 맞습니다.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위의 수식은 자본소득이 없는 사람은 나이 들어서까지 노동소득에 의존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월급쟁이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꿈 가운데 하나가, 건물을 사서 임대료를 받으며 노후에 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들 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건물은 자본에 해당되고, 가게 임대료가 바로 자본소득이 됩니다. 따라서 월급쟁이들이 건물을 매입해 가게를 빌려주고 임대수익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노후에 자본소득을 확보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즉, 노동소득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본소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고, 그런 방법의 하나로 건물을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동소득(wL)은 거의 0원으로 수렴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본소득이 없으면 노후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건물 하나를 사서 임대료를 받으며 살겠다는 생각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학적인 이론은 몰라도, 이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본소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물 외에도 자본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가장 쉽게 생각하는 방법이 건물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법이라, 그런 이야기가 많이 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소득의 중요성은 국내 모 그룹 회장님의 사례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이 그룹 회장님의 연간 근로소득은 0원이지만, 주식 배당금 등의 자본소득은 1,000억원이 넘습니다. 그만큼 자본소득의 유무 혹은 크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유명한 문구가 있어 소개합니다.

“Money makes money and the money that makes money makes more money.”  – Benjamin Franklin-

이 문장은 금리 가운데 복리의 힘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힘을 잘 보여주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의 처음 부분은 돈이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하는데, 돈이 돈을 버는 단계가 자본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뒷부분은 어떻게 축적된 자본이 더 많은 돈을 버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가령, 10억원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자본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동일한 회사에서 동일하게 연봉 6,0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첫 번째 사람은 1년에 1억 1,000만원(이자율 5%)을 벌고, 두 번째 사람은 6,000만원을 벌게 됩니다. 1년간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출장 다니며 번 돈과 10억이라는 자본을 은행에 저금해 두고 받은 금액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욱이 첫 번째 사람이 이자로 받은 금액을 소비하지 않고, 다시 저축해둔다면 그 다음해 받을 수 있는 이자금액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개인들이 돈을 버는 두 가지 수단으로써의 노동과 자본은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면 특성이 아주 다른 돈 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크게 육체 노동과 지식 노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편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방법이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두 가지 노동은 경제학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돈 벌이 수단으로써의 노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노동(육체노동이든 지식노동이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쇠약해지고, 두뇌활동도 느려지면서, 노동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육체노동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의 노동력 질이 노령층의 노동력 질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임금도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기에 오랜 육체 노동으로 인한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나중에서는 임금소득보다 의료비 지출이 더 많은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따라서 노동만으로 소득을 벌어야 하는 계층은 장기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기 어렵고, 자본 축적이 어려워짐에 따라 노력을 해도 부(富)를 축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도 사실상 힘들게 됩니다.

하지만 자본은 기계류나 건물과 같은 경우에 나타나는 감가상각을 제외하면, 자본의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의료비 등의 지출도 필요치 않습니다. 가끔 물가상승률이 금리보다 더 높아 금융자본에 감가상각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노동력만큼 감가상각이 크게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돈을 버는 데는 자본이 노동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이 노동과 다른 특징 가운데에는 ‘축적’이 가능하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치가 감소하는 기계류나 건물과 같은 자본재도 있지만,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자본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모되기보다는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자본이 축적됩니다. 노동도 지식이나 기술 등은 일정 기간 축적이 가능하지만, 노동력 자체는 축적이 되지 않고 소모만 되어 갑니다. 노동이 자본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퇴를 하거나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 노동력으로써의 가치는 끝이 난다는 점에서, 노동력의 축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본을 얻어 스스로의 몸통을 불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10억원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5%의 이자율이 적용될 경우, 첫 해에 5,000만원의 이자소득을 얻게 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이자소득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그 다음해에 이 사람의 자본은 11억 250만원(=10.5억원 × 1.05)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나면, 이 사람의 자본은 11억 5,762만원(=11.025억원 × 1.05)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노동력의 주체인 사람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쇄해지기만 할 뿐, 자본처럼 축적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규모는 더 커지는 반면, 노동은 오히려 쇠약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은, 노동력은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지만,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이전도 가능할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 ‘상속’도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 다른 말로 표현해 사람의 몸은 상속이 불가능합니다. 물려주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폐만 끼치는 꼴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은 은행의 예금, 금이나 미술품 같은 고가의 상품, 부동산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자산으로 후계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자본을 상속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본 축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 큰 자본을 상속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이전보다 더 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흔히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려준다는 것인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이때 물려줄 것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자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을 물려주어야 자식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것을 못 물려주어 미안하다는 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도 자신이 살아온 것 그 이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자본이 가진 특징은 자본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만큼 자본의 특성은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과 자본의 차이점은 우리에게 부를 축적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일부에서는 일을 해 번 돈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다, 라든가,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가치나 부(富)의 속성을 잘못 이해하거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의 하나로, ‘열심히 일을 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노동소득을 늘리는 데 힘 쓰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노동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노동, 즉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자본’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열심히 일을 해라’가 아니라, ‘자본의 속성을 잘 이해해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고, 또 일을 열심히 하는 데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노동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과 노동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속적으로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고, 그 불평등은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자본을 만들지 못하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자본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출발점은 ‘종자돈(seed money)’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종자돈을 만들면, 만들어진 종자돈을 운용해서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자본의 크기를 불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경제학은 돈을 어떻게 벌고, 자본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다만, 소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주어진 소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비’할 것인가 하는 효용극대화로 시작을 합니다. 소득을 벌고, 저축을 하고, 자본을 만들어가고 하는 과정은 다루지 않고, 어떻게 잘 소비할 것인가 하는 내용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경제학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개인들에게 부자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것이 아니라, 소비를 어떻게 잘 할 것인가만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자본 축적 기회를 빼앗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