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논란 속 흥행에 성공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돈 많고 핸섬한 청년기업가가 청순한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특이한 섹스 취향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는 내용의 영화다. 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이유는 한국 관객들이 영화의 바탕인 신데렐라 코드와 변태 성행위에 이미 식상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Fifty_Shades_of_Grey_69968

이미 북미에서 개봉해 ‘아바타’와 ‘트와일라잇’의 첫 주 기록을 넘어서며 예매돌풍을 몰고 온 화제의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아르헨 제목: 50 Sombras de Grey)가 발렌타인 데이인 2월 14일에 개봉, 전국적으로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노골적인 성애 묘사와 SM 플레이라는 파격적 소재로 제작단계부터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어 왔다.
젊은 억만장자 남성과 평범한 여대생의 로맨스. 딱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클리셰(상투적 표현)다.
영국 출신 여류 작가 E L 제임스가 2010년 같은 이름의 인터넷 웹소설로 선보인 이 작품은 27세의 성공한 사업가인 크리스천 그레이와 영문학 전공 여대생 아나스타샤 스틸의 로맨스를 다룬다.
원작 소설은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팔렸다. 미국에선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라는 기록도 낳았다. 여러 장에 걸쳐 상세히 서술된 소설 속 성행위 묘사 때문에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Mommy Porn)’라고 소개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돈많고 로맨틱하며 핸섬한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신데렐라 여성들이그레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초혼의 달콤한 분위기를 다시 느끼기를 원하는 기혼의 30~40대 여성을 위한 영화란 뜻이다. 소설에 대한 평가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소설’이라는 극찬과 ‘하이틴 포르노 소설’이라는 비웃음으로 크게 갈렸다. 숱한 화제를 낳은 만큼 원작을 영화로제작한다는 소식이 나올 때부터 큰 기대를 불렀다.grey여성을 주 타깃으로 개봉한 영화답게 여성 관객들로부터는 호평을 얻었다. 특히 영화가 원작과는 달리 ‘포르노’보다는 ‘로맨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일반 여성이 경험할 수 없는 로맨스를,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이 눈길을 끌었다.
그레이는 돈 많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 잘빠진 몸매와 세련된 매너를 지닌 매력적인 남자다.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고 섹스만 한다. 그것도 거칠게”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학성애적 취향을 숨기지 않는다. 성적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만나자마자 빠르게 빠져든다. 소설의 주된 뼈대는 아나스타샤에게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 변화다.
영화는 순수한 여대생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와 27살의 매력적인 억만장자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의 파격적 로맨스를 담고 있다. 룸메이트를 대신해 그레이와 인터뷰를 하게 된 아나스타샤는 자신만만한 신사인 그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로맨스’가 아니다.hqdefault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에게 새도-마조히즘(SM·Sado-Masochism), 즉 가학-피학적 성애를 요구하고 그들은 그레이의 숨겨진 공간에서 채찍과 수갑, 눈가리개 등을 이용해 은밀한 행위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레이가 승마용 채찍으로 아나스타샤의 엉덩이를 때리는 장면에서 여성관람객들의 흥분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노출 수위는 높다. 그레이(제이미 도넌)와 아나스타샤(다코다 존슨)의 신체 노출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지다시피 한다. 원작 소설이 성행위 묘사에서도 두 사람의 감정 표현에 충실하려고 했듯, 영화 역시 같은 태도를 취한다.
가학성애 등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사진작가 출신 여성 감독 특유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작자 E L 제임스 또한 영화 속 노출과 성행위 장면에 대해 “세련됐다”고 평가했다.
소설을 읽은 관객이라면 활자를 통해 상상했던 장면과 구현된 영상을 비교하는 데서 흥미를 느낄 법도 하다. 그레이가 가학성애를 은밀하게 즐기는 장소인 ‘레드룸’(red room)이 나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명품 의상, 고급차, 개인 헬리콥터, 펜트하우스 등 ‘능력 있고 부유한 남성’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킬 만한 소품과 배경은 볼거리다.
소설은 화자인 아나스타샤의 독백으로 가학성애자 그레이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설명함으로써 설득력을 얻는다. 수다스럽다고 느낄 정도다. 반면 영화에선 그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한정된 시간에 배우의 표정과 몇 마디의 대사만으로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사는 영화적으로 압축, 재해석되는 대신 소설의 대사를 발췌해 옮겨졌다. 원작 소설을 읽은 관객에겐 새롭지 않고, 읽지 않은 관객에겐 불친절하다.
영화의 영어 원제목은 ‘50 shades of Grey’로 한국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됐고 아르헨티나에서도 <50 Sombras de Grey>로 한국과 같이 shades를 그림자의 뜻인 sombras로 번역했지만 실제 ‘shade’의 의미는 그림자와는 관계가 없다. 원작에 의하면 주인공인 아나스타샤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레이라는 남자의 성공한 신사에서 SM 플레이에 미친 매니악으로 변화하는 50가지 다양한 모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lube-outraged-parents-whipped-into-a-frenzy-over-kids-inadvertently-seeing-fifty-shades-of-grey
원작자인 E.L. 제임스는 실제 선(善)을 뜻하는 흰색도, 악(惡)을 뜻하는 검은색도 아닌, 독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모습이라는 의미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레이(회색)라고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임스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재단되지 않는 여러가지 명암(shades)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영화는 모두 3부작으로 된 원작 소설 중 1부만을 다룬다. 부족할 것 없는 그레이가 왜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할지, 아니면 가학성애자 그레이에 대한 불편함만 지닌 채 영화관을 나서게 할지는 알 수 없다. 감독 샘 테일러 존슨은 존 레넌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존 레넌 비긴즈-노웨어보이>를 연출한 바 있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세계에서 4억불이상 수익을 올린 대박영화다.
노출 장면에 가위질을 가하는 베트남에서는 120분짜리 영화가 100분으로 줄어들어 무슨 영화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영화로 상영됐으며 멕시코에서는 영화 중의 화끈한 씬을 흉내내려 영화관 안에서 ‘그 짓’을 하던 여인이 체포되기도 했다는 소식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춘 남녀 간의 로맨스 영화로 보지않고 일본 동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태(Hentai)영화’라는 평이 우세하면서 관객의 발길이 끊어져 버렸다.
부자인 남자가 평범한 여성에게 값어치 있는 선물공세를 한다는 설정은 한국에서 이미 식상한 내용이며 “그 정도의 선물은 내 남편도 해준다”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