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작가의 한인타운 방문기> “작고도 가까운 한국”

1990년대 아르헨티나의 정계를 뒤흔든 여학생 마리아 솔레닷의 피살사건처럼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소녀살인사건을 추적한 넌픽션소설 “죽은 소녀들(Chicas Muertas)”과 ‘몰아치는 바람(El viento que arrasa)’이란 넌픽션 소설로 유명한 작가, 셀바 알마다가 한인타운을 방문한 느낌을 적은 수필이 뻬르필지 17일자에 게재됐다.
작가의 눈에 비친 한인타운은 어떤 곳일까. 과연 한국을 대표하고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일까?
이 작가의 느낌이 아르헨 국민 전체의 의견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수정해야 할 단점은 무엇이고 더욱 자랑스럽게 강조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지 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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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쌀쌀한 어느날, 아직 여명이 오지않은 이른 새벽, 리바다비아와 보노리노 교차로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맥도널드의 간판 밑에서 왜소한 몸이 감춰질 정도로 지나치게 큰 쟘바를 걸친 발이 작고, 얼굴이 헬쓱하며 눈이 길쭉한 한 여인이 억지 미소를 띠며 불쾌한 표정의 행인들 사이를 오가며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그 전단에 흥미가 있지 않았지만 그녀의 노력을 덜어주려고 한장 받아들었다.
만원상태인 96번 버스에 올라 탄 후 흥미보다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 전단을 펼쳐봤다. 한인교회에 한 목사가 방문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수년전 플로레스로 이사왔다. 이따끔 한인타운에 대해 듣곤 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대개 공통점은 그 곳에서는 잘(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정보였다. 내 손에는 한인타운의 한 교회의 주소가 쥐어져 있다.
아르헨티나의 한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거의 없다. 아베쟈네다 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과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 엑또르 라레아가 진행하던 TV프로그램, ‘Seis para Triunfar’에 출연하던 모델, 세뇨리따 리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그 주 토요일, 나는 나의 과거기억과 전단(현재)을 상봉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집에서 한인타운까지 걸어가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멀고 먼 한국과의 거리가 집에서 고작 20블록의 거리였다.
보쟈까에서 내려 까라보보 거리를 따라 걸었다. 고가도로 밑을 건너 에바뻬론 거리를 너머 길 가운데에 작은 공원이 있는 한산한 거리에 접어들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는 적막했으며 이따끔 132번, 133번 버스만 지나갈 뿐이었다. 솔직히 바호플로레스의 전형적인 거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발길이 내키지 않기 시작했다. 한인타운은 고요했다. 삐까번쩍한 아치가 설치돼 있고 서양인을 위한 동양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한 차이나타운과 친척지간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이곳이 한인타운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거리마다 양쪽에 서있는 한인교회들이다. 토요일 오후다. 잘 차려입은 남녀와 아이들이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 문을 나선다. 마치 클럽처럼 교회에서 모이고 상면하며 함께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판매, 월세, 맛사지, 빵집, 레미스라는 내용이 한국어, 혹은 스페인어로 된 간판에 씌여 있다. 채소가게 앞의 상자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이 제각각의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치 상추같이 생긴 배추며 이 것은 맵고 짠 양념들과 혼합돼 한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김치의 핵심 재료가 된다.
드디어 한인타운의 노른자위인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 블록 거리의 길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인식당들도 거리 못지않게 눈에 띄지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벽의 색과 같은 색의 페인트로 한국어나 스페인어로 식당이라고 씌여있을 뿐이다. 대개의 식당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길에 접해있는 식당들도 창문을 동양의 풍경화로 가려놨기 때문에 밖에서는 그 식당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대다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식당들과는 달리 한인식당들은 밖에서 식당 안의 내부장식이 어떤지, 몇명이나 식사를 하고 있는지, 음식량은 얼마나 주고 있는지를 알수가 없다.
한인식당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만을 믿고 입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당 문은 항상 잠겨져 있어 벨을 눌러야 열린다.
식당이 2층으로 나눠져 있거나 혹은 칸막이, 혹은 복스로 분리돼 있어, 혼자, 혹은 같이 온 일행만이 들어가 폐쇄된 공간에서 식사를 하게 돼 있다.
꼬치구이만 파는 식당도 있고 식탁 밑에 숯불을 넣고 고기나 생선을 구워먹도록 하는 식당도 있다. 땀을 흘리기 싫다면 이러한 식당은 겨울에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머지 식당들은 음식의 사진이 들어간 메뉴판에 따라 주문을 받는 곳들이다.
내 기호에 맞는 식당은 내가 한인타운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없었지만 그 후에 생긴 식당, ‘Una cancion coreana’이다. 그 식당의 주인은 내가 알고 있는 한인여성 중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Ana Chung이란 여성이다. 그녀는 가수지만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녀가 출연하고 그녀와 그녀의 부군인 Victor가 식당을 차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Una cancion coreana’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독립영화제에도 올려졌다.
이 식당의 김치는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었다. 빅또르는 이 식당의 조리사인 그의 모친이 집안의 비법으로 담근다고 자랑한다. 이 식당 메뉴의 특색은 음식이 모두 사진으로 메뉴판에 실려져 있고 어느 음식이 혼례에 사용되며 또 어느 음식이 장례에 쓰이는 등, 그 음식에 대한 유래와 음식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 혹은 기간이 설명돼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실제 음식이 사진과 똑같다는 것이다.
내가 질리지 않는 음식은 녹두빈대떡이다. 이 음식은 완두콩가루에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고 만든 부침개다. 내가 어렸을 때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만들어 주던 부침개를 만들어 줬다. 나에게도 그러한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아! 지금 저 먼 한국에서 비가 올때 한국 소녀들은 녹두빈대떡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작가 셀바 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