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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과 중국성

PASO(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한숨 돌리게 된 뻬냐 구청장이 한인타운 돌아가는 소식도 들을 겸, 오랜 만에 나를 불렀다.
까를로스 또마다 여당 부시장 후보이자 노동장관이 보낸 인스펙터들이 한인타운에 득실거리자 한 한인이 이에 대한 불만을 표하려는 듯, 한인타운 사무실 입구에 걸려있던 PRO당 간판이 난도질을 당하는 등 비우호적인 분위기라는 나의 설명에 뻬냐 구청장은 시정부나 구청에서 조사반을 보낸 것도 아닌데 웬 PRO당 간판에 화풀이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화제를 바꿔, 한인타운 개발 공사의 진척여부에 대해 물었다.
내가 그 것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아마도 아직도 기획단계에 있는 듯 하며 대사관에서 돈을 내주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하자 뻬냐 구청장은 벨그라노 지역의 바리오 치노(중국촌)의 개발 계획과 공사 진척에 대해 설명했다.
뻬냐 구청장에 따르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정부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관광지로서의 중국촌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마련돼 있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만 차량통행이 금지돼 오던 것을 앞으로는 주중에도 일정시간대 외에는 차량통행이 금지되며 차량 통행이 허용될 때도 보행자 통행이 우선인 보행자거리로 탈바꿈한다. 가로등도 모두 LED 등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9월말까지 완공 예정으로 현재 중국촌의 중심거리인 아리베뇨스 거리를 따라 후라멘또거리부터 올라사발 거리까지의 구간의 차도와 인도의 턱을 없애고 색깔있는 보도블럭을 깔아 재단장되며 미끄로 센트로와 마찬가지로 콘크리트로 만든 장식용 포탄을 심어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게 된다.
뻬냐 구청장은 중국이민자로서 시의원에 출마하는 위안지안핑에 대해 거론하면서 중국이민자들과 마우리시오 마끄리시장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설명했다.
사실 중국정부가 지난 2006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에 중국성(中國城)라고 불리우는 높이 11미터의 3층짜리 대형 아치(아치라고 하기 보다는 성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를 설치하려 할 때, 그 지역 주민 2명이 반대를 하고 나서 건설계획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 당선된 마우리시오 마끄리는 2007년, 중국성의 건설을 허용했고 이 때부터 중국촌은 일장월취를 거듭, 10년이 채 안된 현재는 한인타운과는 비교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화려한 거리로 변신했다.
아르헨티나에 중국이민자(타이완과 푸젠성 출신)가 쏟아져 들어온 것은 90년대 이후다.barrio-chino-buenosaires
현재 아르헨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는 약 6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았을 때인 4만명(?)보다 별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약 30년에 불과한 이민역사를 가진 중국인들이 짧은시간 동안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파고 든 범위는 이민 선배인 한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이번에 중국인 시의원이 당선되면 시의회는 중국이민자들의 권익과 관련된 시조례의 경우, 어떻게 개정될 것은 뻔하다고 봐야한다.
한인들은 걸핏하면 아르헨에서 푸대접을 받는다고 울화통을 터뜨리지만 화교들도 이민초기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무한리필(Tenedor Libre) 식당과 수퍼마켓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중국인들은 마피아 조직, 쥐고기 식단, 전기절약을 위해 야간에 냉장고 단전한다는 등의 모함을 견뎌야 했고 지난 2001년의 아르헨 경제위기 때는 약탈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의 중요한 한 관광명소를 일궈냈다. 그곳에서는 중국음식 뿐만 아니라 일식, 태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물론 한국음식점은 중국촌에 없다)
중국 촌이 이처럼 발전한 것은 이곳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 재아르헨 중국인 슈퍼마켓 알마센 연합회(阿根廷华人超市公会 :CASRECH)를 중심으로 단결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주아 중국대사관이 화교를 위한 사업을 적극 지원한 것이 주효했다고 봐야 한다.IMG_3468
수년 전, 한국에서 갓 부임해 온 모 재아 대사는 한인타운을 둘러보고 한인타운회 관계자에게 “한인타운이 10년 전보다 많이 위축된 것 같네”라고 소감을 말했다.
물론 그 대사는 이 곳에 부임해 있는 동안 한인타운의 발전을 위해 일해보기는 커녕, 자기가 全權特命대사라는 것만 과시하면서 골프만 치다가 떠났다. 그 대사가 다보탑을 허름한 공원 구석에다 처박아 뒀을 때, 중국 대사는 중국촌 입구에 보란듯이 중국성을 세웠다.
주아 한국 대사관은 주아 중국대사관이 자국 교민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본받아야 할 것이다.

편집인 송형직

협력 이끌어 내기

남의 집에 들어가 귀중품을 훔친 허장강과 최무룡이 체포돼 최불암 수사반장의 취조를 받게됐다.
최불암 수사반장은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기 때문에 일단 자백을 받아 사건수사를 역으로 구성하기 위해 범인들을 격리심문하기로 결정했다.
최불암 반장은 자신이 취조를 맡은 허장강을 설득한다. “네가지 경우가 있네. 첫번째는 자네와 저쪽에 있는 최무룡이 동시에 범행을 부인하며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이네. 자네들이 동시에 오리발을 내밀며 입을 봉해 버리면, 결정적 물증이 없는 경찰로써는 자네와 최무룡이를 기소할 수 없으므로 석방해야 겠지. 두번째 경우는 자네가 범행을 자백하지만 최무룡가 그런 짓을 안했다고 박박 우긴 후 입을 봉하는 경우이네. 이 경우에 자네는 비록 죄가 있지만 수사에 도움을 줬다는 정상이 참작돼 방면될 것이며 대신 무죄를 박박 우긴 최무룡이는 자네 몫을 더한 10년형을 살게 될 것이네. 세번째 경우는 두번째와 정반대로 자네가 무죄를 박박 우기고 있을 때 최무룡이가 범행사실을 다 털어 놓을 경우이네. 이경우 최무룡이가 수사에 도움을 줬으니 방면될 것이고 그 대신 자네가 10년 형을 살아야 하네. 마지막 네번째 경우는 자네와 최무룡이가 동시에 범행을 자백하는 경우이네. 이 경우, 경찰은 손쉽게 사건을 해결했으므로 특별히 자네와 최무룡의 죄를 줄여서 보고할 것이고 그러면 둘다 5년 형에 처해질 것이네. 어떤가? 수사에 협조할 것인가?”
허장강이 취조를 받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또 다른 취조실에서는 김상순 형사가 최무룡에게 똑같은 설명을 하고 있었다.
허장강과 최무룡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낮은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는지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나와 저놈이 동시에 범행을 부인하는 것이지. 이렇게 된다면 증거 불충분으로 둘다 무죄방면될 것이지만 만약 내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을 때 최무룡 저놈이 혼자 살겠다고 범행을 자백하면 나만 혼자 10년을 썩어야 한다는 결론인데… 나만 손해 보면 안되지? 범행을 자백하면 길어야 5년형, 재수가 좋아서 저놈이 범행을 부인하면 저놈 만 10년형을 살게 되니, 자백하는게 유리하지 않은가.”
허장강이 마음을 정한 후 최불암 반장에게 범행을 자백하고 있을 때 옆방에 있던 최무룡도 똑같이 김상순 형사에게 자백을 하기 시작한다.
죄수들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고 불리우는 이 논리는 사회 구성원들이 내리는 결정이 그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딜레마 논리는 협력하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방의 배반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먼저 배반을 하므로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게된다는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저녁값의 딜레마(Diner’s Dilemma)라는 논리도 있다.
어느 촌동네 향우회 모임이 중국집에서 열렸다. 향우회장은 향우회원들에게 원하는대로 음식을 시켜 먹으라고 한다. 단 음식대금은 총액에서 머릿 수로 나눠서 각자 부담하자고 했다.
즉 10명이 모인 향우회에서 1백뻬소 짜리 짜장면을 먹은 사람이 5명이고 2백뻬소짜리 원숭이 골(猿腦)脳요리를 먹은 사람이 5명이라면 음식대금이 1500뻬소가 청구될 것이며 회원들은 1인당 150뻬소를 부담해야 된다.
이 촌동네 향우회원들은 사는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모두가 영악하고 똘똘한 사람들이었다.
“100뻬소 짜리 짜장면을 먹고 150뻬소를 낸다면 바보아닌가? 나도 원뇌 요리를 먹어야 겠다.”
이 촌동네 향우회원들은 “고급요리를 먹고 다른 향우회원들에게 식대를 부담시키는 것이 현명한 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결국 모든 회원이 구역질 나는 원숭이 골 요리를 시켰다.
그들은 곧 자신이 먹은 음식값을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지불하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제로섬 게임(손해본 자 만큼 이익본 자가 존재하는)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비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이 일반적이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상대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지만 비제로섬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대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협력의 중요성이 있다.
허장강과 최무룡이 협력해서 동시에 무죄를 박박 우겼다면 둘다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됐을 것이며 촌동네 향우회 회식에서도 회원 간 서로 상대방의 주머니를 배려 해줬다면 맛없는 음식에 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구닥다리’ 현자들은 타인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황금률(Golden Rule)의 실현이 어려워진 현재는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격률(格律)로 수정되고 있다.
“일단 흔쾌히 협력하고(죄수의 딜레마에서 보듯이 상호 협력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협력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하는 대로 되갚아 줘라.”
즉 상대방이 협력하지 않을 때는 보복이라는 덜 도덕적인 방법이지만 맞은만큼 되받아 치라는 팃포탯(tit for tat)을 통해 협력을 유도하라는 뜻이다.
실천 윤리학의 거장인 피터 싱어가 이기적인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에서는 “보복으로 협력을 유도하되 보복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복 후, 흔쾌히 용서하고 상대방을 시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피터 싱어의 가르침대로 노인회 사태가 매듭져지길 기대한다.

편집인 송형직

오라시오 라레따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의 시장 및 구청장, 그리고 30명의 시의원 후보를 각 정당별로 결정하는 예비선거(PASO)에서 예상대로 PRO당이 승리했다. PRO당은 오라시오 라레따 정무수석 장관과 가브리엘라 미께띠 상원의원이 예비후보로 나서 박빙의 후보전을 실시, 선거 당일까지 누가 최종 출마권을 획득할지 갸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달변이기 때문에 능력이 뛰어난 인사로 비쳐진 미께띠 후보가 우세를 보인다는 중론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 봤을 때는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말주변이 신통치 않은 오라시오 라레따가 승리한 것이다. 미께띠는 시의원이었을 당시, 놀라운 언변으로 크로마뇽 춤장 화재사건의 청문회 스타로 떠올라 결국 아니발 이바라시장의 옷을 벗기는 역할을 한 바 있다.
사실 라레따 후보는 젊은 나이(49)에 벌써 대머리이며 뾰족한 뒤통수(이를 감추려 캡모자를 쓰고 다닌다), 급할 때는 말을 더듬고(선거에 앞서 연설을 위한 개인강습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오른손은 수전증 증세를 보이며 앞니는 벌어져 조금 모자란 인상을 주는등, 첫 인상은 낙제점수다. 또한 라레따 후보는 PAMI에 감독관으로 근무할 당시 아르헨의 심장전문의인 레네 파발로로가 운영하는 재단의 막대한 채무를 변제할 길이 없어 자살하자 각종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첫 인상은 얼굴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보여주는 외양, 말씨, 문필력, 판단력 등을 종합해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이 네가지를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말한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첫인상’은 10분의 1 초만에 만들어져 머리 속에 각인된다고 한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의 한 교수의 실험 결과다.
인간이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첫인상이고 또 첫인상이 새겨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한 0.1초라면 너무 경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는 판단력을 중시해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을 발표하지만 최종적으로 1790년에 내놓은 <판단력비판>이란 책을 통해 인간의 판단이란 것에 회의를 느끼는 결론에 도달한다.
칸트는 그 책에서 법칙성을 추구하는 인식 능력인 ‘오성’과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는 의욕 능력인 ‘이성’ 사이에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쾌·불쾌의 감정으로서의 ‘판단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철학자다운 알쏭달쏭하고 헷갈리는 단어들만 나열해 놨지면 다시 쉽게 풀이하면 우리가 말하는 첫인상도 결국 판단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판단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동양의 철학자인 공자도 첫인상을 보고 그릇된 판단을 내려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고 궁시렁댔다.
공자에게는 담대자우(澹臺子羽)와 재여(宰予)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담대자우는 외모가 너무 형편없어 재주와 덕이 박할 것이라 짐작했고, 재여는 언변이 고상하고 세련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겉보기와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공자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멋쩍었는지 한 ‘말씀’하셨다.
“나는 말주변에 현혹되어 재여를 과대평가해 버렸고, 못생긴 용모 때문에 자우를 과소평가하고 말았다(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
그리하여 공자는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바꾼다.
“의지가 굳세고 용모는 꾸밈이 없어 소박하고 말은 서툴러서 더듬거리는 사람이 어진 사람에 가깝다(剛毅木訥近仁)”라고.
공자는 “교묘한 말솜씨에 아름답게 꾸민 얼굴을 한 사람 치고 어진 사람은 드물다(巧言令色鮮矣仁).”라고도 말했다.
즉 못생기고 말주변이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 어진(仁)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레따 후보가 승리한 이유가 못생기고 말주변이 없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며 유권자들이 그의 성실함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교민사회도 비록 말주변이 없고 꾀죄죄하더라도 남을 위해 일을 하려는 자세가 돼있고 원만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앞장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편집인 송형직

두부 속의 미꾸라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시의 시장 후보와 15개 구역의 구청장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PASO)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잡지의 4월호가 발간되는 즈음에는 PRO당의 시장후보가 결정돼 있을 것이고 또 그 후보가 오는 7월의 본 선거에서 무난히 시장 및 구청장으로 당선될 것이다.
27일 미께띠 후보의 튀는 행동을 못마땅하게 봐 온 마끄리 시장이 라레따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글을 그의 페이스북에 올리자 미께띠 후보 진영은 초상집이 돼 버렸다. 그만큼 PRO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마끄리를 신봉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오는 4월 26일 실시되는 예비선거에서 라레따 후보가 시장 후보로, 그리고 또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플로레스, 차까부꼬 지역의 제 7구청의 구청장 후보는 현 구청장인 기졔르모 뻬냐가 될 확률이 높으며 7월에 실시되는 본선거에서도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선거철임에도 불구하고 한인타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라레따와 뻬냐 후보 등은 한인타운에서 유세를 위한 행사를 하려고 해도 할 장소가 없다. 라레따 후보가 한인노인회관에 가려고 해도 갈 수없고, 한인타운에서 행사를 하려고 해도 회원들의 지지가 없으므로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사립인 한국학교에서의 유세는 불가)
후보들이 오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후보들을 불러다가 공약을 듣고 약속을 받아야 했다. 하물며 후보들이 오고 싶어해도 유세할 장소조차 마련해 놓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선거철이 도래했어도 한인타운은 한산하며 우리는 할 일이 없다. 반면, 빈민촌은 대목을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공짜 밥이나 얻어먹는 한인회장 선거가 더 실속있지, 구청장, 시장 선거는 별로 감이 안잡히기 때문일까?
처지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인가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끝없는 불황, 계속 발생하는 범죄 피해 만을 탄식하며 점점 더 슬럼프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위기에 앞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촌음을 다투어 지혜를 짜내도 모자라는 판에 ‘어떻게 되겠지’하며 세월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딱하다.
이러다가 한인타운 환경개선은 커녕, 빈민가의 확대 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왜 한인타운은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너무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안되도록 짜고 쳐도 이렇게 안 될 수가 없다. 한인타운을 망쳐놓고도 자기 탓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 아직도 많다. 길을 막고 물어봐도 이대로 가다간 한인타운이 망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잘 알고 있지만 ‘설마 오늘 낼은 아니겠지’ 하는 아둔한 사람들만 한인타운에 사는 것 같다. 한인타운에 5년 이상 근무한 경찰관들에게 물어보면 현재 한인타운이 발전하고 있는지, 퇴보하고 있는지 금세 판단해 준다.
이제 엉망진창이 된 한인타운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조강지 처 내 쫓고 집안 꼴이 왜 이래하며 푸념하는 바보들만 사는 한인타운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창피한 민족이다.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물어뜯고 싸우며 또 우리가 멸시하는 볼리비아인보다도 모자란 짓을 많이 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이미 현지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최근 들어 한 마음 한 뜻으로,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또 더 산뜻하고 깔끔하게 우리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위기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처럼 팔짱을 낀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재외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국록을 받으면서도 태평세월인 우리의 존경스러운 대사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자세가 우리에게 전염된 모양이다. 문제점을 제시하고 해결하려면 재래식 변소의 똥더미를 휘젓는 듯한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비록 냄새가 나도 똥더미는 휘저어야 발효가 잘 되며 그래야 두엄으로 쓸 수가 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는 말이 있다. 위기에 당면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결과가 나쁘게 나올 가능성이 있더라도 뭔가 하는 것이 낫다는 소리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불 위에 놓인 냄비 속의 미꾸라지는 아직 덜 뜨거운 두부에 파고 들지만 곧 두부도 뜨거워지면 죽고만다. 우리는 당면한 위기를 피해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두부 속에서 안주하려는 근시안적 미꾸라지가 돼서는 안된다.
‘한인타운을 걱정하는 모임’이란 단체가 필요할 때다.
편집인 송형직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라는 패러독스가 있다. 테세우스의 배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황소와 간음한 미노스의 왕비가 낳은 반수반인(半獸半人)인 미노타우르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 테세우스가 크레타로 귀환할 때 사용한 배다.
그 후 아테네인들은 이 배가 썩어가자 낡은 널판자들을 제거하고 새 목재를 그 자리에 바꿔 가면서 무려 1천년을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서 아테네의 철학자들 사이에 이 배가 아직 같은 배라는 의견과 더 이상 같은 배가 아니라는 의견으로 나뉘면서 이와 관련한 전설적인 패러독스가 됐다.
후세 철학자들은 이 테세우스의 배에 사용된 널판자를 모두 교체한 배와 기존의 테세우스의 배에서 뜯어낸 널판자로 건조된 새로운 배가 있을 때를 가정, 어느 배가 진정한 테세우스의 배인가를 따지는 논쟁인 ‘테세우스 배 패러독스 (Theseus’ Paradox)’를 확대해왔다. 이 패러독스는 이는 한 조직에 몸담고 있던 조직원들이 모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을 경우, 기존 조직과 새로운 조직 중 어떤 것이 진짜일까 하는 물음과 같은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테세우스의 배’ 또는 ‘테세우스 패러독스‘는 이렇게 우리에게 역설적인 질문을 남기고 있다. “하나의 물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부품이 모두 바뀌어도 그것이 사실상 같은 물체인가?”
이번에는 인체의 경우로 확대해 보자.
일반적으로 장기를 이식 받은 사람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으나 두뇌가 낡아서 이를 구성하는 뇌세포를 바꾸어 나가거나 뇌수술로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았을 때, ‘나’란 정체성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재아 한인노인회에도 테세우스의 패러독스가 제기됐다. 한 개의 노인회에서 두 무리의 인사들이 각각 회장을 옹립하고 한 쪽은 건물을 차지하고 앉아서, 또 다른 한쪽은 건물 밖에서 활동하면서, 각각 정통성이 자신들 쪽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8304219a0418d08e5136f3d638b70bf3한국 노인회 중앙회의 이심 회장은 아르헨노인회를 방문, 아르헨노인회를 아르헨 지회라는 명칭으로 중앙회에 귀속시키면서 연 1만불 제공을 약속하고 2명에게 이중으로 회장 등록증을 발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이때부터 재아노인회는 파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만불 때문일까, 회장 등록증 때문일까?

현재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측은 “한인의, 한인을 위한, 한인에 의한 노인회이므로 아르헨 법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한국의 결정(중앙회에서 최종적으로 회장등록증을 발부했음을 강조)에 따라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한인 운전자가 자신은 한국산 자동차를 몰며 한국인이기 때문에 아르헨의 도로교통법은 무시하겠다라는 억지로 들린다.23956_17945_1455재외동포신문의 기사에 나온 사진. 2013년 6월 2일 오후 4시, 이천훈 노인회장은 창립총회를 갖고 제 14대 노인회를 출범시켰다고 보도됐다. 이로부터 1년도 못돼 이 회장은 쫓겨나 ‘건물 밖의 노인회장’이 됐으나 아르헨정부로 부터 정통 노인회장 자격을 인정받았다.

반면 ‘건물 밖의 노인회’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무 효력이 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한 중앙회에서 발부하는 회장등록증은 우리도 받았다”며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라야 하므로 아르헨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고 주아 대사관의 인증을 받은 우리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건물 밖의 노인회’는 지난 20일 노인회관에 들어가 ‘건물 안의 노인회’ 측에 점잖케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Captura de pantalla 2015-02-25 12.05.04그러나 건물 안의 노인회는 이를 거부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욕설과 함께 언성을 높여 지나가던 순찰경찰관이 노인회관에 위급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 건물내로 뛰어들어 상황을 체크하는 헤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Captura de pantalla 2015-02-25 11.52.22

한편 건물 밖의 노인회를 이끌고 있는 이천훈 노인회장이 쫓겨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스스로 사임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으나 이는 형법상 위계(僞計:부지(不知)나 착오를 이용하는 속임수)나 위력(僞力: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 힘)에 의한 것이므로 원천적 무효이며 또 총회에서 회원들에 의해 선출된 회장은 공인(公人)이므로 사임서를 던졌다고 사임한 것으로 인정될 수는 없으며 반드시 소정의 절차(이사회나 총회의 인준)를 밟아야 사임이 완료된다는 것이 단체조직과 관련된 법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결국 이래저래 ‘건물 안의 노인회’가 불리한 상황이다.


편집인 송형직

왜 라틴국가들은 미국보다 못사는가

경제적으로 라틴국가들과 미국이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정복자들과 인디오의 관계 , 그리고 종교에서 비롯한 사회적 관습, 도덕성 결여, 자포자기성 만족감 등으로 분석될 수 있다.

경제면에서 보면 1997년은 1982년 이래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해였다. 지역 평균 경제성장률 5.5%에 한자리수 물가상승률이라면 어디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1997년 말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는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장래에도 암운을 드리웠고, 1998년, 우려는 현실이 되어, 위기가 러시아를 거쳐 중남미 국가들에도 닥쳤다. 브라질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위기를 막기 위한 처방은 경기를 위축시켜 지역의 성장률은 2%대로 낮아졌고, 1900년대의 마지막 해(1999년)에는 경제성장은 기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1980년대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암울한 분위기이다.20070902elpepiint_2
이는 같은 미주대륙 북반부의 미국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비전시(非戰時)로는 최장의 호황이었다는 1980년대의 장기호황 기록을 경신하였고, 증권시장에서는 Dow Jones 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그리고 실업률도 1970년 이래 가장 낮은 4.6%이고, 물가는 2% 이하로 안정되어 미국의 분위기는 붐을 넘어 풍요 그 자체이며, 미래에 대한 전망은 낙관을 넘어 자만에 이르렀다. 그 징표는 1930년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민간소비가 소득을 초과해 저축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소득이 계속 증가하리라는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DIA DE LAS MADRES
이같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간의 대조적 분위기와 경제적 성취도의 차이는 비단 오늘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신대륙의 남과 북이 본격적으로 식민지로 경영되기 시작한 이래 줄곧 보여온 현상이었다. 그리고 장기추세는 서로 간의 갭을 줄여가는 수렴이기보다는 오히려 발산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신대륙에서 역사적으로 관찰되는 이같은 현상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 주었고, 이 퍼즐을 풀고자 하는 시도가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빈곤, 불평등한 소득분배, 경제의 낙후성, 민주정치의 실패, 정치적 불안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연구로 접근되어 왔다. 제3세계 모든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이같은 현상들이 문제로 인식되고, 그 원인을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나름대로 그 존재이유가 있는 것도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종교 및 사상의 차이

모든 문명은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각각 나름대로의 비젼을 가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은 이웃간이지만 서구문명 중에서는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첫째로 남미 대륙의 대서양 연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의 핵심은 인디오들이다. 이는 비유럽, 비서구라는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서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독창적인 문명이 이미 거기 있었다. 둘째,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한 스페인은 카톨릭국가일 뿐 아니라, 십자군전쟁을 경험하고 16세기까지 이슬람과 싸운 국가이다.
16, 17세기 동안 스페인은 반동 종교 개혁신앙의 수호자였다. 이 종교적 이념이 스페인 문화와 식민 당시 정책의 중심이었으며, 라틴아메리카가 물려받은 유산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는 반근대유럽(anti-modern Europe)의 반영이다.
근대화의 부정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미국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면서 출현되었다. 미국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덧없는 것인 시간 위에 세워진 미래의 나라이다. 사실 그것은 근대성의 완전한 표현이다.
미국의 유산은 첫째로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오며, 둘째로는 계몽사상에서 온다.
미국은 근대 유럽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태어난 것이다. 서로 다른 유산으로부터 서로 다른 시간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새로운 출발로 시작되었다.
미국은 구세계의 구질서와 전통적 가치를 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화에 씌어 있듯이 ‘시대의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뿌리가 없는 나라이다. 아니면 미국의 뿌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역사와 전통이 그들의 존재의 중심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공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어떻게 과거가 현존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과거가 작가와 화가들의 주제가 되었고, 지성인들의 집념의 대상이 되었다.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es:멕시코 지역 정복자)가 아직 살아 있고, 그에게 패배당하고 죽임을 당한 아즈텍(Aztec)의 왕 과우떼목(Cuauht moc)도 살아 있다. 그리고 꼬르떼스편 사람들과 과우떼목편 사람들 간의 싸움이 아직도 계속된다. 멕시코의 치아빠스 내전이 그 예이다.pobreza

정복자와 인디오의 관계

정복자, 식민자로서의 스페인 카톨릭과 북미 프로테스탄트는 매우 상이한 현실을 창출했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들 사이에 토착민을 포용하는 그러한 토착민과의 관계를 세우려 노력했다. 라틴아메리카인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인디오들의 노동자원을 정복하고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토착민은 새로이 건설되는 문명의 밖에 남아 있었다. 미국인들도 토착민을 포용할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토착민들의 과거는 아메리카 미래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통합을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분리를 생각했다. 이 분리의 아이디어는 미국역사에 일관성있게 나타났고 이는 미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미래를 향한 달음박질 도중에 만나게 되는 역사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고립했다. 미국은 항상 외교정책에서도 순수, 고립의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그것은 미국사람들의 심리에 매우 깊게 뿌리박힌 중요한 흐름이다.
세계의 한쪽은 마비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역사의 가속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역사와 생을 시간의 속도를 통해서만 보려는 현대인의 오만이다. 시간에서 가속이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매우 서서히 발전하는 확립된 사회는 현대세계가 가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미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들이 변화의 우상을 갖고 있는 사회보다 더 잘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다. 원시사회는 수천년을 견뎠지만, 발전된 사회는 2, 3세기 후에는 폭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에는 모호한 경향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 혁명도 두 가지 경향을 갖고 있었다. 승자들에 의해 지지되었던 국가를 개혁하고 근대화하려는 경향이 수천년의 안정을 수호하려는 봉기(millenarist revolt) 사빠따와 나란히 존재했다. 그는 근대화로의 진행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이상적 농업사회의 사회적 평등과 자유라는 신화적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 개인의 자유와 이성만이 가치로 인정되는 서구전통의 눈에는 라틴아메리카는 모순일 수밖에 없다.

경제가 제자리 걸음인 이유

에스빠뇰라 섬 등 카리브 지역에서의 식민활동을 제외하더라도, 꼬르떼스가 멕시코대륙에 발을 디딘 1518년에서 메이플라워호가 플리머스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1620년까지는 100년이란 격차가 있다. 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유럽이 필요로 하는 열대작물을 공급할 수 있는 당시로는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한 지역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라틴아메리카제국은 오늘 미국과 같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지 못하고 빈곤과 외채와 물가고에 시달려 왔어야 했는가? 정치면에서도 똑같은 수수께끼가 제기된다.pobreza_basurero_1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제국의 독립은 아메리카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박애정신이 신생공화국들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고, 이들 신생국들의 헌법은 미합중국의 헌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군부에 의한 정치개입과 헌정(憲政)중단이 반복되어야 했는가?
이같은 문제의 뿌리와 원인에 대한 시각은 중남미인들 사이에서도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다. 우리는 그러한 노력들을 두 가지 기본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나의 탓, 우리들의 잘못, 즉 안에서 원인을 찾고 현상을 설명하고 나아가서는 대책을 제시하는 입장이다. 엘리트그룹의 독점요구, 중산층의 기업가정신 결여, 일반대중의 무기력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더 나가서는 숙명론적인 자기비하의 시각 등에 그것이다.
둘째로는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남의 탓으로 원인을 돌리는 입장이다. 그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일 때, 그들의 수탈로 신대륙식민지에서는 재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그들이 이베이라반도에서 수입한 제도와 형태와 문화적 유산이 오늘의 라틴아메리카 낙후성의 원인이 된다. 만일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자’들이라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그들에 의해 수호, 지배되는 자본주의체제의 탓이 된다.

1.“우리 탓”
이론과 실천, 말과 행동, 내용과 형식 사이의 끊임없는 상충이 라틴아메리카의 특징이 되어 버렸으며, 그것의 도덕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발전의 기본조건인 법과 질서조차도 제공할 수 없는 정치체제의 무능에 실망했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의 눈부신 발전으로 자신들과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진 현실에 자극되어 자기반성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환상적인 혁명의 이상과 꿈에서 깨어났다. 멕시코에서의 뽀르휘리오 디아스(Porfirio Días) 독재정권(1884∼1911)에 대한 교육자와 지식인들의 지지는 이같은 사고변화의 특이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혼돈과 침체를 질서와 번영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부패를 척결하고,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시키고, 근대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선의의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또 다른 꿈의 반영이었다. 교육자들과 지식인들의 결론은 라틴아메리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들과 사회 자체의 완전한 변혁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중산층의 형성과 교육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매우 긴 시간을 요하는 변화이다.
이같은 생각은 당시 중남미인들 사이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자신들과 그들 사회에 관한 책들은 그들의 결점과 실패를 끊임없이 그리고 냉혹하게 서술하는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붕헤(Bunge)의 <우리들의 아메리카>(Nuestra America)와 봉휭(Bomfim)의 <사회적 기생과 진화>(O Parasitismo social e Evolução)를 들 수 있다. 당시 유행했던 인종주의적 결정론에 강한 영향을 받은 이들은 거의 라틴아메리카의 구제할 길없는 인종적 열등성과 점진적 퇴보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붕헤의 모든 분석은 라킨아메리카 사회성격의 기본적 구성요인이 게으름과 비관적 사고 그리고 오만의 세 가지라는 명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과 같은 범주에서 특히 경제를 다룬 흥미로운 책은 칠레의 역사가 엔시나(Fracisco Encina)가 쓴 <우리의 경제 열등:그 원인과 분석>(Nuestra inferiordad econó mica : Sus causas, sus consecue ncias, Santiago, 1912)이다. 그의 견해로는 칠레 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첫째 창의력과 인내심 그리고 도덕심의 결여, 둘째 협동능력의 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난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특징들은 유전적 요인과 잘못된 교육에 기인한다는 것이다.pobreza_infantil
이 ‘병든 대륙과 그 주민’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19세기 중반과 말에, 아르헨티나의 지식인 사르미엔또(Domingo Faustino Sarmiento)와 알베르디(J. B. Alberdi)는 각각 미국을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사회·경제분야의 저술가들 사이에 널리 보급된 경제신념은 영국의 자유무역과 불간섭주의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후르따도(Celso Furtado)가 지적하듯이,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저술가들은 그들의 사회적 뿌리가 대지주와 노예소유주에 있었기 때문에 공업발전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2.“종주국(이베리아) 탓”
자기비하가 19세기를 관류하는 전반적인 흐름이기는 하지만, 그런 중에도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가 싹트고 있었으며, 비난의 대상은 이베리아반도의 식민 종주국이었다. 사르미엔또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그의 동료지식인, 정치지도자들은 그들의 신생독립국들이 겪는 무질서와 독재의 반복이 히스파닉 영향때문이라고 비난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 문제의 근원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찾으려는 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이 있다. 특히 그들의 문제에 역사/문화적 접근을 하는 연구들은 중세 이베리아반도의 특징이었던 행태와 제도, 사회관계들이 오늘의 라틴아메리카에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스페인 정복자들, 정부관리들, 카톨릭 선교사들은 엘리트주의, 권위주의, 군국주의에 기초한 사회체제를 신대륙에 이식했다. 포르투갈인들의 유산은 스페인의 것에 비해서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에 보다 관대한 편이지만, 스페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인들도 그들의 신대륙후손들에게 사회·정치·문화적 계급제도의 엄격한 관념을 심어주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군주제도로부터 파생되는 가부장적 사고는 문화와 개성은 교육의 함수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배정치문화에 참여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간주한다. 그들은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하느님이 세우신 계급질서에서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복지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그것은 지배계층의 몫이었다. 공공도덕성이 정치문화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구조상 계급적이며, 이념적으로 절대주의이고, 현실적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카톨릭교회는 정치·도덕질서 유지의 책임을 정부와 나누어 갖고 있었다.
이베리아반도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또 다른 학자들은 조합주의 모형을 제시한다.
중세 카톨릭사상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으며,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과 살라사르 치하의 포르투갈에서 관찰되는 조합주의 모형이 근대화 발전이론에 근거한 모형들보다는 오히려 라틴아메리카 현대정치를 잘 설명한다는 주장이다.
조합주의 모형은 수직적 조직경향을 보이는 라틴아메리카 정치집단들의 행태에 주목한다. 조합주의체제하에서, 그런 집단들은 권위주의적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되어서, 권력과 의사전달체계는 위로부터 아래로 수직적이다. 조합주의적 조직은 많은 라틴아메리카국가들에서 쉽게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중세 이베리아 반도로부터의 족적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라틴아메리카제국에서의 사회과학을 지배해 온 추세는 마르크스적 계급갈등과 제국주의의 변형이었다.

3.“너희 탓”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잠정적 자기비판과 선진공업국에서와 같은 자유방임적 사회·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저술들이 지배적이었으나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이들의 발전관의 급격한 선회를 보게 된다. 자신들에게서보다는 바깥세상에서 잘못을 찾으려는 경향이 본격화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분야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라틴아메리카식 해결도 모색하기 시작한다. 중미지역에서의 미국의 개입주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세의 약화, 러시아 및 멕시코혁명 등 국제여건변화와 경험이 이같은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사회·경제변혁의 일관된 이론이 당장 출현한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사회에 대한 혁명적 이론정립의 가장 야심적 시도가 오늘 날까지도 가장 사회변화를 이루지 못한 페루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페루인 아쟈 델라또레(Haya de la Torre)의 사상은 10월 혁명이 지식인사회의 분위기를 지배하던 1920년대 초에 형성되었다. 그는 공산주의와 자신의 사상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꼈고, 라틴아메리카문제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레닌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이지만, 중남미인들에게는 그것은 자본주의와의 최초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서 혁명은 약하고 가난에 허덕이는 프롤레타리아보다는 유럽에서보다 투쟁의식이 강한 지식인들과 중산층에 의존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는, 투쟁은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반제국주의 깃발아래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의 반제국주의 투쟁프로그램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그가 외국자본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들에서는 자본수출은 꼭 해야되는 것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국가들이 자본유치경쟁을 멈추고 반제연합으로 뭉친다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제사상의 기초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라틴아메리카 후진성의 원인은 제국주의 착취이며, 경제발전은 국가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며, 서구자본주의 발전초기단계에서 두드러졌던 부작용이 극복되어야 하며,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이익공동체의 협력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또 그의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디오와 라틴아메리카의 원시적 과거에서, 지켜야 될 가치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경제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요소들을 찾는 것이다. 그는 페루경제의 이중구조를 지적하고, 인디오경제의 집단주의전통을 지키고 그 위에 새로운 농업사회를 건설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틴아메리카를 지배해 온 사고의 틀을 바꾸는 정치·경제의식의 일대변혁을 의미한다. “역사를 상황의 구체적 표현이 아니라 그것을 호도하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실천되는 제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국가자본주의로 불리던 왜곡된 시장경제가 경쟁논리에 근거한 자유시장경제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인류보편적 가치이면서도 가장 미국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의 라틴아메리카로의 확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부와 소득, 경제수준에서만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가치가 달라 지향하는 미래의 방향도 다르던 미주대륙의 남과 북이 같은 가치를 존중하는 같은 체제로 수렴하는 지난 10년이었던 것이다.
1998년 4월 말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초에, 미주 월스트리트 저널과 16개 라틴아메리카 신문사들이 공동으로 행한 “아메리카의 거울”이란 조사보고에서도 남북미간의 수렴현상은 확인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협정 제안에 대한 지지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절대적인 반면 미국에서는 유보적이었으며, 외국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저하게 줄어든 반면 미국에서 오히려 그 반대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등 일견 역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결과를 보였다.
민주주의도 라틴아메리카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콰도르와 파라과이를 제외하고는 권위주의정권 지지는 일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반미감정 혹은 미국에 대한 불신도 거의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콜롬비아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마약생산국에 대한 제재조치를 지지했으며, 이를 위해 미군이 2000년 이후 파나마에서 계속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거울”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14개국에서, 미국에서는 전화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직접 인터뷰로 1만4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이 조사결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에서 남북미인들의 의식의 수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나 아직도 이들 간에 상당한 갭이 있음도 깨우쳐 준다. 30% 정도의 라틴국가 국민이 권위주의 정권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지지가 정부 및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에서 온다는 점이다. 국회, 사법부, 경찰 모두 국민의 사분의 일 정도의 신뢰만 얻고 있을 뿐이다. 민간기업들이 훨씬 높은 신뢰를 얻고 있었고, 특히 중소기업은 55%의 신뢰로 공공부문의 배를 넘었다. 민간부문에 대한 신뢰가 정부부문에 대한 신뢰에 비해 높은 한 시장경제에 대한 지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미 자유무역에 대한 중남미인들의 지지는 미국에서와 차이가 없다.

현 위기 – 과거로의 복귀인가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1년만에 러시아를 거쳐 남미로 파급되어, 브라질로 하여금 다시 한번 IMF를 찾게 만들었다. 역시 세계금융위기에서 라틴아메리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불과 4년전에 멕시코에서 ‘21세기 최초의 금융위기’로 불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보다 12년전에 바로 거기에서 1980년대의 세계채무위기가 시작되었었다. 이들은 우리들이 직접 목격했던 근년의 위기들이었을 뿐이고, 19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래 라틴아메리카는 세계금융위기 때마다 그 중심에 있었다.
1820년대 이들 신생독립국 정부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이 1825∼6년의 유럽금융위기를 맞아 지불불능이 되면서 이에 투자했던 영국투자자들의 번영의 환상은 산산이 깨어졌다. 다시 1860년대에서 70년대 초 그리고 188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정부와 철도회사들이 대량으로 발행했던 채권들은 각각 1873년과 1890년의 위기를 맞아 채무불이행, 재협상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자본공급원과 그 용도는 바뀌었어도 라틴아메리카의 대외채무위기는 반복되었다.
192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의 도시현대화 프로젝트를 미국의 은행들이 투자했고,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다시 한번 1931년부터 채무불이행, 재협상이 공식은 이어졌다. 그 이후 1970년대의 석유 달러와 1990년대 미국투신사들의 주식과 채권투자가 불러온 1980년대와 1995년 위기는 이미 언급한 대로 우리가 경험한 위기들이다.
붐과 파국의 반복이 지난 200년 가까이 계속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지난 10여년간 중남미제국이 보여준 변화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과거로의 회귀를 우려하게 만드는 현상들도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개혁의 혜택은 이미 잊혀지고 있는 반면 그 비용이 크게 보이기 시작하여 정치적 지지가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세법, 노동법, 연금법, 상법 등 제도와 관행은 개혁을 기다리는 데 개혁의 속도는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또한 마약의 확산, 폭력과 부패의 만연 등은 저소득계층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이상보다는 치안을 유지해 주는 독재정권을 선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현상이다. 최근의 외환위기공포는 경제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개방정책을 비판해 온 많은 이해집단이 세 확산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위기가 정부로 하여금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할만한 몇 가지 이유도 발견된다. 그 첫째는 베네수엘라의 경우와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라틴아메리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안정과 개방경제의 이득을 체험했다는 점으로 그것은 지속적 개혁을 국민들이 표로 지원하는 정치적 성숙으로 표출되고 있다. 둘째는 그간의 개방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이 중요한 국내시장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개혁과 개방을 돌이키기 어려운 현실로 만들었다. 셋째로는 역내 자유무역, 공동대외무역정책, 공통관세 등을 포함하는 Mercosur와 같은 ‘열린 지역주의’를 지향하는 장기적 안목의 통합프로젝트도 라틴아메리카가 과거로의 회귀와는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끝으로 그간의 고도성장과 아울러 저축증대, 생산적 투자, 효율적 금융산업의 신장 등을 한 세대 내에 이루어낸 칠레의 경험이 여타 국가들에게도 좋은 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전형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가 포퓰리즘과 보호주의로의 회귀를 거부하고 있다. 아직은 과거의 실수에서 얻은 교훈이 가장 큰 자산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렇게도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자유시장과 개방의 이득을 그리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똘레란시아

2년 전 아르헨티나의 기자이자 작가인 마르띤 까빠로스가 한국방문 체험기를 ‘빨리빨리’라는 제목의 화보를 발간한 것을 한병길 당시 대사가 축하했다는 기사가 기억난다.
그러나 해외문화홍보원이 사진작가도 아닌 까빠로스의 한국 체류비용과 발간 비용을 지원해 준 책의 제목이 고작 한국인의 조급함과 참을성 부족을 의미하는 ‘빨리빨리’로 정해진 것은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역동적인 것(나쁘게 말하면 서두르는 것)은 사실이다. 어린아이들이 바람개비나 연을 가지고 노는 것을 봐도 외국인들과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외국의 어린아이들은 연이나 바람개비를 가지고 놀 때, 대개 바람을 향해 서있지만 한국 어린아이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쉬지않고 뛰어간다.
이러한 한인들의 특이한 성향을기질적 역동성이라고 부르며,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상향지향성과 스스로가 특별하고도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기를 바라는 추동력이라 정의한다.
한국이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이룩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이 상향지향적 의식 때문에 가능했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덕택이라 하지만 전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본국의 도움없이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개인의 성공은 정치와는 상관이 없다고 봐야 한다.
기질적 역동성 덕택으로 한국인들은 경제적 반석 위에 올라 섰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인의 추한 모습이 비쳐지기도 한다.
양반, 상놈 등 사회계급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지지않으려는 상향의식은 아직도 한국사회는 모든 단체나 모임에서의 선후배를 구분짓고, 잔밥으로 서열을 정하며 심지어는 나이, 입학연도 등으로도 상하를 결정해 가급적 높은 자리를 차지해 군림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의 질서로 굳어진 것은 이미 오래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상향지향적이기 때문에 아래에 위치하고 있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윗자리를 노리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오면서 반상제를 기축으로 한 계급질서가 무너졌으며 일제시대와 미군정,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지위의 역전 현상이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신분 상승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의식은 자녀들에게 지나친 교육지출을 하게 됐으며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그 어떤 파렴치한 행동이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사건을 비롯,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이나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 ‘현직 시의원 살인 교사 의혹 사건’ 등과 같은 각종 세기말적 잔혹극이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일단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의 범접을 막기위해 계층의 차이를 강하게 의식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위해 소위 ‘권위주의’가 발동하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어처구니없는 행동도 강한 계층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은 똘레란시아(tolerancia)일 것이라 생각된다. 똘레란시아는 한국어로 직역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굳히 번역한다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바로 똘레란시아다. 자신의 의견과 차이가 나는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몸에 배어 있는 권위주의적 행동의 반대 뜻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강요되는 존중이 아닌,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온 이견에 대한 존중과 타인의 인격 그 자체에 대한 존중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레 사회내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개인과 개인이 결코 같을 수 없는 ‘개인적 존재’임을 자각하여 서로에게 조심스레 소통하려는 의도 역시 그러한 움직임이다.
분명 적과 나, 북한과 남한. 흑과 백. 뭐든지 편을 갈라 생각하면 간단하고 쉬울지 모른다. 내가 속해있는 ‘내집단’과 타인들의 집단인 ‘외집단’이 서로 견제하고 배척하게 되면 ‘우리’라는 테두리가 견고해 진다. 즉 적이 있어야 내부 결속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해에는 ‘내집단’의 결속을 위해 ‘타집단’을 적으로 삼는 행동은 그만 두자. 마치 그것은 어린 아이에게 너는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라고 묻는 어리석은 편가르기와 같기 때문이다.

편집인 송형직

추석행사가 저승길 행렬?…左傾구호‘우리는 하나’도 등장

지난달 28일 한인타운에서 열린 한가위 대축제의 사진은 교민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전혀 찾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행사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거나 아니면 관심이 적지 않았나 생각된다.
며칠 후, 기졔르모 뻬냐 구청장의 개인 Facebook에 사진이 게재된 것을 보고서야 행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행사 사진에는 무대(연단)위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뒤에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와 함께 2014년 한가위 대축제라는 휘장이 쳐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왜 한국인들의 행사장의 무대위에는 의자가 설치돼 있어야 하며 또 그 의자에는 마치 무대 아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듯한 ‘근엄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앉아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무대 위의 인사들이 모두 서있는 것이며 만약 다리가 아프다면 그 연사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무대 밑에서 휴식을 취하면 될 것이다.10665283_733693793369410_8589485975659826811_n
사진 속의 중심 인물들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무대에 올라있는 인사들이 서로 누구인지 구별하려는 듯 명찰을 달고 있는 것도 우습지만 한병길 대사가 조근태 한인타운회장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조근태 회장의 손이 뻬냐 구청장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으며 이들은 한국어로 대화하는 듯, 가운데 끼어있는 뻬냐 구청장의 표정은 비록 미소 띤 표정이지만 대화 내용을 못알아들어 멋적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손님으로 초대해 놓고 못알아 듣는 말로 자기네끼리만 쏼라쏼라 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누가 ‘숟가락을 놨는지’ 모르지만 만장(輓章)도 등장했다.
뻬냐 구청장은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할 정도로 악필로 괴발개발 써서 제작돼 무대 왼쪽에 장식된 만장이 좋아 보였던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장례깃발(Banderas Funerales)라는 설명을 듣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한민족의 고난사를 소설로 엮은 조정래씨의 아리랑 3편에는 만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문상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신세호는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거나한 술기운에 취해 그는 느릿느릿 먹을 갈았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만장에 글씨를 쓰는 것이었다. 주로 문중사람들이 고인(故人)의 남다른 죽음을 슬퍼해 만드는 만장이었다. 신세호는 붓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마신 술기운에 취해 먹을 갈았고, 시집간 세 딸과 며느리의 구슬프고 애절한 곡성을 들으며 만장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스럽게 박아 써나갔다. 만장의 글귀마다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사연들이 담긴 글자들에 정성을 바치며 그는 고인의 명복만을 비는 것이 아니었다. 벗 송수익에게 소리없는 말을 보내고 있었다.”
망자(亡者)의 죽음을 슬퍼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기(旗)로 만들어 상여(喪輿) 행렬 뒤를 따르는 것이 바로 만장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번 추석행사에서 한인단체들의 이름이 적힌 만장이 등장했을까. 혹시 한인단체들이 다 죽었으며 이를 슬퍼한다는 뜻은 아닐까.1393467_733693650036091_344716397225849264_n
만장이 아니라 무대 장식을 위해 제작된 깃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에 공공된 추석행사 결산보고에는 ‘만장 제작비’라는 계정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만장이 확실하다.
농악이 앞서고 뒤에 만장행렬이 뒤따르는 장례행렬이 있긴 하다. 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된 경기도 양주의 ‘상여와 회다지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추석행사 추진위는 아마 비디오을 통해 추석의 상징인 농악이 있는 장례 행렬을 추석의 축제 행렬로 착각한 모양이다.
가방 끈의 길고 짧음과 그 재질이 무엇이냐를 떠나 기초 상식이 모자란 경우라 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이번 행사의 캐치플레이즈(슬로건)는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는 하나’는 한국 국가대표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쓰이는 구호와 노랫말에 등장한다.
“.. 그대 곁에 우리 있어/슬퍼도 기뻐도 우린 그대를 지켜 줄테니/손을 잡아 손을 들어/모두가 하나 된 순간 승리를 향해 나가자/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그러나 추석행사가 가을운동회가 아닌 이상, 이 뜻을 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훈희, 김태화가 두엣으로 부른 노래 중에 ‘우리는 하나’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낮익은 당신의 모습이/내게 눈부신 햇살을 미소로 뿌려주네/깊은 밤 눈을 감을때 따스한 당신의 입술이/지쳐 숨죽은 이 몸을 꿈길로 끌어주네”
가사를 음미해보면 남녀가 함께 잠자리에 들고 또 아침에 깨어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따라서 남녀가 부둥켜 안는 모습을 상상케하는 이 노래의 제목인 ‘우리는 하나’와 한인타운의 추석행사는 더더욱 거리가 멀 것이다.
북한의 공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KCTV)에서 제작한 ‘우리는 하나’라는 뮤직 비디오가 youtube에 올라 있다.
“하나 민족도 하나/하나 피줄도 하나/……/하나 우리는 하나/태양조선 우리는 하나/하나 언어도 하나/하나 문화도 하나/하나 력사도 하나/둘이 되면 못살 하나/백두에서 한나까지/분단장벽 허물며/통일의 열풍이 강산에 차넘치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번 추석행사의 구호는 북한의 노래인 ‘우리는 하나’와 취지가 엇비슷하다. 같은 민족끼리 힘을 합치자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임수경이 “엄마,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주절대면서 방북한 후 평양 만경대에서 목청껏 불러제낀 노래인 ‘우리는 하나’의 가사에는 핏줄이 같은 단일 민족으로서의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라는 편가르기식 민족, 혈족, 공동체적 테두리를 높게 쌓으면 쌓을수록 그 반대쪽에는 배타적인 뜻의 ‘너희’와의 장벽이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말자.
한인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변모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이 너와 나로 나뉘어져 대립하지 않고 상호연관하는 관계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르헨에서 개최되는 추석행사의 취지가 한국의 전통 명절을 현지사회에 알리고 또 자라나는 2세에게 한국의 민족적 문화유산을 전승케 하며 타국생활에 지친 고령자들의 향수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국제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응원단처럼 단일민족적 결속 만을 위한 것이였던가.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것은 국제관계에서도 역기능적이다. 한국문화가 ‘잘팔리는’ 것은 뻐기면서 외국문화(특히 일본)가 한국에 상륙하는 것을 침략 당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상호호혜의 보편적 원칙이 무시되고 이기적인 민족주의에 물든 못난 민족이 되고 만다.
폐쇄적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오히려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우리의 문을 열고 타인의 문화와 공존할 때, ‘우리 것’이 나름의 생존 공간을 얻게 될 것이며 또 ‘주변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인타운회의 추석행사 덕분에 잊혀져 가는 회다지소리를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기회를 가져 본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못가겠네/ 북망산천 한번가면 어느시절에 돌아올까/ 간다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을 내가간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 문밖이 북망일세/ 불쌍하다 우리인생 가련하다 우리인생/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서 세월가네/ 오는 백발을 어이하며 가는 세월을 어찌하리/ 잡지 못할 것 같은 세월이요/ 막지 못할 것 저승길 일세.”
편집인 송형직

행동편향

지난 브라질 월드컵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페널티킥으로 결승전에 올랐다. 11미터의 거리에서 킥커와 키퍼가 마주서서 운명을 결정짓는 페널티킥은 실력보다도 고도의 심리전 싸움이다.
한 스포츠 통계연구에 따르면 페널티킥에서 킥커들이 가운데, 좌, 우 방향으로 공을 차는 확률은 각각 1/3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키퍼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기만 해도 가운데 쪽으로 오는 공은 막을 수 있으므로 1/3의 확률이며 좌우 어느쪽으로 몸을 날렸을 때의 공을 막을 확률도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세계의 거의 모든 키퍼들은 페널티킥을 막을 때 중앙에 멈춰 서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마치 자빠지는 특기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공도 차기 전에 옆으로 몸을 날린다.
만약 골키퍼가 가만히 서있다가 골을 먹는다면 관전객들은 골키퍼의 무능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공이 오는 쪽의 반대방향이라도 몸을 ‘멋지게’ 날리면서 골을 먹는다면 그것은 골키퍼의 실력이 뒤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운’이 없었기 때문으로 치부하게 된다. 물론 운이 좋아 키퍼가 몸을 날린 쪽으로 공이 와서 수비에 성공할 경우에는 그 골키퍼의 손은 ‘신의 손’이 된다.
축구의 페널티킥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문교정책도 이와 비슷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장관은 입시제도를 바꿔왔다.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무려 16번이 바뀌었다고 한다. 평균 3년 10개월마다 바뀐 꼴이다. 교육부는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왔을까. 모자란 사람들만 교육부에 모여있는지, 아니면 학생과 학부모들을 괴롭히기 위한 악취미가 있는 사람들만 있는 부서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뭔가 하는 것같은 눈치를 주기 위해서라도 마치 골키퍼가 공이 오는 방향과 전혀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듯, 새로 취임한 교육장관은 가만히 있다가는 무능하다는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있기에 무작정 새로운 제도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비록 결과가 나쁘게 나오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 것을 ‘행동편향(Action Bias)’이라고 한다. 행동편향 현상은 도박을 할 때도 나타난다.
룰렛에서 공이 회전하는 원반에 던져지고 카지노 직원이 “No va más!”라고 외친 이후에도 불안한 나머지 한 쪽에 건 돈(칩)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사람이 적지않다.
가만히 있다가 돈을 잃는 것보다 잃더라도 뭔가 하다가 잃는 것이 덜 억울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든 사회 차원에서든 행동편향은 사라지기 어렵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따져보면 그들 전부는 뭔가 업적이 있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위인들을 본받으려는 후세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공이 오는 방향’은 알지 못하지만 무조건 한쪽으로 ‘몸을 날리’거나 한국의 교육장관처럼 뭔가 새로운 ‘일을 터뜨리는 것’이다.
15대 한인타운회는 수개월 전 한인타운 부흥을 위한 계획서(Plan de Desarrollo del Barrio Coreano)를 만들어 기졔르모 뻬냐 구청장에게 제출했다. 계획서 내용은 ‘한국서 돈이 오면’ 회원들의 지원금(?)을 보태서 5만여불을 조성한 후 까라보보 1400~1500대의 보도블록, 그리고 불레바르의 조명등을 한국정서에 어울리는 것으로 교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업이 현재 진척을 보이고 있는 모르지만 한인타운회는 최근 또 다른 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은 바로 추석행사다. 이 계획은 마치 한국의 교육장관처럼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억눌려 있는 한인타운회가 허둥지둥 준비없이 발표된 행사계획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 행사가 고국과 고국의 친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행사가 될지, 한인타운 업소들의 수익 향상을 위한 것인지, 현지인들에게 한인들이 어떻게 즐기나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라나는 2세들에게 한국 명절의 문화를 일깨워주려는 것인지 행사개최의 취지조차 불분명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도망치고 빠르게 반응하면서 살던 민족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행동 편향은 타민족보다 더욱 심하며 이러한 습성은 단시일 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했다. 쉽지않은 주문이지만 이 명언이야말로 아무 것도 안하는 ‘복지부동’과 행동편향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슬기로운 중용의 해법이 된다.
‘동냥하려다가 추수 못 본다’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님비 현상

2008년 말, 용산 주한 미군기지와 미 2보병사단을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라는 지역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시끄러운 적이 있다.
토지 보상문제를 놓고 지역주민과 외지에서 원정 간 시민단체 시위대들과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출동한 군경이 충돌, 약 2백여명의 부상자를 낳고 수백명이 연행됐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평택의 미군기지 이전 때는 토지보상문제가 주요 쟁점이었지만 징발되는 토지가 없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웬 말’, ‘결국에는 미군기지로 사용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설득력이 부족하자 주변 천연기념물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 용어 중에는 님비란 것이 있다. 님비(NIMBY)란 영어로 ‘Not In My Back Yard’의 약자이며 스페인어로 번역하면 ‘No en mi patio trasero’가 되지만 실제로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님비보다는 ‘좋아. 그러나 여기는 안돼.(Sí, Pero Aquí No.)’의 약자인 SPAN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님비현상은 공익을 위해서, 혹은 객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안된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행동을 지칭한다. 예를들어 군사기지, 고압 송전탑, 휴대폰 안테나, 빈민구제시설, 형무소, 고속도로 등,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며 꼭 필요한 시설이라도 내 집 근처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는 군중심리를 설명하고 있다.
한인타운에서도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님비현상을 부채질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연초 경, 까라보보 1500대 소재 구 체스클럽의 소유권을 확보한 김 모씨가 내부수리를 진행하면서 ‘극빈자 급식소를 차리겠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식당을 중심으로한 한인타운 업소 주들이 우려를 표하자 15대 한인타운회에서 상반기 결산 발표를 겸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한인타운 업주들의 시각으로 보면 김 모씨의 의도도 이해될 수 없다. 먹을 것이 없는 빈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히 선행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선행은 퇴색되며 진정한 선행으로 보기 어렵다.
누군가가 노숙자들에게 텐트나 매트를 사주면서 김 모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소개업소 앞에서 집을 공짜로 줄 때까지 진을 치고 살라고 하는 경우와 비교된다.
그러나 한인타운회는 당사자인 ‘급식소’ 주인 김 모씨는 초대하지도 않은 채 회의를 진행, 예상된대로 ‘헛발질’을 하는 회의를 했다는 빈축을 들어야만 했다.
한인타운회는 대책도 없이 회원들을 소집해서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일회용 반창고성’ 행정을 해서는 안된다.
한인타운회의 임원들은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회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또 활동 및 사업비 충당을 위해 회비를 징수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결산 발표)은 하지 않고 성과도 없는 소모적 회의나 계속한다면 앞으로는 떼거리로 몰려가서 협박하고 욕설을 해댄다 하더라도 회비를 받아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인타운에 피해를 주는 시설을 개설하는 주인공이 강제집행력을 갖춘 정부도 아닌 한 개인에 불과하다면 한인타운회는 불필요한 집단 이기주의에 호소하지 않고도 관계기관에 고발하거나 법의 중재를 요청해야 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인타운의 무료급식소 개설과 이에 대한 한인타운회의 ‘헛발질’ 대응은 한인사회에 팽배해 있는 개인주의가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개인주의의 기본 정신은 자신을 완전한 인간이라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 나만이, 내 방식 만이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선이 아닌 개인주의 사상의 발로에 불과한 것이며, 또 단체 운영의 성과가 없는 것을 덮기 위해 님비현상을 부추키는 ‘물귀신’ 편법을 쓰는 것도 크게 보면 삐뚤어진 개인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이 사회가 건전해지려면, 내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한다. 내가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협동이 이루어지며 바람직한 공동체 사회가 된다. 모든 일에 자기가 최고라는 교만에 빠진 사람이 앞에 나서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인 송형직

한국인의 情과 恨

내가 태어난 서울의 마포.
그곳에서는 ‘쟁, 쟁, 쟁재쟁’ 혹은 ‘덩, 덩, 덩더꿍’으로 표현되는 굿판의 장단소리가 들려오는 날이 많았다. 가난하고, 또 자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힘든 문제를 보듬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굿을 진행하는 무당이 이승의 망자가 저승을 가는 과정을 구슬프로 읊고 이승의 가족들과 망자의 대화를 ‘중계’하는 대목에 가서는 구경꾼들은 그 ‘신기(神技)’에 넋을 놓기 일쑤다.
무당들이 이승의 가족들의 한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할 때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대감님과 장군님이다. 굿을 하는 무당들은 대개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통치자의 관복과 칼을 지닌 모습이다. 이는 샤머니즘이 예전에는 지배종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불교와 유교 등, 외래 종교에 밀려 소외된 민중이 종교로 전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증거다.
무당들이 현신(顯身)하는 장군들은 대개 뜻을 못 이루고 요절한 ‘한’맺힌 인물들이다. 최영장군과 남이장군, 중국 삼국지의 관우, 장비 등이 그들이다. 즉 무당에게는 ‘한’맺힌 장수들이 바로 신령이다.
‘한’은 ‘정’과 함께 한국인의 기본적인 정서다. 이 소재를 넣지 않고는 소설도 영화도 팔리지 않는다. 신영균과 문희가 열연한 ‘미워도 다시한번’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 지금도 유명한 마포 공덕시장 ‘굴다리’ 옆에 있었던 경보극장에서 봤던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3부작)영화인 ‘한(恨)’이 당시 각종 영화상을 휩쓴 것도 바로 ‘한’이 한국 정서에 들어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한’은 백일기도 끝에 얻은 낭군(이순재)과 사별한 것이 한(恨)이 되어, 그 낭군마저 죽음으로 이끄는 여인(문희)의 혼백을 다룬 제1화 ‘연(緣)의 장’, 남편과 작부와의 관계를 투기하여 그들을 불태워 죽이는 광대 부인이었던 아내의 혼령과 모성애를 다룬 제2화 ‘정(情)의 장’, 그리고 열녀의 절개를 시험하는 한 남자의 혼령을 다룬 제3화 ‘원(願)의 장’ 등 3편으로 된 영화였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전래 설화 중 괴담을 엮은 내용으로 주로 ‘한’을 그리지만 팔자소관, 혹은 운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하는 수동적이고 니힐리즘적인 감정인 ‘정한(情恨)’으로, 증오를 바탕으로 하는 ‘원한(怨恨)’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한국인이 말하는 ‘한’의 근본 원인은 ‘정’을 끊는 이별이다.
비록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오작교를 건너 해후한다는 견우와 직녀, 계급의 차이로 인해 생이별을 해야하는 이몽룡과 성춘향, 임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계모의 구박으로 인한 억울한 이별과 죽음을 그린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등, 민간설화의 기본 주제는 ‘숙명’이었으며 가요의 경우에도 백제의 ‘정읍사’, 고려가요 ‘가시리’, ‘청산별곡’, 갑오농민전쟁서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아리랑’ 등에도 숙명적인 슬픔의 정서가 묻어나고 있어, 한국인의 ‘한’의 정서는 최근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미 3국시대부터 형성된 유목민의 좌절과 비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 고은(高銀)은 한국인의 ‘한’을 “첫째 선사 고대의 터전인 북방사회의 상실로 생긴 한, 둘째 고구려, 백제 패망 이후의 한, 셋째 지배층에 의한 억압과 착취로 인한 한, 넷째 누차의 외세 침략 및 근현대사의 시련으로 인한 한, 다섯째 가진 자에 대한 빈곤 계층의 오랜 한”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한’의 원인이 되는 ‘정’은 무엇인가.
생전에 한국인의 정서를 분석한 고 이규태씨에 따르면 “정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다.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없다. 무형, 무상, 무취, 무미다. 그렇다면 구상 세계에서는 없는 것이 된다. 분명히 없는 데 있는 것이 정이다. 존재하되 역동적으로 존재한다. 그 없는 것에 손을 데고 그 없는 것에 오장육부가 녹고 그 없는 것에 살이 여윈다.”라고 정의된다. 정은 따뜻하고 잔잔한 호수처럼 은근하며, 타산적이지 않고 한번 생겨나면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적인 것이 특징이다.
한인사회에서 한은 그대로 남았지만 정이 사라지고 있다. 세상살이가 팍팍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지금보다 살기가 더 어려웠던 때에도 정이 존재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해되지 않는 해석이다.
삶이 힘들다면 학창시절 유행했던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다시 읊어보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편집인 송형직

국가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

박 노인에게는 3남매가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재벌이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공돌이, 막내딸의 이름은 공순이었다.
살림은 째지게 가난해서 먹을 것이 변변하게 있는 날이 드물었다.
나이가 많아 광복군 때려잡는 만주군관학교의 입학이 좌절되자 일본 치안부군정사징모과에 개와 말처럼 왜왕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혈서까지 바쳐 겨우 입학, 군 짬밥(잔반(殘飯))을 먹고 잔뼈가 굵어진 박노인은 고집이 센 편이지만 일본이라면 껌뻑 죽는 타입이었다. 이러한 박노인을 일본의 와세다 대학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재벌이가 설득하고 나선다.
“아버지, 저만 밀어주면 집안 살림이 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굳게 믿은 박노인은 둘째 아들과 딸인 공돌이, 공순이에게 “무조건 맏이인 재벌을 도와줘야 한다”고 으름짱을 놓는다.
공돌이와 공순이는 박노인의 매찜질 속에서 적절한 보수도 받지못하며 집안의 대들보이자 맏이인 재벌이를 돕는 일을 한다. 그 와중에 공돌이와 함께 재벌이의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이웃집 청년, 전태일이 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해서 죽고, 공순이가 일하던 YH라는 공장의 동료도 모 정당 당사 2층에서 추락해 죽지만 박노인은 “재벌이만 성공하면 집안이 일어설 것”이라며 공돌이와 공순이를 다그친다.전태일
결국 재벌이는 사카린 밀수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겉보기에는 박 노인네 집안 형편도 피는 듯했다.
1964년 박노인은 시바스 리걸을 마시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며 재벌이는 남산 중터의 한 요정에서 일본인 첩을 껴안고 프랑스 산 샴페인을 터뜨렸다. 바로 그날 재벌이가 운영하는 회사의 연간 매상이 1억불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돌이와 공순이는 이 즐거운 날에도 공장장의 매를 맞지 않기 위해 한 눈 팔지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재벌이는 번 돈을 공돌이와 공순이에게 나눠주지 않고 박 노인도 모르게 뒷구멍으로 그의 자식에게 빼돌려주고 편안한 노후를 보장 받았지만 평생 뼈빠지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공돌이는 오늘도 곯는 배를 채우기 위해 탑골 공원의 무료급식소를 배회하고 공순이는 박카스 병을 장바구니에 넣고 경제적으로 그녀와 별차이가 없는 노인에게 접근하고 있다.2375_2
이것이 바로 아르헨티나과 영국의 언론이 본 대한민국의 현 모습이다. 끌라린지는 지난 6월 10일자의 세계 뉴스 보도에서 ‘성을 파는 할머니들(한국)’이란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은 일명 ‘박카스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이 50대~70대 할머니들은 박카스를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근의 싸구려 여관에 가거나 여관 숙박비도 없으면 공원의 어두운 구석을 이용해서 ‘일을 치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끌라린지는 성 매매가 불법이 아닌 아르헨티나의 신문답게 한국의 할머니들이 성을 파는 것 자체보다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기사 촛점의 앵글을 맞추고 있다.
끌라린지는 한국의 탑골 공원에 박카스 아줌마들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를 “뒤돌아볼 새도 없이 바쁘게 급성장의 길을 달려온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이 노인들은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으며 평생 일해서 모은 돈을 자녀들의 교육비와 사회진출 보조금으로 탕진했지만 국가가 그들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도 그들을 보조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탑골공원의 무료급식소와 박카스 아줌마로 삶의 애환을 달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소위 베이비붐 시기(해방전후~1960)에 태어난 사람들이 노년 세대에 합류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을 아파하던 아버님과 동생을 등에 업고 6.25 피난 길에 오른 어머님들로부터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는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행복인지 알지도 못한채 늙어가는 세대다.
누런 공책, 혹은 시멘트 부대 종이에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바둑아, 철수야, 영희야,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라고 쓰다가 단칸방에 대여섯명의 오누이들이 함께 쓰러져 잤으며 학교에서 기성회비를 못내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아야 했고 방과 후에 교실 청소도 당연히 해야 하면서도 한국이 세계최상의 복지국가인 줄 알았던 세대였다.
나랏님이 하는 일은 모두 옳은 것이며 나랏님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여부를 떠나 바로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중범죄가 된다는 것을 머리 속에 다져넣고 살아왔다.
나하고는 아무 감정도 없는 베트콩들을 쏴 죽이면서, 독일의 탄광과 중동에서 일하면서, ‘나라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의심없이 머리에 다져 넣고 ‘국가는 결코 국민의 복지를 약속하지 않지만’ 국민은 ‘국가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마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 세대다.
이런 저런 꼴 보기 싫어 이민 보따리를 싸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그 ‘행복’을 좇아 늘어나는 흰머리를 쓰다듬어 볼 새도 없이 이민 생활에 허우적 거리며 살다가, 어느날 뒤가 허전해서 뒤돌아 보니 늙으신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고, 내 뒤를 잘 따라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자식들은 어느 틈에 샛길로 들어섰는지 길 저편에 서서 까마득히 보이지 않고,그동안 남에게 욕먹어 가며 ‘꼬불쳐’ 놓은 쌈지 돈은 내가 ‘퇴출되는 날’까지 쓸 만큼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세대가 바로 현재의 한인 노인세대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할머니 사건을 영국과 아르헨의 기자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반면 태어날 때부터 국가주의에 세뇌된 한국의 기자들은 이를 개인 문제로 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인 송형직

직위와 지위를 분간하자

노인. 이 이름은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이 싫건 좋건, 죽기 전에 거쳐야 할 단계의 이름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노인을 뜻하는 Viejo라는 단어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Pesona mayor 혹은 Gente mayor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방하다. 이 두 명칭은 나이 많은 사람, 혹은 손윗 사람으로 해석되므로 노인을 뜻하는 viejo와 별차이는 없다.
자녀가 그들의 부모를 일컬어 Viejo(a)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부모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고 애칭으로 부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호칭이 무엇이 됐던, 전세계적으로 일반적인 노인의 정의는 ‘만 65세 이상의 고령자’다.
노인의 일반적 개념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면에서 퇴화기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노인들이 젊은이보다 뛰어난 정신적, 심리적 지위와 역할을 보장받고 있지만 생리적으로 퇴화기에 있는 노인의 능력이 젊은이보다 결코 앞설 수는 없다.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브린(Breen)에 의하면 노인은 “생리적, 신체적으로 쇠퇴기에 있는 사람이며, 심리적인 면에서는 정신기능과 성격이 변하고, 사회적인 면에서 지위와 역할이 상실되어가는 사람”이다. 비렌(Biren)이란 학자는 “생활 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라고까지 정의하고 있다.
노인의 ‘老’는 고대 갑골 문자에서 보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습이며 노인을 대하는 태도로 우리는 ‘孝’로 표현한다. 이 글자는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습의 문자다.
그러나 핵가정 시대, 혹은 ‘나홀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에 ‘노인을 업고 사는’ 아들은 사라진지 오래됐다.
문제는 법적으로 65세부터 노인이 되어 은퇴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인 73~76세까지 10년 이상을 신체, 정신적 ‘장애’를 마주하고 노년의 고독과 우울증을 달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특히 문밖만 나서도 낯선 사람들과 뜻 모를 문자들이 홍수를 이루는 아르헨에서의 한인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htm_2008052602395370007400-001아르헨에도 ‘효’를 최대의 덕목으로 교육받으며 성장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노인들 곁에 가기가 싫다. 노인들이 요구하고 금지하는 것을 일일이 다 지키는 것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처진 지식과 정보를 권위로 포장하는 솔직하지 못한 노인들의 행동이 부담스럽고 또 노인들과 공유할 대화거리가 없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 등 삼강(三綱)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이비 유교의 지침을 앞세워 꺼져가는 권위를 세워보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자녀 세대들로부터 더욱 멀어지기도 한다.
자식에게 가르쳐 줄 것, 물려줄 것이 없어지고, 자식을 통제할 힘이 없는 노인들에게 남는 것은 외로움 뿐이다. 배고픔이나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최근 미국 시카코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는 외로운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도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14%나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외로움은 고혈압, 심혈관질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건강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599_4121_928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외로운 노인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노인회관이다.
이 노인회관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노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 및 봉사활동 등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인회라는 단체도 만들어진지 오래다. 모든 단체가 그러하듯이 노인회도 회를 대표하고 총회 및 이사회의 의장이 되는 회장이 선출돼 왔다. 그러나 회장은 회를 대표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명예나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회장직을 둘러싸고 잡음이 증폭되고 있다. 마치 노인회가 회장 만을 위해 존재해온 것처럼 노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은 뒷전으로 밀리고 누가 진짜 노인회장인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 교민들은 ‘어르신’들 간의 문제이니 관여하는 것이 금기인 것처럼 의견을 내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는 당사자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교민사회의 술좌석에 앉아보면 회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지 못하면 술좌석에 낄 수도 없지 않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장이 흔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처럼 이미 임기가 끝났어도 회장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회장이라는 직책에 연연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에서 하급관리생활을 했거나 공무원들에게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개 직위(Cargo)를 지위(Estatus)로 착각하며 직위가 높으면 인격도 높으며 똑똑하고 남이 추앙해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심지어는 주변인사의 권위를, 자기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위인사가 탄 캐딜락을 모는 운전기사가 소형차를 모는 자가운전자에게 큰소리 치는 격이다. 이는 TV 사극에서 영상대감의 청지기가 어깨에 힘을 주고 주접을 떠는 코믹한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뷔통 가방을 들고 손목에는 로렉스를 차고 최신형 스마트 폰을 들고 빚을 내서라도 고급 승용차를 타는 이유도 자신을 명품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으로 위장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노인회 사태의 당사자들은 직위를 연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지위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 한번 둘러보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바쁜 이민생활에서 소외되고 있는 노인들을 진정으로 위한 길이 될 것이다.    편집인 송형직

자신을 위해 살자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중략/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길걷기

1964년 발표된 조병화 시인의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라는 시집에 실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라는 시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시의 내용은 40년 후 스티브 잡스라는 미국인에 의해 인용된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해 대학 재학 한학기의 학력으로 나중에 퍼스널 컴퓨터(PC)의 효시인 애플컴퓨터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맥, 아이폿, 아이패드, 아이폰 등 아이(I) 시리즈를 시장에 내놔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사를 탄탄한 흑자회사로 만들어 놓은 IT의 귀재가 바로 스티브 잡스다.
젊었을 때 방황하던 시절, 히피 그룹에 들어가 일본의 선불교를 믿으면서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됐지만 지나치게 반복된 금식과 적절치 못한 식이요법으로 췌장암에 걸려 2011년, 56세로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건강이 악화되기 전인 2005년 겨울,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3개의 스토리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첫번째 스토리는 미혼모가 낳아 양부모에게 맡겨진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에 얽힌 사연과 대학을 중퇴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두번째 스토리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시련도 행운으로 뒤바꿀 수 있다는 자신의 사업의 성공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스티브
스티브 잡스는 그가 창업한 직장(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났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컴퓨터 회사(NeXT)를 세워 현재의 맥킨토시 컴퓨터가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사람 손으로 일일히 그려야 했으며 원근에 따른 3차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만화영화 사업에 뛰어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3차원 그래픽 만화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 Pixar를 세웠다. pixag copy

스티브 잡스의 연설 중 3번째 스토리는 죽음과 사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17세 때, 어느 책에서 “매일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았다면 당신은 대체로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라는 글귀를 읽고 33년 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오늘 내가 하려는 것을 할까?”고 자문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이렇게 계속된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생각을 모은 책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말기 환자들을 간병해 온 호주의 한 간호사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회고담을 모아 발간한 ‘죽음 앞에서 가장 후회하는 5가지’라는 책이 바로 그 것이다.
이 책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 순위 1위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으로 나타나 있다. 즉 뒤돌아 볼 때 자기를 위한 삶을 산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너무 일에만 매달리지 않았었더라면…’, ‘내 감정을 조금 더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연락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더라면..’ 등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쥐꼬리만한 가치의 명예를 위해 길지 않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 즉 죽음이란 허물을 벗는 순간이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허물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웠던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길걷기 1
우리들 주변에서 ‘헤어지는 연습’을 하거나 ‘작별하는 절차나 방법을 배우며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스티브 잡스의 요구처럼 ‘내가 오늘 죽는다면’이라고 가정하고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100불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벤쟈민 플랭클린의 말처럼 “누구도 세금과 죽음, 이 두가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인 줄 알지만 죽음은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으며 먼 훗날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결국 죽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왜 재수없게 죽는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임종에 임박해 후회를 많이 하게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편집인 송형직

그 냥 사 람 으 로 살 자

3.1절을 맞아 황당한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우리 역사에 일제시대가 없었으면 현재 어떻게 됐을까 하고 말이다. 구한말의 역사를 살펴보면 외국의 군함들이 한반도 앞바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도들을 모아놓고 대들보로 머리를 내리쳐 죽이며 권세를 유지하려 했던 대원군과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쫓아다니던 고종, 그리고 고종이 좋아하는 여인과 그 사이에 태어난 왕자를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녔던 민비 등이 세력다툼을 하고 탐관오리들은 생산성이 바닥을 치고 있는 백성들로 부터 세금과 뇌물을 긁어 들이려 혈안이 돼있었고 정부가 발행한 원납전(경복궁 중수자금)과 當百錢(은본위의 태환정책이 없어지고 명목가치를 주조가치의 100배에 해당한다고 조선정부가 강제로 ‘우기며’ 유통시킨 동전)은 마치 아르헨 정부가 발행하고 있는 뻬소화처럼 그 가치가 똥묻은 화장지 수준이었다는데…
우리가 천하의 매국노라고 하는 이완용의 안내를 받으면서 일제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을 접수해서 상놈 양반의 신분제도를 없앴을 때 과연 조선의 백성들은 쾌재를 불렀을까, 아니면 분루를 흘렸을까…
일제시대가 오기 전, 탐관오리들의 착취를 못견디고 버려진 동토인 러시아 땅으로 간 조선인들은 조선인이라는 것이 서러운지 스스로 고려인이라고 칭했다고 하지 않는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이완용의 손자가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씨이고 이완용의 증손자가 현재 ‘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다’는 삼성전자 회장인 이건희씨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역사는 아이러니컬하다고 볼 수 있다.th (2)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구한말 제한제국의 국가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국민의 평균 수명은 40세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었다고 하지만 일제시대에는 연평균 5%를 유지했다. 그러나 해방이후 한인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고 이데올로기 차이로 서로 머리터지게 쥐어박는 싸움에 휩싸였을 때는 성장률이 또다시 곤두박칠쳤다고 한다.
일제시대가 한국이 독립한 시대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이 한반도를 통치하던 시기, 일본은 이른바 식민사관을 동원해서 조선을 폄하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그때까지의 모든 역사적 해석들은 이른바 ‘반식민사관’의 깃발 아래 다시 한 번 왜곡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정당한 비평조차 일본의 시각과 비슷하면 ‘식민사관’의 누명을 뒤집어쓰는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 IMF 시대를 가져온 ‘깡통 대통령’ 재임시절, 평상시에는 미신이라고 여기던 풍수설에 전 국민이 ‘열광’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제가 대한민국의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어느 학자의 발표가 모든 언론의 지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기사를 써야할 언론들이 일제가 한국에서의 인재 출생을 막기위해 대한민국 주요 산에 쇠파이프를 박는 ‘혈맥’을 끊는 ‘간악한 짓’을 했다고 반일 국민정서에 불을 붙혔다. 언론은 또 박물관으로 쓰이던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면서는 일제가 한국을 영구적으로 침탈하기 위해 한국의 ‘기’를 막기위해 풍수설에 따라 총독부 건물을 지은 증거가 여기저기서 발견됐다고 침을 튀기며 떠들어 댔지만 결국 ‘깡통을 차는 국가’신세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한핏줄, 단일 민족론으로 외세 침략에 대응해 온 국가다. 그러나 최근들어 한국인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히스테릭한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김연아 선수에 대한 판정의혹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스타벅스(커피 매장)에서 고객의 이름을 적어 판매하는 커피 컵에 동양인의 눈을 상징하는 ‘찢어진 눈’이 그려진 컵을 받은 한인이 모욕을 느꼈다고 주장했고 한국 언론들도 인종차별적 처사라는 기사를 냈다.th (1)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국적으로 쇼트 스케이팅부문의 금메달을 딴 안현수에게 심한 배반감을 느끼지만 2006년 수퍼볼(북미 프로미식축구 리그 결승전)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힌 흑인 혼혈인 하인즈 워드에 한국인 피가 흐른다고 열광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현주소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의 확인은 물론 중요하다. 그것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문화적 의무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그 아이덴티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살던지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사는 일이다. 즉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나 우리 문화 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문화적 의무감보다 더 본질적이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다.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인식의 밑에 자리해야 할 하위개념이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거꾸로 돼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자유와 민주도 잠시 유보되어야 한다는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 논리처럼 사람이기 이전에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이 상식화 돼 있다. 그것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우연하게도 그 많은 한국인 중에서 아르헨티나 온 이민자들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 중에서도 기가 막힌 인연이다.
상대방을 볼 때 한국인으로 보지 말고 한사람의 사람으로 보자. 한국인으로 볼 때는 그토록 미웠던 사람이 달라져 보이는 것을 알게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해도 그를 더 이상 ‘빨갱이’라고 몰아 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잠시 잊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이제는 그냥 사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자.th
편집인 송형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