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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부스러기

<경제학에서의 합리성>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경제주체가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논리를 진행해나갑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 유도하는 대부분의 이론적 결론도 합리성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성을 근거로 경제학에서 유도된 결론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여러 가지 심리테스트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경제학이 바탕으로 하는 경제주체의 합리성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유도된 각종 결론들도 잘못 됐다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합리성을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성 가정은 ‘모든 경제 주체가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는 ‘대표 경제주체’(representative economic agent)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소비자인 경우에는 ‘대표소비자’(representative consumer)가 되고, 생산자인 경우에는 ‘대표생산자’(representative producer)가 됩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 도입하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가정은 이 대표 경제주체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 경제주체는 어떤 사람일까요? 대표 경제주체는 일종의 그룹이나 무리를 대표하는 사람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가령 n명으로 이루어진 소비자 그룹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을 대표하는 소비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비량이 가장 많은 소비자가 대표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그룹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대표는 평균 정도에 해당되는 소비자일 것입니다. 물론, 평균이 그룹을 대표하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만, 그나마 평균이 개별 경제주체의 편향성을 줄이고 그룹의 특성을 가장 반영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해당 그룹의 평균적인 소비자를 ã라 하면, 경제학에서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n명의 모든 소비자들이 항상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표 소비자인 ã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사해 보이지만,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모든 소비자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은, 한 사회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입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소비자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습니다.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항상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구성원은 다른 사람과 얼마든지 다르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원이 있으면, 모든 구성원이 항상 합리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가정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평균적인 소비자를 전제하면, 소수의 예외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소비자의 행동은 거의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아래 그림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림에서 붉은색 원안에 그려진 화살표와 같은 예외적인, 큰 흐름과는 맞지 않는 현상이 현실에서는 항상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모든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입니다. 하지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일부 소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은 우측 윗 방향으로 향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rationality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위의 그림에서 붉은 원 속에 있는 화살표와 같이 전체 방향과 맞지 않는 예외적인 사례가 있으므로 합리성을 전제로 한 경제학 이론도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작은 화살표가 모두 동일한 방향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가령, 어떤 소비자는 상품 a보다 b를 선호하고, b보다는 c를 선호한다고 할 때, 만약 이 소비자가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이 소비자는 a보다는 c를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즉, a≺b이고 b≺c이면, a≺c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합리성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a≺b이고 b≺c인데, a≻c인 경우입니다. 또한, a≺b인 경우에도, 소비자들이 항상 이런 선호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소비자는 소주와 맥주 가운데, 소변 문제 때문에 거의 항상 소주를 맥주보다 선호하지만, 운동경기 직후라면, 이 소비자는 소주보다 맥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가 소주보다 더 큰 효용을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b라는 선호체계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처음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적인 소비자 가정과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이 소비자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상식선에서 판단할 때, 이 소비자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주와 맥주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할 때, 소비자가 직면한 상황과 무관하게 항상 소주를 선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무리한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개인들의 행동들을 심리적 및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입니다. 행동경제학은 미국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심리학과 연계시켜 분석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1970년대 시작됐습니다. 캐너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들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 자제심, 이기심을 부정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비합리적, 비자제적, 비이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전 합리적, 완전 자제적, 완전 이기적이라는 점만을 부정할 뿐이다.” (행동경제학, p. 35)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행동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합리성이 지켜지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으므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경제이론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이 전제로 하고 있는 합리성을 오해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동안 경제학이 가정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a≺b이고 b≺c이면, a≺c인 선택을 합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일부 예외적으로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혹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합리적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경제학은 다수(majority)에 대한 학문이지 개별 구성원(everyone)에 대한 학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행동경제학에서 추구하는 내용 자체를 보면, 그동안 경제학에서 전제로 하고 있던, 다수의 학문이라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의 경제학 이론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이유도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된 경향도 일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원칙을 만들 때,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 수학에서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사례를 모두 포함하는 아주 일반화된 원칙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원칙이나 정리 등은 아주 일반적이면서도 모든 경우를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경제학도 모든 경우를 모두 포함하려면 당연히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수에 대한 합리성만을 가정하면,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아주 정교하고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어긋나 있는 화살표들까지 모두 포함하기 위한 수식을 찾아내려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만,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다수의 화살표만를 대상으로 한다면, 동일한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 하나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흐름만 나타낼 수 있으면, 경제학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수학적으로 정교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합리성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문제가,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누구 입장에서 합리적인가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고려해보겠습니다. 어떤 여학생의 가정은 형편이 어렵습니다.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금액의 학자금 대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고가의 핸드백과 고가의 화장품을 소비합니다. 이 학생의 행동은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비합리적일까요?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여학생의 행동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학자금 대출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절약하고 아껴 쓰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학생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시 고려해보겠습니다. 해당 학생은 소비를 하기 전에, 현재에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소비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합니다. 만약 미래를 중시 여기는 학생이라면,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해 미래에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을 더 늘리려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합리적인 행동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의 소비보다 현재의 소비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 보다는 현재 소비를 늘릴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저가의 가방과 저가의 화장품을 사용할 경우, 주위의 사람들이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학생의 경우, 비록 부담은 되지만, 고가의 핸드백과 화장품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절약하고 아껴 생활하면서 얻는 효용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해당 여학생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 됩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자신의 만족도를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소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합리성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측면에서의 합리성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이런 논쟁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성과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여학생의 행동이 비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회의 시각일 뿐입니다. 해당 학생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여학생의 이런 행동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비합리적이라거나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여학생의 행위는 아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논의되는 많은 합리성과 관련된 논쟁들을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혹은 학문적 측면에서의 합리성이라기보다는, 사회 통념에 맞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와 더 밀접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전제의 의미>

1.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일까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뜻하므로 부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부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이 부족하거나 풍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입니다. 그릇에 물이 반밖에 안 차 있다면 부족한 것이고, 가득 차거나 넘친다면 풍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릇의 크기가 모두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그릇에는 넘치는 양의 물도 더 큰 그릇에 담는다면 부족하게 됩니다. 사람도 이와 동일합니다.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훨씬 많은 돈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부족하다거나 풍족하다고 이야기할 때의 ‘부족하다’라는 말은, 그릇과 같이 부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뜻이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혹은 충분치 않다고 이야기할 때도 그 판단의 기존이 필요합니다. 예시의 하나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전세계 인구는 약 70억명 정도이고, 곡물 생산량은 22억 톤 가량 됩니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소비 가능한 곡물량은 0.314톤이 됩니다. 1인이 1년에 314kg의 곡물을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류 소비가 많지 않던 1970년에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했던 곡물량이 219㎏였습니다. 따라서 300kg라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소비량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곡물 생산량만을 기준으로 1인당 소비량을 판단해보면, 지금 우리가 생산하는 곡물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의 ‘부족’의 기준은, 먹어서 배가 부르는 것과 같은 생물학적으로 먹을 수 있는 물량이 그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고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들의 욕구, 욕심이 기준이 됩니다. 돌려 말하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 만큼 부족하지 않게 생산되지만, 사람들의 욕구와 욕심을 모두 채울 만큼 풍족하지는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들의 욕구 혹은 욕심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곡물 대신 육류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kg의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kg 이상의 곡물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1년치 만큼의 곡물이 아니라 재난에 대비해 3년치 곡물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1년에 314kg으로는 부족하고 600kg 이상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가 사람들의 욕구이고 욕심에 해당됩니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실에 60명의 학생이 있고, 과자가 100개 있다고 할 때, 선뜻 생각하기에 과자가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학생 1명당 1개 이상의 과자는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는 1∼2개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3개를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고, 5개를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또한, 10개 이상을 먹어야 욕구가 충족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집에 있는 동생에게 주기 위해 6개의 과자가 필요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내일 먹을 과자까지 4개의 과자가 필요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을 안 먹은 학생도 추가적인 과자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욕구를 모두 반영한 물량은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1인당 1∼2개 먹을 수 있는 과자의 수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줄 과자의 수는 300개가 될 수도 있고, 500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에는 당연히 과자가 부족합니다.

경제학적으로 자원이 희소하다 혹은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절대적인 자원의 양이 부족하다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모든 욕구와 욕심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 혹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욕심을 모두 충족시켜줄 만큼 자원이 풍부한 세상, 혹은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는 세상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인류가 겪고 있는 자원 부족 문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이라는 학문도 영원히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2. 누군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시작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출발점인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갖지 않는 한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더 갖는 사람이 생기면, 반드시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지면, 다수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먼저 부를 가져가는 사람이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가령, 100명으로 구성된 사회의 전체 자산이 200이라고 할 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가지면, 1인당 2의 자산을 가지게 되고 자산이 0인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20을 가져가게 되면, 이제 99명이 남아있는 180의 자산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90명이 자산이 2씩 가지면 나머지 9명의 자산은 0이 됩니다.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20의 자산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빼앗아오지 않는 한,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산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20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자산을 나눠줄 리도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산을 가지기 어렵게 됩니다.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Well-I-Left-You-Half

<출처: http://www.ahhthesimplelife.com/why-simple-living-is-better-for-everyone/>

자산과 분배와 관련된 위의 이야기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난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난이 개인적인 문제가 되려면, 개인이 가난해지는 원인이 개인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라야 합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게으르고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새벽 같이 일어나 일을 나가고,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렇게 열심히 삶에도 불구하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산을 가지지 못한 데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직면한 가난이라는 문제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들이 가난한 것은 이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정된 자산을 가지지 못한 데 따른 원인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지 않는 한, 누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자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자원을 협소하게 해석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상품의 재료를 뜻할 수도 있지만, 광의로 해석하면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자원을 적게 가진 사람은 그만큼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적게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자원 혹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만큼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인의 가난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은 본질적으로 자원을 가져갈 기회를 잃은 누군가를 구조적으로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가난은 개인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개선의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잘 살고 못 살고는 개인들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정 정도는 개인의 노력으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총량에 한계(자원이 한정돼 있다)가 있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두 일정한 부를 창출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수준 혹은 작은 규모에서의 개인적인 노력은 쉽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사회적으로 큰 자산이나 부를 얻기 위한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노력의 합이 총량의 제한을 받지 않을 때는 개인들의 노력이 쉽게 보상 받을 수 있지만, 총량에 제한을 받게 되는 순간 개인들의 노력은 보상 받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자원의 총량,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구성원이 10명으로 이루어진 자원 규모가 100인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사회가 가진 자원을 10명에게 분배하는데, 5명에게는 10개, 나머지 5명에게는 5개씩 분배를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75(=5*10+5*5)가 분배되고, 25개가 남습니다. 아직까지는 총량에 제한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10개 가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노력을 더 해 35개를 얻고, 나머지 네 명은 이전과 동일하게 10개를 가져가고, 5개를 가졌던 사람들도 이전과 동일하게 5개씩을 가져간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전체 100개의 자원은 모두(100=1*35+4*10+5*5) 분배되고 여유분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이 수준까지는 개인들이 노력을 하면, 과거 10개를 가져갔던 사람이 노력을 통해서 35개로 자원의 갯수를 늘렸듯이,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에 여유 자산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자원을 5개를 가진 사람이 다소 늦었지만, 더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노력을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사회적으로 여유 자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를 빼앗아오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의 부를 강제로 빼앗아오지 않는 한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자신의 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사라지게 됩니다. 부의 총량이 한정되어 더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 혹은 기회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달리 말하면, 개인들이 노력을 하더라도 자원의 총량이 제한을 받으면, 개인들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난이나 빈곤이 철저하게 개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던 이전 글과도 서로 통하는 내용입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글자 그대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원이 배분되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들의 노력은 부를 만들어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원이 한정돼 있고 분배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개인들이 노력한다고 그 상황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력한다고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자원이 한정돼 있는 전제의 세 번째 의미입니다.

4. 분배체계가 필요하다

경제의 가장 큰 전제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임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는 한정된 자원이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의 네 번째 의미는 분배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큼 자원이 충분하다면 별도의 자원을 분배할 장치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분배해야 합니다. 분배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강제로 동일하게 분배할 수도 있고, 선착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시험을 치러 그 결과에 따라 분배할 수도 있고,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특정한 숫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우선 분배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학점이라는 자원은 시험 결과에 따라 배분됩니다. 또한,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유명화가의 그림은 소더비 등의 경매기관을 통해 가장 고가를 부른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일부 공립유치원은 신청한 순서에 따라 유치원생의 입학이라는 자원이 분배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대부분 자원은 한정돼 있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분배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배방식은 자원의 특성, 사람들의 선호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모든 분배방식에는 그 분배방식을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듭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류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분배방식을 채택해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채택한 가장 일반적인 자원 분배 방식은 바로 ‘가격(price)’를 통한 분배 방식입니다. 가격을 통한 분배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지불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 자원을 분배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시장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지불하지 못 한다면, 그 사람은 해당 자원을 구매하지 못 하게 되어 자원을 획득하려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년 등록금이 500만원인 대학이 있다고 할 때, 해당 대학에 입학이라고 하는 자원은, 등록금이라는 ‘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분배됩니다. (시험 성적에 의한 합격 이후의 문제입니다.) 즉, 500만원이라는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대학생이라는 자원이 배분됩니다. 이제 대학 정원은 한정돼 있는데, 입학하려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런 경우, 대학이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등록금이라는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1년 등록금이 1,000만원으로 두 배 오르면, 1,000만원의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대학 입학이라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등록금 1,000만원에도 입학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등록금은 1,500만원으로 올라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가격을 책정하고,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장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방식입니다. 따라서 ‘가격을 통해 자원을 분배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경쟁에서 탈락시키겠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알고 있는 ‘가격’의 가장 큰 역할은 해당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는 일입니다.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연히 자원의 가격은 올라가고, 상승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자원 획득 경쟁에서 탈락하기 시작합니다. 한정된 자원과 그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맞을 때까지 가격은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 결정된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 자원이 배분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 방식은 철저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가격을 통한 분배는 철저하게 부자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된 분배방식입니다. 왜냐하면, 부자일수록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고, 그에 따라 자원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결과 다시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공급이 증가한다면, 더 낮은 가격에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을 활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켜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늘릴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산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대량 생산이 되지 않았다면, 시장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소수의 부자들만 해당 자원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혁신 등이 이루어지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자원 분배과정에서 탈락되는 일 없이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대량 생산이 생산자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켰지만,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확대시켜 주었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도록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한평생 돈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려고 몸 아픈 것도 참아가며 일을 합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모두가 돈 걱정 없이 고생하지 않으며 잘 살 수 있는 ‘천국’을 생각해봤을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말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천국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림을 그리듯, 천국의 모습을 한 폭의 도화지 속에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온화한 모습으로 행복한 모습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이 되려면 경제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걸까요.

[2] 경제적으로는 천국을 정의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살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으며,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을 다를 겁니다. 경제적인 천국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이런 세상이 되려면, 먼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3] 첫째,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A라는 사람도 풍족하게 사용하고, B라는 사람도 풍족하게 사용하려면, 해당 상품의 공급이 한정돼 있지 않고 무한해야 합니다. 자원이 무한해야만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가질 수 있습니다. 자원이 무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어떤 형태로든 분배 체계가 필요해지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고 덜 가지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시 불평등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누구나 필요할 때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원이 무한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공짜 혹은 무료로 무한히 제공되어야 합니다.

[4] 에너지도 무한해야 합니다. 석유나 석탄과 같이 고갈되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써도 써도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빵이나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 고플 때 혹은 먹고 싶을 때,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빵과 고기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5]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원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자원의 일부를 소유하거나 소비하더라도 무한히 공급되고 있고, 다른 사람들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자원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을 더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원이 무한히 공급되면, 소비의 배제성(exclusiveness in consumption)도 성립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즉, 내가 빵을 먹었다고 누군가가 먹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자원을 분배할 사회적 장치도 필요 없게 됩니다. 가격도 필요 없고, 시장도 사라지게 됩니다.

[6] 둘째는 모든 상품 생산이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상품들은 누군가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가령,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다면, 누군가는 가축을 사육해야 하고, 누군가는 도축을 해야 하며, 누군가는 도축된 가축을 먹기 편하도록 손질해야만 합니다. 또한, 손질된 고기를 우리가 살 수 있는 장소까지 배달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빵을 먹고 싶다면, 누군가는 밀을 키워야 하고, 누군가는 수확을 해야 하며, 누군가는 수확된 밀을 가루로 만들어야 하며, 누군가는 가루로 만들어진 밀을 반죽하여 빵으로 구워야 합니다.

[7]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일 하기 싫어한다면, 자원이 아무리 무한히 제공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어떤 사람도 가축분뇨 냄새를 맡으며 가축을 사육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벼를 키우고 밀을 재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축을 도축하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굽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런 활동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의 양은 많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소비할 만큼 무한히 생산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8]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자원이 무한해야 할 뿐 아니라, 자원을 이용한 상품 생산 과정도 완전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공상과학영화 등에서 보이는 자동화된 음식제조기 등이 존재하여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음식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노동에 의존하여 상품이 만들어진다면, 누군가 그 노동력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무한히 만들어내지 않는 한, 모두가 풍족하게 살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노동력을 제공하던 사람이 더 이상 무언가를 생산하려 하지 않으면, 해당 생산물은 공급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족한 상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대두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에 의존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자동화되어야만 우리가 상상하는, 누구나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경제적인 천국을, 누구나 필요할 때 풍족하게 사용하며 사는 세상이라고 전제한다면,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해야 할 뿐 아니라, 생산과정 또한 모두 자동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 조건, 자원이 무한해야 하고, 에너지도 무한히 공급되어야 한다는 조건부터 현실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조건입니다.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으면 분배의 문제가 다시 나타나고,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 누구에게 얼마만큼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분배방식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 분배 체계가 모든 사람에서 동일한 양을 나누어주는 형태일 수도 있고,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나누어주는 체계일 수도 있고, 부자에게 더 많이 주는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또 다시 많이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고, 적게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심화되면 현재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다시 겪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10]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천국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누구나 풍족하게 사용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욕심 없이 착하게, 그리고 궁핍하고 불편하게 사는 세상일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욕심 없이, 가난하게, 그리고 불편하게 사는 세상이 과연 가능할까요? 자원과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고 사람들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세상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들이 발생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11]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이 남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바탕을 보면, 편하게 살고 싶고, 굶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살고 싶고, 더울 때 시원하게 살고 싶고, 추울 때 따뜻하게 살고 싶은 개인들의 욕구와 욕망이 모여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욕구와 욕망을 구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우리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경제는 모든 사람에게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을 어떻게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역시나 천국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의 효율성과 비효율성>

일반적으로 시장의 효율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됩니다. 하나는 자원의 낭비가 많은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원이 배분되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장에 자원의 낭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시장경제 처제에서는 자원의 낭비가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와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생산자가, 각각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열심히 해도 그 결과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든 생산자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노력의 대가가 자신에게 귀속된다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고, 따라서 자원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경제에서는 자원이 상당히 효율적인 분배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측면, 즉,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사람에게 자원이 배분되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란 분배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원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장경제에서 그러한 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격’입니다. 즉,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이 분배됩니다. 문제는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해당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많아서 남들보다 훨씬 넓은 토지가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해당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해당 토지가 누구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해당 토지를 구매할 능력, 즉, 시장가격에 해당되는 토지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없다면, 해당 토지는 그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습니다. 해당 토지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될 뿐입니다. 만약 해당 토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토지가 분배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토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몸이 많이 아파서 큰 수술을 하거나 오랫동안 입원 치료를 해야 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의 경우도,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수술도 하고 목숨을 구하고 장기간 입원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주위에 보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거나 돈이 없어 필요한 수술을 받지 못해 병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의료서비스 또한 토지와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됩니다. 가장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제공되었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자원을 배분하는 시장경제에서는 오직 해당 자원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배분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분배 체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 교육 서비스도 동일합니다. 배우려는 열의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반드시 대학의 교육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등록금이라는 대학 교육서비스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입학할 성적이 되는 학생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주위에는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주 흔했습니다. 그만큼 대학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서비스라는 상품도, 그 교육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선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서비스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가 가장 효율적인 분배구조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가격을 통한 자원의 분배는 철저하게 부자에게 유리한 분배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가격을 지불한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배분합니다. 하지만 그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가장 원하는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장경제가 현재까지 나온 다양한 경제 체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효율적인 체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분배 시스템으로써의 가격의 역할>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무한합니다. 선착순으로 분배할 수도 있고, 시험을 치뤄 성적순에 따라 분배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권력자가 임의로 나눠줄 수도 있고,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줄 것인가는 경제학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분배방식에 따라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되기도 하고, 사회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집에 아이들이 여럿인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 아이 정도는 대학에 보낼 정도는 되지만 모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형편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경우, 부모님들은 집안의 자산 혹은 재산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예전 부모님들은 큰 아들에게 집안의 가용한 자산을 배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는 했습니다. 자산의 분배 권한을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자원은 시장이라는 기구를 통해 배분되지 않고 분배권한을 가진 부모님의 결정으로 분배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결국은 자원의 분배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경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효율성’입니다. 자원을 배분하는 데, 낭비적인 요소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분배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발생하면 실제 분배를 통해 얻는 효용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분배상의 비용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현실에서는 분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매우 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저소득층이나 노령층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업의 경우, 자원봉사자 등의 노동력이 없다면 정상적으로 배달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도시락을 배달하는 비용은, 배달 인력의 인건비에 도시락 가격이 더해져 결정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도시락 가격보다 인건비가 더 많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업의 경우, 분배과정에서의 비효율이 지나치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자원 분배 체계는 분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고려해야 할 기준은 ‘투명성’입니다. 누가 어떤 자원을 얼마나 가져가는지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는 기준입니다. 대부분의 분배체계는 분배주체를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착순이라는 분배체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분배할 때도 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유지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을 나누어준다고 할 때도 나누어주는 주체는 필요합니다. 혹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필요량만큼을 나누어준다고 할 때도, 사람들의 수요를 파악할 주체는 필요합니다. 자원을 배분해줄 주체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자원을 분배해줄 주체를 가정하게 되면, 분배 주체의 이기적 (selfish) 성향이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원을 분배해줄 권한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욕심이 전혀 없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분배 권한을 독점하게 되면, 분배 주체가 분배 이전에 자신의 몫을 떼놓거나, 주체와 이해 관계가 있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리하게 배분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배 권한을 가진 주체가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원이 투명하게 배분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자원의 분배 권한이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게 주어지는 경우, 분배 권한을 가진 주체가 자원을 임의로 분배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에 분배의 투명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자금 배분 과정을 봐도 유사합니다. 여러 가지 장치와 투명한 과정을 통해 자금을 분배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해당 부처의 이해관계자나 사전에 의견이 조율된 개인이나 단체에 배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명성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고려해야 할 기준은 ‘공정성’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기준인데, 이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부에서는 분배라는 것 자체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이지 공정성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공정성은 어떤 주체가 개입해야 하는 정당성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정성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노력을 많이 한 사람에게 많이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분배과정에 개입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투명성 문제가 다시 대두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타적(altruistic 또는 unselfish)이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도 나타나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적(selfish)인 인간이기 때문에 분배권한을 가지면 이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 분배 권한을 주는 행위는 다른 측면에서 분배의 투명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market)이라는 분배기구는 어떨까요. 누군가의 개입 없이 비용과 수익을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효율성이 매우 높은 분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수익보다 많다면, 해당 주체는 분배과정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직 비용보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만 분배과정에 참여합니다. 또한 강요하는 주체도없습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분배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용도 최소화됩니다. 또한, 특별한 분배 주체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투명성도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라는 기구에서는 누가 어떤 자원을 가져가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시장이라는 분배 시스템이 채택하고 있는 분배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시장이 채택한 분배 시스템은 ‘가격’(price)입니다. 가격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는 하지만, 가격이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원을 배분하는 일입니다. 선착순에 의해서도,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서도, 달리기 경주를 통해서도, 시험성적을 통해서도 자원을 배분하지 않고, 오직 가격을 통해서 자원을 배분합니다. 가격에 의해 자원을 배분한다고 할 때의 자원의 배분 기준은, 해당 가격을 지불할 ‘경제적 여력’이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해당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해당 자원을 가져갈 수 있고, 지불할 수 없다면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가령, 대학이라는 상품이 있다고 할 때, 대학의 가격은 등록금이 됩니다. 성적 등의 입학 기준을 충족하는 학생들 가운데, 등록금이라는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학생은 대학이라는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여력이 안 되는 사람은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즉, 가격은 해당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을 탈락 혹은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나 이용할 만큼 공급이 많다면, 가격은 저렴하게 결정되고 그만큼 소비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갖고자 하는 상품이라면 가격은 상승할 테고, 상승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원 배분과정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자원이 배분됩니다. 따라서 귀한 자원일수록, 누구나 원하는 상품일수록, 돈 벌 가능성이 높은 기회일수록, 가격은 올라가게 되고, 해당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사 두면 큰돈이 될 것 같은데 돈이 없어 살 수 없다는 것은, 해당 상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배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가령, 금을 사두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금을 살 돈이 없다면, 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고, 모 지역의 아파트를 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배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고급승용차의 분배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학원이라는 자원 분배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살 때 항상 지불하는 가격이라는 것은, 단순한 물건값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당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은, 해당 상품을 분배하는 시스템에서 탈락하지 않고 해당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로, 돈이 부족하여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했다는 것은, 시장이라는 기구가 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돈이 부족한 나를 배제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채택하는 자원 분배방식은 시장을 통한 분배방식이고, 시장은 가격을 통해 분배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가격을 통한 분배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한 분배방식일까요. 시장을 통한 분배방식은 가격을 지불한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분배 체계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분배체계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 즉 돈 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유도 이런 분배 시스템에서 좀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고 남들보다 더 유리한 자원을 가져갈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인간>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기적(selfish)인 주체로 설정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자기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로, 모든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가정입니다.

경제 주체의 이기심은 Adam Smith가 처음 제기했습니다. 그는 1776년에 발간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the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유인호 옮김, 동서문화사, 2008)라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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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살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면,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기존에는 남을 위하는 행동이 뭔가를 나누고 베푸는 것이었다면, 아담 스미스 이후에는 굳이 남에게 베풀려고 하지 않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위하는 행동이 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착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며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는 많이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이후 경제학은 이기적인 인간을 아주 당연한 가정으로 받아들였고, 이 가정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는 ‘이기적 인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 이기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이기적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기적이다’라고 할 때의 이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이기심보다 넓은 의미의 이기심입니다.

먼저, 이기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착하지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가장 우선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내 이익이 항상 앞서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나의 이익이 먼저 확보된 이후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내가 일단 먹고 살 만해야 다른 사람을 살필 여유가 생기는 것도 동일한 이유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의미의 ‘이기심’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욕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의 이기심은 단순히 개인들의 행위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기심은, ‘나’의 이익만을 취하는 행동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 우리 집안, 우리나라 등을 위한 행동도 모두 포함합니다. 흔히들,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한 행동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행동이나 생각 자체도 모두 이기적인 행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이익을 취하는 주체가 ‘나 자신’에서 ‘우리’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남보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크고 좋은 비싼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 내 자식만큼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는 생각, 돈이 풍족하다면 아픈 부모님 병원에 모시고 가고 싶다는 생각, 자식 결혼할 때 전세라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 자식 결혼할 때 상대방 집에 비해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 생각, 자식들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많이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 연봉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다니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등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이기심에 해당되는 생각들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의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이기적인 생각에 해당됩니다. 이익을 위하는 주체가 개인이든, 가족이든, 집단이든, 나라든, 이익을 취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이기적인 행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할 때의 이기심(selfishness)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이기심도 포함되지만, 가족, 집단, 그룹, 국가 등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행동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히 ‘자기 자신만 안다’ 혹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한다’ 정도의 의미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이기심’은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반영한,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기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 혹은 속세와 초월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재물을 모으고 먹고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고, 모든 것에 벗어난 사람만이 비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설령, 단순히 먹고 사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인들의 이기심이 모여 시장에서 수요를 만들고 공급을 만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내가 더 잘 살 수 있다면, 더 만들고, 더 생산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물건을 실어나르고, 휴일도 없이 가게 문을 엽니다.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편히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식당을 가고, 물건을 사고, 여행을 갑니다. 이렇게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모여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그 가격에 따라 자원이 배분됩니다. 따라서 ‘이기적이다’라는 가정 자체가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경제학이 일반 학문과 달리, 인간은 이기적이다, 즉 인간은 착하지 않다, 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착하지 않다 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그 속에는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 등 개인들의 욕구가 모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을래야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입니다. 단지, 학자들이 경제현상을 이론화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을 뿐입니다. 사람의 심리를 읽고, 잘 살고 싶은 욕구를 이해하는 것을, 굳이 수학적 표현으로 어렵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가장 쉬울 수 있는 학문이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윤리나 도덕과 달리, 재미가 없,을 수 없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득을 버는 두 가지 방법: 노동과 자본>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분류하면,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돈을 버는 자본(capital)을 통해 수익을 얻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노동과 자본을 생산수단으로만 봅니다만, 이것은 기업이나 생산자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개인 입장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돈을 버는 두 가지 방법에 해당됩니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임금(w)과 노동시간(L)을 곱하면, 노동소득을 얻는데, wL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소득도 이자율과 같은 자본의 가격(r)을 자본(K)에 곱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자본이 가격을 r이라 하고 자본을 K라 하면, 자본소득은 rK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소득은 그 원천에 따라 (wL+rK)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식이 의미하는 것은, 개인들의 소득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아주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위의 수식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령, 자본소득(rK)이 0인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전적으로 노동소득(wL)만 가진 사람이 됩니다. 만약 이 사람이 나이 들어서까지 자본소득이 0원이라면, 이 사람의 노년은 어떻게 될까요. 맞습니다.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위의 수식은 자본소득이 없는 사람은 나이 들어서까지 노동소득에 의존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월급쟁이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꿈 가운데 하나가, 건물을 사서 임대료를 받으며 노후에 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들 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건물은 자본에 해당되고, 가게 임대료가 바로 자본소득이 됩니다. 따라서 월급쟁이들이 건물을 매입해 가게를 빌려주고 임대수익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노후에 자본소득을 확보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즉, 노동소득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본소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고, 그런 방법의 하나로 건물을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동소득(wL)은 거의 0원으로 수렴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본소득이 없으면 노후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건물 하나를 사서 임대료를 받으며 살겠다는 생각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학적인 이론은 몰라도, 이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본소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물 외에도 자본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가장 쉽게 생각하는 방법이 건물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법이라, 그런 이야기가 많이 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소득의 중요성은 국내 모 그룹 회장님의 사례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이 그룹 회장님의 연간 근로소득은 0원이지만, 주식 배당금 등의 자본소득은 1,000억원이 넘습니다. 그만큼 자본소득의 유무 혹은 크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유명한 문구가 있어 소개합니다.

“Money makes money and the money that makes money makes more money.”  – Benjamin Franklin-

이 문장은 금리 가운데 복리의 힘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힘을 잘 보여주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의 처음 부분은 돈이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하는데, 돈이 돈을 버는 단계가 자본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뒷부분은 어떻게 축적된 자본이 더 많은 돈을 버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가령, 10억원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자본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동일한 회사에서 동일하게 연봉 6,0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첫 번째 사람은 1년에 1억 1,000만원(이자율 5%)을 벌고, 두 번째 사람은 6,000만원을 벌게 됩니다. 1년간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출장 다니며 번 돈과 10억이라는 자본을 은행에 저금해 두고 받은 금액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욱이 첫 번째 사람이 이자로 받은 금액을 소비하지 않고, 다시 저축해둔다면 그 다음해 받을 수 있는 이자금액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개인들이 돈을 버는 두 가지 수단으로써의 노동과 자본은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면 특성이 아주 다른 돈 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크게 육체 노동과 지식 노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편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방법이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두 가지 노동은 경제학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돈 벌이 수단으로써의 노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노동(육체노동이든 지식노동이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쇠약해지고, 두뇌활동도 느려지면서, 노동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육체노동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의 노동력 질이 노령층의 노동력 질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임금도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기에 오랜 육체 노동으로 인한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나중에서는 임금소득보다 의료비 지출이 더 많은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따라서 노동만으로 소득을 벌어야 하는 계층은 장기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기 어렵고, 자본 축적이 어려워짐에 따라 노력을 해도 부(富)를 축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도 사실상 힘들게 됩니다.

하지만 자본은 기계류나 건물과 같은 경우에 나타나는 감가상각을 제외하면, 자본의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의료비 등의 지출도 필요치 않습니다. 가끔 물가상승률이 금리보다 더 높아 금융자본에 감가상각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노동력만큼 감가상각이 크게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돈을 버는 데는 자본이 노동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이 노동과 다른 특징 가운데에는 ‘축적’이 가능하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치가 감소하는 기계류나 건물과 같은 자본재도 있지만,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자본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모되기보다는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자본이 축적됩니다. 노동도 지식이나 기술 등은 일정 기간 축적이 가능하지만, 노동력 자체는 축적이 되지 않고 소모만 되어 갑니다. 노동이 자본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퇴를 하거나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 노동력으로써의 가치는 끝이 난다는 점에서, 노동력의 축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본을 얻어 스스로의 몸통을 불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10억원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5%의 이자율이 적용될 경우, 첫 해에 5,000만원의 이자소득을 얻게 됩니다. 만약 이 사람이 이자소득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그 다음해에 이 사람의 자본은 11억 250만원(=10.5억원 × 1.05)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나면, 이 사람의 자본은 11억 5,762만원(=11.025억원 × 1.05)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노동력의 주체인 사람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쇄해지기만 할 뿐, 자본처럼 축적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규모는 더 커지는 반면, 노동은 오히려 쇠약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은, 노동력은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지만,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이전도 가능할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 ‘상속’도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 다른 말로 표현해 사람의 몸은 상속이 불가능합니다. 물려주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폐만 끼치는 꼴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은 은행의 예금, 금이나 미술품 같은 고가의 상품, 부동산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자산으로 후계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자본을 상속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본 축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 큰 자본을 상속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이전보다 더 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흔히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려준다는 것인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이때 물려줄 것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자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을 물려주어야 자식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것을 못 물려주어 미안하다는 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도 자신이 살아온 것 그 이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자본이 가진 특징은 자본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만큼 자본의 특성은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과 자본의 차이점은 우리에게 부를 축적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일부에서는 일을 해 번 돈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다, 라든가,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가치나 부(富)의 속성을 잘못 이해하거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의 하나로, ‘열심히 일을 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노동소득을 늘리는 데 힘 쓰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노동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노동, 즉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자본’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열심히 일을 해라’가 아니라, ‘자본의 속성을 잘 이해해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고, 또 일을 열심히 하는 데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노동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과 노동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속적으로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고, 그 불평등은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자본을 만들지 못하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자본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출발점은 ‘종자돈(seed money)’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종자돈을 만들면, 만들어진 종자돈을 운용해서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자본의 크기를 불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경제학은 돈을 어떻게 벌고, 자본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다만, 소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주어진 소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비’할 것인가 하는 효용극대화로 시작을 합니다. 소득을 벌고, 저축을 하고, 자본을 만들어가고 하는 과정은 다루지 않고, 어떻게 잘 소비할 것인가 하는 내용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경제학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개인들에게 부자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것이 아니라, 소비를 어떻게 잘 할 것인가만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자본 축적 기회를 빼앗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쉬어가기

다산(茶山)의 한시 애절양(哀絶陽)

[1] 우연히 발견한 한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시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쓴 것으로, 정조가 죽은 후 유배를 간 강진에서 목격한 내용을 시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당시의 부패한 조정과 관리, 그로 인한 혼란, 그 과정에서 온갖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다산은 자신의 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 ‘첨정(簽丁)’에 애절양이란 시를 쓴 동기를 자세히 적어두었습니다. 다산의 설명에 따르면, ​

​”이것은 가경 계해년(1803) 가을에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편입되고 이정이 소를 토색질해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다.’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나아가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했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3] 시의 제목인 애절양(哀絶陽)은 ‘남근을 잘라버린 서러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출처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amool38&logNo=220248570956&#8221; 입니다.

<애절양(哀絶陽)>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쌈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남자가 남근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조자손 삼대가 다 군보에 실리다니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皁(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蠶室淫刑豈有辜(잠실음형기유고)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녀)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況乃生民思繼序(황내생민사계서)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호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주]잠실음형: 남자는 거세(去勢)를 하고 여인은 음부를 봉함하는 형벌.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에 불을 계속 지펴 높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이 잠실(蠶室)인데, 궁형(宮刑)에 처한 자는 그 잠실에 있게 하였음. 《漢書 武帝紀》
[주]민땅……거세한 것: 민(閩)의 사람들은, 자식을 건(囝), 아버지는 낭파(郞罷)라고 불렀는데, 당(唐)나라 때에 그곳 자식들을 환관(宦官)으로 썼기 때문에 형세가 부호한 자들이 많아 그곳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곧 거세를 하여 장획(臧獲)으로 만들었다고 함. 《靑箱雜記》
[주]시구편: <시경(詩經)>의 편 이름. 군자(君子)의 마음이 전일하고 공평무사한 것을 찬미한 시.


[4] 아마도 경제가 무너지고 나면 중앙정부의 세수가 줄어들면서, 최악의 경우 중앙정부가 공무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거나 주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수준밖에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앙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의 힘이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스스로 먹고 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들은 억울한 일을 아주 많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 별볼일 없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이 지방화되면 이들의 발언권 및 권한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중앙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고 가까운 곳은 한 통속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가슴만 끓이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될 겁니다.

공무원 처우가 좋아진다고 모든 공무원 비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처우가 나빠진다고 모든 공무원이 부정을 저지르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처우가 좋을 때보다는 부정에 빠지는 공무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비리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일반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세수가 줄어 공무원 월급도 큰 폭으로 깎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공무원들 처우가 악화되면 잠시나마 쾌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분들 이야기가 현실화되면 정작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들이지 결정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5] 경제는 마치 풍선과 같아서, 한 쪽을 누르면 눌린 쪽이 눌린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을 밀어내면서 엉뚱한 부풀어 오릅니다. 경제도 이와 동일합니다. 공무원 월급이 줄면 공무원은 다른 경로를 통해 부족한 급여를 충당합니다. 최저임금을 강제로 인상하면 일자리가 줄어 실업자가 더 늘어나는 일이 생기고, 공공요금을 제때 인상하지 않으면 관련 공기업의 적자가 쌓이게 되면서 더 큰 폭의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가 인상을 강제로 억제하게 되면, 관련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공급이 줄어 나중애 더 큰 가격 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경제는 자신이 서 있는 방향에서만 바라보면, 해결책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고, 주장도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도 바라보면, 균형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연히 해결책도 쉽지 않고, 어떤 일방의 주장을 하기도 쉽지 않아집니다.

경제 위기가 오고 세수가 줄어들고 기업이 망하고 가계가 부채로 무너지는 것이, 단지 우리들 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이 줄어들고, 자동차 대신 버스를 타고, 파스타 대신 보리밥을 먹고, 각자 한 방씩 쓰다가 한 방을 여러 명이 함께 쓰고, 늘상 먹을 수 있던 짜장면을 연중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경제 위기는 힘이 없으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 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를 단순히 경제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경제 문제를 만들기는 하겠지만, 결코 경제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정치문제, 사회문제 등으로 퍼져 나가면서 우리 일상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침체가 장기화되면, 다산의 시에서 보는 듯한 일들이, 다시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게 될 겁니다.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런 상황이 되면, 다시 불합리하고 억울한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지금의 살기 좋아진 세상이, 나름 평등해진 세상이, 사람의 본질이 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좋아지고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던 것이지,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경제가 다시 악화되고 가난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예전 우리가 역사책으로 배웠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시 벌어지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각종 법이나 제도도 지킬 필요가 있을 때만 지켜지는 것이지, 지킬 필요가 없고 지켜서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지켜지지 않는 허울뿐인 법과 제도가 될 겁니다.

[7]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경제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너지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너졌으면 좋겠고, 설령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서로 사람 대접 해주는 사회였으면 좋겠고,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약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게 된다면 다른 억울한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분노>

3월 초에 박성미 감독님으로부터 한 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자신이 책을 쓰는데, 많지는 않지만 제 블로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했는데 어떻게 주석을 달아야 할 지, 물어보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주소만 적어주셔도 충분하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2주쯤 전에, 다시 박성미 감독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선한 분노>라는 제목을 달고 책이 마침내 출간되었노라고… 그리고 몇 권 보내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책은 구매해서 읽는 것이 저자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 그러실 필요 없다, 말씀을 드렸고, 오늘에야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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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박성미 감독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를 간단히 해드리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리고 박성미 감독에 대한 소개는 제가 하는 것보다, 관련 기사를 소개해 드리는 것이 더 빠를 듯합니다. 지난해 4월 “이런 대통령 더 이상 필요없다”는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 게시판을 다운시켰던 분입니다. 글의 내용은 기사를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대통령이어서는 안되는 이유’ 내가 썼다…오늘 다시 올릴 것” (오마이뉴스, 2014. 4. 30)

그리고 다음 기사는 CBS라디오와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읽어보시면, 박성미 감독이라는 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인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영화감독 박성미, “내가 날라리 외부세력이 된 이유” (CBS라디오, 2011. 7. 19)

책은, 스무살 중반까지 강남에서 자란, 그리고 경제성장과 아파트 건설의 붐을 타고 한국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중산층의 자녀로써 성장한 저자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김진숙 위원장을 만나고, 그로 인해 바뀌는 변화들을 보면서 사회에 눈을 떠가는 모습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한 현상이 나타나는 밑바탕에 경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시각으로 돈, 부, 경제, 불평등 등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박성미 감독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것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박성미 감독께서 경제와 그로 인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하였고, 쉽지 않았을 텐데 경제 공부도 무척이나 많이 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건조하지도,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고민하고 공부했던 내용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책은 경제학자가 쓴 글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물론, 책이 가진 따뜻함에는 박성미 감독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사서 읽어보시길 권해 드리고, 박성미 감독께서 서문에 쓰신 내용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이 익숙한 내용입니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동일할 듯합니다.

“가난해지는 것보다 바보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더 못 견뎌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때, 세상은 바뀐다. 사람들이 스펙이 없다는 사실보다 주관이 없다는 사실을 더 부끄럽게 여길 때 바뀐다. 재산과 지위를 잃는 것보다 어이없는 명령의 하수인이 되는 걸 더 불행으로 여길 때, 바뀐다. 내 소유의 집을 갖는 것보다 내 소유의 영혼을 갖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 세상은 바뀐다. 그때 사람이 돈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그리고 제 블로그의 내용은 100쪽에 소개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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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사도 참고하세요. 책을 소개하는 기사이기는 한데,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이 드네요.

 

<비트코인>

지난 5월 초에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 관련 업체에 5천만 달러(537억원)를 투자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골드만삭스 ‘비트코인 논란’에도 거액 투자…왜? (연합뉴스, 2015. 5. 1)

그동안 월가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던 터라, 이번 골드만삭스의 투자는 다소 이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골드만삭스가 중국 벤처캐피탈 회사인 ‘IDG캐피탈’과 손잡고 투자하는 회사는, 비트코인을 통해 대금의 지급과 결제를 추진하는 ‘서클 인터넷 파이낸셜’이라는 신생기업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IDG캐피탈’은 ‘샤오미’와 ‘바이두’ 등 중국 내 1위 기업 10여 개를 키워낸 것으로 유명한 벤쳐캐피탈 기업입니다. 이런 벤처캐피탈 회사가 골드만삭스의 투자까지 받아가며 비트코인 관련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비트코인 관련 기업을 적극 키워보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그리고 10여일이 지난 5월 10일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합법적으로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등록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회사는 뉴욕·싱가포르에서 비트코인 환전소로 활동 중인 ‘잇비트(ItBit)’라는 기업으로, 뉴욕에서 합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신탁회사(trust company)’ 등록을 마쳤습니다.

뉴욕, 비트코인 환전소에 처음으로 ‘신탁회사’ 자격 부여… 비트코인 합법화 박차 (전자신문, 2015. 5. 10)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금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현재 각종 거래에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의 축적수단으로 이용되는 화폐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수단을 찾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화폐를 대신할 새로운 수단으로 생겨난 것이 비트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의 물량이 한정되어 있듯이, 채굴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갯수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트코인으로 평가되는 구매력 또한 금과 같이 안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의 안정성 측면에서 기존 화폐를 대체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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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트코인이 화폐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화폐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이 가치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금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소수만이 접근 가능하다는 점에서 금에 견주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비트코인을 평가한다면, 금보다는 고가의 미술품에 더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고가의 미술품이 도난의 위험을 가지고 있듯이, 비트코인 또한 해킹 등을 통한 도난의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술품의 경우, 미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필요하듯, 비트코인도 비트코인 자체를 화폐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달러나 위안화 혹은 원화로 평가하는 비트코인의 가격은, 화폐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금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비트코인 또한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화폐의 대체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적완화 등이 확대되면 비트코인 가격도 금 가격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달러로 평가한 비트코인 가격은 2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추가 하락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1,000달러가 넘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이 내려간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비트코인 상황을 두고 보면, 한때 가격이 온스당 1,900달러를 넘어섰다가 지금은 1,200달러 부근에서 머물고 있는 금과 처지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 관련 기업에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염두에 두고, 최근 금 시장에 뭉치돈이 들아오고 있다는 다음의 기사를 보면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100억원 사재기까지.. 부자들 ‘골드러시 (한국일보, 201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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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관련된, KBS 파노라마 <디지털 미래> 경제 2편 “비트코인, 가상화폐의 도전”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상하이>

내일부터 며칠 간 중국 상하이를 갑니다. 중국의 다른 도시는 자주 갔었는데, 상하이는 이번에 처음입니다. 상하이는 서양문물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통로로 인식되었던 도시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중국 경제의 선봉장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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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하이의 역사를 보면 결코 녹록치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하이는 중국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1842년에 체결한 난징조약을 통해 강제로 개방된 5개 항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 상하이는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 중국의 교역은 북쪽의 실크로드(silk road)와 남쪽의 티로드(tea road)를 통한 육로 교역이 대부분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상 무역에 필요한 항구가 크게 필요치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서구 자본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해상을 통한 무역이 중요하졌고, 그 과정에서 지리적인 요충지에 있던 상하이가 중요한 무역 거점의 하나로 부상하게 됩니다.

개항하고 3년이 지난 1846년이 되면, 상하이는 중국 수출입무역의 16%를 차지하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성장하게 되고, 1861년이 되면 중국 전체 수출액의 50%를 상하이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써 상하이는 초기에 무역 중심지였던 광조우를 추월하게 됩니다.

상하이가 중국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상하이 내 외국인 주거지였던 조계지(租界地)도 빠르게 늘어나게 됩니다. 조계지는 상하이 내에 외국인이 많이 주거했던 지역으로, 이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독자적인 경찰권과 행정권을 가졌었습니다. 그로 인해, 상하이는 거의 서구 도시화되다시피 했습니다. 심지어 1868년 영국 영사관 앞의 공원(지금의 황푸 공원) 입구에는 ‘중국인과 개 출입금지(華人與狗不准入内)’라는 푯말까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하이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9년 건국을 기점으로 상하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상하이도 살벌한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바람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었던 조계지는 ‘부르주아의 오염물’로 불렸고, 상하이는 개혁의 대상 도시가 되면서 상하이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하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하이는 1990년 국가급 프로젝트인 푸둥(浦東) 개발이 추진되면서 다시 한 번 도약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후 상하이는 중국 경제성장의 모범 도시로 자리잡으면서 최근까지 중국에서 성장이 가장 빠른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보게 될 상하이의 모습은 물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이후의 최신 모습일 겁니다. 상하이는 5월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하니, 이번에 잘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하면, 상하이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이 분 노래를 빼놓을 수 없죠. 바로 가사에 “상하이 트위스트~”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곡에 설명을 조금 더 붙이자면,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던 1997년에 발표된 노래입니다. 상하이 특유의 트위스트 춤 형태가 있었기 때문에 ‘상하이 트위스트’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니고, 단지 당시에 트위스트라는 춤이 무척이나 유행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트위스트라는 춤이 예전부터 별도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춤의 이름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트위스트’라는 명칭은  1959년 흑인 기타리스트 H. 밸러드가 낸 음반「더 트위스트(The Twist)」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밸러드의 음반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1년여가 지난 1960년에 흑인 신인가수 처비 체커(Chubby Checker)가 같은 곡을 다시 발표했고, 이것을 당시 텔레비전 사회자였던 D. 클라크가 그의 프로그램에서 선전한 뒤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것이 파리로 전파되고, 파리에서 유행하자 미국에서도 1962년 본격적인 트위스트 붐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조지 소로스의 경고>

그동안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워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시경 님께서 속 시원하게 풀어놓으셨네요. 주인장의 허락 없이(아마도 허락해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가져옵니다. (시사와 경제: ‘조지소로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읽으시면서,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지,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금 모으기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글도 함께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경제위기의 본질 (30)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금융 냉전(Financial Cold War)]

아직도 금값에 대해 이야기하고, 집값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다면, 스스로 현재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반복이 될 수도 있지만, 제 블로그에 다시 게재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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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충돌로 3차대전 위험” … 조지 소로스 경고

소로스 “3차대전 피하려면 美-中 경제 협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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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워싱턴 DC 세계은행(WB)에서 열린 브레턴우즈 콘퍼런스에서 조지 소로스는, “만일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면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 라고 경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 양보를 해야 한다며 꺼내든 내용은, 다름 아닌 기축통화권인 화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를 인정해야 하고, 중국도 미국의 달러를 인정하는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지금까지 제가 말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스 “IMF 부채 상환할 돈이 없다.”

그리스를 보듯이, 신용기반의 모든 화폐는 너무 많은 부채로 인해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신용 기반의 통화에서 ‘달러’가 가장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 문제죠.

이에 중국은 달러가 아닌 막대한 양의 金을 모으면서, 지금 달러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 되고 있습니다. 金을 사들인다는 것은 향후 달러를 인 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金본위제에 대한 말을 많이 합니다. 막대한 金을 사들이는 중국이 金본위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예측이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최소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나라(정부)가 직접 나서서 金본위제를 선포할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국의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신용본위에 대항하여 미국을 몰살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미국이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죠.

거기에다가 만일 金본위제로 중국이 회귀를 한다면,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금융을 이용해서 미국이 중국 위안화를 벌어들이고 이를 金으로 바꾸어달라고 할 것이기에 미국, 정확히는 자본세력에게 털리는 것은 시간문제 입니다. 미국이 위안화를 벌어 金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중국이 선포한 金본위제는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정부가 나서서 금본위제를 선언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 중국은 왜 막대한 양의 金을 모으고 사들이는 것일까요?

경제는 내가 비관적으로 본다고 비관적으로 되지 않고, 낙관적으로 본다고 낙관적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즉, 미국정부나 중국정부가 의도한다고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는 구조적으로 짜여진 틀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부채가 많아 임계점에 이르면, 어느 시점에서 경제구조가 붕괴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최근 그리스의 사태를 보듯이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즉, 미국정부나 중국정부가 손 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시장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이 경우, 절대 다수의 시장참여자들이 기존 시스템이 제공하는 지불수단이나 시스템에 불신을 하여 거래 자체를 거부해버리게 됩니다. 이 경우, 모든 경제와 금융의 거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돈(신용본위)이 아닌 기존의 구시대적 지불시스템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미 시장은 신용과 신뢰가 사라져 기존의 거래방식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경제가 붕괴된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가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고, 미국 달러나 金, 유로화, 엔화가 “경화(가치가 변하지 않는 화폐)”의 역할을 하며 거래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현재의 신용본위 통화제도에서 너무나 막대하게 늘려놓은 부채 기반의 지불시스템은 이제 국가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을 중국이 잘 알기에, 중국이 ‘金본위제’를 선언하면서 미국을 엎어트리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때, 신용 기반의 통화시스템이 아닌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 온 지불시스템을 시장이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어쩔수 없이 金을 매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남미의 국가들이나 경제가 붕괴된 나라들을 보면, 국가가 법으로 규제하고 통제한다고 시장이 이를 받아들였습니까? 아닙니다. 시장 스스로가 통제가 무너진 국가를 대신해 스스로 기준을 잡아 지불결제 수단에서부터 경제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의 루블화가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당했을 때, 러시아 정부가 아무리 통제를 해도 국민들(시장)이 달러를 사 들이고, 金을 사 들이는 것을 막거나 통제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도 아무리 자국통화의 가치폭락을 막으려해도, 국민들(시장)이 달러와 유로화 그리고 金으로 지불수단을 사용하여 스스로 기준을 세웠으며(심지어 ‘콩’이나 중고 가전제품을 사들이는 상황까지 갔었죠), 지금 그리스에서는 국가가 부도나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향후 그리스 정부가 디폴트 시 유로화가 아닌 과거의 ‘드라크마’로 돌아갈 것을 대비해, 자동차 구매에 열을 올리는 것을 확인했지 않았습니까! 즉, 시장(국민들)은 신뢰와 신용을 잃은 통화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어버리기에, 국가(정부)가 아무리 용을 써도 시장 자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국이 金을 모으는 것은 바로, 국가(정부)가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을 알기에, 생존을 위해서 金을 모으는 것이지, 달러를 죽이거나 金본위제를 선포하기 위해서 金을 사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너무나 막대한 부채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신용본위의 시스템”에 대비하여, 중국이 金만 모으지 말고, 달러를 포함한 신용 본위 시스템의 붕괴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하여 공존할 길을 찾지 않으면… 결과는 전쟁이라는 것을 경고한 셈입니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7년 넘게 엄청난 양의 화폐인쇄(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지속하며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왔습니 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2008년보다 더 많은 부채가 늘어났을 뿐 전혀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즉, 현재의 위기는 2008년보다 더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붕괴’를 막을길은 없습니다. 이는 미국도 알고, 중국도 알고, 러시아도 알고, 유럽이나 일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국과 러시아의 金모으기에,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어내야 하는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유럽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리 만무합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이 협력을 한다고 해도, 임계점에 다다른 신용화폐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길을 없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보유한 金을 미국에게 나누어주며 모두 金본위제로 돌아가자고 하더라도, 金본위제가 만들 유동성의 축소는 엄청난 디플레이션을 동반해야 하기에 ‘풍요’에 익숙한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택하기도 어렵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긴축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폭동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중국과 미국이 서로 협력을 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앞으로 다가올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미국에서 발행한 달러를 거부함으로써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조지 소로스’의 생각인 것입니다.

어차피 중국의 부채도 이제는 정부가 통제하고 손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미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 중국의 기존시스템에 대한 파괴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죠.

[불안정한 시스템에서는]

“금리는 시장이 정한다” = “지불수단은 시장이 정한다”

의 결과를 우리가 피할 수는 없습니다.

향후, 어떤식으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려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평화롭게나 풍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각오해야 합니다. 반세기 넘게, 전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려는 시점에,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조지 소로스’가 지금 ‘제3차세계대전’을 경고하고 있듯이, 그간 <음모론>으로 애써 치부하던 ‘달러와 金’에 대한 내용은, <음모론>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임계점에 이른 신용화폐로 인해 구매력이 보존될 수 있는 지불수단인 귀금속의 가격 폭등은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유럽도 일본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시스템에 불변으로 적용되는 ‘수요와 공급’은 통제가 불가능하니까요.

분명한 것은, 金값이 오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는 풍요로운 세상을 유지시켜왔던 신용화폐가 그 가치를 잃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빈곤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다가올 ‘빈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빈곤의 시대’에 최소한 모두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협력을 모든 국가들이 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신용화폐)가 그 힘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왜 빨리 그 날이 오지 않는냐?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미래의 세상이 얼마나 어둠에 휩싸이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역사상 이런 거대한 신용본위의 폰지사기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할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몰라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진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국이 그리고 러시아가 또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金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런 미지의 세계에 두렵기 때문이지 골드버그이거나 달러를 거부해 미국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El Empleo>

단편 애니메이션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만들어진 것이 2008년이니까 나온 지는 꽤 된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최근에서야 보았습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el Empleo,” 영어로는 “The Employment”(고용)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고용”이라는 제목으로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Seoul 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에 참가하여, ‘단편-일반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정식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감독은 산티아고 그라소(Santiago Grasso)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입니다. 내용이 좋아서인지,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102개의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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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ICAF(www.sicaf.org)>

영화는 길이가 6분 정도밖에 안 되는 단편이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현대의 고용 혹은 경제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고민할 것을 많이 던져줍니다.

보시고 나면, 제가 왜 소개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해 드립니다. 영화가 길지도 않기 때문에, 부담없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보고 난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 많은 분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누군가에게 갑인 나도 사실은 누군가의 을이었다.”라고 감상을 표현한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도 누군가의 노동력을 이용하지만, 그런 자기 자신도 결국에는 ‘고용’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노동력으로 이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취업’ 혹은 ‘고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아 실현, 경제적 독립,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역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 등과 같은 그럴 듯한 말로 아무리 포장을 하여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우리를 고용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인 ‘주인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고용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용주 혹은 그 이상을 넘어선 주인의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실제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뿐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고용주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갑니다. 그것이 현실이고, 가공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진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자신이 초라해보이고, 볼품없고, 가치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면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초라한 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고개 돌려 보이는 세상,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el Empleo”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 애니메이션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압축적으로 정확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원래 진실에 가까울수록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뜬금 없는 규칙이 사회적 규범이 되는 과정>

이번에는 조금 우습기도 하고 우스꽝스런 상황에 대한 동영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했던 <브레인 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의 네 번째 시리즈에 나온 한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이 만들어질 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규칙이나 규범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살아가다보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 규범들을 많이 직면하게 됩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하여도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합리적인 것들을 수정하고 중단하기보다는 외히려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저항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지키라고 요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규칙이나 규범이 왜 생겨났는지, 왜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이 지키니까 나도 지키고, 나도 지키니까 너도 지키도록 남들에게도 강요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비합리적인 규범이나 규칙이 얼마나 많은 지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치마 길이가 얼마 이상이면 안 된다, 머리카락 길이가 얼마 이상 길면 안 된다, 여성들은 얼굴이나 발목을 내놓으면 안 된다, 여성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남성들은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 경건한 곳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라, 등등. 찾아보면 왜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부터 해왔으니까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이라는 것이라고 하니까 특별한 것들을 생각하시는데, 우리 주변과 비교해 나도 하는 일들도 모두 사회적 규범 혹은 규칙에 해당됩니다. 이웃들이 모두 외제차를 사면 나도 사야 할 것하고, 옆집 아이들이 모두 학원 가니까 우리 아이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모두들 외국여행 가니까 나도 외국여행 가야 할 것 같고, 모두들 은퇴 후 커피전문점 여니까 나도 커피전문점 열어야 할 것 같은 생각들… 왜 사야 하는지, 왜 보내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자기 자신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까 자신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불필요한 사회적 규범 혹은 규칙에 해당됩니다.

또한, 필요할 경우, 규칙이나 규범을 만드는 조직이나 기관 등에게 유리한 규칙이나 규범을 얼마나 쉽게 만들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각종 법률이나 규칙이 얼마나 생기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쉽습니다. 그리고는 무조건 지키도록 강요하기만 하면 됩니다. 앞으로의 사회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왔던 사회처럼 합리적인 사회가 되길 기대하면 안 될 겁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게 될 겁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

[1]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월남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8년간 하노이 수용소에서 복역한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 1923∼2005) 장군의 이름을 딴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경제학자인 짐 콜린스(Jim Collins)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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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로 잡힌 가장 고위직 장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이 한창 중이던 1965년에 공습을 나갔다가 적군에게 격추되면서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포로가 된 그는 하노이 힐턴(Hanoi Hilton) 수용소에서 1973년까지 8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포로 생활을 하는 8년 동안 그는 수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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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톡데일 장군의 초상화, (2) 포로로 잡히기 몇 주 전 자신의 폭격기에서 내려오는 모습. 출처: James Stockdale (Wikipedia)>

[3]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인 콜린스는 스톡데일 장군의 베트남 포로 시절의 이야기를 책에 인용하고자 스톡데일 장군을 면담하게 됩니다.  면담과정에서, 스톡데일 장군은 포로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콜린스는 어떻게 그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스톡데일 장군은 스스럼 없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고, 최종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잃어본 적도 없고, 그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I never lost faith in the end of the story, I never doubted not only that I would get out, but also that I would prevail in the end and turn the experience into the defining event of my life, which, in retrospect, I would not trade.”

다시 콜린스가 물었습니다, 베트남 포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요. 그러자 스톡데일 장군은 이야기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쉬워요. 낙관주의 태도를 지녔던 사람들이죠. 그들은, 크리스마스까지는 나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야기했지만, 크리스마스는 그냥 지나가 버렸죠. 그들은 다시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야기했지만, 역시 부활절도 지나가 버렸죠. 그들은 다시 이야기했어요, 추수감사절 때는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는 다시 이야기했죠, 크리스마스 때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결국 그들은 상심(broken heart)으로 죽었죠.”

“Oh, that’s easy, the optimists. Oh, they were the ones who said, ‘We’re going to be out by Christmas.’ And Christmas would come, and Christmas would go. Then they’d say, ‘We’re going to be out by Easter.’ And Easter would come, and Easter would go. And then Thanksgiving, and then it would be Christmas again. And they died of a broken heart.”

그리고 스톡데일 장군은 덧붙였습니다. “당신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여러분이 현실에서 직면해야 할 냉혹한 현실을 혼동하지 마세요.”

“This is a very important lesson. You must never confuse faith that you will prevail in the end—which you can never afford to lose—with the discipline to confront the most brutal facts of your current reality, whatever they might be.“

[4] 스톡데일 페러독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난관에 처했을 때 아무런 근거없는 낙관주의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스톡데일 장군은 무작정 언젠가 이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 거야 라는 희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냉정한 현실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 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절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톡데일 장군은 그 어려운 상황을 버티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아무 근거도 없이 낙관적인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져내려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현실이 힘드니까 막연히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갖습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돼도 포로수용소 생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새로운 희망을 갖습니다. 부활절에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부활절이 되어도 여전히 포로수용소 생활은 이어집니다. 이런 희망과 좌절의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념마저도 잃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포로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것은, 뜬구름같은 희망과 아무 근거도 없는 낙관적인 태도에 의존했기 때문었다고 스톡데일 장군은 말합니다.

섣부른 낙관론이 화를 부른다 (매일경제, 2012. 7. 29)

[5]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다 잘 될 거야.’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고,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 채, 모조건 잘 될 거야 라고만 생각합니다. 스톡데일 장군의 이야기는 그런 무조건적인 낙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아무 근거도 없는 허공에 뜬, 그런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돼야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잘 될 거야’ 라는 믿음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앞으로 닥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아무런 대책도 없는 채, 무조건 ‘잘 될 거야’라는 믿음 하나로는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무너뜨리는 촉진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다 잘 될 거야’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만 쓰는 말이지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설령, 사용하더라도, 자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한 이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그때나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최대한 아껴 써야 할 말이지 아무 때나 막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둔 것도 없고, 준비한 것도 없이, 그냥 ‘잘 될 거야’라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6] 내가 직면해야 할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고, 나 또한 굶어죽을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나갈 지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신념이, 냉정한 현실 인정과 철저한 대비와 결합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막연한 희망 혹은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는 사람을 쉽게 포기하게 만듭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비전은 갖되 현실은 직시해야 (연합마이더스, 2015. 4. 20)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무 근거도 없는, 그저 마음만 낙관주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지 혹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경제를 비관적으로 본다고 경제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듯,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낙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세상일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나의 시각에 따라 세상일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7] 스톡데일 장군의 이야기는 그저 생각만 낙관주의적인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고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톡데일 장군의 이야기에 ‘패러독스(paradox)’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가장 낙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가장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조선시대 삼정(三政)의 문란>

[1] 요즘 경제 위기에 빠진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상품이 귀해지고, 무엇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위기를 맞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생필품이 귀해져 높은 가격을 주고도 물건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전기와 가스 등의 가격도 올라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여기에 일자리까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높은 물가로 빠져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6개월 이상 지속되면 해당 국가 국민들의 생활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지게 될 겁니다.

[2] 경기가 어려워질 때,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이 행정 서비스의 중단입니다. 행정서비스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이런 서비스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국가가 세금을 거둬들여 이들에게 봉급을 주고 필요한 비용을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경찰이 밤에 순찰을 돌고 나쁜 짓한 범인을 잡아들이고, 소방공무원들이 불이 나면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끄고, 청소공무원들이 매일 아침 거리에 쓰레기를 치우고,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행정서류를 발급해주고, 저소득 가정이 지원을 받도록 도와주고, 하는 모든 일들이 세금으로 공무원들 봉급을 주고 필요한 비용을 대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세수가 덜 걷히고 그것이 악화되면 행정서비스에 필요한 비용뿐만 아니라, 공무원 봉급도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공무원연금은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연히 행정서비스가 중단되면서 행정 공백이 나타나게 됩니다. 경제위기 초기에는 공무원들도 국가의 지시에 어느 정도 따르지만, 경기 침체가 심화되어 급여가 나오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공무원들도 국가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살 길을 찾게 됩니다.

국가, 즉 중앙의 힘이 약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사례도 있지만, 우리의 과거, 즉 조선시대를 돌아보면, 중앙의 힘이 약해졌을 때 백성(국민)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3]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시대 ‘삼정(三政)의 문란’이 아닐까 합니다. 삼정(三政)은 국가의 세금을 거두는 세 가지 방식을 의미하는데,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또는 환곡(還穀) 등을 말합니다. 전정(田政)은 땅에 일정한 세금을 물리는 것을 말하고, 군정(軍政)은 병역의무 대신 납부하는 군포와 관련된 세금을 말하고, 환곡(還穀)은 봄철 먹을 거리가 떨어졌을 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돌려받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가의 가장 큰 세수원은 재산과 사람입니다. 조선시대 가장 큰 재산은 농지였고, 병역 의무의 기본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농지의 생산성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사람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세수 안정의 기본이었습니다. 환곡 또한 아주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농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보릿고개 때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 후 갚도록 했던 제도이기 때문에, 농민들 편에 서서 만들어진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하지만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조선의 경제가 무너지고 중앙의 지방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국가 세수의 근간이 되었던 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전정(田政)이 흔들립니다. 원래 전정은 정확한 토지 조사와 1년에 수확되는 양을 검사하여, 균등한 세금을 부과하는 돼 있던 제도였습니다. 엄밀하게 생산성에 근거해 매겨져야 했던 토지에 대한 세금은, 지방 관리들의 부족한 급여를 메꾸기 위한 장부 조작과 개인적인 욕심까지 더해져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지방 관리들은 온갖 명목으로 토지에 대한 세부담을 늘려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임진왜란으로 농지가 황폐화되어 생산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농지에 대한 과도한 세금은 농민들의 생활을 급속하게 피폐화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반과 토호들 소유의 농지들은 세금 부과 대상에서 빠져고, 이로 인해 농민들의 세 부담은 더눅 늘어났습니다.

[5] 군정(軍政) 또한 그 근간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조선의 초기 병역 의무는 군적()에 따라 부과되었습니다. 하지만 15세기가 지나면서 직업군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군에 가지 않는 대신 군포를 납부해 직업군인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병역 의무가 바뀌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각종 비리가 만연하게 됩니다. 오랜 전쟁으로 군포 수입이 줄어들자, 기존 백성이 부담해야 하는 군포는 더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향교나 서원의 학생 등이나 공을 세운 사람들이 군포 납부의 의무에서 면제되면서 군포는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줄어든 군포 모두 일반 백성들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방 관리들은 줄어든 군포를 메꾸기 위해 온갖 방법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장정으로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아내고, 죽은 사람을 군적에서 지우지 않은 채 군포를 받아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군포를 받는 것을 황구첨정(黃口簽丁)이라 했고, 죽은 사람에서 징수하는 것을 백골징포(白骨徵布)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마을 사람 중에 누군가 도망을 가면, 이웃이나 친척들이 대신 그 부담을 모두 져야 했습니다. 황구첨정과 관련해서는, 정약용 선생께서 쓰신 애절양이라는 시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관련 글 보기 ==> 쉬어가기 (7) 애절양(哀絶陽)]

[6] 처음에 농민들의 춘궁기 곡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환곡도 크게 변질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씨앗과 식량을 빌려준 만큼만 돌려받았지만, 점차 빌려준 곡식의 1/10을 이자로 더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지방관리들의 횡포가 늘어나면서 이자가 1/2, 즉 50%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고리대금업이 따로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빌려주는 곡식에는 돌과 자갈을 섞어 곡식의 양을 줄이고, 받을 때는 곡식으로 제대로 받는 악행까지 저질렀습니다.

[7] 이와 같이, 삼정이 문란해지면서 농민들과 백성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고, 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게 되었습니다.백성들의 불만은 결국 1811년 ‘홍경래 난’과 1862년 일어난 ‘임술 농민항쟁’ 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모두 전쟁으로 경제가 무너지고 중앙의 힘이 약회되면서 나타난 일입니다.

[8] 논어에 보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나옵니다.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입니다. 공자가 태산을 지나다 무덤 옆에서 슬피 우는 한 여인을 있길래, 우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아버지가 호랑이에 물려 죽었고, 남편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들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다시 공자가 묻습니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

여인이 대답합니다.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10] 가혹한 정치에는 공포정치도 있지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정치도 포함됩니다. 가끔 이 두 가지가 별개로 가기도 하지만, 경제가 나빠지면 이 두 가지는 거의 같이 나타납니다. 즉,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게 되면, 세금 부담은 경기가 좋을 때보다 더 늘어나기 십상이고, 세금이 안 걷히니까 세금을 걷기 위해 가혹한 공포정치도 동원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들 처우가 좋지 않으면 비리가 만연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물론, 처우가 좋아진다고 비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우가 나빠지면 비리가 늘어나는 분명합니다. 가끔 많은 분들이 이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혼동하곤 하는 걸 봅니다.

(수학에서는 조금 어려운 말로, 이런 것을 필요조건 혹은 충분조건이라고 합니다. 공무원 급여가 적은 것은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됩니다. 반면, 비리가 반드시 급여가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필요조건이 됩니다. ^^)

[11] 과거의 역사가 현대에 와서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당연히 반복될 겁니다. 물론, 경기가 나빠진다고 바로 우리나라에서 ‘삼정의 문란’과 같은 극도의 혼란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장기간 침체에 빠지게 되면 점차 그런 상황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수가 부족해지면 국가는 국가 운영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세금을 늘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거두려는 정부의 시도는 세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더욱 심해지고 가혹해질 겁니다.

[12] 세금과 관련해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가 봅니다. 서양의 세금을 보더라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종류의 세금들이 참 많았습니다. 모자에 세금이 부과되기도 했고,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수염과 공기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랏님 돈 필요할 때마나 “내놔!”…옛날엔 더 했네∼ (매일신문, 201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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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아직 본격적인 경기 침체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세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법인세가 줄고 부가가치세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지도 해야 하고, 추경도 해야 하는 등 돈 쓸 곳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올 세금 5조3천억원 덜 걷힌다…부가세 3조 감소 (연합뉴스, 2015. 7. 7)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부는 국가 기능 유지한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기능들은 줄여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수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늘어나는 세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됐고, 정부의 각종 과태료 수입과 범칙금 수입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범칙금·과태료 수입 ‘껑충’…안전 예산은 뒷전 (SBS뉴스, 2015. 6. 20)

[14] 앞으로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공식적인 세금 외에도 과징금, 범칙금, 연금 및 건강보험료 등의 비공식적인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겁니다. 세금을 추징하려는 시도 또한 치밀해질 겁니다. 예전에는 신경도 안 쓰던 분야까지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세무당국이 들여다 보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경제 자체가 침체 국면이기 때문에 세수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중앙에서의 지방 통제가 느슨해지게 됩니다. 지방에서도 재정 지원도 안해주는 중앙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중앙의 통제가 무력화되기 시작합니다. 그와 때를 같이 해, ‘삼정의 문란’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다시,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들이 나돌게 될 겁니다.

[15] 많은 분들이 경제문제를 단순히 경제에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결코 경제만의 문제로 끝나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문제는 정치문제로 연결되고, 인권문제로 연결되고, 여성과 아동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누렸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애절양(哀絶陽)’에서 썼던 문장을 다시 가져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경제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너지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너졌으면 좋겠고, 설령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서로 사람 대접 해주는 사회였으면 좋겠고,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약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게 된다면 다른 억울한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소풍>

[1] 일본도 그랬듯이, 우리나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아니,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노인인구 수의 증가와 더불어 평균수명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평균수명 증가와 더불어 거의 항상 나타나는 것이 바로 치매 걸린 노인의 증가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치매 노인들이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는 등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령 운전자에 대해서는 치매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치매 운전자의 고속도로 역주행 급증…일본, 고령자 교통사고 증가 ‘골치’ (경향신문, 2015. 1. 29)

日 75세이상 운전자 ‘치매 검사’ 강화 (문화일보, 2015. 3. 11)

[2] 우리나라 사정도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는 6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치매 환자가 15분에 한 명꼴로 나타나는 것에 해당됩니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뒤인 2024년엔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일부에서는 조만간 양가 부모 4명 중 1명꼴로 치매 환자가 생길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양가 부모 4명 중 1명꼴” 치매, 무서운 증가세 (SBS뉴스, 2015. 4. 1)

[3]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과 관련된 만화 한 편이 있어 소개합니다. 제 10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지현’이라는 분의 작품입니다. 일단,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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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yaohouse.net/

[4]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상황에서 이 만화를 다시 한 번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 만화는 감정을 가지고 보면, 한 개인의 일상을 감동적으로 잘 다루고 있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자식에 대한 사랑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 치매로 정신이 맑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집에 있던 수석을 모두 보따리에 담아 안고는 강물로 뛰어드는 모습까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5] 하지만 어머니라는 감정, 자식이라는 감정을 벗고, 순전히 경제문제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보면서 어떤 경제문제가 떠오르시는가요? 몇 가지 나열해보겠습니다. 노인문제, 노인들 치매문제, 치매노인의 등급 판정 문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내의 의료비 문제, 치매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족의 문제, 일자리 문제, 가난의 대물림 문제 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족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 일부는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경제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6] 치매노인의 문제와 그와 관련해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문제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자살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라는 것도 치매 노인인 어머니의 정신이 아직 남아있었고, 그리고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어머니의 치매 상태가 심각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리고 설령 정신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라면, 문제의 해결책은 없습니다. 즉, 치매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만화 속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만화 속 이야기는 충분히 눈시울을 적실 만한 스토리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성 없는 해피 엔딩(happy-ending) 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를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7]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큰 짐의 하나는 덜었지만, 그럼에도 이 가족에게 드리워진 삶의 무게는 여전히 버거울 만큼 무겁기만 합니다. 가장이 흔히 남들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여전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가장이 자기만의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장을 만들 수 있는 주인의 자세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가족들이 앞으로 살아갈 삶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 테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픔이 복받쳐 오르겠지만 어머니와 좋은 추억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8] 인간적으로 보면, 위의 만화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자신이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가족에게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고, 그냥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에피소드가 하나 일어나 가족들의 짐이 조금 가벼워진 것뿐입니다. 여전히 자신들 앞에는 힘겨운 삶을이 놓여 있고, 열심히 힘들게 살아도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9] 감동적인 만화에 왜 이런 냉혈한(冷血漢) 같은 경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바로 경제는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힘은, 불쌍하다고, 안됐다고, 안쓰럽다는 이유로, 개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그냥 원칙과 구조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들어해도, 힘들어하다 강으로 뛰어들어도, 참다참다 못 참고 강도짓을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사정일 뿐입니다. 경제적인 힘은 그런 사정들을 고려해주지 않고 그저 주어진 대로 움직이고 작용해 갑니다.

[10]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자신의 감정 혹은 인간적임 측면을 섞어서 바라보고, 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경제를 제대로 보려면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힘은 감정도 없는 아주 냉정하고 차가운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11] 몸이 굳어가고 정신까지 잃어버리는 아내를 곁에서 간호하는 남편,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을 담담히 그려낸 영화 <아무르(Amour)>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도 우아하지고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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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부자들의 생각>

[1] 돈에 대한 기사가 있어 가져옵니다. 돈 있는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 사이에 돈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부자들이 바라보는 곳과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은 일반적으로 아주 다릅니다.

[2] 가령, 뭔가 안 좋을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들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이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을 마시는지를 살핍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팔 수 있을 지를 고민합니다. 많은 청소년이 TV에 나오는 아이돌(idol) 그룹에 열광을 하고 그들을 따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똑같이 TV로 시선이 향하는 것이 아니라, TV를 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를 고민합니다.

요즘 유행인 각종 요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에서 요리되는 음식을 보고, 그런 음식을 만들어 먹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의 시선은, TV가 아니라, 요리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꽂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팔 지를 고민합니다.

[3] 또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 되거나 무엇을 하고자 합니다. 가령, 유명한 가수나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하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고, 교수나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고,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꿈 꾸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에,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서 돈을 많이 법니다. 그리고 그 돈을 이용하여,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즐기고, 유명한 운동선수가 하는 경기를 관람합니다. 필요하면, 유명한 의사나 변호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4] 부자들은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가수가 되기보다는 이미 성장한 가수들을 활용해 돈을 벌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이미 의사나 변호사가 된 사람들을 활용하고 조직화하여 돈을 법니다. 이것은 TV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과 그들 뒤에서 실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실제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사람과 의사들 뒤에서 실제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5] 경제위기가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면, 사람들은 달러나 금이나 은을 사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사려고 하는 달러나 금 혹은 은 거래에 직접 뛰어들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누가 귀금속을 많이 모았다고 하면, 귀금속으로 눈과 귀가 집중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 아닌, 금과 은에 눈과 귀가 집중돼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금과 은을 판매하고 돈을 법니다.

[6]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돈을 모아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돈을 버는 데 돈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돈을 벌다가 한평생을 다 보냅니다. 하지만 돈을 벌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기사의 아홉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돈을 번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달리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고 돈을 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면, 돈은 저절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7] 이와 관련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흔히 사업 수완이라는 제목으로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해도, 아들을 빌 게이츠의 사위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소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돈을 버는 방법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에 소개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빌 게이츠처럼 돈을 많이 번 이후에야 빌 게이츠의 사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세계은행 부총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주인공 정도라면, 빌 게이츠만큼 돈이 없어도 자신의 아들을 빌 게이츠의 사위로 세계은행 부총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8] 먼저 아버지가 아들을 설득합니다.

(아버지) 너 내가 정해주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 / (아들) 싫어요. 신부는 제가 고를 겁니다.  / (아버지) 상대는 빌 게이츠 딸이야. / (아들) 그렇다면 좋아요.

다음으로 아버지는 빌 게이츠를 찾아갑니다.

(아버지) 당신 딸의 남편감이 있어요. / (빌 게이츠) 우리 딸은 아직 너무 어린데요. / (아버지) 하지만 이 청년은 세계은행 부총재입니다. / (빌 게이츠)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세계은행 총재를 찾아갑니다.

(아버지) 부총재로 천거할 청년이 있습니다. / (총재) 그런 청년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 (아버지) 하지만 이 청년은 빌 게이츠 사위입니다. / (총재) 그렇다면 좋습니다.

[9] 건설사가 돈을 버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아파트를 짓고자 하는 곳의 토지를 계약한 후, 소유권도 없는 이 토지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고, 그렇게 조달한 돈으로 아파트 건설 부지를 매입합니다.  그리고 분양을 통해 짓기도 전에 아파트를 모두 팔아버립니다. 그리고는 분양으로 들어온 돈으로, 하청을 주어 아파트를 짓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깁니다. 절대로 건설사가 돈을 모아 부지를 매입한 후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형태는 펀드를 운용하는 금융사들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10] 지금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부자들의 생각이나 행동과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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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해봤자 월급쟁이, 부자의 돈 생각을 배워라 (머니투데이, 2015. 7. 11)

부자는 소수다. 대다수는 평범하게 먹고 살 정도다. 이 소수와 다수를 가르는 차이는 뭘까. 다수는 돈이 없으니 아껴써라. 부자 되려면 저축해라, 잘 살려면 열심히 일해라, 나중에 성공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 등등의 말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성실하게 따른다. 그런데도 돈에 관해 오랫동안 내려온 그런 지혜의 말을 잘 듣는 대다수는 그냥 평범한 수준으로 사는데 그친다. 소수의 부자들은 일반적인 돈에 대한 상식을 믿지 않는다. 돈에 관한 부자들의 ‘소수의견’을 소개한다. ‘부를 향한 경주’(Run For Wealth)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페테니 쿠즈와요의 ‘모든 백만장자가 갖고 있는 돈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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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자는 세상에 돈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안다=부자는 풍부함이라는 생각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에 제한이 있거나 희소한 것은 없다.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돈이 바닥 날까 걱정하며 먹고 살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아간다. 부자들은 돈이란 절대로 바닥날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2. 부자는 돈이 모든 선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돈은 문제를 해결해주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힘을 준다. 돈은 인생을 바꾸고 즐거움을 준다. 돈은 올바로 쓰기만 하면 모든 선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물질적인 성공은 정말 중요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능력이 차이를 만든다. 당신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다.

3. 부자는 돈이 가치를 덧붙이는 데서 창출된다는 사실을 안다=부자는 돈을 끌어당기는 첫번째 요소가 문제 해결력이란 사실을 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당신에게 돈을 지불할 것이다.

4. 부자는 저축보다 돈을 버는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재테크 전문가들은 가능한 많이 저축하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를 위해 인생의 40년 이상을 저축하는데 쓰는 이유다. 저축의 미덕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자는 돈을 버는 능력이 재테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5. 부자는 돈과 시간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안다=대다수 사람들은 시간을 주고 돈을 얻는다. 이 때문에 시간당 임금에 목을 맨다. 하지만 부자는 두뇌와 자산을 갖고 돈을 번다. 부자는 시간과 돈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일하는 시간이 많다고 버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6. 부자는 리스크 계산이 필수라는 사실을 안다=돈을 안전하게만 관리하는 것은 어리석다. 돈을 위험한 곳에 베팅하는 것은 더 어리석다. 하지만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최적점이 있다. 부자는 이를 찾아 리스크를 계산해 관리한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용감한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사람은 아예 살아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7. 부자는 공식 교육보다 경험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인생은 그 자체가 위대한 스승이다. 학교 공부는 사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거의 가르쳐주지 못한다. 특히 학교 교육은 돈에 대해서는 거의 ‘젬병’ 수준이다.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대학 중퇴자나 별 볼일 없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고용돼 일하는 이유다. 부자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목적은 공부가 아니다. 네트워킹이다. 부자는 학교 교육보다 생활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돈 버는 방법을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8. 부자는 그래도 즐기는 것보다 공부가 낫다는 사실을 안다=부자가 공부보다 경험을 더 중시한다고 공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안에 대해 공부하면서 돈 벌 기회를 찾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온 사회가 TV부터 영화, 게임, 놀이공원, 콘서트, 클럽 등 오락에 빠져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주말은 파티와 오락으로 점철된다. 부자는 돈과 습관적인 즐길 것들은 서로 함께 가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9. 부자는 돈 버는 데 돈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안다=당신에게 지금 돈이 없다고 세상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상에 돈은 많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2가지를 결합하면 돈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돈이 많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든, 투자를 받든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어야 해”에서 “돈을 벌려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로 발상을 바꾸라. 아이디어와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영화 속의 경제학

(1) 인 타임(In Time) 

각종 영화 속에는 경제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In Time>(주연: Justin Timberlake, Amanda Seyfried)은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 구조에 대한 묘사가 잘 나타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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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을 해서 돈을 받지만, 영화 속 미래에서는 돈 대신 ‘시간’을 받습니다. 그리고 모든 거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거래합니다. 즉, 시간이 바로 돈인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자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듯, 시간은행에서 시간을 빌려 생활하고, 만기가 되면 빌린 시간에 이자까지 쳐서 시간을 상환합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선단체에서 제공하는 시간을 받아 겨우겨우 살아갑니다. 영화 속 세상은 우리 세상을 ‘돈’이 아닌 ‘시간’으로 대체했을 뿐,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너무나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유함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에 포함됩니다. 사람들은 부유해지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누군가 일을 해야만 운영이 되고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는 불가피하게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경제적으로 일을 할 사람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를 빼앗아버리거나 부를 축적하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풍족하지 않게 가난하게 만들면 됩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자산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일로 메꾸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한계 상황으로까지 몰고 갑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다면, 한계상황에 몰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의 궂은 일, 힘든 일, 위험한 일, 남들이 하기 싫은 일, 손가락질을 받는 일, 남들이 천시하는 일 등을 할 사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할 사람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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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서 묘사하는 미래 사회도 똑같습니다. 시간으로 평가되는 불평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시간을 많이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풍요롭게 삽니다. 하지만 가진 시간이 얼마 안 되는 다수의 사람들은 늘 뛰어다니며 시간을 아끼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래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합니다. 영화는 엄청난 시간을 소유한 여주인공의 아버지의 시간을 훔쳐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다른 시간은행을 털면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시간을 나눠받은 사람들의 행동이었습니다. 풍족한 시간을 받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직장에서 공장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전처럼 당장 목숨을 잃을 일도 없고, 공장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뛰어다닐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유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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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맛보는 자유,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게 된 그 이후의 삶이었습니다. 시간의 불평등은 영원히 사라졌을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될까요? 사람들은 시간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에 쫓겨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의 자유를 주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의 사회가 너무 참혹하고 불평등이 심해 그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 고려할 여력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주인공들의 행동을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기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 주인공의 행동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용감한 주인공들의 행동 이후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상품의 부족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일을 안 하게 되면서 상품 생산이 크게 줄어들 테고, 그렇게 되면 상품 부족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들은 각자 이전에 가져보지도 못했을 만큼의 많은 시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활용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경제적으로 이야기하면, 생산은 줄어 공급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상품을 사려는 수요는 급증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잔에 5분이던 커피가격이 1시간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상품 생산은 늘지 않고 상품을 사려는 사람만 있다면, 시간으로 책정되는 가격은 더 가파르게 오르게 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가격이 급속하게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가지고 있는 구매력은 급속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즉, 시간이 충분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생활이, 시간이 늘 부족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던 과거의 생활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어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들보다 먼저 실물을 확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부유층으로 등장하게 될 테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일을 하면서도 궁핍한 생활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또 다시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면서 불평등이 다시 발생하고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격은 다시 벌어지게 될 겁니다.

과연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 위험을 무릅쓰고 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결과였을까요. 영화 속 주인공들이 현재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의적 노릇을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세상은 이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을까요? 영화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전과 같이 소수의 사람들은 시간(부)을 축적할 테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시간(부)을 빼앗기고 이전 생활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현재의 불평등만을 해소하는 데 목표가 있을 뿐, 장기적인 해결방안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훔쳤든 혁명을 통했든, 이러한 부의 재분배는 일시적으로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평등함을 영원히 지속되게 만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들의 행동이 영웅적인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금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경제학의 부스러기 (4): 경제적 측면에서의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이전 글에서, 경제적 천국이 갖춰야 할 조건 가운데 하나가 자동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In Time>에서의 문제점, 즉,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인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이 모두 자동화되어 공급이 무한해야 합니다. 공급이 무한히 많다면, 가격이라는 것도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인플레도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 <In Time>에서처럼, 누군가의 손을 통해서 상품이 생산되는 사회에서 모두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인플레가 나타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In Time>의 주인공들처럼 부자가 가진 것을 훔쳐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이든, 급격한 혁명 등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든,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공해주지 못합니다. 그만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빈자의 구분 없이 살아가는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2) <설국열차(Snow Piercer)>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생각거리는 남겨줍니다. 첫 째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잘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정된 자원이라는 측면과 그로 인한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참 작품 속에 잘 녹아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한정된 자원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사회는 어떤 모습을 띄는지 가장 잘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일종의 제로섬(zero-sum)의 상황이라 누군가 남보다 풍요롭게 살면 다른 누군가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기차 속은 철저하게 신분에 따라 앞칸과 뒷칸 가운데 어느 칸에 살 지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생활 수준도 달라집니다.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를 의미합니다. (1) 자원은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고, (2) 누군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으며, (3) 궁핍은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한, (4) 한정된 자원을 사람들 사이에 나누어 주어야 할 분배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설국열차>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지구가 급속하게 빙하기에 들어간 이후, 남은 인류가 기차에 의존해 살아가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악화되자, 79개의 정상들이 지구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춰줄 것으로 기대되는 인공 냉각제인 CW7이라는 물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적정 온도로 내려갈 줄 알았던 지구의 기온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내려갔고, 인류는 새로운 빙하기를 맞게 됩니다. 기차 밖은 기온이 너무 내려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기차 안밖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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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7 가스가 살포되는 장면>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에서도 계급이 존재하고 부의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꼬리 칸(tail section)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그리고 음식도 양갱과 비슷하게 생긴 단백질 블록(protein block) 한 종류만 먹습니다. 하지만 열차의 앞쪽으로 갈수록 사람 수는 적어지고 공간도 넓어지며 인간다운 생활을 합니다. 1년에 두 번이지만 스시도 먹을 수 있고, 스테이크와 치킨도 계란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클럽도 있어서 술 마시고 춤도 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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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칸 사람들에게 식량으로 주어졌던 단백질 블록>

그러면 왜 꼬리 칸에 있는 사람들과 앞쪽 칸에 있는 생활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걸까요? 바로 티켓을 가지고 탔느냐 아니면 무임 승차자(free loader)인가의 차이 때문입니다. 충분한 공간과 함께 인간다운 생활은 티켓을 구매하여 열차에 오른 사람들에게만 제공됩니다. 그리고 티켓 없이 승차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공간과 먹거리만 제공됩니다. 티켓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까지 나쁜 이유는, 영화 내내 반복되며 강조되는 바로 균형(balance) 때문입니다.

열차는 폐쇄된 생태계(closed ecosystem)로 그려집니다. 엔진이 멈추지 않고 영원히 작동하는 엔진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에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도 없고,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산할 수 있는 먹거리의 양도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처음 윌포드(Wilford)가 티켓을 팔 때, 열차 내 균형을 유지할 정도의 사람 수만큼만 팔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초대 받지 못했던 천여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과 엔진이 만들어내는 한정된 에너지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정된 공간과 자원, 그리고 사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사람 수의 조절이 불가피합니다. 생태계 균형 유지를 위해 필요할 경우 사람을 강제로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꼬리칸에서의 ‘혁명’을 통해 승객수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이 힘든 작업을 윌포드는 꼬리칸에 있는 길리엄과 협력하여, 커티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잘 진행해 나갑니다. 모두 한정된 자원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도 앞칸에 있는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자원도 공간도 열차 내에는 없습니다.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풍요롭게 먹일 수 있는 자원은 없었으니까요. 꼬리칸에 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윌포드가 제공해주는 양갱 형태를 띤 단백질 블록을 먹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만약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선과 육류를 나눠주려 한다면, 앞칸의 승객들에게 배정되어 있는 생선과 육류를 줄여야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 이전보다 풍요롭게 살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이전보다 덜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차 내에서 힘들고 어렵게 사느냐 혹은 풍요롭게 사는냐는 개인들의 노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17년 전 처음 열차를 탈 때, 승차권를 구매했는냐 아니냐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꼬리칸에서 벗어날 수도, 꼬리칸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꼬리칸에서 어렵게 사는 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열차에 처음 승차할 때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뿐입니다.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이라는 것이 개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태어날 때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열차 내의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누어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설국열차> 내에서는 이 분배 권한을 윌포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격(price)을 통한 분배, 즉 시장(market)이라는 분배 장치를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우리 현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시장을 통한 분배 체계를 만들려고 했다면, 열차 내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현실 세계와 같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자원이 우선 배분되는 체계가 만들어졌을 겁니다. 어쨌든,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분배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윌포드의 리더십입니다. 윌포드는 리더이기는 했지만,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티켓도 없는 사람들을 열차에 태우기는 태우되, 이들에 대한 식량도 준비했으니까요.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빙하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방주(ark)인 윌포드의 열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로 몰려들었을 겁니다. 이 순간 아마 윌포드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겁니다. 살기 위해 열차 주위로 몰려든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모른 척 할 것인지, 아니면 열차에 타도록 해야 할 것인지… 만약 윌포드가 열차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외면하게 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은 그냥 얼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열차에 수용하기에는, 열차가 제공하는 공간과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사람들을 모두 태워야 할까요, 아니면 얼어 죽도록 외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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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포드 기차의 1년간 운행 경로>

윌포드는 이 사람들은 태우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에 없던 승객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공간과 먹거리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윌포드는 이들을 태우기 위해 무임승차자들을 위한 공간과 먹거리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이 한 달 걸렸습니다. 이 기간에 대해서는 커티스가 엔진룸이 있는 첫 칸 앞에서, 남궁 민수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커티스에 따르면, 2,000명의 사람들이 좁은 철창 안에서 식량과 물 없이 한 달을 지낸 후에야 윌포드가 단백질 블록(protein blocks)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고, 서로의 팔다리를 잘라 먹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커티스도 그 과정에서 살인을 합니다. 커티스는, 윌포드가 진작에 단백질 블록을 가져왔더라면 그런 비극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티스가 극도로 윌포드를 증오하게 된 이유입니다.

윌포드 입장에서 이 상황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당초 계획에 없던 수천 명의 사람들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열차에 태웠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열차 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혼란에 빠졌을 겁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얼어 죽는 상황에 직면했을 지도 모릅니다. 살기 위해 열차로 몰려들었고, 굶지 않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 또 다시 굶어죽을 상황에 놓였을 때 하지 못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이들을 열차에 태우기 위해서는 이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이 있는지부터 판단했어야 했습니다. 이들을 먹여 살릴 식량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태우면 안 되는 일이었고, 일단 태웠다면 이들을 굶기지 않을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어차피 앞칸 승객들이 먹을 것을 나눠 준다고 하더라도 식량이 충분치는 않았을 겁니다. 윌포드는 이들에 대한 식량 대책을 세우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대책이 바로 단백질 블록이었습니다. 비록 단백질 블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식재료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꼬리칸 사람들을 굶기지 않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리더십과 관련해, 커티스의 태도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꼬리칸에서 혁명을 준비할 때, 커티스는 에드가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신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획됐든 그렇지 않든, 커티스는 꼬리칸의 사람들을 이끌고 혁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윌포드가 있는 맨앞칸 엔진룸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커티스는 윌포드의 주장에 설득 당하기 시작합니다. 윌포드는, 열차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인류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하고, 그 균형을 위해서라면 가끔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승객수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커티스를 리더로 생각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행태를 보여줍니다. 현실에서의 일반 군중 혹은 대중들의 모습, 보통 사람들의 가려지지 않은 본 모습을 보여줍니다.

커티스는 윌포드의 설득에 흔들립니다. 이런 커티스의 흔들린 마음은, 폭약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달라고 요구하는 요나를 밀쳐내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윌포드의 설득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진실 내부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아이 티미를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요나에게 성냥을 건네고 요나는 외부와 연결된 문을 폭파시키면서 설국열차는 마침내 17년간의 운행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하면서까지 인류를 보존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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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을 달라는 요나를 밀쳐내는 커티스>

보통 이런 결정은 현실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진을 자기 대신 맡아달라는 윌포드의 제안에, 커티스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윌포드의 자리를 대신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을 선택하면, 열차 내 질서는 그대로일 테고, 꼬리칸의 상황 또한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겁니다. 두 번째는 윌포드의 자리를 차지하되 분배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입니다. 윌포드가 했던 것과 달리, 열차 내에서의 먹는 것과 공간을 꼬리칸의 사람들에게도 일부 나누어줌으로써 이전보다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기차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설령 커티스가 분배에 신경을 좀더 쓴다고 하더라도 열차 내 불평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세 번째는 기차를 폭발시켜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커티스는 첫 번째 방안을 선택하는 듯 보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세 번째 방안을 선택합니다.

이런 커티스의 선택은 커티스 개인의 성격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커티스는 영화 내내 자신은 리더로써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길리엄에게도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마디로,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커티스가 일찍부터 권력을 갖고자 했다면, 분명 윌포드의 자리를 차지하고 꼬리칸의 사람들을 위하는 척 하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권력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끝내는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이라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커티스는 기차가 계속 운행하는 방안을 선택했을 지도 모릅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절대반지의 유혹에 넘어가 반지를 가슴에 안고 돌아서는 프로도(Frodo)와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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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반지 앞에서 갈등하는 프로도>

영화 <설국열차>를 제한된 자원과 리더십의 측면에서 살펴봤습니다만, 현재의 세계경제 상황과 연계해 생각했을 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함의는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상황이 영화상의 빙하기가 시작되는 시작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79개국의 정상들이 모여 CW7 가스를 살포하기로 결정한 상태일 수도 있고, 항공기를 통해 CW7 가스가 이미 공중에 살포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열차 내의 상황은 한참 뒤에 벌어질 일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직면해야 할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는 빙하기의 시작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돈 많은 사람들은 윌포드 열차의 승차권을 구매해 살아남았듯이, 이번 경제위기에서도 일부 돈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주(ark)를 만들어 살아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설국열차>와 같은 방주를 만들거나, 그럴 수 없다면 남이 만든 방주에 올라탈 티켓을 구매해야 합니다. 스스로 설국열차를 만들 수 있다면 윌포드와 같은 절대군주와 유사한 위치에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스스로 설국열차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면, 설국열차에 올라탈 승차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가 멸종할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승차권의 가격은 아마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쌌을 겁니다. 이번 경제위기에서도 다른 누군가가 만든 방주에 타려면 엄청난 비용을 치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설국열차를 만들지도, 그렇다고 승차권을 구매할 여력도 없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빙하기가 닥쳤을 때 얼어 죽었듯, 이번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설령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설국열차>의 꼬리칸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경제 위기에서 설국열차 승차권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높은 인플레이션, 어쩌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승차권의 가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국열차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 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번 경제 위기를 견디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자산을 다 잃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설국열차의 승차권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쌌듯이, 이번 경제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개인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 또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1년에 5% 내외의 인플레이션에도 사람들은 못 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해 20-30%,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물가가 뛰는 상황이라면,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지불해야 할 금액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비용을 모두 지불하면서 살아남는 사람만이, 승차권을 가지고 설국열차에 오른 사람들이 누렸던 혜택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설국열차와 조금 다른 상황이라면, 설국열차 승차권은 한 번에 지불해야 했지만, 이번 경제위기에서는 시간을 가지고 여러 차례에 걸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 돈이 많지 않더라도, 나만의 생존전략이 있다면, 다가올 경제위기에서도 비용을 지불하면서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영화 속에서 묘사한 열차 내 상황이 아니라, 빙하기가 시작될 때의 혼란한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기차에 올라타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직면했어야 했던 막막한 상황, 그리고 기차에 올라타기는 했지만 식량과 물 없이 지내야 했던 순간들. 커티스는 식량과 물 없이 지냈던 한 달 간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남궁 민수에게 이야기합니다. 커티스는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앞장서 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사람들의 고기를 먹으며 살아남았다고. 그때 인육의 맛도 알았고, 애기 고기가 제일 맛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You know what I hate about myself? I know what people taste like. I know babies taste the best.).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커티스가 경험했던 그런 세상이 우리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초부터 담뱃값 인상이 있었습니다. 커티스가 인류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흡연자 분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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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이라는 다소 흥행하기 어려운 형태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큰 성공을 거듭니다. 특히, 영화는 경기 침체로 돌파구를 찾고 있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면서, 우리나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여기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영화 내용 가운데 어떤 내용에 관심이 갔는지 혹은 어떤 장면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등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발장(Jean Valjean)의 코제트(Cosette)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람에 감동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하던 당시의 사회상에 큰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판틴(Fantine)의 기구한 운명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고, 끈질기게 장발장의 뒤를 쫓던 자베르(Javert)가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을 끌었던 것은 마들렌(Madeleine), 즉 장발장이 운영하던 공장이었습니다. 주교의 은(銀) 식기를 훔치고 은(銀) 초대까지 받아 떠난 지 8년 후 장발장은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장신구 공장의 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장신구라는 상품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들렌은 여자들,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여자들을 고용해 공장을 운영합니다. 판틴이 파리에서 마들렌의 공장이 있던 곳까지 온 것도, 마들렌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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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은 과거 주교가 가난하고 범죄자였던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생각하고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아주 잘 대해줍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학교도 지어줍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보면, 마들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마들렌을 시장으로 만듭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들렌(장발장)의 고용 정책입니다. 평상시에도 여성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약자에 해당되는데,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더욱 약해집니다. 그래서 경기가 나빠질 때 여성들이 큰 불행을 겪기도 합니다. 장발장이 여성들을 고용했다는 것은 사회 경제적으로 약자를 고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마들렌이 했던 사업의 특성상 여성 고용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사실 마들렌 정도면 장신구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도 얼마든지 설립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마들렌은 자신의 공장에 약자인 여성 노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장발장이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장발장이라는 이름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자베르를 통해 접한 이후 고민하는 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죄 없이 붙잡힌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장발장은 고민을 합니다. 고민을 했던 이유는 자신이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감옥에 간 이후 남게 될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장발장이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I am the master of hundreds of workers (나는 수백 명 노동자들의 사장이다)

They all look to me. (그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Can I abandon them? (그들을 내가 버려야 할까?)

How would they live if I am not free? (내가 떠난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마들렌의 고용정책을, 국내에서 한 때 유행해했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등을 적용해보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 됩니다. 롤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가해야 바람직하다는 기존의 공리주의에 반대하며, 약자들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정확히는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허용되기 위해서는 약자의 이익이 증가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약자의 이익은 조금 늘리는 대신 강자의 이익을 크게 늘리는 것도 허용하기 때문에,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도 정당화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근거로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소수 혹은 약자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자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던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TheoryofJustice

정의란_무엇인가

롤스의 <정의론>이란 책이 발간된 것이 1971년입니다. 이제 40년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영화 혹은 책에 나타난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는 1823년입니다. 거의 150년이라는 시간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 장발장(마들렌)은 사회적 약자 편에 섰습니다. 롤스주의(Rawlsianism) 측면에서, 장발장의 고용정책은 사회적으로 아주 바람직한 정책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들렌과 같은 사람이 많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몇 차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앞으로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자리라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천사와 같이 생각될 겁니다.

영화에서 마들렌이 어떻게 장신구로 사업을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원본 책을 통해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장신구들을 팔아 수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혼란한 상황을 볼 때 장신구 판매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학교도 지어준 것을 보면, 장발장은 사업 수완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암울한 미래에서도 장발장과 같이 사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장발장과 같이, 아주 선한 기업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고용을 한 자리라도 늘릴 수 있는 능력 있는 기업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 자리라도 더 많은 일자리가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장발장의 행동은 앞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시장이 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발장의 도움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장발장이 시장이 되길 희망했고, 결국 장발장은 시장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에 욕심이 있든 없든, 장발장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장발장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권력을 잡기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지금 권력을 잡기 위해 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선의를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든, 선의를 가진 척 하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주는 사람은 쉽게 권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될 겁니다. 즉, 장발장과 같이 선의의 행동을 하다가 권력을 얻는 사람도 보겠지만, 단지 권력 그 자체를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는 척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판틴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이 입지입니다. 장발장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쫓겨나자마자 판틴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됩니다. 딸인 코제트의 양육비는커녕 자신이 먹을 빵을 살 돈도 벌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머리카락을 팔고, 치아도 뽑아 팝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한 돈을 구하지 못합니다. 결국 판틴은 몸까지 팔게 됩니다. 경기 침체기에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매춘부 가운데 한 여자가 판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Life has dropped you at the bottom of the heap.” (삶이 너를 인생 바닥까지 떨어뜨렸구나.)

마지막으로 판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우리들의 꿈을 죽인 게 결국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 그 자체라는, 마지막 가사가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삶이 내가 꿈꾸던 꿈을 죽여버렸다.)

경제위기의 본질(1)

1. 부(富)란 무엇인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오랫동안 답을 찾고자 했던 세 가지 질문, 즉, 부(富)가 무엇인지, 그 동안 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만들어진 부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미국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도 알 수 있고, 양적완화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본질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세 가지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해결책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부(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부자냐고 물어보면,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대답을 흔히 듣게 됩니다. 이 대답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드시 맞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과연 돈이 많으면 부자일까요? 돈이 많다고 부자라면, 바이마르(Weimar) 공화국의 5천만 마르크 지폐나 짐바브웨(Zimbabwe)의 100조 달러를 가진 사람도 부자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지폐를 가진 사람들을 부자하고 하지 않습니다. 화폐 단위는 높지만 구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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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바이마르 공화국 5천만 마르크 지폐와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

부자 혹은 부자 나라는 부(wealth)를 다른 사람보다 혹은 다른 나라보다 많이 가진 사람 혹은 국가를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부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부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부의 정의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는 무엇인가를 교환하거나 살 수 있는 ‘구매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매력은 무엇일까요. 교환 가능한 가치, 또는 구매 가능한 가치가 될 겁니다. 우리가 ‘돈’이라는 지폐로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지폐가 구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무언가를 사거나 교환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를 정의하면, 부자는 부를 많이 가지는 것, 달리 이야기하면, ‘구매력을 가진 수단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말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가져야 하는데, 많이 소유하는 수단이 구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최고의 부자는,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수단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살 때, 그 물건의 가치에 해당되는 뭔가를 상대방에게 주어야 하는데, 그 수단이 구매력이 있는 물건이 됩니다. 구매력을 가진 물건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이 될 수도 있고, 녹차가 될 수도 있고, 향신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조개껍데기가 구매력을 가진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었고, 어떤 때는 소금이 중요한 구매력을 가진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구매력이 높은 수단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왔습니다. 그 시대에, 특정 장소에서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는 수단을 많이 소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자가 된다는 말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구매력이 높은 상품이나 물건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금(gold)은 전통적으로 교환수단으로써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금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고,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부자나라가 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나선 것도 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아즈텍 문명을 멸망으로 이끈 코르테스(Cortes)도,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떠났다가 잉카 문명을 멸망으로 이끈 피사로(Pisaro)도, 모두 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basic currency)가 된 것도 구매력을 가지고 있던, 즉 교환가치가 보편적으로 가장 컸던, 금과 교환할 수 있다는 기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비트코인(bitcoin)도 교환가치가 유지되기 때문에 각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가치가 계속 떨어져 자산이 줄어들게 되지만, 달러에 비해 가치가 안정적인 비트코인은 가치가 유지돼 자산 가치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제, 부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이해하는 데 사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위기의 시작은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부의 창출방식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금과 같은 수단은 전체 물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물량이 한정되거나 급격히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교환가치 보존에는 대단히 유리합니다. 하지만 전체 물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세계의 부(富) 또한 그만큼만 존재하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세계에 금이 17만여 톤이 존재한다고 하면, 세계의 부는 딱 그만큼만 있을 뿐 그 이상 늘어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새롭게 금광이 발견되어 금의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금광을 찾거나 남의 금을 빼앗아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금을 사용하게 되면, 나의 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나의 금을 가져간 사람은 그만큼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부(富)의 축적이란, 일종의 제로섬(zero-sum)게임이 됩니다. 교역을 통해 상품이 오고가도, 상품을 파는 사람의 부는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겠지만,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가 계속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 부자가 되면,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정된 물건이나 수단을 부의 기준으로 설정하게 되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달러와 금과의 교환 연계고리를 끊어버린 1971년까지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어 왔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그 이전에도 금 태환을 도입했다가 폐지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기는 하지만, 최근의 상황만 중점적으로 보기 위해 1971년 전후만 다루려고 합니다.)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가져와도 금을 줄 수 없다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달러가 가지고 있던 금과의 교환가치는 베트남 전 등을 치루면서 엄청나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이를 눈치 챈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이 달러 대신 금을 요구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금의 80% 이상을 보유했던 미국의 금은 1959∼71년 사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보유하고 있던 금의 양보다 더 많은 액수의 달러를 발행한 미국이 이러한 금 교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발행된 달러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금과의 연계를 끊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닉슨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금으로의 교환을 중지시킨다(suspend temporarily the convertibility of the dollar into gold)고 했지만, 그 일시적인 조치는 영원한 조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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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71년 8월 15일, 금 교환 중지를 선언하는 닉슨 대통령(자료: Associated Press)

달러와의 연계고리가 끊어진 달러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했고, 각국은 달러를 대체할 만한 화폐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같은 해 12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를 찾기 위한 회의가 열리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합니다. 이 회의에서는 기축통화로써의 달러를 계속 인정하는 대신,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회의 이후 유지되던 금 1온스당 $35의 교환 비율을 $38로 다소 조정하는 데 그칩니다.

그리고 미국이 모든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하겠다는 사우디와의 협약을 체결한 1974년 이후인 1976년 1월에 자마이카의 킹스턴(Kingston)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국제통화제도와 관련된 회의를 다시 갖습니다. 이 회의에서 그동안 유지되어 오던 고정환율제도가 폐지되고,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되게 됩니다. 이 때부터 달러의 성격이 바뀌고 부의 창출방식도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기존의 달러가 금 보유량만큼만 발행될 수 있는 고정한 가치의 화폐였다면, 이때부터는 달러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일반상품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즉, 기존에는 금과의 연계를 통해서 가치가 결정되었다면, 이때부터는 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되게 됩니다.

그에 따라 부의 개념도 바뀌게 됩니다. 기존에는 금 보유량을 달러로 표시하고, 이렇게 표시된 달러의 총량이 세상의 부의 총량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와의 협약을 통해서 석유 매장량을 기준으로 달러를 발행하는 방식이 아닌,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이것은 단순해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알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달러를 발행한다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점도 있습니다만, 설령, 정확한 매장량을 안다고 하더라도, 매장량을 기준으로 하면, 부의 총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금본위제와 차이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하면, 부의 총량이 한정되지 않고 석유를 사용하면 할수록 세상의 부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달러의 성격 변화는 이후 전세계적인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부의 창출방식이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2.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달러의 성격이 바뀜에 따라, 부의 창출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트리핀의 딜레마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는 달러의 공급을 늘리면서도 달러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은 서로 상충된다는 주장으로, 1959년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처음 제기하였습니다.  1959년 10월 미 의회의 Joint Economic Committee에 참석한 트리핀 교수는, 금본위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는 기축통화(Reserve currency)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수입이 수출보다 많은 상황)가 계속되면서 달러 공급이 늘어 달러 가치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트리핀 교수가 주장한 것은,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적자 상태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기 때문에,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브레튼 우즈 체제는 지속될 수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리핀 교수의 이 주장은 처음 제기된 지 12년이 지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를 가져와도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다는 선언을 하면서 현실화됩니다.

Triffin

<사진: Robert Triffin. (출처; archiviofoto.unita.it)>

미국이 경상적자를 내지 않으면, 즉 미국이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지 않으면, 시장에 달러 공급이 줄게 되므로, 기축통화로써의 본질적인 특성, 즉 공급이 충분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가 없게 됩니다. 기축통화로써의 자격을 잃게 되는 겁니다. 반면,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계속 되면, 즉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시장에 달러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져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모든 나라들이 달러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달러는 기축통화로써의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게 됩니다. 기축통화로써 달러가 가져야 할 두 가지 기능, 유동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바로 트리핀이 지적한 딜레마의 핵심 내용입니다.

금을 기반으로 하든 하지 않든, 모든 기축통화는 본질적으로 트리핀의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축통화라는 것은 국가 사이의 모든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이 공급되어야만 기축통화로써의 ‘역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공급량이 늘어나면, 동시에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화폐로써의 가치가 떨어지면, 국가들은 해당 통화를 받지 않으려고 할 테고, 그렇게 되면 기축통화의 역할도 끝나게 됩니다. 즉, 어떤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많은 곳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공급이 큰 폭으로 늘어나야 하면서도 해당 화폐의 가치 혹은 가격은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모든 기축통화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모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트리핀이 지적한 내용입니다.

사실 각국 중앙은행의 임무도 작게 보면 트리핀의 딜레마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물가 안정’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말이 물가 안정이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중앙은행의 임무는 화폐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이 가지고 있는 화폐의 가치가 너무 빠르게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일, 그게 바로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기축통화로써 달러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면서도 그 가치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각국의 화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국의 화폐가 돈으로써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 공급량 또는 통화량이 늘어나는데도 화폐의 가치는 일정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축통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각국의 화폐 공급량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화폐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 그것이 바로 각국의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가격 상승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 사이의 관계 때문에 나타나는 가격 상승이 하나 있고, 화폐 공급량이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가격 상승이 있습니다. 전자(수급에 의한 가격 상승)는 개별 품목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태풍으로 배가 많이 떨어졌다면 배의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시장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반면, 배가 풍작이라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 가격은 당연히 하락하게 됩니다. 이런 가격 상승은 수요가 감소하거나 공급이 늘어나면 다시 원위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소했던 배 공급량이 늘어나면 가격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며, 풍작으로 공급이 많은 경우에도 저장이나 가공 등으로 공급량을 줄이면 다시 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화폐 가치와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즉 화폐 공급량 증가에 의한 가격 상승은 개별 품목이 아니라, 돈이 너무 많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개별 상품 가격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화폐로 거래되는 모든 품목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배의 공급량 변화가 배 가격에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화폐 공급량의 변화는 과일 등의 농산물가격부터, 임금, 아파트가격, 공공요금, 식사 가격, 학원비, 땅 가격 등 영향을 안 받는 분야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줍니다. 바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똑같은 금액으로 살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에전에는 1,000원으로 버스를 5번 탈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번도 탈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1000원이라는 돈이 가진 가치가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주부들을 보면, 요즘에는 10만원을 들고 시장에 가도 살 게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돈의 값어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물가가 올랐다라고도 표현합니다.  또한, 개별 상품시장에서는 공급이 다시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가격이 제위치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의 양이 늘어나면서 오른 가격은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거나 대공황과 같이 화폐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시기에는 화폐가치가 상승하면서 가격이 하락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돈의 공급이 거의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상승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돈의 양은 국민 모두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각국은 중앙은행(우리나라는 한국은행, 일본은 일본은행 등)을 두어, 돈의 공급량을 조절합니다. 개별 품목 시장에서의 수급에 의한 가격 변동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화폐 공급량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은 화폐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역할이 큽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물가 억제’라고 할 때, 이 때의 물가는 후자, 즉 통화량 증가에 의한 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지, 개별 상품의 수급에 의한 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태풍이나 이상기온 때문에 농산물 공급이 줄어들어 식품가격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비난받는 일은 중앙은행으로써는 조금 억울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미국이 선택한 트리핀의 딜레마 해결 방법

미국이 달러를 전세계에 무제한적으로 공급하면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 말 자체는 맞지만, 어떻게 그 많은 달러를 공급하면서도 달러 가치를 유지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물량이 늘어나는 데도 가치가 유지되는 상품은 없습니다. 마시지 못하면 우리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물도, 그 양이 많으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달러라고 물량이 그렇게 늘어나는 데 가치가 온전히 보존될 리가 없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늘어나는 화폐 발행량만큼 새롭게 금을 만들어내거나, 찾아내거나, 발굴하거나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나는 화폐량에 대해 금 1온스당 가격을 올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트리핀이 지적한 모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금이라는 것이 무한히 늘어나는 금속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내거나 만든 금의 총량은 대략 17만여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의 총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금본위제 아래에서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체제도 이런 이유 때문에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본위제가 아닌 상황에서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금과의 연계고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화폐 공급량을 늘리면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은, 달러가 일반 상품과 같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상품으로 특성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공급이 늘어나는데도 가격 혹은 가치가 유지되게 하는 방법은, 늘어나는 공급만큼 새로운 ‘수요’를 만들면 됩니다. 가령, 공장에서 대량으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데도 장난감 가격이 안 떨어지게 하는 방법은, 해당 장난감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 기존 가격에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하면 됩니다. 해당 장난감을 새롭게 사려는 사람들이 장난감 생산량이 늘어나는 속도와 비슷하게 늘어나지 않으면,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그림을 가지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달러의 광범위한 활용을 위해서는 달러의 공급이 필연적입니다. 이것은 달러의 공급이 S₀에서 S₁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달러 가치는 P₀에서 P₁으로 하락하면서, 트리핀의 딜레마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가치가 하락하는 달러를 보유하려고 하지 않을 테고, 교환에 사용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기축통화로써의 지위가 흔들리게 됩니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달러로 평가된 미국의 부(富)(구매력)는 (P₀AQ₀O)에서 (P₁BQ₁O)으로 변하게 됩니다. 달러를 발행함으로써 오히려 이전보다 미국의 부는 줄어들 수 있고, 구매력 또한 감소할 수 있습니다. 즉, 달러를 많이 발행한다고 미국의 부가 늘어나지도 않고, 구매력이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달러를 무제한 발행하면서 현재의 경제적 위치를 차지했다는 말은 한 쪽 측면만을 고려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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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그림과 같이, 증가하는 공급량 이상으로 수요가 증가하면,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으면서 트리핀이 지적한 딜레마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제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기존의 D₀에서 D₁으로 증가했다고 하면, 새로운 균형점은 C가 됩니다. 달러의 가치를 보면, 엄청난 물량이 시중에 공급되었음에도, 이전과 동일하게 P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금과의 연계고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금광을 찾을 필요도 없고 단지 달러에 대한 수요만 만들면, 달러 가치의 하락 없이도 엄청난 새로운 부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즉, 달러에 대한 새로운 수요만 만들 수 있다면, 트리핀의 딜레마에 빠지는 일 없이 기축통화로써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달러가 가지는 구매력도 (P₀AQ₀O)에서 (P₀CQ₂O)로 커지게 됩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없던 부(富)가 생긴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물건을 대량으로 수입할 구매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듦으로써, 미국은 (ACQ₂Q₀)만큼의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된 것입니다. 기존에는 금 보유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가 증가되었다면, 이제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방식으로 부가 새롭게 창출되기 시작한 겁니다. 부의 창출방식 자체가 변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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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 세상의 부가 늘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당백전이라는 동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실권자였던 대원군은 경복궁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일종의 고액권인 당백전을 발행했습니다. 하지만 ‘당백전’이라는 돈의 수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의해 공급은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수요가 없다면, 그 물건이 아무리 돈이라는 모양새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부를 창출하지는 못합니다. 단지, 화폐의 가치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해당 화폐를 소유하려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게 되므로,  이는 수요를 더욱 위축시켜 해당 화폐의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당백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당 화폐에 대한 수요를 만들지 못하면, 화폐가치만 떨어뜨리고 물가만 올리는 부작용을 가져 오게 됩니다. 당백전이 발행됐던 시기에 대한 자료를 보면, 당백전 발행 후 몇 달 사이에 물가가 20% 이상 올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화폐 가치가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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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달러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론,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나라는 전쟁을 치러야 했고, 어떤 나라는 금융위기에 빠져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구렁텅이에 떨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도입한 이 방법 덕분에, 1970년 중반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 기반이 마련됩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까지, 세계경제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경제성장이라는 열매를 맛보는데, 이 모든 것이 미국이 새롭게 고안한 부의 창출방식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페트로달러(petrodollars)의 탄생과 화수분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드는 방법으로 미국이 선택한 것이 바로 석유였습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이후, 달러의 가치는 폭락하게 됩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달러의 가치를 올리지 않으면, 기축통화로써의 달러의 위상은 지켜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후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욤 키푸르 전쟁(the Yom Kippur War)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1973년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중심이 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한 번 시작했다하면 몇 년씩 진행되는 다른 전쟁에 비해 20일이라는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 벌어졌던 이 전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전쟁으로 인해 오일 쇼크라는 세계적인 경제 충격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부의 창출방식이 만들어졌고, 세계의 부가 늘어나면서 많은 국가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하게 됩니다.

이 전쟁이 있기 전까지 국제 석유가격은 배럴당 1.9달러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1960년에 이미 조직되어 있었던 국제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도 이 전쟁 이전까지는 국제 석유가격 결정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석유가격은 곧바로 3달러로 상승하였고, 여기에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아랍권 국가들은 미국의 조치에 크게 반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발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의 석유 수출가격 인상과 석유 수출 중단이라는 조치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전쟁 발발 10일 후인 1973년 10월 16일에 OPEC은 석유가격을 5.11달러로 인상한다고 발표합니다. 전쟁은 개전 20일만에 끝났지만, OPEC은 본격적으로 석유가격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1974년 1월에는 유가를 다시 11.65달러로 인상합니다.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 중단 조치는 1974년 3월 18일에 해제되었지만, 석유가격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서너 달 사이에 석유가격이 5배 이상 상승하자 각종 에너지가격부터 전반적인 모든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석유를 수입하여 사용하던 국가들은 큰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1차 오일 쇼크의 시작이었습니다.

중동에서의 전쟁 발발 그리고 OPEC에 의한 석유 수출 중단 등으로 원유가가 급등하는 것을 본 키신저(Henry Kissinger)는 금과의 교환을 중단한 이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달러 가치를 다시 복구할 방안을 석유에서 찾게 됩니다. 바로 석유의 결제를 미국 달러로만 하는 방안이었습니다.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하게 되면,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은 모두 미국 달러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달러에 대한 수요가 큰폭으로 늘어나면서,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더라도 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경제위기의 본질 (3): “미국이 선택한 트리핀의 딜레마 해결 방법”> 참조).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달러를 페트로달러(petrodollar)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키신저는 사우디를 끌어들입니다. 키신저는 King Faisal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이 사우디의 국방과 석유 관련 시설을 보호해주는 대신, 사우디는 모든 석유 결제에 미국 달러만 사용하도록 하는 협정을 체결합니다. 키신저는 또한, 사우디에 미국 달러가 넘쳐 엄청난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도 막고, 사우디의 달러를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묘안도 찾아냅니다. 키신저는 일련의 협상을 통해, 1974년 2월 13일에 사우디와 Technical Cooperation Agreement를 체결되고, 6월 8일에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 본인이 직접 사우디의 파드(Fahd) 왕자와 Joint Communique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7월에,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닉슨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하여,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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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닉슨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위에서 언급한 협정들을 바탕으로, 미국과 사우디는 ‘미-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the U.S.-Saudi Arabian Joint Commission on Economic Cooperation)를 설립합니다. 이 위원회의 표면적인 목적은, 사우디가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를 재원으로 미국이 가진 각종 기술을 사우디에 이전하고 SOC 등을 설치해주며, 사우디 공무원과 인력을 교육시켜 주는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목적은 사우디로 흘러들어간 달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재무부를 통해 미국 채권을 매입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키신저는 이를 두고, 페트로 달러의 재활용(recycling of petrodollars)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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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우디의 King Faisal과 Henry Kissinger

재미있는 사실은, 자의든 타의든, 미국과 각종 우호적인 협약을 수용했던 사우디의 King Faisal이 다음해인 1975년 3월 25일에 조카에게 살해당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왕을 살해한 조카도 얼마 있다가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해에 OPEC의 모든 회원국들이 미국 달러로만 석유를 결제하는 안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페트로달러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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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우디 King Faisal의 장례식

위에서 설명한 페트로달러라는 아이디어는 언뜻 보면 아주 간단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면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 필요 없이 쓰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나라들은 번 만큼의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출로 100달러를 벌었다면 그 나라가 쓸 수 있는 돈은 100달러가 전부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똑같습니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 이상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달러에 대한 수요가 석유로 보장되는 미국의 상황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달러의 수요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달러의 공급량을 늘려도 달러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게 됩니다.

가치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달러가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달러를 막 찍어내도, 그렇게 발행한 모든 달러가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재물이라는 뜻의 화수분이라는 말이 있는데, 달러가 화수분과 같아졌다고 보면 됩니다. 무역으로 이야기하면, 미국은 수출하지 않고 수입만 해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후 미국은 물건을 생산해서 수출하는 국가가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소비국가로 전환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은 소비로 경제가 성장한 국가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소비만 하는데도 국가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지, 그 많은 소비에 사용되는 돈 혹은 부(wealth)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이런 주장은 미국의 수십 년간 왕성한 구매력으로 전세계 상품을 수입하면서도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예일대 교수였던 트리핀이 지적했듯이, 경상수지 적자는 기축통화로써의 달러의 공급량을 늘리는 데 꼭 필요합니다. 관건은 그렇게 늘어난 달러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데 있습니다. 미국은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한정시키면서 달러 가치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만, 경상수지 적자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늘어나는 달러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만 중요할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내수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수 중심의 경제로 가겠다는 것은, 수출로 돈을 벌지 않고, 수입을 하거나 해당 국가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모두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0% 자급이 가능한 나라라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만,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100% 자급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양의 수입을 해야만 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수출은 하지 않고 수입만으로 먹고 살겠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수입만으로 살 수 있는 국가는 두 종류뿐입니다. 과거 미국이 했던 것처럼 써도 써도 줄지 않는 부(wealth)를 가지고 있거나, 그 동안 벌어놓은 돈이 아주 많거나. 두 경우 가운데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면, 내수 중심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주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허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석유에 대한 수요 만들기와 경제발전

하지만 달러를 석유와 연계시키는 것만으로는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석유를 구매하지 않으면 달러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수가 없고, 석유를 구매하더라도 그 양이 많지 않다면 달러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석유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석유를 통한 달러 가치의 보전은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석유를 통한 달러의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바로 모든 석유 결제 대금을 미국 달러로만 한다는 조건과, 석유 소비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첫 번째 조건은 1975년에 OPEC의 모든 회원국들이 사우디를 따라 모든 석유 결제를 미국 달러로 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이미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당시 오일 쇼크로 국제 원유가격이 큰 폭으로 인상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석유 소비량을 큰 폭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스스로 석유 수입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중에 달러 공급을 더 늘림으로써 달러 가치를 더 떨어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석유 수요를 만들기는 만들되, 미국 이외의 지역이나 국가를 통해서 만들어야만 달러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져, 달러 가치가 유지될 수 있게 됩니다. 즉,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석유를 많이 사용하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면, 해당 국가들은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므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늘리게 됩니다.

미국은 1973-4년 사이에 원유가격이 급등하자 자국의 에너지 보호를 위해 석유 수출 금지조치를 취하는데, 이 조치도 에너지 위기 차원이 아니라 달러의 가치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 조치는 2014년에 들어서야 일부 해제가 될 만큼 40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미국이 석유 수출을 늘리는 상황이 되면, 수출 대금으로 달러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국이 되면, 각국이 가지고 있던 달러를 미국으로 다시 흡수하게 되면서 달러 부족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축통화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론적으로 판단해 보면, 미국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성격을 강화시켜주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이 선택한 전략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공산품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었니다. 특히, 초기에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큰 폭으로 늘리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연비가 좋은 소형차로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석유에 대한 수요는 경제가 급성장하는 국가들에서 가장 큽니다. 공장을 돌리고, 전기를 공급하고, 생활편의시설이 늘어나고, 자동차를 운행하고 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입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를 만들기 위해, 미국은 일본 외에도, 점차 한국, 대만, 중국 등으로 수입선을 확대해 나갑니다. 공산품 수출이 급증한 이들 국가들은 대량의 석유를 중동으로부터 수입해야 했고, 석유 수입 대금은 미국 달러로 결제했습니다. 달러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이 항상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제1차 오일쇼크가 끝난 직후에는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1980년대 초반 제2차 오일쇼크까지 지속됩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석유 소비를 통한 달러 수요의 증가라는 구조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Japan_crude_oil_dependence_OPEC_Middle_East_1973_2009

[그림] 일본의 석유 수입 변화
출처: http://www.paj.gr.jp/english/industry/

각국이 부자가 되는 방법도 이때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부자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금과 은을 모아야 한다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생각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이제는 금과 은을 모으지 않아도 부자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금이나 은을 많이 가진 나라가 부자나라가 되었다면, 이제는 미국 달러를 많이 모은 나라가 부자나라가 되었고, 달러를 많이 가진 사람이 갑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 나라가 경제성장을 하여 부자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금과 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국 달러를 모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달러를 가져오는 방법으로 세계가 선택한 것은 공산품의 수출이었습니다. 각국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구매력을 갖춘 달러를 지급하였습니다.

미국이 석유와 연계를 통해 창출한 부를 자기 나라로 가져오기 위해 각국은 미국으로의 상품 수출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초기에는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저가의 상품을 수출하고, 저가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기계화와 자동화를 통해 보다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전환하여 수출을 늘려나갔습니다. 품목도 초기에는 1차 상품 중심이었지만, 기술과 자본이 축적되면 점차 중공업이나 자동차 등의 첨단 및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더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저가의 노동력을 활용 가능한 시장을 지속적으로 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 중심의 산업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베트남 등으로 계속 옮겨갔습니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고, 각종 혁신도 나타났습니다. 또한, 필요할 경우, 각국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수출가격을 낮추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은 국가들은 경제성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 등이 대표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미국은 구매력을 가진 달러를 주고, 전세계로부터 저가의 상품을 수입해 아주 풍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이를 ‘디플레이션의 수입’이라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저가 상품을 수입해 쓴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국이 가진 경쟁력 있는 상품을 미국으로 수출함으로써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미국이 가진 구매력을 자국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수출의 대가로 받은 달러 역시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이 달러를 활용하여 자국의 경제 성장에 활용하게 됩니다. 기업들은 공장을 짓고 직원들을 채용했으며, 그에 따라 일자리가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기업이나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러면서 소득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자, 부동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고, 소비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미국 달러가 계속 구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세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세수를 활용하여 정부는 사회간접시설도 만들고, 각종 복지정책도 도입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부유함이라는 것도 그 원천을 따라가 보면,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새롭게 창출한 부에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을 해보면,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월급을 받거나 수익을 얻습니다. 우리나라의 부가 한정되어 있고 수출이 없었다면, 금본위제에서처럼 누군가 부자가 되면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부라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수출을 통해 외부에서 부를 가져오지 않으면, 계속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하거나 극소수만 잘 사는 사회였을 겁니다. 하지만 수출이 되고, 외부에서 달러라는 구매력이 들어오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플러스 섬'(plus-sum)의 사회가 도래하게 됩니다. 100원으로 이것저것을 해야 하던 우리 사회는 부의 크기가 1,000원, 5,000원, 10,000원으로 늘어나면서, 기업도 부자가 되고 개인들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물론, 그에 따라 세금도 늘어나면서, 정부도 다양한 복지 및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루어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본질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자산 형태로 가지고 있든, 현금 형태로 가지고 있든, 그 대부분이 외국,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이 석유와의 연계를 통해 창출한 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은 기축통화로써의 미국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면 석유 수요가 줄고, 이는 다시 달러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물건을 계속 수입하지 않으면 공장이 운영이 안 되고 그렇게 되면 석유 수요가 줄고, 이는 다시 달러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게 됩니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경제성장 과정을 보면, 한 나라 혹은 세계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wealth) 자체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버리고 석유를 통한 달러 수요를 확대하는 전략을 채택한 이후, 미국 달러로 평가되는 세계의 부는 급증했습니다. 둘째는 이렇게 늘어난 부를 자국으로 가져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경쟁력’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기 이전에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노력을 결실로 맺을 수 있는 부(wealth) 또는 파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별 국가의 노력은 차후 문제라는 뜻입니다. 개별 국가의 경쟁력 이전에 부라는 파이 자체가 커져 있어야만, 개별 국가들의 노력과 경쟁력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요즘의 청년층 취업문제도 동일합니다. 청년들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일자리 자체가 늘어나는 일입니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개개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스펙을 올리고, 영어점수를 올리고,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자원봉사를 하고,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고, 기업에서 인턴을 해도, 일자리 자체가 없다면, 취업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개인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자리라는 파이 자체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들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6. 달러의 범람은 과연 나쁜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달러의 범람으로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곰곰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구매력을 갖춘 달러가 범람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포함해 세계 경제가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또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구매력 높은 달러의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요.

우리가 이 정도까지 풍요롭게 살게 된 데는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달러의 구매력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부(富)가 이전보다 엄청나게 늘어났고, 둘째는 그 늘어난 세상 부의 일부를 우리 혹은 우리들 부모 세대가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나라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제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혹은 우리 부모 세대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다 하더라도, 세상의 부(富) 자체가 아주 적었다면, 그 많은 땀은 지금과 같은 큰 결실을 맺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한, 세상의 부가 아무리 많다 한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세상의 부가 성장하던 시기에,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가 열심히 하여, 늘어나는 부(富)의 일부를 가져올 수 있었고, 그것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큰 전제인, 세상의 부(富)가 늘어나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와 우리 부모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부유해질 수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열심히 하는 것 이전에,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부(富)가 있는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1980∼200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은 참으로 복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달러의 범람 혹은 홍수가 과연 나쁜 것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치가 없는 달러’의 홍수가 문제이지, ‘구매력을 갖춘 달러’의 홍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국가들에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부유해진 것이 구매력을 갖춘 달러 덕분인데, 그 달러가 범람한다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달러의 범람 자체가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달러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구매력이 있는 달러는 세상의 부를 증가시키지만,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달러는 단지 물가가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구매력을 갖춘 달러는 무엇이고, 그렇지 못한 달러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지난 글에서 트리핀의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이미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달러가 금과의 연계고리를 끊고서도 구매력을 갖는 방법으로 찾아낸 방법이, 바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계속해서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달러의 가치는 높게 유지될 수 있었고, 그런 달러는 세상에 넘쳐나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서로들 달러로 표시되는 부를 축적하려고 너도나도 달려드는 문제만 발생할 뿐입니다. 따라서 구매력이 있는 달러란 수요가 뒷받침되는 달러를 의미하고, 구매력이 없는 달러란 바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달러의 범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구매력이 없는 달러의 범람 혹은 수요를 초과하는 달러의 범람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매력을 갖춘 달러의 범람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먼저 부자가 되는 방법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전에는 황금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부의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부의 창출이 도입되면서, 황금이 아니라 달러를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가 부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황금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 무한히 늘릴 수 없습니다만, 달러는 물량을 계속 늘릴 수 있었습니다. 황금도 물량이 늘어나면 인플레가 발생합니다만, 달러는 엄청난 물량에도 (인플레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가치가 유지되었습니다. (콜럼부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스페인도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황금 때문에 인플레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사람은 황금을 모으는 것보다 달러를 모으는 것이 더 편리하고 기회도 많았습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황금을 모으는 것보다, 시중에 넘쳐나는 달러를 모으는 것이 훨씬 쉬웠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달러가 구매력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달러를 모으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황금보다는 달러 모으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황금은 자연스럽게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생활수준을 보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수준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수천 년 역사에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풍요로움은 예전에 왕들도 누리지 못하던 호사스런 것들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빠르고 이동할 수 있고, 전기를 통해 음식을 요리하고, 채소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세탁기를 통해 여성들이 빨래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아이들이 에어컨과 난방기가 설치된 학교에서 편하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필요하면 집 근처에서 언제든지 치맥을 즐길 수 있고, 국내여행이 지루하다 싶으면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런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부의 크기가 1970년대 수준에 머물렀더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했을 가능성이 99.99%일 겁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대학도 못 갔을 테고,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며, 결혼도 쉽지 않았을 테고, 자기 소유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은 꿈 속에서나 바랄 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열심히 사신 기성세대의 노력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만, 달러라는 넘쳐나는 부가 있었기에, 그들의 노력이 허사로 끝나지 않고 경제성장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엄청난 기술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현재의 풍요가 단지 경제적인 성장 외에도 기술적인 발전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는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도 돈이 많이 투자되는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희귀병 치료보다 대머리 치료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자되는 게 현실입니다. TV, 세탁기, 냉장고, 전화기, 카메라, 스마트폰 모두 돈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수준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세상의 부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 외에도 각종 생활과 관련된 기술도 함께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은 무엇보다도 범죄를 크게 줄였습니다. 그만큼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오지 않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고, 그리고 그 일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굳이 범죄를 저지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의 세계경제를 돌아보면, 돈 벌 기회가 참 많았고, 누구라도 열심히 하면 이런 일자리를 통해 일정 수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주식을 사두면 주가가 뛰었고, 아파트를 사두면 아파트 가격이 뛰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이니 ‘코리안 드림’이라 부릅니다. 부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범죄가 줄어들자, 여성들과 아이들과 같은 약자들이 살기에 훨씬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이나 아이들의 인권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에는 달러가 범람하면서 세상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불평등은 원시시대에도 있었고, 고대에도 있었고, 중세시대에도 있었고, 산업혁명 시대에도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서 불평등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불평등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구매력을 갖춘 달러가 없었다면 불평등은 해소되었을까요. 아마 지금보다 더 불평등이 심화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평등한 상황에서 출발해도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불평등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또한, 우리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데는 불평등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교육을 통한 ‘지식’의 증가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불평등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지, 그런 개념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느끼지도 못했을 겁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달러의 범람으로 세상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지만, 만약 그런 달러의 범람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7. 셰일가스는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언론에 보면, 석유에 대한 대체에너지원으로써 셰일가스를 많이 언급합니다. 그리고 셰일가스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2의 석유 붐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치 셰일가스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사 노릇을 할 수 있을 듯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런 기대 내지는 희망은 사실 거의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 상황과 관련해 두 가지 측면에서 셰일가스의 유용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에너지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달러의 수요 창출 측면입니다. 첫 번째 측면은 채굴에 채산성은 있는 것인지, 석유와 비교할 때 가격측면에서 경쟁력은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현재 셰일가스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각종 환경 파괴 논란까지 겹쳐 있습니다. 셰일가스의 경제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엄밀하게  수익성 분석을 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셰일가스가 경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석유가격이 지금보다 더 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에너지원으로써 셰일가스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나타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관련 업계에 계신 분이 아니면 정확한 사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셰일가스의 경제성 문제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핵심 이슈도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측면, 즉 기축통화인 달러의 수요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써의 셰일가스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석유를 단순히 에너지원으로써만 이해하면, 현재의 경제위기나 석유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에너지원으로써의 석유의 고갈이나 높은 가격 때문에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석유의 소비와 연계되어 있는 달러의 구매력, 즉 세상의 부가 고갈되면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관건은 셰일가스가 에너지원으로써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과거 석유가 해왔던 것처럼, 셰일가스가 석유를 대체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셰일가스가 석유처럼,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달러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려면,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경제성장하는 나라들이 있어야 하고 이 나라들이 셰일가스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마치 빠르게 경제 성장하던 나라들이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던 것처럼, 셰일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하며 셰일가스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가령, 휘발유 대신 셰일가스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된다든지, 발전소들이 석탄이나 석유 대신 셰일가스를 사용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셰일가스의 구매가, 유로화도 아니고, 위안화도 아니며, 엔화도 아닌, 미국 달러로만 결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조건입니다.

첫 번째 조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들이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의 대부분 시설이 셰일가스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제 생산시설들은 석유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시설들을 셰일가스 전용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만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과연 이들 국가에 그만한 돈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석유는 단순히 에너지원만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섬유 등 다른 용도로도 그 용도가 매우 넓습니다. 셰일가스가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석유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용도로까지 확대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석유만큼 수요를 큰 폭으로 늘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조건, 모든 셰일가스의 거래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충족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셰일가스의 매장량은 미국보다 중국과 아르헨티나가 더 많고, 셰일오일은 러시아가 최대 매장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관리국(EIS)에 따르면, 그나마 미국에서 셰일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다고 알려졌던 캘리포니아의 몬터레이 지역 매장량의 96%는 과장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셰일가스의 결제를 미국 달러로만 하기 위해서는, 과거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했던 것처럼, 셰일가스 매장량이 많은 국가들이 셰일가스의 국제간 거래를 미국 달러로만 한다는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셰일가스나 셰일오일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현재의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볼 때, 중국과 러시아가 세일가스를 미국 달러로만 결제하는 것에 동의할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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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매장량 분포

(출처: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20701033332071002)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같이, 셰일가스 수출국기구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 가격을 통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안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국제정치 구조상,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되는 미국 중심의 국제기구에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셰일가스 붐이 일어나더라도 중국은 위안화나 루블화처럼 미국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결제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셰일가스에 대한 결제가 미국 달러 단일 화폐만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즉, 셰일가스 붐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 지금 석유와 같이 거의 모든 셰일가스 결제가 미국 달러로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러가 셰일가스를 이용해 과거와 같은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돌려 이야기하면, 셰일가스로 현재의 경제 위기 국면을 타개해나가기 위해서는, 셰일 가스 수요가 급증해야 하고, 급증한 셰일가스 결제가 모두 미국 달러 단일 화폐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재 석유를 기반으로 미국 달러로 만들어진 거품이 꺼지지 않고, 셰일가스로 이루어진 새로운 거품이 그 뒤를 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볼 때, 이런 상황은 거의 불가능해보입니다. 따라서 셰일가스를 이용한 달러의 구매력 유지 문제, 즉 현재의 거품을 셰일가스로 계속 유지하는 문제는, 경제성을 차치하더라도, 거의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셰일가스가 달러의 수요를 만들어내는 석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변은 매우 회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셰일가스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조만간 셰일가스가 가진 이러한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셰일가스에 껴있던 아주 작은 거품마져도 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8. 또 다른 딜레마의 출현

트리핀의 딜레마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들면서 해결되었지만, 미국은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막았지만, 대신 미국 내 산업이 무너지는 비용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정 화폐가 기축통화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수량이 공급되어야 하면서도 그 가치는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믿고 거래에 활용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달러가 다른 나라 화폐에 비해 그 가치가 높게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미국산 상품의 가격이 다른 나라 상품보다 비싸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똑같습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업체는 수출시장에서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쟁력을 서서히 잃어가게 됩니다. 반면, 수입업체는 동일한 금액으로 더 많은 양을 수입할 수 있게 되므로, 수익성이 개선됩니다. 국내 소비자들 또한 수입품의 가격이 이전보다 저렴해졌으므로 소비를 늘리게 됩니다. 외국에 나갈 때 환전을 하더라도 더 많은 외국 화폐로 교환이 가능하므로 해외여행도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특정 화폐가 다른 나라 화폐보다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 돈 쓰기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됩니다.

장기간에 걸친 강(强)달러는 점차 미국 제조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강하게 유지되면서, 미국산 상품이 점차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는 산업, 특히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강한 달러에 인해 높게 형성된 미국산 공산품은 마땅한 수출처를 찾지 못하고,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산이 가능한 국가로 점차 이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미국의 제조업은 일본, 한국, 중국 등에 자리를 내주며 점차 무너지게 됩니다. 미국은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듦으로써 트리핀의 딜레마에서는 벗어났지만, 대신 자국의 산업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달러가 강세를 띄자, 위에서 언급한 현상들이 고스란히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미국 달러가 강세현상을 보이는 데 일정 정도 기여를 하고 있고, 일본과 EU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엔화와 유로화 공급을 늘리면서 달러가 강세를 띠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달러가 강세를 띄자, 다소 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미국의 제조업이 다시 위기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수출가격이 상승하였고, 그로 인해 판매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퍼 달러’ 파장 어디까지 (서울경제, 2015. 3. 12)

强달러 충격 `현실로`…美기업 이익전망 대폭 하향 (이데일리, 2015. 3. 23)

`슈퍼달러 공습` 본격화…단번에 얼어붙은 美고용경기 (이데일리, 2015. 4. 4)

 미국 대표 제조기업, ‘강달러’ 충격에 신음 (한국경제, 2015. 4. 25)

또 한 가지,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에 따라 이들 계층의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게 됩니다. 제조업이 성할 때는 누구라도 공장에 취업하여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이 사라지면서 보통 사람들이 누리던 이런 기회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소위 말하는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로 산업구조가 바뀌게 됩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은 기술 및 지식 집약적인 산업이 대부분입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특별한 지식, 타고난 뛰어난 재능 등을 가진 사람에게만 돈을 벌 기회가 주어집니다. 나머지 보통 사람들, 특별한 재능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일반 사람들은 돈 벌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구글 서비스의 검색엔진을 만들고, 아이폰을 기획하고 iOS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당연한 결과로 소수에게 부가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부의 불평등이 엄청난 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현재도 5,00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이 식품 보조(food stamp)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거의 우리나라(남한) 전체 인구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정부 보조에 의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돈을 벌 기회를 박탈당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불만세력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방안도 찾아야 합니다. 늘 그렇듯이, 미국민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먹거리는 푸드 스템프(food stamp) 등으로 제공하고, 즐길 거리는 미식 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등 프로스포츠(pro sports)를 통해 제공합니다. 예전 로마시대 때 회자되던 바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ns)’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기축통화국이 되는 과정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품을 수출하든 군수물자를 수출하든, 다른 나라가 소유하고 있는 부를 자기 나라로 가져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단 기축통화국이 되고 나면, 다른 나라의 부를 가져오기보다는 기축통화국이 가지고 있는 부를 다른 나라들이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축통화국은 수출보다는 수입이 많아야 하고, 생산보다는 소비가 많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국의 산업, 특히 고용 능력이 높은 제조업의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너진 제조업으로부터 배출된 많은 실업자들을 다른 분야에서 흡수해주어야 하구요. 일반적으로 서비스산업을 통해서 가장 많이 흡수합니다.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일이 많습니다. 어떤 상품을 기획하거나 디자인하고, 금융을 다루는 분야 등도 있습니다만, 서비스업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는 분야입니다. 배달을 해주고,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숙식을 제공하고, 관광 안내를 하는 등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대가로 보수를 받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서비스산업을 표현하면, 서비스에 대한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근본적으로 상품을 만들거나 제조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어떤 방식이든, 기축통화가 되고 그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고위직이나 고소득층이 아니면, 살기 어려운 것도 동일한 듯합니다.

 

9. 현재의 위기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이고, 왜 위험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부(富)의 창출기능이 망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하면서 지속적으로 커지던 세상의 부가, 이제 확대되는 것을 멈추고 축소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수분처럼 써도 써도 무한한 것처럼 보였던 미 달러의 구매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수십 년간의 세계경제 구조를 보면, 달러가 구매력을 유지하고, 그 구매력을 바탕으로 수입을 확대하고, 그 수입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생산을 하여 수출을 하고, 수출로 받은 달러로 각국은 경제 성장을 하고 국민들 복지에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제구조에서는 미국이 석유를 근거로 부를 만들고, 그 부를 각국이 수출을 통해 경쟁적으로 가져오는 형태로 경제가 발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 자체가 성장하지 않으면, 각국이 가져올 부(富)도 없게 되므로, 경제 성장도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구조의 최상위에 있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고리인 달러의 구매력이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즉, 세계의 부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달러가 구매력을 상실해감에 따라, 미국의 구매력이 축소되고, 그에 따라 수입수요가 줄어들고, 수출로 먹고살던 많은 나라들이 수출을 못하게 됨에 따라 각국의 경기가 위축되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세금이 줄어들고, 이는 다시 국민들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기존에는 달러의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플러스 섬(plus-sum)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달러의 구매력 상실로, 너도 못 살고, 나도 못 사는, 마이너스 섬(minus-sum)의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경제 성장과정이 멈추고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구매력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공급은 아주 많은데 수요는 거의 바닥인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개인 간이든, 개인과 기업 간이든, 국가 간이든, 거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래는 사고 파는 일인데, 누군가 팔려는 사람이 있으면 사려는 사람이 있고, 그 두 사람이 교환 조건을 절충하여 합의에 이르면 거래가 성사되게 됩니다. 구매력이 고갈되었다는 이야기는 팔려는 사람은 있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고는 싶은데 거래에 사용할 부(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람들 주머니에 다시 부가 쌓이고 그 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거래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기업들이 공급 과잉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근본 이유는 바로 구매력 고갈, 즉 수요 부족 때문입니다.

앞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달러의 구매력은 석유 소비를 포함해 달러의 ‘수요’에서 나왔습니다. 달러의 주된 수요는 석유 결제에서 나왔고, 석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빠르게 경제가 성장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정에서 수입하게 되는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였습니다. 그렇게 유지된 달러 가치를 바탕으로 미국은 이들 국가를 포함해 전세계로부터 상품을 수입해 사용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석유를 기반으로 한 미국 달러의 강한 구매력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40여년 간 잘 유지되던 이런 경제 구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늘어나는 달러 수요보다 더 많은 달러를 시장에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미국은 국채라는 형태로 수출이 많은 국가들로부터 달러를 빌려 쓰기까지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미국은 달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구매력을 소진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2008년 금융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부터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자 미국에 수출로 먹고 살던 다른 나라들에게서 동시 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수출이 정체되자 상품의 과잉 공급 현상이 나타나고 기업들의 수익이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자,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통해 인력 감축에 나섭니다. 그에 따라 일자리는 줄어들고, 사람들의 소득도 줄어들게 됩니다. 젊은층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종 스펙으로 자신의 몸값을 올리지만,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소득원이 사라지자 대출을 못 갚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을 멈춰버립니다. 그러자 건설업체를 비롯해, 부동산 업계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전세계적인 부의 축소로 소비에 사용할 돈 자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영업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겪고 있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경제문제는 그 출발점을 따라가보면, 그 제일 밑바탕에는 미국 달러가 석유와의 연계를 통해 만들어냈던 부의 축소, 즉 전세계적인 부의 축소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세계의 부가 다시 늘어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즉, 미국의 달러가 기존과 같은 왕성한 구매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미 달러가 만들어냈던 부를 대신할 만한 다른 형태가 부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미 달러가 가진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석유 소비가 이루어져야 하고, 각국이 이전보다 더 많은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축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경제 성장이 있어야 하고, 그런 나라들이 석유 소비를 큰 폭으로 늘려야 합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석유와의 연계를 통해서 부를 만들었듯이, 미 달러와 연계하여 새롭게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셰일가스가 석유를 대체해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단으로 제시되었지만, <쉬어가기 (2) “셰일가스는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에서 설명했듯이, 현재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정체 혹은 침체에 빠지면서 석유 수요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석유를 통한 달러 수요도 함께 줄어들고 있고, 이는 다시, 석유에 대한 ‘수요’에 의존하던 달러의 가치, 즉 달러가 가진 구매력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들을 포함해, 세계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부가 달러의 구매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달러의 구매력 감소는 곧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wealth)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부가 줄어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우리를 포함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전보다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석유를 통해 미국 달러의 형태로 만들어졌던 세상의 부가 확장을 멈추고 축소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세상의 부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우리들 주머니 속의 부도 함께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부가 계속 축소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돌려 이야기하면, 우리는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부는 언제까지 축소되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위축될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경기가 언제까지 위축될 지,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침체될 지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개개인이 어느 수준까지 가난해질 지, 그리고 그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 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략인인 답이 가능할 겁니다. 과연 그런 질문들에 답을 대략적으로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10. 미 달러 패권 쇠락의 의미

달러의 구매력은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듦으로써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수요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달러의 구매력이 살아났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달러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습니다. 달러에 대한 가장 큰 수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석유였다는 것도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달러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리고 미국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 달러는 단순히 기축통화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기축통화’라는 것과 ‘부의 창출 수단’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축통화는 국가간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기축통화라고 해서 모든 기축통화가 부(wealth)를 만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기축통화는 해당 국가가 모은 부를 소비하는 데 사용됩니다. 금 본위제에서는 그동안 축적한 금을 소진하는 데 기축통화가 사용됩니다. 과거 미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한 이후 금 보유량이 크게 줄어든 것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중국의 위안화도 금과 같이 뭔가 가치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위안화와 연계하면, 기축통화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된다고, 미국 달러가 만들었던 것처럼 세계의 부를 만들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그동안 중국이 축적했던 부를 소진하는 데 활용될 뿐입니다. 금본위제와 같은 체제 아래에서는, 기축통화의 공급량이 금 보유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기축통화국이 기축통화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자국이 가지고 있는 부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축통화는, 기축통화국이 가지고 있는 부(wealth)의 양을 나타내는 단순한 종이 조각이자 증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기축통화는 부를 표시하는 수단일 뿐, 부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석유를 기반으로 한 1970년 후반 이후의 미국 달러는 기존의 기축통화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의 기능과 부의 창출 기능,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기축통화들이 기축통화국이 가지고 있는 부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것이었다면, 1970년대 이후의 미국 달러는, 달러 자체가 기축통화이자 부(富) 그 자체였습니다. 금본위제 아래에서의 달러는 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증서의 일종이었습니다. 따라서 실제 부는 금이었고,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야만 실제 부를 내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석유 수요에 기반한 달러는 달러 자체가 부(富)이자 기축통화였습니다. 실제의 부를 받기 위해 교환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달러 그 자체가 부(wealth)였고 기축통화였으니까요.

앞의 글에서 미국 달러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달러의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기축통화 기능도 점차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도, 미 달러가 가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첫 번째 기축통화로써의 기능은 달러가 기축통화로써의 역할이 줄어들면 다른 화폐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위안화가 일정 부분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유로화나 엔화도 일정 부분 기축통화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 기능은 약화되면 다른 화폐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기능인 부의 창출기능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기축통화가 된다고 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부의 창출기능은 기축통화 기능처럼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가 없는 기능입니다. 미 달러의 구매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세계의 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들 주머니 속의 돈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액면 가치가 줄어들지 않았다면, 구매력이 줄어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지금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 달러가 석유와 연계를 통해 달러 수요를 늘리면서 세계의 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그렇게 40여년간 증가해왔던 세계의 부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부가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부유함 그리고 풍족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일을 하든,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우리가 벌 수 있는 돈도, 그 돈이 가지고 있던 구매력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계속 가난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미 달러의 쇠락이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사람들은 미 달러가 누렸던 패권의 부작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미 달러 패권은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미 달러 패권의 몰락은 기축통화로써의 달러의 쇠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미 달러가 가져왔던 풍요로움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축통화 기능이야 다른 화폐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지만, 부의 창출기능은 대체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셰일가스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지만, 셰일가스는 석유를 통해 창출했던 만큼의 부도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전세계 모든 국가의 빈곤화, 그리고 그 나라들 내에서 살고 있는 모든 국민들의 빈곤화입니다. 석유를 통해 창출됐던 것보다 더 큰 부가 새롭게 창출되지 않는 한, 이런 파국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부가 이렇게까지 커졌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파국 또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충격적이고 클 것이라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의 불황을 ‘대공황’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앞으로 접해야 할 이 파국은 도대체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적합할까요.

 

11. 미 달러 수요를 줄이려는 시도들

이전 글들에서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달러 패권, 그리고 현재 세계의 부는 모두 달러에 대한 ‘수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 기존의 금 본위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트리핀의 딜레마를, 미국은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듦으로써 달러의 공급을 늘리면서도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따라서 이 점을 이해하면, 미국의 아킬레스 건, 즉 약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국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그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미국의 최대 약점은, 미국 내 경기도 아니고, 재정적자도 아니고, 실업자 수도 아닌, 바로 달러에 대한 ‘수요’입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이 가지고 있던 달러 패권도 동시에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달러에 대한 수요의 핵심에는 석유 결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미 달러 패권의 유지 여부 내지 지속 가능성 여부는, 국제 석유 거래를 계속 달러로 결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유 결제를 달러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깨지지 않는 한, 미국은 구매력, 즉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달러를 계속 찍어낼 수 있게 됩니다. 달러의 구매력이 유지되기만 하면, 미국은 달러를 발행해, 항공모함을 운영할 경비도, 미국내 푸드 스템프 비용도, 모두 조달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미국 패권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가장 핵심 고리인 석유의 달러 결제를 막거나 약화시켜야 합니다. 그에 따라,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한 외부의 공격은 석유 결제를 달러 이외의 화폐로 전환하는 것에 집중됩니다.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달러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달러가 가지고 있던 화수분과 같던 구매력도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달러로 뒷받침되는 미국의 힘도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들은 달러의 석유 결제 기능을 약화시키려고 했고, 이에 대해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러의 석유 결제 기능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커다란 둑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구멍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은, 달러의 석유 결제 기능에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고, 이러한 미국의 노력은 최근까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이런 약점을 파고들려고 했던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이라크와 이란입니다. 이라크는 UN으로부터 식량을 제공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석유를 지급하는 협약을 체결했었는데, 당초 이라크는 석유 결제를 달러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2000년 11월 6일 이라크 원유 결제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2001년부터 석유 결제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화를 받기 시작합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국이었던, 이란과 인도네시아도 이라크의 움직임에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라크가 석유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변경한 2년 뒤인 2003년 3월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이라크 점령에 성공하자마자, 같은 해 6월 이라크의 석유 결제 화폐를 유로화에서 다시 달러로 환원시킵니다. 당시 이라크는 UN으로부터 석유 수출량에 제한을 받고 있었는데, 이 제한이 2003년 상반기에 풀릴 예정이었습니다. 이 제한이 풀리게 되면, 이라크의 석유 수출은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라크가 석유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석유 수출 확대는 곧 달러의 석유 결제 기능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달러의 구매력 유지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이것을 허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 결제 문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명목적으로 제시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가능성 때문인지는, 실제 전쟁을 치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점령이 완료되자마자 석유 결제를 유로화에서 달러로 전환한 것을 보면, 적어도 달러의 석유결제 문제도 이라크 침공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외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등도 달러의 석유 결제에 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나라입니다(아래 표 참조). 하지만 이런 나라들의 시도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나라들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도 미국 달러의 힘으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라 이들 국가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력했던 미국의 힘도 이들 국가의 움직임을 억누르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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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이란, 석유 결제대금, 달러로 안 받겠다” (2010. 8. 11)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바로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 패권에 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미국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꾸준히 확대해 왔습니다. 올해 7월초에는 러시아와 가스 및 석유 수출입과 관련된 결제를 달러 이외의 화폐로 하는 데 합의를 봤고, 우리나라와는 달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위안화를 직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를 만드는 것에도 합의를 했습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대적해, 달러가 아닌 위안화 중심의 은행 설립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프라스트럭쳐투자은행(AIIB)를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프랑스에서도 국가간 거래에서 달러 결제를 배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미국으로부터 9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자, 프랑스 재무장관인 미셸 사팽은 국제 거래에 달러 이외의 다양한 화폐가 이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금본위제 아래에서 미국이 실제 금 보유량보다 더 많은 달러를 인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금을 적극적으로 인출함으로써 달러의 금본위제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한 전력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경제위기의 본질 (1) “부(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참조). 이러한 움직임들이 실제 달러에 대한 수요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인가는 좀더 두고 볼 일입니다만, 달러에 대한 위협이 예전보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이런 외부 요인보다 내부의 요인이 더 커 보입니다. 이미 달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 차례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까지 미국은 5조 달러 이상의 양적완화를 추진하였습니다. 2008년 상황은 달러가 구매력을 상실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5조 달러 이상의 달러가 추가로 시중에 공급됐습니다. 트리핀의 딜레마에서 설명했듯이,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공급량 증가는, 상품의 종류에 관계없이, 가격 혹은 가치의 폭락을 가져옵니다. 달러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석유를 포함해, 금속이나 귀금속 및 농산물 등의 원자재 가격을 보면,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졌다면, 이들 품목의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어야 정상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 현재의 원자재 가격이 비정상적 낮은 상태이며,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촉발되든,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든, 달러의 쇠락은 그동안 세계에 퍼져있던 부를 축소시킴으로써, 세계 모든 국가들을 가난과 빈곤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달러로 부를 축적한 나라들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이 쌓아올린 경제성장과 그 결과물인 부유함이 바로 달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매력 상실로 달러의 가치가 폭락하게 되면, 이들 국가의 부(富)도 함께 사라지면서 다른 국가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국가들 명단에 우리나라는 상당히 위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2. 양적 완화는 왜 답이 아닐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해, EU,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양적완화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풀린 돈의 힘으로, 마치 더 이상의 경제위기는 없는 듯, 미국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는 기록하고 있고, 금리는 2008년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과연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양적완화를 통해 해결된 걸까요.

지금까지의 글들을 잘 이해하고 따라오신 분들이라면, 위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미국이 엄청난 부를 만들어왔던 바탕에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뒷받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2008년 이후 서너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미국의 양적완화도, 달러의 수급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트리핀의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려보겠습니다. 다만, 이전의 그림과의 차이점은 S₂라는 달러의 공급곡선이 하나 더 그려진 것뿐입니다. 미국이 달러의 공급을 늘리는 것은, 달러의 공급곡선이 S₀에서 S₁으로 증가한 것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데, 기존에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D₀에서 D₁으로 늘림으로써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달러 인쇄를 대폭 늘린 것이므로, 이것은 달러의 공급이 크게 늘어난 것과 같습니다. 즉, 아래 그림에서 달러의 공급이 S₁에서 S₂로 이동한 것처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달러 공급량은 양적완화 이전 Q₂에서 Q₃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달러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이기 때문에 달러의 가치는 이전 수준을 유지 못하고 하락하게 됩니다. 현재의 위기가 달러의 구매력 고갈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 추가로 달러를 공급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그림에서 달러 가치는 P₀에서 P₂로 하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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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보면, 양적완화가 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문제의 해결책이 아닌지도 분명해집니다. 양적완화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의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입니다. 즉, 달러에 대한 수요가 고갈되어 문제가 발생하자 더 많은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 이것은 달러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키게 됩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는 없는데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 공급을 계속 늘리면, 최종 결론은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달러 가치의 폭락입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대원군 때 발행됐던 당백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백전 발행으로 조선사회는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몇 개월 사이에 20% 이상의 물가 상승을 경험했다는 것은 이전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경제위기의 본질 (3) “미국이 선택한 트리핀의 딜레마 해결 방법”> 참조)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화폐의 공급의 결과는 역사적으로 봐도 거의 항상 동일했습니다. 312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제조하기 시작했던 솔리두스 금화 또한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당백전과 동일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솔리두스 금화는 처음 제조되기 시작된 이후, 1020년 바실리우스 2세 때까지 700여년 동안 가치 하락 없이 그 가치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등으로 재정이 악화됐던 로마제국은 금 함유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솔리두스 금화의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렸고, 1080년경에는 금 함유량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이전의 금화 1개와 이때의 금화 10개가 같은 가치가 된 것입니다. 현대판 양적완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해당 화폐로 급여 받기를 거절하였고, 상인들도 해당 화폐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물가도 폭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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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us 금화>

화폐에 대한 수요라는 것은, 거래를 위해서든, 자산 보존을 위해서든, 해당 화폐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욕구입니다. 솔리두스 금화는 금 함유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렸다면, 당백전은 화폐 공급량을 늘림으로써 화폐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미국 달러 또한 양적완화라는 형태로 화폐 공급을 늘려왔습니다. 형태와 정책의 집행 기간 등에서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화폐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솔리두스 금화, 당백전, 미국 달러는 동일한 경로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돈을 푸는 방식으로 경제위기가 극복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의 경제위기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기 때마다 돈을 풀면 위기는 간단히 해결되었을 테니까요. 돈을 푸는 양적완화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기업 경기가 좋지 않고 소비가 부진할 때마다, 혹은 국가가 돈이 부족할 때마다, 돈을 풀어 문제를 해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위기는 돈을 풀어 해결된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일시적인 효과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아는 순간, 해당 화폐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화폐 가치는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솔리두스 금화 혹은 당백전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양적 완화 이후 달러 가치가 실제로 떨어졌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달러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주요 상품의 가격은 올랐을까요. 몇 가지 주요 상품(금, 석유, 곡물 등)의 가격 추세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한 동안은 상승 추세가 나타나지만, 2011년 이후에는 정체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2011년에 양적완화를 멈춘 것도 아닙니다.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말까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라는 정책을 통해, 단기 국채를 매각하고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을 시장에 달러를 공급합니다. 그리고 2012년 9월부터 2013년 말까지 1조 2800억 달러의 채권과 모기지를 매입하는 제3차 양적완화도 실시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상품가격이 오르는 것을 멈춘 2011년 이후에도 달러 공급은 계속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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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美 양적완화 축소 시작]美 경제회복 자신감 불확실성도 걷혀” (2013. 12. 20)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달러가 시장에 풀리면 물가가 급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2011년에 가격 상승이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올랐어야 정상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원인은, (1) 상품시장 내부의 수급에 의한 요인과, (2) 화폐의 공급량 변화에 의한 요인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화폐 공급량 변화를 보면, 어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기 위해서는 화폐 공급량이 줄어들거나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달러의 상황을 보면, 공급은 이전보다 더 늘어난 대신, 수요는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상품 가격이 하락한 것인 화폐적인 요인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격흐름도

그렇다면, 상품시장 내부의 요인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상품 가격이 하락하기 위해서는 공급이 크게 늘거나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거래량이 많은 몇 가지 품목만을 대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금 시장을 보면, 공급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반해, 중국과 인도 등에서 금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금 시장에 한정해 생각해보면, 금 가격이 내려갈 이유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곡물시장도 중국의 수요 급증과 이상기후 등으로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가격은 하락할 요인보다 상승할 요인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석유시장은 수요가 정체되거나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만, 석유시장은 공급량 조절이 가능한 일종의 과점시장의 특성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석유시장이 일부러 가격을 낮출 이유는 없습니다. 따라서 석유시장도 내부적으로는 가격 하락 요인이 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능성은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가격의 인위적인 조정입니다. 수요가 뒷받침될 때는, 달러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달러 공급이 늘었는데도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두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입니다. 해당 상품의 수요가 급감 혹은 공급이 큰 폭으로 늘어났거나,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을 했거나. 하지만 상품시장에서도 가격이 하락보다는 상승요인이 더 많다면, 현재의 가격이 인위적으로 조정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13. 양적 완화 이후 금 가격을 올랐을까

[1] 달러의 가장 강력한 대체재에 해당되는 금 시장을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달러가 수요라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가치가 유지됐다면, 금은 한정된 수량 때문에 가치가 유지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달러든, 혹은 다른 화폐든, 해당 화폐의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거의 항상 사람들은 금 보유를 늘려왔습니다. 금 가격 변화를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온스당 1000달러 이하에서 형성돼 있다가 금융위기 이후 급등하기 시작하여 2011년 9월 초 온스당 1900달러를 넘어서게 됩니다. 금 가격이 상승했던 이유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미국이 양적완화로 시중에 달러 공급이 늘면 달러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런 경우, 자산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는 금 보유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하지만 금 가격은 1900달러를 잠깐 넘어선 이후, 2011년 하반기부터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양적완화를 통한 달러의 공급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대규모 달러가 시중에 공급된다는 것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금 가격은 내려갔습니다. 따라서 화폐량의 측면에서 보면, 2011년 하반기부터 나타난 금 가격의 하락 추세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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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 시장 내부의 수요과 공급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산이나 사금 등으로 한 해 동안 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금의 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추출한 금은 17여만 톤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금 가격은, 골드러시 기간을 제외하면, 수요 요인에 의해 주로 결정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금 수요는 인도와 중국이 주도했습니다.

[4] 인도는 전세계 금 수요의 26%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금 수입국입니다. 장신구에 대한 수요가 많은 인도는 매년 엄청난 양의 금을 수입해왔습니다. 미국의 양적완화 이후, 국제 금 가격이 상승하자,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인도 사람들은 금 수입을 더 늘렸습니다. 금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로써는 금 수입 증가는 곧 경상수지 적자를 의미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급증하는 금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2012년 1월 2%였던 금 수입관세를 점진적으로 10%까지 인상합니다. 또한, 수입한 금의 20%는 의무적으로 재수출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도 국민들의 금에 대한 수요를 억누르기는 쉽지 않았고, 그 결과 2013년 하반기에 인도는 외환위기 상황에까지 몰리게 됩니다.

인도의 금 억제 정책이 인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어떤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금 수입이 가장 많은 국가가, 경상수지 적자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금 수입을 자발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도입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상당한 우연으로 보입니다. 또한, 경상수지 적자를 이유로 일시에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루피화가 폭락하였고, 이로 인해 인도가 외환위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는 사실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5] 인도의 금 수요 억제책에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인도의 금 수입이 주춤한 틈을 이용해, 금 수입을 대폭 늘렸습니다. 중국인들 사이에 금 사재기 열풍이 불었고, 이로 인해 금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일부 기관에 따르면, 2013년 세계 금 수요는 중국이 인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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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ative.cnr.cn/pic/201304/t20130419_512391845.html>

[6] 이상을 정리하면, 금 시장의 공급은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수요는 인도에서 조금 줄어들었지만 중국에서의 수요가 늘어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금 시장 내부의 요인에 의해서 가격이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2011년 하반기부터 나타났던 금 가격의 하락 추세는, 화폐 요인에 의해서도 설명이 안 되고, 금 시장 자체적인 수급에 의해서도 설명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가격을 낮췄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관련 글 보기 ==> 쉬어가기 (3) 세상의 모든 다큐: “비밀스러운 금의 세계”]

[7]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 금거래의 기준가격 역할을 하던 런던 금시장 가격을, 허수 주문을 통해 인위적으로 끌어냈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런던의 금 가격은 사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매 방식을 통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런던의 금 가격은 5개 은행(Deutsche Bank, Barclays Bank Plc, HSBC Bank USA, Bank of Nova Scotia-ScotiaMocatta, NA and Société Générale)의 협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이러한 금 가격 결정 구조는 1919년 9월 12일부터 로스차일드 주도로 처음 만들어진 이후 최근까지 유지돼왔습니다. 2004년에야 로스차일드가 금 가격 결정권을 Barclays Bank에 매도하면서, 최근까지 위에서 제시한 5개 은행이 금 가격을 결정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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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Nathan Mayer Rothschild와 그의 아들들이 좌장을 맡고 금 가격을 결정하는 모습. 이들은 금 가격을 결정한다 라는 표현보다 고정(fixing)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출처: http://info.goldavenue.com/info_site/in_mark/in_ma_lond_fix.htm>

[8] 누가 봐도 가격 결정의 투명성이 없는 가격 결정방식입니다. 이러한 우려는 2012년 6월 28일에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바클레이즈의 한 트레이더가 파생상품 계약 손해를 피하기 위해 금값을 인위적으로 내린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바클레이즈는 영국 금융감독청(FCA)으로부터 2600만파운드(약 45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또한 독일 연방금융감독위원회(Bafin)로부터, 금과 은 등 귀금속가격을 조작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이로 인해, 도이체방크는 올해부터, 금과 은의 가격 결정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금 가격은 4개 은행의 협의로 결정되고 있습니다.

[9] 지난해 4월 또 한 가지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2013년 4월 12일, 미국의 뉴욕상품거래소(COMEX)가 개장하자마자 금 100톤의 매도 주문이 떨어진 후, 2시간 후 다시 200톤의 매도 주문이 나오는 일이 벌어집니다. 몇 시간만에 300톤이라는 엄청난 물량이 시중에 풀린 것인데, 시장에 특별한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거래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의도적인 매도가 아니라면 이런 물량이 시장에 갑자기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금값 하락을 목적으로 한 의도적인 매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금값은 4월 11일 1555.75달러에서 16일 1378.00달러까지 급락하였습니다.

[10]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금 가격의 인위적인 조정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으며, 필요할 경우, 인위적으로 금 가격을 조정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2011년 이후의 금 가격은, 시장의 수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인 가격 인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인위적인 노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금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인위적인 조작은 한시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장기간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것도 시장의 힘을 이기기는 어려우니까요.

 

14. 구매력 고갈이 의미하는 것

이전 글에서, 이번 위기는 달러가 가지고 있던 부의 창출기능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문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의 창출 기능이 망가지면서, 새롭게 부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구매력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구매력이 고갈되면서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난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구매력이 고갈된다는 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머니가 비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은 또한,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살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상을 ‘수요 부족’이라고 합니다.

화폐가 가진 구매력이라는 것은 실제의 물건이나 상품 혹은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는 힘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구매력이 고갈된다는 것은, 화폐로 더 이상 다른 뭔가와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수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수요가 있으면 기업은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시장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급이 많아도, 수요, 즉 사려는 사람 혹은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부족하다면,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수요가 부족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수요 부족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돈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므로, 수요 부족현상이 나타나면 모든 품목에서의 소비 감소가 나타나게 됩니다. 집을 사고 싶어도, 자동차를 사고 싶어도, 외식을 하고 싶어도, 아이들 학원을 보내고 싶어도, 여행을 가고 싶어도, 스마트폰을 사고 싶어도,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부족해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수요가 줄어들면서 소비가 감소하기 시작하면, 해당 품목을 포함해,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중간재까지 모든 품목들의 소비도 함께 줄어들게 됩니다. 집이 거래가 안 되기 시작하면,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던 건설업체들도 위기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사 관련업체 또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 소비가 둔화되면, 자동차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철강업체의 매출도 줄어들게 됩니다. 학원 보낼 돈이 줄어들면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고, 외식이 줄면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급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행이 줄어들면서, 주유소 영업이 안 되고, 관광업계가 불황에 빠지게 되며, 현지 업체들의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스마트폰 또한 이러한 수요 감소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소비가 줄어들면서, 상품을 생산하던 기업과 상품을 소비자에게까지 연결시켜주는 유통업체도 함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게 됩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젊은층을 포함해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의 취업난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집니다. 취업난은 다시 사람들의 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게 됩니다. 매출이 줄어든 기업은 다시 인력을 줄이거나 문을 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고용은 더 줄어들게 됩니다. 악순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수요 감소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경제위기가 특정 나라의 경제문제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를 만드는 구조 자체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경제를 보면, 수요 감소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소비가 줄어들고 들고 있고, 이러한 세계적인 소비 감소는 국가간 무역까지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무역량이 줄어들자, 해상 물동량이 줄어들고, 이는 다시 해운업체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해운업체의 사정이 안 좋아지자,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고, 이것은 다시 조선업계에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이전보다 훨씬 치열해집니다. 최근 국내 조선업계와 해운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의 근본 문제를 추적해보면, 결국은 구매력 부족에 따른 수요 감소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업체들과의 경쟁이라든가, 환율 문제 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원인일 뿐입니다.

수요가 줄어들면, 이전에는 과잉상태가 아니었던 상품이나 서비스 시장도, 공급 과잉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사려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상품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노동시장도 동일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급속하게 늘어납니다. 노동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임금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실질임금은 하락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병원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병원도 공급 과잉에 시달리게 됩니다. 공급이 과잉이 되면,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가격의 폭락입니다. 가격이 폭락하면,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했던 기업은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갔던 비용도 건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파산하게 되고, 그에 따라 공급도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에 고용돼 있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기업의 도산으로 물건이 귀해지면서, 가격은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몰론, 이런 과정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몇 년에 거쳐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수요 부족이 나타나면, 초기에는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지만, 나중에는 기업의 파산으로 공급도 함께 크게 줄면서, 일반인들은 구매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지금 현재 국가 부도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터키, 동유럽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가 한 국가 혹은 한 기업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왜일까요. 바로 한 국가 혹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문제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을 주도해왔던 힘이 끝났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들입니다. 그것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독일이든, 중국이든,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기업들은 두말 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게 아무리 삼성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세계적인 수요 감소의 높은 파도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한 국가 혹은 한 기업이 지도자나 회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위기에 빠진다면, 그것은 그 국가 혹은 그 기업만의 문제일 뿐입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나 동종업계의 경쟁기업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나라, 모든 기업들이 수요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이 고안한 새로운 부의 창출방식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부의 덕분에, 미국과 일본과 한국과 중국이 함께 잘 사는 플러스 섬(plus-sum)의 시대가 도래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대가 끝나고,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독일도, 한국도 모두 가난해지는 마이너스 섬(minus-sum)의 시대가 막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경제가 위축될 것인가 하는 점뿐입니다. 우리의 소득이 어느 수준까지 줄어들 것인가, 혹은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난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15. 양적완화, 화폐가치, 그리고 금리

[1] 양적완화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의 부작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요.

[2]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기능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일반 상품과 같이, 화폐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이 있습니다. 바로 금리입니다. 커피 공급이 늘어나면 커피 가격이 떨어집니다. 화폐도 마찬가지로,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가 내려갑니다. 경제위기가 오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이유는, 위기 때 돈이 돌지 않으면서 시중에 돈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러면 돈의 가격인 금리가 올라가게 되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돈의 공급을 늘리게 됩니다.

[3]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몇 개의 대형 투자은행이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되자 투자한 돈을 잃을 것을 두려한 사람들이 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시중에 돈 부족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만약 그냥 두었다면,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의 상당수가 부도 위험에 놓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금리도 뛰었습니다. 이때 연방준비은행이 개입하여, 기준금리를 거의 제로 금리 수준까지 낮추고 금융기관들에게 긴급 자금을 지원해 급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보일 때마다 양적완화라는 정책 수단을 활용하여 시중에 달러를 공급하였습니다. 시중에 돈이 많이 공급되면서 돈의 가격인 금리도 내려갔습니다.

[4] 하지만 화폐는 커피와 같은 상품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거래에 이용된다는 점입니다. 커피는 시장의 수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커피가 다른 상품의 거래에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화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장에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화폐의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는 내려가지만, 그와 동시에 거래에 이용되는 화폐의 가치도 떨어지게 됩니다. 즉,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돈의 가격인 금리도 내려가지만, 다른 상품과의 거래에 이용되는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5] 이전 글에서, 양적완화는 달러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가치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화폐가 가지고 있는 구매력, 즉 무엇을 살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동일한 금액의 돈으로 이전보다 더 적은 물량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100달러로 100개를 살 수 있는 상품이 있는데,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게 100달러를 지불했음에도 100개를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폐가치가 5% 떨어졌다면, 동일한 금액으로 95개밖에 살 수 없고, 10%가 떨어졌다면 90개만 살 수 있습니다. 이전과 동일한 물량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화폐가치가 5% 하락했다면, 이전처럼 100개를 사기 위해서는 105.3원을 지불해야 하며, 10%가 떨어졌다면, 111.1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동일한 수량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을 물가가 올랐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폐가치 하락률을 물가상승률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6] 그런데 화폐의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와 화폐가치 하락과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금리는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금리는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비율보다 높거나 적어도 같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 금리는 5%인데 화폐가치는 10%가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러분이 은행이 100달러를 저금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1년 후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5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화폐가치는 10%가 하락했기 때문에 이전에 100달러이던 상품을 이제는 110달러 이상을 주어야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1년 전에는 100달러로 살 수 있었던 상품을 1년이 지난 지금은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5∼6달러를 손해 본 것입니다.

[7]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네, 맞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물건을 삽니다. 은행에 돈을 저금해서 손해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 은행은 돈 부족사태를 맞고, 상품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돈을 은행에 묶어두고 급등하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상품시장, 즉 실물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화폐가치는 더 떨어지고, 물가는 더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플레가 오면 일반적으로 정부는 금리를 인상하게 됩니다.

[8]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이제 금리를 r이라 하고, 화폐가치 하락률을 p라고 하면, 둘 사이에는 r≥p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초기에 금리가 r₀이고 화폐가치 하락률은 p₀라고 하면, r₀≥p₀이 됩니다(A점). 경제 위기 등의 이유로, 금리를 낮추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하면, 화폐 공급을 늘리게 됩니다. A점에서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금리가 r₁(B점)으로 내려가지만, 이때까지는 화폐가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즉, 화폐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p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 어떤 이유로 화폐 공급이 더 늘어나게 되어, 금리가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낮아지게 되면(C점), 즉, r₂<p₀가 되면서, 저축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실물을 구입하게 되고, 그러면서 화폐가치는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아래 그림에서는 p₀에서 p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화폐가치 하락률은 더욱 커져 최악의 경우 하이퍼 인플레(hyperinflation)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금리를 화폐가치 하락률 이상으로 올려야 합니다. 그 결과, 금리는 r₂에서 r₃로 급등하게 됩니다(D점).

interest_infla

[10] 보통 금리를 낮추기 위해 화폐 공급을 늘리게 되는데, 위에서 설명을 했듯이, 화폐 공급이 일정한 한계점을 지나면, 금리는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등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금리를 내리겠다고 화폐 공급을 늘렸는데, 금리는 오히려 급등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화폐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늘려서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 이것을 현재 경제상황과 연계시켜 이야기하면, 미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폐가치가 급락하게 되면, 다른 말로, 인플레가 나타나게 되면, 금리는 상승하게 됩니다. 현재 상황에서 인플레가 나타나게 되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부채가 많은 정부, 기업, 가계 모두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많은 국가들이 부도 위기에 놓일 수 있으며, 많은 기업과 가계들도 파산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금리가 인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금리가 낮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플레가 나타나면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인플레를 막아야 합니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장기간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 이면을 보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2] 현재까지는 미국이 인플레를 잘 막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플레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은 바로 연방준비은행입니다.

美인플레, 아직 Fed가 우려할 단계 아냐 (연합인포맥스, 2014. 7. 24)

[13] 일반적으로 국제 물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품목들이, 금, 석유, 곡물입니다. 금 시장은 이전 글(<경제위기의 본질 (11) “양적 완화 이후 금 가격을 올랐을까”> 참조)에서 현재의 금 가격이 경제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가격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석유도 사우디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농산물과 식품시장은, 공급 통제도 쉽지 않지만 수요 통제도 쉽지 않습니다. 농산물은 이상기후가 빈번히 나타나면서 생산량 조절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여기에 중국이 식품 수요를 늘리면서 수요 조절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인플레 우려는 항상 농산물과 식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침식사가 비싸진다…식품 인플레 공포 확산<FT> (연합뉴스 2014. 3. 18)

올해 엘니뇨 발생 가능성 최소 70%…인플레 불안 고조 (이투데이, 2014. 6. 9)

세계 물가 움직이는 중국 파워에 호주산 소고기값도 들썩 (헤럴드경제, 2013. 11. 12)

왕서방 ‘돼지사랑’에 세계가 출렁 (서울신문, 2014. 4. 26)

[14] 앞으로도 계속 저물가가 유지되면서 화폐가치 하락하지 않는다면, 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에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현재와 같은 제로 금리 혹은 저금리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됩니다. 인플레가 나타나면서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하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지탱해왔던 마지막 힘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금리가 큰 폭으로 인상된다면, 정부와 기업과 가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이 우리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본격적인 비극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미국이, 연방준비은행이, 인플레와의 싸움을 장기간 잘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6. 미국 제조업,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요즘 언론에 외국으로 나갔던 미국의 제조업이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날 기미가 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옵니다. 또한, 연준(Fed)도 양적완화 축소 혹은 금리 인상 등의 시행 기준으로 고용지표를 자주 언급합니다. 과연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나면, 세계경제는 다시 좋아질까요. 그 이전에 미국의 제조업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미국의 고용 지표는 좋아질 수 있는 걸까요.

제조업이 주목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조업이 가지고 있는 고용 효과 때문입니다. 미 연방준비은행도 출구전략 시행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지표 중의 하나가 바로 실업률입니다. 미국의 실업률이 6.5% 수준까지 내려오면 적극적으로 출구전략 시행을 고려하겠다는 것이 연방준비은행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그만큼 고용과 실업은 경기 회복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고용이 늘고, 그에 따라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고, 이것이 다시 시장수요 증가로 이어져, 기업들의 생산이 늘어나야 합니다. 산업은 크게 1차 산업(농업, 수산업 등)과 2차 산업(제조업) 및 3차 산업(서비스)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대규모 노동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고용하는 데는 제조업만한 산업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도 제조업의 회귀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제조업의 대규모 회귀가 가능할까요? 많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회귀한다면, 미국의 제조업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미국 제조업의 부활 여부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미국에서 생산된 상품을 팔 곳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다른 나라의 화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됩니다. (이것을 트리핀의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본질 (6) “또 다른 딜레마의 출현”> 참조>.) 인건비와 물류비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생산된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강(强)달러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상품보다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캄보디아산 셔츠와 미국산 셔츠가 시장에서 팔린다고 할 때, 물론 미국산이 품질이 더 우수할 수는 있어도 가격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미국산 셔츠가 경쟁력이 있을까요. 일부 팔릴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대규모 노동력을 고용해 대규모 의류공장을 운영할 만큼 대량의 셔츠’를 만들어 외국에 팔기는 어려울 겁니다. 더 저렴한 상품을 수입하여 소비할 수 있는데, 굳이 미국의 비싼 상품을 구입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제조업이 일시적으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생산한 물건을 팔 곳이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규모로 제조업이 다시 살아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강달러의 환경에서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1)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아니면 (2) 소수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고부가치산업은 소수에게만 돈 벌 기회를 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의 불균등이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제외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벌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고, 빈민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반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제조업이 미국의 제조업이 일시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기술을 노동력이 저렴한 개도국에 적용하게 되면 더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미국에 공장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이 아이폰을 생산하는 아주 효율성 높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할 때, 동일한 기술을 미국 공장보다 노동력이 저렴한 중국 공장에 적용하면 애플은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굳이 비싼 인건비를 사용하면서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제조업 상품의 경우,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노동력이 저렴한 개도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따라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이 단기적으로 미국의 제조업 부흥에 일정 정도 기여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분야는 고부가가치산업(국방, 우주, 항공, 영화, 스마트폰 OS 등)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축통화국이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이러한 결론은 이미 <경제위기의 본질 (6) “또 다른 딜레마의 출현”>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해외 직접구매가 유행하고 있지만, 그렇게 미국에서 들어오는 상품들(제조업 상품) 가운데 순수한 미국산은 많지 않습니다.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미국이라는 소비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간 것이고, 이런 상품을 직접 구매로 들여오고 있는 것입니다. TV든, 의류든, 미국에서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된 상품은 개도국에서 생산된 상품만큼 저렴해질 수가 없습니다. 고부가가치상품이 아닌 일반 상품의 경우, 미국산 제품, 특히 제조업 상품은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미국산 상품의 생산을 늘리고자 한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정부가 구매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같은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

먼저 미국 기업이 생산한 비싼 상품을 미국 정부가 매입해주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소비자 또한 구매력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규모 물량을 소비할 여력은 없습니다. 미국 정부도 이미 부채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추가로 지출을 늘릴 형편이 안 됩니다. 남아있는 한 가지 방법은,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은행로부터 대규모 달러를 빌려와 미국산 상품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양적완화에 해당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달러 가치를 더욱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또 따른 방법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비싼 미국산 상품을 팔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혹은 평상시의 상황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상시가 아닌 특별한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전시와 같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미국산 물건이 비싸더라도 팔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이 부를 축적했던 계기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면서였습니다. 전쟁 중인 국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전쟁 물자 확보에 쏟아 부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가 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전쟁 상황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부를 미국에 고스란히 가져다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전쟁물자와 생필품 등을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고, 그 대가로 금과 같은 자산을 미국에 지불해야 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그 기회를 잘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미국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얻는 과정을 보면, 평상시 제조업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기보다 전시라는 비상상황을 통해서 부를 더 많이 축적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시였다면, 아마도 미국이 그렇게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전시와 같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그 비싼 미국산 상품을 수출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축통화국이 비싼 상품을 파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런 상황이 아닌 한, 비싼 상품을 대량으로 팔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터가 미국 땅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도 필요합니다.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통해 미국산 상품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 상황을 가정해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상수지가 흑자가 나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는 앞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던 트리핀의 딜레마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의 경상수지가 흑자가 되면, 그만큼 세계의 달러는 미국으로 흡수되면서 달러의 공급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 경우, 국제 결제에 달러를 사용하고 싶어도 달러가 없어서 결제통화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각국은 돈 가뭄에 시달리게 되면서 세계경제 자체가 엄청나게 위축되게 됩니다. 결국 미국 경제도 다시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축통화국은 경상수지 흑자국이 되어서는 안되고, 적자국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써의 미국의 역할은, 달러의 구매력을 유지하면서 수입을 확대해, 다른 나라들의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지, 스스로 상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기축통화국의 임무는, 다른 나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여 ‘소비’를 함으로써 기축통화를 전세계에 보급하는 것이지, 상품을 만들어 ‘수출’을 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즉, 기축통화국의 역할은 ‘소비’이지 ‘생산’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제조업이 되돌아와 과거와 같은 제조업 왕국의 모습을 다시 갖추는 것을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조업은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했던 부분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제조업의 회귀 가능성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태도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연방준비은행이 출구전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실업률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 글을 꼼꼼이 읽으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미국의 지금 위기는 제조업 때문이 아닙니다. 제 글 어디에도, 미국의 경제 위기가 제조업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제조업이 회귀하느냐 마느냐 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돌려 이야기하면, 연방준비은행이 출구전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실업률이, 사실은 실제 출구전략의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현재 경제위기는 그동안 달러가 만들어왔던 부가 고갈되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출구전략의 기준 또한 부의 재충전 혹은 부의 재창출 혹은 달러 가치 회복 등이 되어야 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달러 가치의 회복 여부, 즉 달러에 대한 수요가 회복되었는지의 여부가, 출구전략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연방준비은행은 현재 위기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실업률을 출구전략의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실업률이 출구전략의 핵심 지표인 것처럼 행동하는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의도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중립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달러 가치 회복을 기준으로 삼든, 직접 관련이 없는 실업률을 기준으로 삼든, 연방준비은행(Fed)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Fed가 벌어준 그 시간을 잘 활용하여 다가올 세상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면 된다는 점입니다. Fed는 2008년부터 6년여 가까운 시간을 우리에게 벌어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Fed는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개월도 안 남았을 수도 있고, 몇 년이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준비했는가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의 생존 여부가 결정나게 될 것입니다.

<계속>

경제위기의 본질 (2)

17. 미국은 금리를 인상할까

현재 미국에서 비롯된 세계경제 위기의 본질은 달러 가치의 하락이 있고, 그 바탕에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더욱이 최근 출구전략을 이야기하면서 금리 인상 이야기가 더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 연방준비은행(Fed)의 태도를 보면, 거의 항상 혼란스러운 신호를 주고 있습니다. 일부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을 중심으로 빠른 시일 내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연준의 공식 발표문을 보면 지금의 낮은 금리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실업률이나 성장률 등이 개선되면서 테이퍼링(tapering, 양적완화 축소)을 마무리해가는 과정임에도 금리에 대해서는 명확한 시그널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인지, 현재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금리는 단순한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출이 있는 사람의 이자를 결정하고, 채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투자 수익이 바뀌기도 합니다. 기업들의 활동이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주가가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환율이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생활 주변의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금리 변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투자자든 대출자든, 금리의 향방에 따라 희비가 갈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은 미국 금리의 향방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경제위기의 본질 (13) “양적완화, 화폐가치, 그리고 금리”> 참조)을 꼼꼼히 읽으신 분이라면, 이미 답을 아실 겁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환경은 두 가지입니다. (1)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경제가 활황일 때와 (2) 공급측의 원인으로 물가가 급등할 때입니다. 경제가 활황일 때는, 금리를 인상해도 전반적으로 수익성 높은 활동이나 투자가 많기 때문에 큰 문제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예전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의 금리가 12%를 넘었던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보다 서너 배는 금리가 높았지만, 경제 성장률 또한 그 정도 되었기 때문에 높은 금리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침체되는데 물가가 뛰는 상황이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전 글(<경제위기의 본질 (13) “양적완화, 화폐가치, 그리고 금리”> 참조)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물가가 뛰기 시작할 때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화폐를 버리고 실물시장으로 뛰어들기 때문에 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돌려 이야기하면, 화폐가치가 폭락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리를 적정 수준까지 올리지 않으면,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짐바브웨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전에 100원 하던 물건이 오후가 되면 200원이 되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500원이 되는 상황에서,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물건을 사려고 하겠지만,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팔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오늘 100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을 내일이면 500원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는 것이 유리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기다리면 가격이 계속 올라가니까 지금 당장 팔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물가가 급등하게 되면서, 시장에서 물건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슈퍼마켓의 매대가 모두 비고, 냉장고가 비고, 식품코너가 모두 비면서, 사람들은 생필품마저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금리를 인상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미국 상황은 어떻기에 금리의 향방에 대해 정확한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걸까요. 일단, 현재의 미국이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2년 말 미국의 일시차입 부채( unfunded liabilities)는 122조 달러였습니다. 올해 초 미국 정부가 한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부채 한도가 16조 7000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140조 달러를 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140조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금방 감이 잘 안 올 텐데요, 우리나라 국민이 1년간 일을 해 벌어들이는 돈을 GDP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GDP가 1.3조 달러 정도 됩니다. 140조 달러면 우리나라 국민이 110년 정도를 일을 해야 갚을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1%p만 상승해도 미국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가 1.4조 달러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해도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이만한 돈을, 금리가 1%p 오르면 미국이 추가로 부담을 해야 합니다. 만약 2%p가 올랐다면, 추가 부담액은 2.4조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미국 정부도 문제지만, 미국 가계의 주택대출, 청년층의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 민간부문의 대출도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가계부채만 보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3/4분기 12조 5000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기준 11조 5,210억 달러까지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1조 달러가 넘는 수준입니다. 금리가 인상되면 가계부문도 역시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가계의 부채가 건전화되기 위해서는 집값이 상승하거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나 소득이 증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미국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일시적으로 한두 달, 혹은 수 년에 걸쳐, 2008년 위기가 해소되거나 개선되는 것처럼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즉, 달러 가치의 상승과 그에 따른 부의 확대, 그리고 경제성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원위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 및 민간부문의 부채를 고려하면, 미국도 지금은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로 식품 부문을 중심으로 인플레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농무부(USDA)가 전망한 올해 식품가격 상승률을 보면, 2.5~3.5%에 이릅니다.식품가격 상승이 바로 전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임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물가를 자극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인플레 수준에 맞게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달러 가치는 더욱 폭락하게 되면서 미국이 가지고 있던 부는 더욱 축소되고 미국 경제는 더욱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해야만 합니다. 일부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금리를 제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현재 미국은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인데, 물가가 들썩이면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내부의 사정이 이렇다보니까, 연준(Fed)이 보내는 시그널도 일정치가 않습니다. 그 동안 연준이 출구전략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실업률 6.5%였습니다. 실업률이 6.5% 아래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행하겠다는 것인데, 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연준은 올해 초부터 금리를 인상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양적완화 규모만 축소했고, 더욱이 출구전략의 기준도 실업률 대신, 성장률, 고용,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번 7월 말에 있었던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이전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회의가 열리기 전, 시장에서는 양적완화 축소 추세를 볼 때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상에 대한 시그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거의 매월 100억 달러씩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출구전략의 핵심인 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준은 새로운 문구를 도입하면서 지금의 초저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합니다. 그러면서 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자원의 저활용(underutilization of labor resources)라는 문구입니다. 한 마디로, 노동력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노동력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경기도 개선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등 노동시장 조건도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한 내용과는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그 동안 연준(Fed)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은 근거의 하나로 실업률을 제시했었는데, 실업률이 하락하자 노동력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는 새로운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간접 표현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연준은 이러한 애매한 입장을 계속 유지해나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분명 미국의 경기 상황을 보면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인플레를 고려하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인상 시기는, 실업률이 아닌, 물가상승률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품을 중심으로 점차 물가 상승 압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저물가 저금리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2008년 이후 5년여에 걸쳐 5조 달러가 넘는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기간 저물가를 유지해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현재 상태로 간다면, 내년쯤에는 실업률이 아닌, 인플레 때문에 금리를 어쩔 수 없이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그 동안 한계상황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세계경제 자체가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18. 미국 채권 금리의 비밀

미국의 시장금리 인상에 앞서, 금리 인상 조짐이 나타날 수 있는 시장이 바로 미국 국채시장인데, 국채시장은 달러에 대한 수요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입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지속된다면, 미 국채에 대한 수요도 지속되겠지만, 만약 달러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국채 수요도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국채 가격과 국채 금리(수익률)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국채 가격이 상승하면 국채 금리는 하락하고, 국채 가격이 내려가면 금리는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채권시장은 금리 변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면 채권가격이 상승하면서 이익을 보지만, 반대로 금리를 인상하면 채권가격이 떨어지면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의한 기준금리 변동을 제외하면, 채권시장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입니다. 채권 수요가 늘어나면 채권가격이 올라가면서 채권금리가 떨어지고, 채권 수요가 줄어들면 채권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상승하게 됩니다. 따라서 채권금리를 낮게 유지하려면 채권가격이 높아야 하고, 채권가격이 높으려면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아야 합니다. 이전 글(<경제위기의 본질 (15) “미국은 금리를 인상할까”> 참조)서 현재 미국은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채권 금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채권금리가 낮게 유지되려면,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연방준비은행은 양적완화 축소를 명목으로 채권 매입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방준비은행이라는 중요한 채권 수요자가 하나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연준은 미국 채권의 중요한 매입자이자 수요자였기 때문에, 연준이 채권 매입을 줄인다는 것은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미 국채에 대한 연준의 수요를 대체할 만한 수요가 새롭게 생기지 않으면, 미 국채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 여파로 러시아는 미국 국채를 시장에 많이 매각하였습니다. 따라서 미 국채시장만을 두고 보면, 연준의 매입 축소로 수요는 줄고 있는데, 러시아의 미 국채 매각으로 공급은 늘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채권가격이 떨어지고 채권 금리가 올라가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의 변화를 보면, 지난해 9월과 올 1월에 잠깐 3.0%에 도달한 이후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새로운 수요자, 그것도 연준의 테이퍼링(tapering, 양적완화의 축소) 물량을 흡수하고 러시아가 매각하는 채권까지 모두 매입할 수 있는 대형 수요자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에 대한 답은 미 국채를 보유한 국가들의 국채 보유액 변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미 국채 보유액 규모별로 나라들을 나누어, 미 국채 보유액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없지만, 오직 한 나라만 미 국채 보유액이 크게 변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벨기에(현지어로는 Koninkrijk Belgie, 영어식으로는 Kingdom of Belgium)입니다. 지난해 중반까지의 벨기에의 미 국채 보유액은 1,700억 달러 수준이었습니다만, 지난해 연말부터 보유액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3,641억 달러(2014년 7월)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미 국채 보유액은 575억 달러입니다.

 

벨기에라는 나라는, 단순히 경제규모로만 보면, GDP가 5,081억 달러(2013년 기준)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로, 우리나라 GDP(1조 3,050억 달러)의 4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런 작은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채권이 우리나라 보유액의 6배가 넘습니다. GDP 대비 미 국채 보유 비율을 계산해도, 우리나라가 겨우 4.4%인데 반해, 벨기에는 무려 71.6%에 이릅니다. 이것은 벨기에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채권 모두가 벨기에 자금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벨기에는 각국의 국채 등 증권을 결제할 수 있는 국제 결제기관인 유로클리어 뱅크(Euroclear Bank SA) 본부가 있어, 이곳을 통하면 미 국채 매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최근 미 국채 보유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유로클리어 뱅크를 통해 누군가 우회적으로 미국 채권을 매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건은 벨기에를 통해 미 국채를 매입한 주체가 누군가 하는 점입니다.

언론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벨기에를 통해 미 국채를 매입한 주체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중국을 지목하고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중국이 미 국채를 매입할 필요성이 충분히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국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약세가 절대적인데,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이 미 국채를 대량 매입했다는 주장입니다. 미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채권 가격이 올라가면서 달러도 강세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위안화는 자연스럽게 약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단기간에 그만큼 거액의 미국 채권을 매입할 만한 여력을 가진 나라가 중국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중국을 지목하기도 합니다.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일본은 내부 사정상 단기간에 그렇게 대규모 미 국채를 매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 외의 국가들은, 캐리비안 연안국들이나 석유 수출국들을 포함해, 몇 개월 사이에 1,700∼1,800억 달러라는 돈을 동원할 만한 여력을 가진 나라가 없습니다. 따라서 단기에 거액의 자금이 미 국채 시장에 흘러들어왔다면, 그만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중국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미 국채를 매입해야 할 필요성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선뜻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환율시장을 통해서 위안화 약세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이미 충분히 많은 규모의 미국 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으면 우주에서 만리장성은 안 보여도 중국이 가지고 있는 미국 채권은 보인다는 농담이 생길까요.

하지만 미국은 채권 매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채권 금리가 상승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수순으로 가야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했듯이, 미국은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금리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테이퍼링을 하는 과정에서, 연준이 매입을 축소한 미 국채를 누군가 매입해주지 않으면 국채 금리가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014년 초에 미국 채권의 주요 수요층을 보면, 연준(Fed) 이외의 기관의 채권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준 이외에 미국 정부의 채권을 살 만한 수요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양적완화를 축소하면서 채권 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체 수요자를 찾거나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한, 벨기에가 미국 채권 매입을 늘린 시기를 보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한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벨기에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 국채를 매입한 주체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중국과 미국, 양국 가운데 채권 매입의 필요성이 높은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요.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중국보다는 미국이 국채 매입을 해야 할 필요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어쩌면 미국은 달러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출구전략의 전단계인 양적완화 축소를 추진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진행된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때문에 달러의 가치에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방치하게 되면 달러 가치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달러 가치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는 달러 가치가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런 수단의 하나로써 양적완화 축소를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0년물 국채 금리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월에는 2.99%까지 올랐고, 올해 초에는 3.0%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채권 가격은 더 하락하고 금리는 추가 상승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연준으로써는 달러 가치 하락을 막으면서도 채권 금리를 낮출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준이 채권을 매입해주지 않으면 그만한 물량을 매입할 주체가 없기 때문에 채권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달러 가치가 변함 없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면서도, 채권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찾아낸 방법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벨기에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미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벨기에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 채권을 매입한 주체가 미국인지 중국인지 현재로써는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회 매입을 통해 중국보다는 미국이 더 큰 이익을 본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위에서 이야기한 추측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일단 미국은 양적완화 축소를 통해 시장에 긴장감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올해 들어 계속 하락추세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이제 연준이 달러 가치 유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연준은 달러 가치 하락을 막으면서도 금리 인상도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합니다. 출구전략, 혹은 달러 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두 가지 수단 가운데, 양적완화 카드는 이미 사용했습니다. 물론, 벨기에를 통해 우회 매입하는 방식으로 채권 금리 상승을 막기는 했지만요.

이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연준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금리 인상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양적완화 축소와 달리, 우회 매입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달러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연준의 다음 카드는 무엇일까요.

 

19. 경제성장이란

지금의 경제위기는 개별국가의 위기가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의 위기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세계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큰 문제가 없이 굴러갑니다. 개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별국가의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위기 없이 지날 수 있습니다. 개별 국가의 경제도 세계경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성장할 때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세계경제가 침체된다면 개별국가의 경제도 침체에 빠질 우려가 높습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경제 성장이 멈추면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경제성장의 원천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동과 같은 투입재를 늘려서 성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개발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투입재를 늘린다는 것은 학생이라면 공부시간을 늘리는 것이고, 노동자라면 일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고, 기업가라면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노력’ 혹은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한 성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둘째는 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이전과 동일한 공부시간, 동일한 노동시간, 동일한 근무시간에도 더 높은 실적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전에 한 사람이 한 시간에 10개를 생산했다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진 후에는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12개를 생산하게 됩니다. 따라서 12개의 상품은 노동력 투입을 통해 생산된 10개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생산된 2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을 통한 성장에 생산성 향상에 의한 물리적인 물량 증가만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1차산업에서 경공업,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공업에서 IT 등의 첨단산업 등으로의 산업 자체의 전환도 포함됩니다. 이와 같이, 경제학적으로 경제 성장은 크게 (1) 투입재 증대에 따른 성장과 (2) 생산성 향상에 따른 성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노동력 투입을 늘리고, 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경제는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을 통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국가나 기업들은 새로운 먹거리 혹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연구비를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렇게 하면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지 않거나 혼동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부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위기의 본질 (1) “부(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71년에 금(金)본위제가 폐지될 때까지 세계적으로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금이었고, 이 당시에는 금(혹은 금으로 교환이 가능했던 미국 달러)을 가능한 한 많이 자기 나라로 가져오는 것이 경제성장이었고, 그렇게 금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금이 부의 척도인 시기에는, 금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금을 자기 나라로 가져오지 않는 한, 경제가 성장하고 부자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금은 새롭게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부를 창출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단지 기존에 존재하던 금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달러가 석유와 연계된 이후에는 미국 달러가 구매력을 갖춘 새로운 부(富)로써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미국 달러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되었고, 미국 달러를 많이 보유한 국가가 부자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때부터는 부라는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전의 부라는 것은 총량이 거의 정해져 있어 단지 이 나라에서 저 나라에서 옮겨가는 것이었다면, 이때부터의 부는 총량 자체가 급속하게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부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동시에 부자나라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성장을 보면, 1971년 이전까지는 다른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금을 자기 나라로 가져오는 것이 경제성장이었다면, 1974년 이후에는 미국 달러를 많이 가져오는 것이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한 나라가 부자나라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 미국이 했던 것처럼 부를 직접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의 부를 자기 나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처럼 스스로 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총이나 칼과 같은 무력(武力)을 사용하여 강제로 빼앗아오거나, 상품을 수출하여 다른 나라의 부를 가져오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부를 자기 나라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 성장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경제 성장의 두 가지 요소, 즉 투입재에 의한 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의한 성장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수출시장에서의 경쟁과 관련된 요소들입니다. 즉, 수출시장이 미국이라고 하면, 미국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혹은 베트남 상품이 아닌 우리나라 상품이 판매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인데, 가격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임금입니다. 생산요소 투입을 늘려서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 성장을 하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임금이 저렴하다면, 그 노동력을 이용하여 생산한 상품의 가격도 다른 나라 상품보다 저렴해지기 때문에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 성장 초기에 있는 대부분 국가들은 자국이 가지고 있는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경제성장에 집중합니다. 일본이 그렇게 했고, 한국이 그렇게 했고, 중국이 그렇게 하고 있고, 베트남이 그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수출은, 시간이 지나면서 임금이 상승하고 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국가가 새롭게 수출시장에 등장하면서, 점차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국가는 이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산업의 형태를 바꾸어야만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1차산업에서 경공업, 경공업에서 중공업, 중공업에서 IT산업 등으로의 전환을 적절한 시기에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은 경제성장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때,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산업 구조를 바꾸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연구개발 투자이니, R&D 투자니 합니다. 따라서 연구개발이니 R&D니 하는 것들은 그 자체가 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부에 있는 부를 내 것으로 혹은 우리나라로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입니다. 즉, 연구개발 자체가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가져오려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개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경제성장을 취업시장에 비유하면, 개별 국가는 취업준비생이 되고, 부(富)라는 것은 일자리가 됩니다. 기술개발이니 이런 것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개인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연구개발을 한다는 것은, 취업준비생이 개인적으로 취업에 필요한 각종 준비를 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영어학원을 다니며 영어성적을 올리고, 학점을 올리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봉사활동을 하고, 인턴을 하는 것 등이, 개인 차원에서의 연구개발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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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중요한 것이 취업 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일자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일자리와 개인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취업 준비를 아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일자리 자체가 없다면 취업 준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취업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일자리 자체가 아주 많다면 취업은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이 쉽게 직장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개인적인 노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일자리라는 기회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청년층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들이 기성세대보다 노력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 국가들의 경제성장도 동일합니다. 일자리 자체가 감소하면 개인들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듯이, 세계경제 전체든 개별 국가든 부 자체가 축소되는 상황이라면, 개별 국가들의 노력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원래 일자리라는 것이 취업 준비생들의 손을 떠나 있듯이, 부라는 것도 개별국가들의 손을 떠나 있습니다. 취업 준비를 잘 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듯, 금리를 낮추고 적자예산을 편성하여 재정정책을 편다고 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편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 투자를 늘리니 기술개발을 하니 하는 것들은 부를 가져오기 위한 남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부 자체는 아닙니다. 부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 혹은 부를 가져오기 위한 경쟁에서 남을 이기기 위한 수단과, 부라는 것은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을 한다는 것도 다른 사람의 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한 방법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취업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증가해야 하듯이,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세계의 부(富)가 증가해야 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많은 스펙을 쌓고 취업준비를 하더라도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면 취업이 어렵듯이, 개별 국가들의 수많은 정책들도 부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정책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둘째는 늘어나는 부를 해당 국가로 가져올 수 있는, 즉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일자리가 많아도 개인적인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취업이 어렵듯이, 세상의 부가 아무리 늘어나도 개별 국가들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은 단지 다른 나라의 일이 됩니다. 따라서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미국이 새롭게 창출한 부가 확장되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노력이 합쳐져, 그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술개발이나 연구투자 등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만, 연구에 대한 투자나 기술개발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 부를 만들어내는 수단은 되지 못합니다. 부라는 것은 우리들 손이 아닌 저 바깥 세상에 따로 있습니다.

 

20.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는 이유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현재의 위기는 개별 국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부(富)가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세계 경제 전체의 현상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위기가 해결될 수 있는가의 여부도 부를 지금보다 더 늘릴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를 지금보다 더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현재의 경제 위기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세계적인 부의 축소와 그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경기 침체를 막으려는 각국 정부의 다양한 정책들도 효과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은 두 말할 여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라는 것은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각국은 재정정책을 사용하든 금융정책을 사용하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종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추경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정부의 정책들은 지금의 경제위게에서 약발이 들지 않는 걸까요.

통화정책 약발 다 했나… 구조개혁 절실 (세계일보, 2015. 4. 19)

3차례 금리 인하ㆍ재정 확대도 약발 안먹혀…추경 ‘특효 처방’ 논란 커질 듯 (한국일보, 2015. 4. 23)

일반적으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정책은 크게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문별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금융정책은 금리나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시장의 돈의 양을 관리하는 정책입니다. 특히, 금리는 금융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의 하나에 해당됩니다. 이에 반해, 재정정책은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들인 수입을 다양한 형태로 민간에 푸는 정책을 의미합니다. 도로 건설, 각종 관급공사 등을 통한 정부 지출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재정정책은 원칙적으로 세금으로 걷은 만큼만 지출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습니다. 반면, 금융정책은 돈의 양을 조절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자칫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물가를 상승시킬 우려가 있고, 너무 적게 풀리면 금리가 상승하면서 경기를 위축시키기도 합니다.

문제는 재정정책이든 금융정책이든, 부를 만드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 나라 경제를 운용하고 관리하는 수단이지, 부의 창출 수단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1년까지의 부는 금(gold)이었고, 미국 달러와 석유를 연계시킨 1974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부는 구매력을 가진 달러였습니다. 금(gold)으로 평가되든, 미국 달러로 평가되든, 부는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재정정책을 통해서 부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금융정책을 통해서 부가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정부 혹은 중앙은행들이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로 돈을 풀어도 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2008년부터 거의 7년째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는 지금 엄청난 활황을 경험하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로 금리와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 마찬가지입니다. 금융정책으로 부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들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침체에서 벗어났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또 다른 양적완화를 추진해야 한다거나 양적완화 축소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금융정책들을 보면, 경제를 회복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화폐가치만 떨어뜨리면서 경제 자체에 대한 신뢰성만 훼손시켰습니다. 아직까지는 물가 관리가 잘 되어(정상적인 가격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화폐가치 하락폭이 크지 않았습니다만, 화폐와 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면 물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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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준금리의 변화>

정부의 재정정책 또한 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금융정책과 동일합니다. 재정정책은 국민 혹은 법인들이 낸 세금을 정부가 하는 각종 사업 등에 활용하는 정책입니다.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은 정부가 지출을 평소보다 더 늘리는 것이 됩니다. 경기가 위축되는 것으로 판단되면, 정부는 각종 공공사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지출을 늘립니다. 정부 지출이 늘면, 시중에 돈이 그만큼 더 많이 돌게 되므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돈이 부족할 경우에는 채권을 발행해 지출을 확대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일명 적자 재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는 세수도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지출을 늘릴 여력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항상 정부의 재정 적자가 확대됩니다. 일본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고, 유럽의 국가들이 그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대규모 적자 재정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이제는 정부 자체가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국가 자체가 부도 위기에 몰리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재정정책은 단지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정책이지, 부를 만들어내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정정책도 정부의 지출을 늘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모두 시중에 돈 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재정정책은 화폐를 신규로 발행해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화폐에 대한 신뢰성이나 물가에 미치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 반해, 금융정책은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높다는 것입니다. 대신, 재정정책은 부채 증가로 정부 혹은 국가의 부도 가능성을 높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1년 이전까지 부의 축적 수단이었던 금이 각국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1974년 이후의 부의 축적 수단이었던 미국 달러 또한 각국의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금리를 낮추고, 적자 재정을 운용해도, 그것은 미국 달러로 표시되는 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화폐와 화폐 사이의 교환 비율, 일명 환율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달러로 대표되는 부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미국의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도 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부(富) 자체로써 달러는, 미국의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석유 결제를 미국 달러 단일화폐로 만들고 석유 소비를 확대하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각국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은, 지금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좀더 빨리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1974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우리가 누렸던 부보다 더 큰 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아무리 제로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양적완화를 수십 차례 도입해도, 유럽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유로화를 시장에 공급해도, 일본이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재정적자를 지금보다 더 늘려도, 중국이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위안화 공급을 늘려도, 결론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달러가 석유가 아닌 다른 어떤 것과의 연계를 통해 이전보다 더 큰 부를 만들어내거나,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가 새로운 방식으로 미국이 만들었던 부보다 더 큰 부를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경기 쇠퇴 추세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현재대로 간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경제적 파국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1. 위기의 징후는 채권시장에서 시작된다

[1]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세계는 세계가 가지고 있던 혹은 달러를 통해서 만들어냈던 부를 소비로 모두 소진하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빌려 경제성장을 해왔는데, 이제는 빚도 더 이상 빌리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채가 많은 국가나 가계 혹은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금리가 인상되는 것입니다. 금리가 인상되면, 부채로 그나마 겨우 연명하던 상황 자체가 끝나면서, 국가와 가계와 기업이 모두 파산과 부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 자체가 무너지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주 심각한 수준의 파국을 맞게 됩니다.

[2]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 각국은 금리도 인하하고, 정부 부도를 감수하면서까지 적자 재정을 펼치기도 합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EU는 그것도 모자라 양적완화라고 화폐량을 대량으로 늘리는 정책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시중의 통화량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늘어나 있고, 정부와 기업과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의 부채 역시 사상 최대 수준까지 늘어나 있습니다.

[3] 하지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의 원천은 이미 오래 전에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국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구매력의 회복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구매력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구매력의 원천인 부(富)가 이전보다 더 크게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정책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부를 늘리기 위한 정책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른 임시방편의 대책과 정책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파국을 피할 수 있다고 기대를 하기보다는, 파국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파국 상황이 오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열심히 대비하고 준비하는 일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4] 그렇다면, 파국의 전조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부채의 최대의 적은 금리 인상입니다.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한계상황에 몰려 있던 가계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파국 상황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그 동안 가계와 기업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던 정부도 정부 자체가 부도 위험에 빠지게 되면서, 정부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날개 없는 추락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리 인상이 본격적인 파국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먼저 인상되기보다는 거의 항상 시중 금리의 움직임을 뒤에서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기 전에 다른 곳에서 금리 인상의 징후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5] 현재 상황에서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화폐 가치의 하락입니다. 화폐 가치의 하락은 단기적인 경로와 중장기 경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금리 인상을 부추길 것으로 보입니다. 중장기 경로는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입니다. 물가가 상승하면,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금리가 인상되어야만 화폐 가치의 추가 하락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위기의 본질 (13): “양적완화, 화폐가치, 그리고 금리>에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6] 그렇다면, 단기적인 경로는 무엇일까요. 바로 국채를 포함한 채권시장입니다. 채권라는 것은 국가 혹은 기업이 돈을 빌리면서 주는 일종이 부채 증서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종의 이자에 해당되는 수익률 혹은 금리가 따라 붙습니다. 이렇게 발행된 채권은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채권 금리는, 물가와 달리, 매일매일 시중의 수급 사정에 따라 오르고 내립니다.

[7] 국채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화폐 가치가 금리보다 더 빠르게 떨어지거나, 해당 국가의 경제 상황이 악회되어 채권에 대한 이자를 받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채권 소유자는 국채를 매각해 현금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현금화하는 국채 물량이 급증하면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서 국채 가격이 하락하게 됩니다. 국채가격은 금리와 역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채가격의 하락은 곧 국채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8] 일반적인 경우, 국채시장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는 많지 많지만, 화폐가치 하락폭이 커 손실 가능성이 크거나 해당 국가의 경기가 급락해 빌려준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거나 해당 국가가 아예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누구나 돈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로 인해 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국채 투매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치 은행이 망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면 예금자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줄 서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bank run)과 같은 현상이 국채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너도나도 해당 국가의 국채를 매각하려고 하기 때문에 국채 가격이 폭락하게 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게 됩니다.

[9] 국채 금리는 한 국가가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국가가 조달하는 각종 자금의 비용이 상승하고, 국채 금리와 연동되어 있는 모든 금리가 인상되게 됩니다. 가장 단기간에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국가의 경제 위기는 해당 국가가 발행한 국채의 투매 현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 다음은 미국이 출구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나오던 시기인 2013년 8월에 나온 기사입니다.

출구전략 공포확산 투자자 미 국채 투매” (미주한국일보, 2013. 8. 19)

[11] 출구전략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 미국 국채를 투매할까요? 이 내용에 대해서는 <경제위기의 본질 (16) 미국 채권 금리의 비밀>에서 대략적으로 이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국채의 가장 큰 수요자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연방준비은행이 양적완화를 축소할 예정이라고 발표를 합니다. 이것은 미국 국채의 가장 큰 수요자 가운데 하나가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요가 감소하면,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국채 가격은 하락합니다. 그에 따라 국채 금리는 상승하게 됩니다.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손해를 보지 않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되기 전에 국채를 매각해야 합니다. 위의 기사는 이러한 계산에서 나온 시장에서의 반응을 전하는 것입니다.

[12] 하지만 실제 미국 국채 10년물의 금리를 보면, 연방준비은행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승 추세를 보였다가 본격적으로 양적완화가 축소된 이후에는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장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시장의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그 이유는 <경제위기의 본질 (16) 미국 채권 금리의 비밀>에서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을 대체할 새로운 수요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시장의 전망이 맞았을 겁니다. 하지만 벨기에라는 새로운 수요자가 나타났고, 새로운 수요자가 연방준비은행의 수요를 대체함으로써 시장의 전망을 빗나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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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와 같이, 한 국가의 국채시장은 단기적으로 시장에서의 반응이 곧바로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위기 시작의 본격적인 징후는 해당 국가가 발행한 국채의 투매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 국채 시장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도 채권시장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로버트 쉴러, 제3의 경고 “이번엔 미국 채권시장 붕괴” (연합인포맥스, 2015. 2. 13)

[15]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를 확대하는 이 와중에, 왜 IMF는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부 국가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IMF는 미국 국채 금리의 급등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2008년 이후 지금까지 버텨왔던 세계경제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낙석 조심” IMF, 美국채금리 급등 경고 (매일경제, 2015. 2. 13)

[16] 최근 국채와 관련해, 시선을 끄는 곳이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이 보이는 행동은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이 채권국이라는 말은 돈을 빌려준 국가라는 뜻으로 받을 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빌려준 돈을 받으면 될 텐데,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 정부가 빌려 사용한 부채가 GDP의 220%가 넘습니다. 일본은 왜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요.

 

22. 부(富)에 대한 오해들

※ <경제위기의 본질 (1) 부(富)란 무엇인가>의 글 참조할 것

부와 경제에 대한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 중의 하나가 부(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거나 부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부(富)가 무엇인지는 <경제위기의 본질 (1) 부(富)란 무엇인가>에서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기존의 부와 1974년 이후의 부를 비교 설명을 하였습니다. 부가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각 나라의 경제성장과정을 통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富)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질문에, 경제적 가치는 사람들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원료를 가져다가 노동력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으로 변환시킬 때 창출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부가 노동력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질 때 창출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가 생각하는 부의 창출 방식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부의 기원」, p.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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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생각 가운데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부의 총액과 개인 혹은 국가의 부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개인 혹은 국가가 부를 만드는 방법과 부의 총액 자체를 늘리는 방법을 혼동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개인 입장에서는 원료를 가져다가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면, 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입장에서 부를 창출 혹은 축적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적절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을수록 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만든 물건을 많이 만들어 팔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부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의 부도 그렇게 하면 늘어날 수 있는 걸까요? 개인들이 노동 생산성을 개선하면, 사회 전체의 부, 즉, 부의 총액도 커지는 걸까요? 그렇게 하면 부(富)라는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축적되고, 사회 전체가 부유해질 수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위의 이야기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뭔가를 만든 사람의 상품을 누군가에게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애써 만든 상품을 누군가에게 팔 수 없다면, 해당 상품은 그저 시장 가치가 없는 물건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만드느라 들인 그 사람의 노력과 시간은 물거품이 됩니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시장에서 해당 상품을 사줄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노동력을 활용해 만든 상품은 부를 개인에게 부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부의 창출방법은, 이미 사회에 구매력이 존재하고, 누군가 그 구매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부를 늘리는 방법은 개인에게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개인이 부를 축적하면, 사회 전체의 부도 함께 증가하는 걸까요? 단지 이 사람의 부가 저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해 만든 상품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부를 축적할 수 있다면, 자신이 만든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날 수 있다면, 과연 시장에서 내다파는 물건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많은 물건을 누가 사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부를 창출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해,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기에 가치가 있는 뭔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다면, 누가 그 상품을 사주는 걸까요? 사는 사람이 없다면 모두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만들어파는 상품을 누가 사야 할까요?

이런 이야기가 맞다면 부를 축적하려는 개인은, 사기보다는 많이 팔아야 합니다. 과연 이런 경제가 가능할까요? 위의 상황을 현대 경제학 개념을 이용해 설명하면,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많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상품들의 종류가 식품, 자동차, 핸드폰, TV, 서비스 등으로 모두 다르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공급에 해당됩니다. 물론, 자동차를 생산한 사람이 식품을 구매하는 형태로 총공급의 일부가 소화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수요는 그 상품들을 사려는 힘인데, 모두들 팔려고만 할 뿐 사려고는 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가격은 하락하고 공급 또한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켰든, 남들이 하지 못하는 특별한 기술로 생산을 했든, 팔지 못하거나 아주 헐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개인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위에서 제시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아주 편리한 개념을 하나 도입하여 설명을 합니다. 사회 전체 혹은 한 나라 전체의 생산을 총공급이라고 하고, 그런 상품을 사려는 것을 총수요라고 하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런 총수요와 총공급이 항상 일치한다고 가정하고, 그런 상황을 일반균형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된 모든 상품이 수요자를 만나 팔리게 됩니다. 설령, 팔리지 않고 남는 물건이 있다면, 이때는 공급자가 조정을 통해 시장에서 필요한 수량만큼을 생산하게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갈치를 생산하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다른 한 편으로는 상품을 구매하는 수요자가 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총수요와 총공급이 항상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균형이론입니다. 일반균형이론에서는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은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는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을 통해 저절로 해소가 됩니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이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이 이론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대공황이라는 다소 특별한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으로 인해 대규모 불균형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균형이론에서는 사회 전체의 부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던 부가 저 사람에게 옮겨갈 뿐입니다. 따라서 총수요와 총공급을 이용한 설명보다는, 구매력 혹은 부의 개념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들의 노력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뭔가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라는 것은 구매력으로 평가되는 힘이고, 부를 축적한다는 것은 그런 구매력을 가진 수단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매력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힘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추상적인 힘이 구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대신, 구매력을 가진 구체적인 물건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런 물건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부의 축적 수단이 되고, 거래에 활용됩니다. 때로는 그 물건이 조개 껍데기가 되기도 했고, 소금이 되기도 했고, 종종 납작하고 조그만한 쇳덩어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작은 종이 쪼가리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 사회가 가진 부의 총액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구매력이라는 추상적인 힘이 구체화되어 있는 물건, 다시 이야기하면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는 물건의 수가 늘어나야 합니다. 조개 껍데기가 구매력을 가진 수단으로 인정받던 시기에는 조개 껍데기의 수가 늘어나야 구매력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그 사회의 부도 늘어나게 됩니다. 소금이 부의 축적수단이던 시기에는 소금의 양이 늘어나야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부가 늘어납니다. 금이 중요한 부의 축적이던 시기에는 물론 금의 양이 늘어나야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부도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부의 창출방식은 한 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해당 물건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점입니다. 조개 껍데기가 부의 축적수단이기는 하지만, 조개 껍데기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조개 껍데기는 교환가치를 상실하면서 구매력을 가진 물건으로써 그 역할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금이든 금이든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구매력을 가진 수단으로 높게 평가되던 물건도 그 공급량이 늘어나면 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의 축적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런 부의 축적수단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입니다. ( <경제위기의 본질 (2)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경제위기의 본질 (3) 미국이 선택한 트리핀의 딜레마 해결 방법>을 참조할 것)

미국은 이러한 부의 축적수단이 가지는 기본적인 문제를,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달러도, 금과 연계되었더라도, 기본적으로 수량이 늘어나면 가치가 하락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석유와 연계시킴으로써 달러 공급이 늘어도 달러 수요가 함께 늘어나도록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달러에 대한 수요만 뒷받침이 되는 한, 미국은 달러를 아무리 써도 달러의 가치는 유지되었고, 그렇게 세계 전체의 부는 증가해왔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만들어낸 부를 자국으로 가져와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위와 같은 형태로 부를 바라보게 되면, 한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으로 만든 상품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축적하는 부라는 것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부가 그 사람에게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개인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고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도 옯겨갈 뿐입니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했던 부의 창출 방법, 즉 자연으로부터 원료를 가져다 노동력을 들여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이 다른 사람이 가진 부를 가져와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지,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는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부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 혹은 개별 국가가 부를 모으는 방법을 이야기해준 것이지, 사회 전체 혹은 세계 경제 전체의 부를 늘리거나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겠지, 우리 모두가 열심히 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겠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면 잘 살 수 있겠지, 연구 개발을 많이 하고 기술 개발을 하면 잘 살 수 있겠지, 혁신을 하면 잘 살 수 있겠지 등의 생각은 모두 개인 혹은 개별 기업 또는 개별 국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사회 전체 혹은 세계 경제 전체의 부를 늘릴 수 없습니다. 부의 총액은 이런 방식으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개인 혹은 개별 기업 또는 개별 국가의 부를 늘리는 방법과, 세계 경제 전체의 부를 늘리는 방식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엉뚱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세계 전체의 부가 축소되면서 나타나는 위기 상황입니다. 개인의 노력 혹은 개별 국가의 정책(금리 인하, 적자 재정, 양적 완화, 구조조정, 규제 완화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위기가 아닙니다. 이전 글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이야기했지만, 세계 전체의 부가 증가하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이 무너졌듯이, 달러 중심의 세계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 달러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먼저 무너지게 될 겁니다. 지금의 경제 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세계 전체에서 엄청나게 많은 혼란이 나타날 겁니다. 직장을 잃고, 가게가 폐업을 하고, 기업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고, 굶주리고, 자살하고, 시위를 하고, 강도짓을 하고, 묻지마 살인을 하고 등등… 그런 세상에서 자신의 부를 지키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비극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23. 미국의 양적완화 vs 일본의 양적완화

일반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돈이 부족해지면 빌려준 돈을 받아 돈 부족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서 1억원을 빌려주었는데, 갑자기 A가 돈이 필요해지면 B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빌려준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됩니다. 이렇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주 당연한 일을 못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입니다. 2013년 말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325조 70억엔으로, 중국의 207조 6,101억엔이나 독일의 192조 2,121억엔보다 훨씬 많습니다. 또한, 일본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만 2014년 9월말 현재 1조 2,211억 달러에 이릅니다. 엔화로 환산하면 약 150조 엔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이 금액은 2014년 12월이 되면 더 늘어나 1조 2,309억 달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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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일본은 2014년 기준 무려 1142조엔의 국가 채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발행한 장기채와 차입금을 합한 금액)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려준 돈을 받으면 될 텐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고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비세 인상을 18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로부터 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강등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중국, 대만의 신용등급이 Aa3인데, 일본의 등급이 우리나라나 중국 대만보다도 낮아진 것입니다. 한 국가의 부도 가능성의 지표로 활용되는 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도, 현재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낮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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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韓 국가부도위험 연중 최저 근접..CDS프리미엄 50bp 하회” (이데일리, 2014. 12. 5)>

이렇게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당하고 국가 부도 위험이 올라가는 등 수모 아닌 수모를 겪는 이유는 바로 일본 정부의 부도 가능성 때문입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일본 GDP의 200%가 넘는데, 이번에 재정을 다소나마 확충시켜 줄 것으로 기대됐던 소비세 인상이 연기되면서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것입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만 매각해도 국가 부채의 15.6%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일본은 미국 국채가 매각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일본이 미국에게 빌려준 돈을 앞으로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일본은 중국의 1조 2,663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이 매각하는 물량을 받아줄 수요자가 있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럴 만한 수요자가 없다면 미국 국채가격은 폭락하고 국채금리는 급등하게 될 것입다.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시장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부채가 많은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가계와 기업들도 부도 위험에 몰리게 됩니다. 또한,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일본도 가격 하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 국채를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국채 수요가 있었다면, 연방준비은행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추진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일본이 자국 내 경제적 어려움으로 미국 국채를 시장에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이 하고자 하는 정책에 반대를 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한다고 발표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것은 지난 10월 30일, 그리고 일본은행이 양적완화 확대를 발표한 것은 10월 31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 조정을 일본이 독자적으로 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미국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엔低의 정치경제학…日양적완화 용인한 ‘美의 침묵’ 있었다” (헤럴드경제, 2014. 11. 05)

일본의 행동 가운데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 쪽에서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를 실시하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일본 내 소비를 위축시키는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일본을 보면, 경기를 살리겠다고 하면서도 경기를 죽이는 행동을 동시에 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일본 내 소비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소비세는 왜 굳이 인상하려고 하는 걸까요.

이 문제는 앞에서 말씀드린 일본 국채와 연관이 있습니다. 국채라는 것이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빌리는 행위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자를 제때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돈을 떼일 위험은 없는지 등입니다. 이자를 못 받거나 돈 떼일 위험은, 해당 국가가 돈을 제대로 못 벌거나 (세금이 적게 걷히거나), 지출이 너무 많거나 하는 경우에 크게 올라갑니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지출을 많이 한 상황이라 이자라도 제대로 받으려면 세금이라도 많이 걷혀야 하는데,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세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 일본의 예산 규모는 95조 8823억엔입니다. 이 가운데 세금을 통한 수입은 50조엔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부족한 금액은 또 다시 국채를 발행해 조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일본의 세금 수입입니다. 일본의 국가 채무가 1142조엔이므로, 금리가 1%p만 올라도 일본 정부가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이자는 11.4조엔에 이릅니다. 세수의 약 23%를 순수하게 채무 이자 지급에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금리가 2%p가 오르면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2.8조엔, 3%p 오르면 34.2조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세수의 45.6%, 68.4%를 단순히 이자 갚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일본이라는 국가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습니다.

국가라는 것이 단지 채무에 대한 이자만 지급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무원들 월급도 주어야 하고, 국방에 대한 지출도 해야 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국민들을 위한 복지 비용도 지출해야 합니다. 그밖에도 각종 사회간접시설(SOC) 등에도 돈을 써야 합니다. 이자 비용이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늘어나게 되면, 다른 모든 비용들, 공무원 월급 및 연금, 국방 지출, 복지 지출, SOC 지출 등 모든 지출을 삭감하거나 철폐해야 합니다. 국가가 운영되기 위한 최소한의 지출도 확보하기 어렵게 됩니다. 바로 국가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상의 상황을 볼 때, 돈을 빌려주는 입장(일본 국채를 매입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판단이 확산되면 일본은 더욱 돈 빌리기가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심을 없애기 위해 일본은 이자를 제때 줄 수 있고 돈 떼일 염려도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소비세 인상입니다. 50조엔밖에 안 되는 세금 수입을 더 늘려 일본 국채에 대한 의심을 다소나마 해소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소비세 인상을 연기했고, 그에 따라 신용등급이 강등당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적완화를 하지 않으면,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일본 정부 자체가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양적완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적완화를 지속하면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기존의 엔화 표시 국채를 가지고 있던 나라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서둘러 일본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국채가격은 급락하고 금리는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시장의 의심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채권자들에게 두 가지 확신을 주어야 하는데, 엔화 가치 하락이 단기적이라는 것과 일본 채권을 매입해도 떼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는 출구전략에 해당되고, 두 번째는 세수를 확대하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세수 확대 방안이 바로 소비세 인상입니다. 소비세를 인상하면 일본 내수가 지금보다도 더 침체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세수 확보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면, 시장에서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이것은 일본 국채가격의 폭락과 국채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국가 부도 상태로 가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지 소비세를 인상해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일본 내 경기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양적완화가 필요한 상황이긴 한데, 양적완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고, 소비세를 인상하자니 일본 내 소비는 더욱 위축되면서 일본 경기는 잃어버린 20년보다도 더 극심한 침체에 빠질 위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소비세를 인상해서는 안 되는 상황임에도 소비세를 인상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일본 국채를 대부분 일본 내 연기금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부도 위험으로까지 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는 실제로 이런 주장이 맞았습니다. 은퇴하는 노령층이 많지 않았고, 그 동안 쌓아두었던 자산도 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모아 둔 가계들의 자산이 거의 고갈되어 가고 있고, 연기금들도 은퇴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일본 정부의 국채를 들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연기금이 국채를 현금화해야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 국채시장은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일본 양적완화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일본 양적완화의 시작은 미국과 유사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경기가 악화되면서 양적완화를 실시하였듯이, 일본도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양적완화를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양적완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중에 해당 국가의 화폐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양적완화가 장기화되면 해당 화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국채시장에서부터 외환시장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양적완화를 하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종료를 해야만 해당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 양적완화를 올해 종료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경제위기의 본질 (16) “미국 채권 금리의 비밀” 참조>

QE_US

일본의 양적완화의 최종 결과는 미국의 양적완화의 도입과 종료 과정을 보면 쉽게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경기가 악화되자 양적완화를 도입했고, 시중에 달러 공급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달러 가치에 대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러한 시장의 의심을 없애야 했고, 시장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방법으로 양적완화의 축소와 종료를 선택했습니다. 양적완화를 종료하지 않으면 시장에 달러 공급이 계속 늘어나 달러 가치는 급락하게 됩니다. 따라서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시장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양적완화의 종료는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양적완화를 종료하게 되면,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면서 국채가격 폭락과 국채 금리 급등 현상을 불러오게 됩니다. 따라서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하는 과정에서 연방준비은행이 매입했던 국채를 대신 매입해줄 새로운 국채 수요자를 발굴합니다. 바로 벨기에입니다. 벨기에는 2013년 말부터 미국 국채 보유량을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렸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했음에도 국채가격이 안정되었고 국채 금리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양적완화가 장기간 지속되면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일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일본은행은 더 많은 일본 국채를 매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더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엔화 가치는 더욱 더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으려면 단기적으로는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양적완화를 종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매입하던 규모만큼의 국채를 매입해줄 새로운 수요자 없이 무작정 양적완화를 종료하게 되면, 국채가격 폭락과 국채금리 급등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엔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양적완화 중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새로운 수요자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일본 국채 가격은 급락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QE_JAPAN

일본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비세를 인상하면 안 되지만,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으면 일본 국채 시장이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비세를 인상하면 일본 경제는 더더욱 심각한 침체로 빠지게 됩니다. 현재 일본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앞뒤가 꽉 막힌 막다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시장이 무너지지 않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아베 총리의 움직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베는 국채 시장과 내수 경제, 둘 가운데 하나는 선택해야 했는데 소비세 인상을 연기한 것은, 국채 시장보다는 내수 경제를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책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보면, 국채 시장이 빠르게 반응하고 내수 시장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립니다. 국채시장은 매일매일 움직이지만, 소비세 인상 효과는 수 개월에 걸쳐 일본 경기를 침체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경제를 생각한다면, 국채시장보다는 내수경제의 침체를 선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일본 경제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소비세를 인상하는 것이 맞습니다. 소비세 인상으로 세수가 확보되면 국채를 더 발행할 수도 있고, 경기 침체에 따른 대응시간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베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베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권력을 잃는 것입니다. 소비세를 인상했다면, 아마도 아베는 권력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 선거를 치른다면, 아베는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베는 자신이 실권할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충격이 좀더 빨리 나타나는 국채시장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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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日 자민당 300席 이상 압승 예상… 아베, 평화헌법 개헌 밀어붙일 듯 (조선일보, 2014. 12. 5)>

따라서 앞으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일본 국채시장입니다. 지금은 매물이 얼마 없는 상태에서 일본은행이 적극적으로 매입을 하여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양적완화를 축소하거나 종료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 일본 엔화는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 출구전략을 고려할 때이다,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한다 등의 말을 수시로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24. 첫 번째 쓰나미 (1/3)

※ 이 글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가정하여 쓴 시나리오입니다. 오류나 잘못된 전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퍼즐을 맞춰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걱정을 하면서도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두 번에 걸쳐 쓰나미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1997년의 경험은 애들 소꼽장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강력한 첫 번째 쓰나미가 몰려올 테고, 뒤이어 첫 번째 쓰나미 이후의 침체를 아주 장기화시킬 두 번째 쓰나미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

[2] 우리나라는 지금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빚더미 위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 부채(국가 채무, 공공기관 부채, 지방공기업 부채) 1,058조 1,000억원, 가계 부채 1,021조 4,000억원, 기업 부채 2,212조 2,000억원으로, 소규모 자영업자의 부채 215조 5,000억원으로, 모두 합하면, 4,507조 2,000억원에 이릅니다.

한국 총부채 4천500조원…2년새 10.6% 늘어” (연합뉴스, 2014. 12. 12)

이런 경제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기업은 매출이 늘어나야 하고, 가계는 취업이 되어 소득이 늘어나야 하고, 정부는 기업과 가계로부터 들어오는 세금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3대 경제주체인 정부와 기업과 가계 모두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국내 소비를 살려서 경기 회복을 꿈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내수를 살리자는 말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주장도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국내 노동자를 고용해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출이 늘어나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고용이 늘고 세금이 늘어나는 것뿐입니다.

[3] 하지만 수출 시장 어디도 만만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의 1/4을 차지하는 중국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7%로 낮춰 잡았고, 유럽시장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1년 중 매출이 가장 많다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까지 3년째 매출이 줄고 있습니다. 실제 경기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과거처럼 수출을 대폭 늘려 국내 경기를 회복시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4,500조원이 넘는 부채를 가진 채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머지않아 위기를 맞고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시발점이 될 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수의 가계나 기업이 파산하면서 우리나라 내부에서 먼저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고, 국내 들어와 있던 일본 자금이 일본 내 상황 악화로 빠져나가면서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중국으로의 수출이 막히면서 수출기업들이 부도나면서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는 먼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엇이 방아쇠가 되든,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4] 우리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두 번의 쓰나미 중에서 바로 첫 번째 쓰나미의 시작입니다. 많은 분들이 1997년 11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후 몇 년간을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부도로 넘어졌고, 천 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몇 년 지나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경기가 안 좋았던 나라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소수의 국가에 불과했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상황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수출을 늘려 경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당시 우리나라 가계가 상당한 규모의 저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가계가 가지고 있던 이 저축을 소비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도입하게 되는데, 이 방안이 바로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 확대 정책이었습니다. 이후 가계는 저축을 대부분 소진하게 되었지만, 대신 우리나라 경기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5] 만약 1997년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아마도 그때보다 더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맞을 테고, 그에 따라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1997년 상황보다도 상황이 훨씬 나쁘다는 점입니다. 일단, 우리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경제가 대부분 침체 국면에 있습니다. 과거 소비로 내수를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가계들도 이제는 저축은 거의 없고 가진 것은 빚밖에 없습니다. 수출을 할 만한 국가도 없고, 소비를 늘려줄 가계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위기를 맞게 되면, 1997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 쉽게 이야기하면 그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모두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1997년 당시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직장을 잃으시는 분들은 앞으로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될 테고, 부도를 맞는 기업주들도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6] 다만, 1997년 말 상황과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당장 국가 부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1997년과 같이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와 다른 나라와 맺고 있는 통화 스와프 등이, 지난 1997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997년의 경험 때문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외환보유고를 착실하게 적립해왔고, 일부 국가와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필요할 때 서로 외환을 교환할 수 있는 대비책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 자체가 부도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위기 초기에, 국가는 어느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이 되지만, 기업과 가계가 급격히 무너질 것으로 보입니다.

[7]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될 경우, 부문별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부동산 시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부동산은 우리나라 국민들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산 항목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힘은 가계의 안정적인 소득입니다. 즉, 안정적인 직장과 그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를 바탕으로, 대규모 대출이 가능할 때, 부동산 가격은 상승 혹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만약 직장의 안정성이 떨어져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총액이 줄어들면 대출할 수 있는 금액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직장을 잃는 분들이 많아지면 부동산 가격은 지금 수준을 절대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잠깐 동안이야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 부동산을 계속 가져갈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 대출이 많은 분들은 더더욱 부동산을 가지고 있기 힘든 상황이 될 겁니다. 여기에 금리라도 인상되면 부동산 급매물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은 급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8] 나는 대출이 많지 않아 큰 걱정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격은 그동안 거래된 가격의 평균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거래된 가격으로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출이 없고 급매로 팔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웃집에서 급매로 팔게 되면, 내 아파트 가격도 그에 따라 같이 내려가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던 자산도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자산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갈 겁니다. 일부에서는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도 대출을 다 갚지 못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아파트 매각 이후에도 대출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짐 보따리 싸서 길거리에 나앉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겁니다. 직장도 잃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겁니다.

[9] 그러면 이런 분들을 국가가 구제해줄 수 있는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기업이 문을 닫고 가계들이 대출을 연체하게 되면, 은행 부실이 순식간에 치솟을 겁니다. 은행을 먼저 구제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들을 먼저 구제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는 거의 항상 은행 구제 쪽을 선택합니다. 개인보다는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은행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장 잃고 자산까지 모두 잃은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됩니다.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최악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매우 많을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누구도 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는 없습니다. 엄청난 비극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 이때를 노려 돈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헐값에 나오는 아파트나 상가 등을 대량으로 매입할 목적으로, 개인금고에 들어가 있던 5만원짜리 지폐와 골드바 등이 금고 밖으로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인금고에 돈을 쌓아둔 사람들은, 부동산이 헐값에 나오는 이 시기를 큰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기회를 “이삭줍기”로 표현하더군요.)

1998년에 저가 매물을 매입해 재미를 본 적이 있는 분들 중에 2008년에도 유사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두 번에 걸친 자신의 경험에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사 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이런 분들은 상가든 아파트든 10년쯤 가지고 있으면 다시 오르겠지 하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 보더라도 10년쯤 묵혀두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1] 하지만 이분들은 머지 않아 다가올 두 번째 쓰나미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때를 통해, 돈 많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돈을 잃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상가를 매입한 사람들의 손실이 아주 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위기는 10년 정도에 끝날 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즉 이번 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번째 쓰나미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후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미 상가의 수익성은 계속 내리막 상태입니다.

전국 근린상가 중 ‘월세 못 받는 상가’ 60% 넘어…경기침체 영향 (스페셜경제, 2015. 2. 26)

[12] 아마도 현재의 기성세대가 죽을 때까지도 경기가 여전히 바닥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금 우리들이 누리는 풍요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가가 10년쯤 후에 수익을 내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상가가 수익을 내려면 임대가 되어야 하고, 상가를 임차한 가게들이 장사가 잘 돼야 하고, 가게들이 장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경기가 회복되어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기존의 위기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10년이 지나도 경기는 여전히 바닥에 있을 겁니다.

 

25. 첫 번째 쓰나미 (2/3)

[1] 가계나 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국내경기가 빠르게 식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환율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때가 되면 하루에 환율이 몇 원씩 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백 원씩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입물가가 급등하게 됩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타났던, 그리고 지금 자국 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재기 현상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겁니다.

[2]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적극 도입하게 될 겁니다. 대표적인 환율 방어책이 외환보유고를 푸는 것입니다. 환율이 급등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원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훨씬 많이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들 원화를 매각하고 달러를 매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최근 러시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원화 가치가 폭락하게 됩니다. 따라서 급등하는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풀어 달러 공급을 늘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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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지만 러시아는 외환을 풀어 환율을 방어하는 데 실패하게 됩니다. 5,0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가운데 800억 달러를 풀어 환율 방어에 투입했지만, 루블화 가치는 계속 하락해 연초 대비 50% 가까이 하락합니다.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지는 못하고 외환보유액만 4,188억 달러(11월 현재)로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루블화 가치 하락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금리를 10.5%에서 17.0%로 대폭 인상하는 초강경책을 채택했고, 그로 인해 러시아 은행 사이에 거래되는 자금의 금리는 28%를 넘어섰습니다. 그 이후에야 루블화 가치 하락은 진정세를 보였습니다. 러시아의 환율 방어 사례에서 보듯이, 외환만을 풀어 환율을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금리까지 인상하는 단계까지 가야 어느 정도 환율 방어가 가능합니다.

[루블화 대폭락] 통화방어 실패… 디폴트 공포 엄습… 러시아, 자본거래 통제 할 수도(서울경제, 2014. 12. 17)

러, 은행간금리 28% 돌파.. 9년래 최고치 (파이낸셜뉴스, 2014. 12. 19)

[4]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했던 것과 동일한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11월 말 기준 3,631억 달러입니다. 우리나라는 외환보유 규모가 러시아보다도 작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같이 팔 수 있는 석유나 밀 같은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외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급속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외환을 다시 쌓는 일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수출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체 보유하고 있는 외환만으로는 환율을 방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도 러시아가 했던 것처럼,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5]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국내 경기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버티던 가계들도 다시 부도 위기로 몰리게 될 테고, 더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게 될 겁니다. 그에 따라,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의 명퇴 내지 감원이 일어날 겁니다.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면 기준금리가 10% 이하나 10%대에서 멈추겠지만,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10%를 훌쩍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준금리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실제 가계나 기업에 적용되는 시중금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결정될 겁니다. 이렇게 높은 금리를 주고라도 돈을 구할 수 있으면 좋지만,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구하지 못하는 기업과 가계가 급증하면서 부도나 파산하는 기업과 가계가 다시 급증하게 될 겁니다. 높은 금리 상황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경기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10% 넘는 금리에도 기업들이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금리가 10%만 되어도 수익 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또한, 10% 이상의 이자를 내면서 부채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가계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금리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 부채 많은 기업과 가계들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6] 환율이 급등하면서 물가 또한 급등할 겁니다. 우리나라는 가지고 있는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입니다. 중요한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해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석유, 천연가스, 곡물을 포함한 농산물 등입니다. 이런 원자재 가격 상승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되면 우리 생활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게 되면 우리들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요.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전기와 가스 사용료의 급등입니다. 전기료가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뛰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본격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두 배 상승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전기와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적자 규모와 원료 가격의 상승분 등을 모두 고려하면, 전기료 상승은 두 배 이상 뛸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7] 가령, 전기료가 지금보다 서너 배 뛴다고 생각하면 우리들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도시, 그것도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서 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몇 가지 핵심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기, 상수도, 도시가스입니다. 이 세 가지만 끊기면, 도시 생활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세 가지가 동시에 사흘만 끊기면 도시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전기, 가스, 상수도 세 가지 끊긴 생활, 한 번 스스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8] 전기료만 급등한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아파트 생활에서 전기로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고층아파트 생활을 가능하게 한 엘리베이터,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인 세탁기와 밥솥과 식기세척기, 식품 보관에 없어서는 안 될 냉장고, 컴퓨터와 TV, 여름철 에어컨 등일 겁니다. 전기료가 급등해 지금보다 서너 배 뛰면 엘리베이터나 가전제품들을 지금처럼 마음 놓고 쓰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중에는 서너 배가 아니라 이것보다 훨씬 많이 뛸 겁니다.) 전기료가 무서워 엘리베이터를 마음 놓고 탈 수 없는 아파트 생활, 전기료 때문에 세탁기와 냉장고와 전기밥솥을 사용하기 두려운 아파트 생활, 과연 그런 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과연 아파트 생활 자체가 가능할까 의문입니다.

[9] 전기료가 급등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아파트 주거비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가격 하락에 주거비 상승이 겹쳐 일어나며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부터 빈 집이 생기기 시작할 겁니다. 더욱이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오래 되고 낡아 냉난방 및 상수도 등의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납부하는 관리비만큼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높아지는 주거비에 부담을 느낀 일부 세대가 아파트를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진입하는 세대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파트 주거비용이 계속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쉽게 진입하지 못할 겁니다. 더욱이 재건축과 같은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새로운 입주민 구하기가 어렵지 않겠지만, 그 같은 기대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빈 집은 결국 빈 집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단지 내에 한두 가구씩 빈 집이 생기기 시작하면, 남은 가구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저소득층이 주거하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부터 점차 슬럼화되기 시작할 겁니다.

전세난 시대, 도시 잠식하는 ‘빈집’: 한국, 버려진 집 1000만 가구의 일본 닮아간다(국민일보, 2015. 2. 13)

[10]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들이 많이 주거하는 아파트 단지들은 여파가 다소 늦춰지기는 하겠지만, 실직 혹은 연봉 삭감에 따른 소득 감소로 계속 높아만 가는 아파트 주거비에 부담이 계속 커지게 될 겁니다. 전기료의 상승폭이 확대되면 중산층 주거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빈 집이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재건축은 당연히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아파트 재건축은 미래의 가격이, 현재의 가격에 공사비를 합한 비용보다 높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일수록 대출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아파트 슬럼화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기료 한 가지만 요금이 급등해도 우리 생활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모든 공공요금이 오르고, 모든 식품 가격이 오르고, 모든 공산품 가격이 오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오르게 될 겁니다. 우리들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11] 이미 많은 아파트 거주 가구들이 난방비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나오는 난방비는 일반관리비보다 더 많이 나오기도 하고, 여름철 냉방비 또한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전기사용료가 상당히 낮은 수준인 현재에도 이런 상황인데, 서너 배 뛰게 되면 어떤 상황이 될 지는 불을 보듯 분명합니다.

관리비만큼 버거운 난방비…아파트별 효율등급 공개한다 (한국경제, 2015. 2. 26)

정부는 이미 아파트 관리비에 부가세도 매기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전용면적이 135㎡(기존 50평형)를 넘는 아파트에 대해 전체 관리비 중 일반관리비·청소비·경비비의 10%에 해당되는 부가세가 부과되고, 2018년부터는 전용면적 85㎡(기존 30평형) 초과 모든 아파트가 부가세 과세 대상이 됩니다. 또한 300가구가 넘는 단지는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감사 비용은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 아파트 주거비용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점점 아파트에 살기 힘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올 들어 관리비 3단 뛰기 … 아파트 주민들 화났다 (중앙일보, 2015. 2. 25)

[12] 그렇다면, 달러와 금은 어떻게 될까요?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급등한 나라에서 나타났던 현상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에 있던 예금은 인출하여 달러로 환전하거나 물건, 즉 실물을 사는 데 쓰일 겁니다. 거래도 원화가 아닌 달러로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일매일 가치가 떨어지는 원화로 받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안정돼 있는 달러를 받는 것이 판매자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때쯤부터 달러가 중요한 거래 수단으로 등장하게 될 겁니다. 아마 제1차 쓰나미 때는 금보다는 달러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3] 금 가격은 이때까지도 크게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환율 상승으로 원화로 표시된 가격은 오르겠지만, 달러로 표시된 가격은 기대만큼 크게 올라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금은 정확히 달러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달러로 표시된 금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달러 가치가 떨어져야 합니다. 즉, 달러로 지탱되는 세계 경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져야만 금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금 가격이 오르기는 오르겠지만,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금이 본격적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때는 제1차 쓰나미가 지난 후인, 제2차 쓰나미가 올 때입니다.

[14] 그러면 개인들이 지금 사고 있는 달러와 금, 그리고 창고에 쌓아두는 비상식량들은 어떻게 될까요? 제1차 쓰나미 때 아마도 상당수의 직장인이 직장을 잃고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게 될 겁니다. 그 사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을 것이구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생계를 어떻게 꾸려 나가시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동안 저축해두었던 원화를 사용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원화가 다 떨어지고 나면, 달러를 쓸 테고, 달러를 다 사용하고 나면 금과 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고 할 겁니다. 그렇게 대부분 사람들은 그동안 사두었던 달러와 귀금속을 다 잃게 될 겁니다. 실직 상태에서,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단은 없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제2차 쓰나미가 오기도 전인 제1차 쓰나미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달러와 금과 은을 생계 수단을 구입하느라 다 사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가 귀금속에 대한 통제를 하기 이전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귀금속을 잃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작 귀금속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제2차 쓰나미가 올 때쯤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분들보다는  좀더 오래 버티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 귀금속이나 달러와 관련해, 꼭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 바로 금이나 은, 그리고 창고에 쌓아둔 식량은 어디까지나 비상용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아주 부자라서 금고에 쌓아둔 금이나 은만 팔아도 평생 살 수 있고, 창고에 쌓아둔 식량만으로도 수십 년을 먹을 정도가 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정도로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렇게 많은 식량을 쌓아두고 있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라는 충격이 왔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금이나 은, 약간의 식량은 충격이 가시고 난 이후 뭔가를 할 때까지 필요한, 말 그래도 비상용 외에는 다른 용도가 될 수 없습니다. 비상용 식량을 다 먹기 전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귀금속을 다 팔기 전에,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16] 가끔 달러나 귀금속을 아직도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달러를 얼마에 구매했네, 환율이 떨어져 금 가격이 올랐네, 지난해 구입한 은 가격이 하락해 손실이 많네, 등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아직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지 못한 분들입니다. 달러를 사고 귀금속을 매입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에 나와 내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더 나아가 내가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17] 금값이 온스당 1200달러에서 2000달러 혹은 그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한들, 여러분이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결국 쌀을 구하고 전기료를 납부하고 가스를 사는 데 다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달러를 사면서 50원을 싸게 샀다거나, 금 매입 후 가격이 떨어져 돈당 3만원을 손해봤다, 와 같은 이야기들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중에 물가가 크게 뛰고 나면, 이 정도 이익이나 손해는 사실 큰 금액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갈 생계수단을 만들지 못한다면, 이러한 달러나 금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하면, 돈이 줄어드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것을 느껴본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달러, 특히 제1차 쓰나미 때 요긴하게 사용될 달러도 비상용 쌈지돈이다,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8] 새로운 생계수단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쯤에는 고기는 비싸서 못 먹게 될 테고, 스마트폰 또한 감히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는 것은 둘째 치고 외식도 대폭 줄어들게 될 겁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류비와 교통비 상승 등으로 전국 단위 택배도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병의원도 환자가 없어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교도 휴학과 자퇴하는 학생들이 급증하면서 상당히 많은 학과들이 사라지거나 통폐합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등록금 부족으로 신입생 수도 급속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공부를 잘 했어도 집에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던 분들이 많았었는데, 그 상황을 생각하면 상황을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그렇게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이 사라지고 직장이 무너져갈 것입니다.

[19] 그렇다면 새로운 생계수단으로는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미래의 생계수단을 준비할 때 지금의 직장이나 지위, 명예 등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직장이나 지위 등은 그때쯤 되면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요. 사람들의 소득이 지금의 절반 혹은 1/10로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요,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요? 그 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잡아야 비상금과 비상식량이 다 떨어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20] 이렇게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는 엄청난 비극을 접하게 될 겁니다. 자살하는 사람에,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에, 버려진 노인들, 방치된 아이들, 굶어죽는 사람들, 아픈 채 병원에 못가고 집에서 그냥 죽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을 보호해주거나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도와주기에는 국가 자체가 돈이 없고, 개인들이 도와주기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나 자신, 내 가족 챙기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요.

 

26. 첫 번째 쓰나미 (3/3)

[1] 첫 번째 쓰나미를 맞은 이후, 정부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요? 외환보유고는 환율을 방어하느라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황일 겁니다. 여기에 기업들의 부도와 가계들의 파산 등으로 세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겁니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부도가 늘어나면서 법인세가 급격히 줄어들고, 가계들의 소비 부진으로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 또한 급감할 겁니다. 부동산도 거래 자체도 줄겠지만 거래 단가도 급격히 낮아지면서, 부동산 관련 세금도 급격히 줄어들 겁니다. 정부의 세금은 이미 2∼3년 전부터 예상치보다 적게 걷히는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당초 예상치보다 적게 걷히는 수준이지만, 실제 세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예상보다 적게 걷히는 정도가 아니라 세수 절대액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겁니다.

3년 연속 ‘세수 펑크구멍은 더 커진다” (노컷뉴스, 2015. 1. 4)

2.8조 → 8.5조 → 10.9조 점점 불안한 `세수펑크`(디지털타임즈, 2015. 2. 11)

[2] 이에 반해, 지출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 부도와 가계 파산으로 부실화된 은행권에 공적자금도 투입해야 하고, 일부 기업들에게 지원도 해야 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복지 지출도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쓰나미 초기에 정부는 줄어든 세수를 어떤 식으로든 매꾸려 할 겁니다.

[3] 정부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금이고, 다른 하나는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려오는 것입니다. 일단, 세금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정부가 기댈 수 있는 재원 확보 방안은 채권 발행과 한국은행 차입금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 차입금은 통화량 전체를 늘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한국은행 차입금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채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국채 발행을 늘리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고, 세수도 급감하는 상황에서, 국채 발행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설령, 발행한다고 하더라고 발행 금리는 지금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따라, 국채와 연동되어 있는 금리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정부의 세수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발행 금리는 올라가고 국채 발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갈 것으로 보입니다.

[4] 따라서 정부는 점차 한국은행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갈 것으로 보입니다. 말이 좋아 한국은행 차입금이지 사실 거의 갚지 못하는 돈이라고 보면 됩니다. 설령, 상환하더라도 가치가 뚝 떨어진 원화로 상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빌려 쓰는 정부로써도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은, 주택대출 위해 2천억원 출자…발권력 동원 적절성 논란 (연합뉴스, 2015. 2. 10)

한은 발권력 동원 갈수록 늘어나…문제 없나 (연합뉴스, 2015. 3. 26)

[5]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이 늘어나면서 물가도 본격적으로 급등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환율 상승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급등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에 한국은행 차입금까지 겹쳐지면서, 국내 물가는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초기 단계까지 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한국은행 차입금을 대폭 늘리게 되면, 정부의 세수 부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늘려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즉,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을 늘리는 문제는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이 악화되면, 지난 글에서 적었듯이, 우리나라 화폐인 원화는 시장에서 거래가 거의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대신 달러를 통한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6] 하지만 국채를 발행하고 한국은행 차입금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돈 부족문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따라서 원하든 원치 않든, 정부는 긴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긴축을 한다는 것은, 각종 정부 사업이 줄어들고, 각종 지원이 줄고, 보조금이 줄고, 지자체에 지원되는 교부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부의 각종 사업이 줄어들면, 관급공사 및 용역 등이 줄어들어 이들 분야의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정부 지원과 보조금이 줄어들면, 각종 복지 혜택이 줄어들게 됩니다. 노령층에 지원되는 기초연금이 중단될 수 있고, 중고등 학생들의 학비와 급식비 지원이 중단될 수 있고, 대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교육(대학교)이나 농업 분야에 대한 정부 보조나 지원금 또한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보조금이나 각종 지원에 의존하던 계층이나 산업 분야에서의 충격이 불가피할 겁니다.

[7]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는 공무원 수를 줄이는 작업도 시작하게 될 겁니다. 공무원 신분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는 국가 연구소 등이 출연연구소 혹은 민간연구소 등으로 민영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공무원 가운데에서도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직종이나 직군을 중심으로 공무원 축소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여기에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도 공무원 조직의 축소 못지않게 강력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이야 공공기관에 대한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인력 감축, 급여 동결 내지 감축, 기관 통폐합 등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아마 상당수의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이들 기관이나 기업들의 적자를 바탕으로 낮게 유지되었던 공공요금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전기사용료, 고속도로 통행료, 철도요금, 상하수도 요금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공공요금은, 환율 상승, 공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가격 현실화, 원자재 가격의 상승, 통화량 증가 등으로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8] 지자체에 대한 교부금 축소도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지자체에 대한 교부금이 줄어들면, 지자체의 운영도 사실상 어려워질 뿐 아니라, 지자체가 지원하던 각종 복지 및 서비스도 중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2014년도 지방자치단체 통합 재정자립도는 49.6%로 50%도 넘지 못합니다. 재정자립도를 보면, 서울과 울산 등 특·광역시를 통합하면 64%이지만, 일반 시의 재정자립도는 29.3%, 도는 39.6%, 군은 13.7%, 자치구는 29.9%에 그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 지자체는 정부의 교부금이 없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 20년, 지방분권 현주소] 권한도 재정도 ‘2할’…갈 길 먼 풀뿌리 민주주의(세계일보, 2015. 1. 1)

[9]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세수 부족으로 교부금이 줄어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단, 지자체가 지원하거나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공공요금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하철 및 시내버스 요금, 쓰레기봉투 요금, 가스 사용료 등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지자체에서 일부 부담하던 각종 복지 사업도 디폴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아래 기사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가계의 부담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무상급식 중단, 경남 학부모 부담 ‘2백만원’까지” (노컷뉴스, 2015. 1. 5)

더 큰 문제는 지자체 재정이 악화되면 지자체가 부담하는 각종 공공서비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소입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산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음식 쓰레기 포함)가 며칠째 치워지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골목길, 외진 곳 등에 켜져 있던 가로등이 꺼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것들이 모두 지자체가 제공하던 공공서비스들입니다. 부산시 부산진구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청소 파업을 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청소파업’ 중인 부산 서면거리 쓰레기 천지 (연합뉴스. 2015. 3. 15)

청소부가 파업을 한 다른 나라의 상황도 보시기 바랍니다.

청소부 파업으로 악취 진동한 브라질 카니발 (메트로, 2014. 3. 6)

청소부 파업으로 쓰레기 넘쳐나는 마드리드 (뉴시스, 2013. 11. 14)

상황이 더 악화되면 지자체에 소속되어 있는 지방직 공무원들의 급여도 지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 공무원연금은 어떻게 될까요. 연금의 수입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이 매달 납입하는 ‘기여금’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지원금, 세 번째 것은 투자 수익금입니다. 정부 세수가 급감하면서 공무원연금에 대한 지원금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공무원연금이 투자했던 각종 상품들에서 적자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채권, 주식, 외국의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있는데, 디플레이션과 경기 위축이 본격화되면 이런 투자 상품들의 가격 또한 곤두박질 칠 것이기 때문에, 투자 수익금은 마이너스가 될 것입니다.

현직 공무원들의 납입금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고, 정부 지원금이 축소되고 투자 손실이 확대되면, 공무원연금을 지급하고 싶어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겁니다. 초기에는 지급액을 축소하고 지급시기를 늦추는 수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루어지겠지만, 나중에는 지급액을 절반 이상 축소하고 지급 연한도 10년 혹은 20년 등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조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공무원연금을 아예 주지 않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받는 연금이라는 것은 거의 구매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가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5,000원 할 때의 100만원과, 짜장면 한 그릇에 10만원 할 때의 100만원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정부가 약속한 금액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지급하기는 하겠지만,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아무런 의미 없는 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적연금을 포함해, 대부분의 연금, 공제회 등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50년 퇴직연금이 매달 천 원?…원금 보장이 우선” (KBS뉴스, 2014. 10. 3)

[11] 제1차 쓰나미에서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두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우리나라보다 약한 고리에 해당되는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위기를 맞게 될 때, 외국 자본들이 우리나라로 자금을 옮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자금을 넣고 빼기가 매우 수월한 시장에 속합니다. 외국자본 입장에서 위기 국가에서 자금을 인출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까지 우리나라에 일시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인도네시아라든가 인도 등이 위기를 맞게 되면, 이런 나라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들이 일시적으로 우리나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금들이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나라는 단기자금일지라도 일정 수준의 외환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국가 부도 상황을 일시적으로 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환율도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될 겁니다.

[12] 두 번째는 미국의 우산에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 달러가 힘을 잃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 달러는 현존하는 화폐 가운데에서는 가장 힘이 센 화폐입니다. 미국 자본을 포함해, 서구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 나라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우산 아래에 두고자 한다면, 우리나라 경기가 악화된다고 하더라고 자본을 급격히 빼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과 묶어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경제가 바닥을 치는 상황까지 가더라도 국가 부도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3]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자 바람입니다. 만약 우리나라보다 약한 나라들이 위기를 맞을 때, 그 나라에서 빠져나온 자금들이 우리나라로 안 들어올 수도 있고, 미국이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우산 아래에서 제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나라는 첫 번째 쓰나미에서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갈 것으로 보이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까지 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상황에 맞게 잘 선택을 해서 우리나라가 입을 손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7. 공급과잉이 가져올 미래 (1/2)

최근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세계 전체가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와 세계경제를 이끌어왔던 구매력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축소되면서, 수요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수요 부족은 곧 모든 시장에서의 공급 과잉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시장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공급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공급과잉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먼저 최근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호텔업계와 관련된 기사를 하나 보겠습니다.

불황에 빠진 호텔객실 점유율·수입 뚝뚝‘” (연합뉴스, 2015. 1. 28)

기사에 따르면, 2009년 838개였던 호텔은 2013년에 250개가 새로 늘어나면서 1,088개가 되었고, 그에 따라 객실수도 10만 8,454실에서 13만 619실로 2만 2,000실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호텔 수요는 국제행사의 축소, 일본 여행객의 감소 등으로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전형적인 공급 과잉 시장입니다.

그러면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호텔업계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먼저 호텔의 객실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특2급 호텔의 평균 객실 가격이 2012년 11만 5,200원에서 2013년 10만 4,787원으로 내려갔고, 1등급 호텔도 8만 4,960원에서 8만 892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와 더불어, 호텔들이 매물로 나오면서 공급 또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공급 과잉일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즉, 공급이 과잉이 되면 가격이 내려가고 물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것을 간단한 수요 공급 곡선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요 곡선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를 띠는 반면, 공급곡선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형태를 띱니다. 먼저 공급이 과잉이 되기 전 상황은 가격 P₀와 수량 Q₀가 됩니다. 이제 어떤 이유로 인해, 수요가 급감하면 이것은 그림에서 수요곡선이 D₀에서 D₁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균형점이 만들어지고, 그 점에서의 가격은 P₁ 수량은 Q₁으로 결정됩니다. 즉, 시장이 공급 과잉이 되면, 가격은 P₀에서 P₁으로 떨어지고, 물량은 Q₀에서 Q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기초적인 경제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over-supply

하지만 그림으로는 간단하지만, 현실 문제로 넘어오면 결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위의 간단한 그림으로 본 결과가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미래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호텔시장도 위의 내용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대부분의 시장들도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여기에는 제조업도 포함되고, 우유시장도 포함되며, 아파트시장도 포함됩니다.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 시장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개별 시장에서 공급과잉이 가져올 결과는 가격의 하락과 수량의 감소, 딱 두 가지뿐입니다. 이것이 현실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가격 하락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가격 하락이라고 하면, 호텔이라면 객실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고, 제조업이라면 상품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유시장이라면 우유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하고, 아파트 시장이라면 아파트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호사라면 수임료 단가가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고, 의사라면 진료비가 내려가는 것을 뜻합니다. 대학이라면 등록금이 내려가 교수와 직원들의 급여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가격 하락보다 현실에서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은 물량이 줄어드는 과정입니다. 호텔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호텔이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유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젖소의 수가 줄어들고 농가가 폐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제조업이 위축된다는 것은 많은 수의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호사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낮은 수임료를 버티지 못하고 변호사업을 포기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사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대학병원부터 소규모 병원 및 의원들이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교가 줄어든다는 것은, 폐교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선생님 수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학 서비스가 줄어든다는 것은 문을 닫는 대학교부터 다른 학교와 통폐합하는 학교, 여기에 학과의 폐지 및 다른 학과와의 통합 등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몇 가지 관련 기사들을 더 가져왔습니다.

지방 D대학병원 희망 퇴직 진행중구조조정 한파 오나” (메디컬타임즈, 2015. 1. 28)

우유 안 마시는 한국눈물의 젖소 도축까지” (SBS뉴스, 2015. 1. 15)

도내 변호사들 생존 무한경쟁” (경기신문, 2015. 1. 29)

“신입생이 없어요” 전국 120여 학교 올해 입학식 못해 (연합뉴스, 2015. 2. 10)

세상에 자발적으로 공장이나 사무실 혹은 가게 문을 닫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들이 문을 닫을 때쯤이면, 대부분 돈도 최대한 빌려 쓴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들이 개인적으로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 혹은 충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들이 받을 충격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갑자기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도 생길 테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도 생길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그만큼 시장이 축소되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경제학에서는 “물량이 줄어든다”라는 말로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물량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개인들이 그리고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경제학 용어에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물량이 줄어든다고 표현할 뿐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면, 경제학만큼 잔인한 학문도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그 외에도 “구조조정”이니 “인원 감축”이니 “긴축”이니 하는 용어들도 잔인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잔인성을 포함하고 있는 용어들입니다.

하지만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상품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물량 감축’ 과정을 겪어야 하는 곳은 노동시장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노동시장도 엄청난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노동시장도 위에서 이야기한 일반 상품시장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력 공급이 늘어나면, 임금이 내려가고 물량에 해당되는 노동력이 감소하게 됩니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노동력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이고 인간답게 살아야 갈 권리를 가진 생명체입니다. 공장에서 상품 생산량을 줄이듯, 인위적으로 사람 수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임금이 내려가더라도, 사람은 인간답게 살기는 원하고, 그렇게 살 권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도 노동력의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2015년)부터 시간당 5,580원의 최저임금이 적용됩니다. 일부에서는 이 수준도 너무 낮다며 시간당 임금을 10,00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최저임금이 5,580원이면 실제 시장임금은 이보다 훨씬 낮다는 점입니다.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다는 것은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실제 ‘시장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이미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보다 많이 받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최저임금을 받아도 살기 힘든데, 이 임금이 실제 시장임금보다 많이 받는 것이라니 이해가 선뜻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적로만 보면,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분명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어떤 상품의 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하면 항상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최저임금제도도 인위적으로 시장가격보다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제도의 하나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제도도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을 크게 왜곡시키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제도를 장기간 유지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 최저임금제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분명 이전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장임금보다 높아진 임금 때문에, 시장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계 때문에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낮은 임금에 일을 해야 하는 일도 벌어지게 됩니다. 최저임금제도가 장기화되면 이런 부작용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낮은 임금에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더욱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저임금 일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은 더 내려가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저임금제도는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하지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제도는 폐지될 수도 없고, 법적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 수준도 매년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저임금의 역설’…연말 경비원 ‘편법 계약’ 기승 (머니투데이, 2014. 12. 30)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노동시장도 다른 상품시장과 동일하게 공급과잉 상태가 되면 “물량이 줄어든다”는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 하나의 시장에 불과하다는 데 있습니다. 상품이야 공장에서 생산을 안 하면 물량을 바로 줄일 수 있습니다. 우유도 젖소를 도축하면 우유 생산량을 바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학교도 폐교하거나 통폐합을 하면 학교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주체인 노동력은 어떻게 줄여야 할까요. 사람 수를 인위적으로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노동력 공급은 줄어들까요.

경제적인 힘은 예외 없이 노동시장에도 그대로 작용합니다. 경제적인 힘은 어떻게 노동력 공급을 줄여갈까요. 경제적 힘은, 임금을 지금보다 더 낮추고 실직(失職)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줄여나갈 것입니다. 여기에 식품을 포함해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올리는 것도 덧붙여질 겁니다. 자, 그러면 감축대상에 포함되는 노동력, 즉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요. 분명 실직 상태일 테고, 설령 일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물가는 대폭 오른 상황일 겁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가족들은 굶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요. 한겨울 추위와 한여름 더위는 피해갈 수 있을까요. 병에 걸리면 치료는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아이들을 학교에는 보낼 수 있는 걸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경제는 그런 방식을 통해 강제로 노동 공급을 줄여나갈 겁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노동력 공급 억제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노동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의 비극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감축 대상인 수많은 노동력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될 것인지입니다. 노동력의 수요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사업을 일으켜 사람을 고용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도 영화 <설국열차>에서의 윌포드(Wilford)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런 사람에게 고용된 사람들은 윌포드의 기차 승차권을 얻은 사람들이 될 테구요. [==> <영화 속의 경제학 (2)> “설국열차(Snow Piercer)“]

윌포드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윌포드가 직면했던 상황을 동일하게 맞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승차권은 없지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나와 관계도 없는 사람들, 즉 승차권도 없는 사람들을, 내 기차, 즉 내 사업체에서 흡수해야 할까요. 흡수한다면 그들을 먹여 살릴 식량은 있는 걸까요. 없다면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단백질 블록(protein blocks)이라도 만들 대책은 있는 걸까요. 그런 대책이 없다면, 얼어 죽을 것을 뻔히 알지만 기차에서 내쳐야 할까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저는 경제를 알면 알수록, 경제라는 것이 무서워집니다. 경제적인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몸서리가 처집니다. 마지막으로 교종(敎宗)께서 하셨다는 말씀을 그림으로 첨부합니다.

Pope

 

28. 공급과잉이 가져올 미래 (2/2) 공급과잉은 2단계에 걸쳐 우리 일상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수요 감축과 그에 따른 물량 감소 부분이고, 두 번째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공급 감소입니다. 이것도 지난 번처럼 간단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보겠습니다.

지난번 그림과 차이점은, 지난 글에서는 수요가 D₀에서 D₁으로 이동한 것만 나타냈는데, 이번에는 공급곡선도 S₀에서 S₁으로 이동한 것까지 포함했다는 것뿐입니다. 즉, 어떤 이유로 수요가 감소하여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에 빠지게 되면, 가격이 하락하고, 물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아주 쉽게 “가격이 하락하고 물량이 감소한다”고 표현하지만, 현실에서의 가격 하락 과정과 물량 감소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물량이 감소하면 끝나는 걸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요 감소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공급업체들이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면서 생산시설을 놀리거나 아예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생산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초기에는 젖소 일부를 도축하는 것으로 대응하지만,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 많은 수의 낙농가가 도산하면서 공급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아파트 시장도 동일합니다.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면, 초기에는 아파트 분양 물량을 줄이지만 가격 하락이 장기화되면 건설업체들이 부도를 맞게 되면서 아파트 공급 자체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초기에는 공급과잉으로 물량만 줄어들다가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 공급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면서 공급 또한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 그림에서 공급곡선이 S₀에서 S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수요 감소에 이어 공급까지 감소하면, 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크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물량이 수요가 감소할 때보다 더 많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둘째는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수요가 감소할 때는 물량이 Q₀에서 Q₁으로 줄어들지만, 공급이 줄어들면, 물량은 Q₁에서 Q₂으로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Q₀에서 Q₁로 감소하는 것은 단순한 물량 감소라고 보면 되고, Q₁에서 Q₂로 감소하는 것은 공급 시스템 붕괴로 인해 나타나는 감소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글에서 물량이 감소하는 과정이 대단히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했는데, 물량이 Q₀에서 Q₁으로 줄어드는 과정도 충분히 고통스럽지만, 더 많은 물량이 줄어들어야 하는 Q₁에서 Q₂로의 과정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 됩니다.

그러면 가격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겠습니다. 공급과잉이 되면 가격이 하락하면서(P₀->P₁) 물량이 줄어드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장기화되면 공급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공급 시스템이 무너지면 이때부터 공급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공급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 시장가격은 P₁에서 P₂로 급등하게 됩니다. 공급 축소 이후 가격이 얼마나 상승할 지는, 공급이 얼마나 감소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급 축소폭이 크다면 위의 그림처럼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감소폭이 작다면 낮은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될 겁니다. 따라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장가격 하락이 장기화되면, 최종적으로는 공급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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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감소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현실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는 공급측의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아주 귀해진다는 것입니다.

먼저 공급이 감소한다는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공장이 가동시간을 줄이거나 생산라인 수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물량 감소에 해당됩니다. 낙농가가 젖소의 일부를 도축하는 것도 단순한 물량 감소에 해당됩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커피점이나 치킨점 출점수를 줄이는 것도 단순한 물량 감소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공급 감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공장이 문을 닫고, 낙농가가 폐업을 하고, 커피점과 치킨점 본사가 부도가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주 생산업체가 부도로 넘어가고, 라면업체가 문을 닫고, 밀가루 공급업체가 폐업하고, 편의점과 대형 유통업체가 파산하는 것 또한 공급 감소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공급이 감소한다는 것은, 기존의 업체가 생산 물량 일부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 자체가 문을 닫으면서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산기반이 무너지면서 기업들이 문을 닫게 되면, 일자리 또한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게 될 겁니다. 여기에서 또 한 번의 비극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상품의 공급 감소와 노동력의 공급 감소 사이에는 나타나는 시간 차이 때문입니다. 상품 공급은 생산업체가 문을 닫으면 금방 줄어듭니다. 하지만 노동력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품시장은 폐업과 부도 등으로 단기간에 조정이 가능하지만, 노동력 시장은 단기간 조정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상품시장이 조정을 마친 이후에도 노동력 시장은 상당 기간 조정이 계속 진행될 겁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자리 부족이 이전 상황에서보다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품시장에서의 조정이 끝났다는 것은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노동력 시장은 조정이 끝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장은 여전히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이미 임금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기업들의 부도로 일자리까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주가 제공하는 일자리라는 것의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기업주와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이때쯤이면 고용 여부가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기업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존재가 될 겁니다. 그에 반해, 노동자는 과거 농노나 노예와 비슷한 상황까지 입지가 내려갈 겁니다.

생산 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풍요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Q₀ 상태에 있다는 것은 동네마다 커피점이 대여섯 개씩 있고, 치킨점이 서너 개씩 있고, 슈퍼마켓이 서너 개씩 있으며, 식당이 한 집 건너 한 집씩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매대마다 상품이 가득가득 쌓여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경제가 Q₂으로 축소되면, 커피점과 치킨점은 동네에서 찾기 힘들어지고, 슈퍼마켓도 하나 있을까 말까 하고, 슈퍼마켓에 가더라도 매대에서 상품이 사라지게 됩니다. 주유소 찾기가 힘들어지고, 호텔 찾기가 힘들어지고, 골프장 보기가 어려워지고, 놀이동산 보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유통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산지에서 소비지로의 물량 흐름이 끊기게 되고. 택배업체들이 도산하면서 지역에서 지역으로의 상품 이동이 중단되게 됩니다. 경제가 Q₀에서 Q₁을 거쳐 Q₂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대부분의 풍요를 잃게 될 겁니다.

이와 같이 공급 시스템이 무너지고 나면, 시장에서 공급 측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공급 축소까지 마무리되면, 각 시장마다 살아남은 업체나 기업은 소수에 불과할 겁니다. 이러한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독점 혹은 과점 상태라고 합니다. 독점이라고 하면, 공급업체가 하나뿐인 상황을 의미하고, 과점은 공급업체가 여러 개인 경우를 뜻합니다. 여러분이 운영하는 중국요리점이 동네에 딱 하나뿐이라면, 여러분은 짜장면 가격을 어떤 수준에서 결정할까요.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결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네에 짜장면을 파는 곳이 내 가게 하나뿐인데, 굳이 낮게 팔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독과점 상황에서의 가격이 위의 그림에서 P₂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극심한 공급과잉과 낮은 가격에서 살아남은 아주 소수의 업체들은 전체 시장을 장악하면서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학에서는 독점이나 과점 상황을 일반적으로 비효율적인 상태로 봅니다.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소비자 혹은 사회 전체적인 관점일 뿐입니다. 생산자인 기업이 가장 큰 돈을 버는 것은 시장이 독점일 때이거나, 적어도 과점 상태일 때입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하는 완전 경쟁시장(perfectly competitive market)은 기업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장입니다. 경쟁은 경쟁대로 심한데 돈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경쟁이 심한 시장을 기업들은 ‘레드 오션(red ocean)’이라고 부르고, 독점과 같이 경쟁이 거의 없는 시장을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독과점 시장을 만들어 큰돈을 번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예전 반도체시장에서 가격을 생산비 이하로 낮추면서 많은 반도체 기업들의 문을 닫게 한 이후 살아남은 기업들이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면서 큰 이익을 얻었던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반도체와 같이 초기 투자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상품의 경우, 한 번 생산기반이 무너지면 다시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남아있는 기업들의 독과점 구조는 더욱 강화됩니다. 골목상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가게가 고의로 상당 기간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파는 전략을 사용하면, 골목상권 내의 다른 가게들이 하나둘씩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다른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고 나면, 해당 가게 하나만 있는 상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점시장이 만들어집니다. 더 이상 가격을 낮게 유지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해당 가게는 높은 독점가격을 받으면 됩니다. 대신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전략을 ‘착한 가게’라고 광고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착한 가게일까요?) 짜장면 한 그릇에 1,000원을 받는 중국요리집,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파는 치킨점, 저가와 할인에 포인트까지 적립해주는 슈퍼마켓, 할인도 해주고 무료 쿠폰까지 주는 커피점 등등. 그렇게 경쟁이 무너지고 나면,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전략을 사용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최근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 유가가 50달러 이하까지 떨어지면서, 작게는 석유 관련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크게는 석유 수출에 의존하던 국가들의 재정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좀더 오래 진행된다면, 상당수의 석유 관련 기업들이 파산을 하고, 재정 수입을 석유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국가들은 국가 부도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석유 공급 자체가 크게 감소하면서 석유 가격은 급등하게 됩니다. 현재의 저유가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현재로써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런 저유가가 상당 기간 지속되고 나면, 공급 시스템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아주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중국산 공산품도 동일합니다. 현재와 같은 수요 감축과 그에 따른 낮은 시장가격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낮은 가격에 사용해왔던 상품들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중국산 제품이 없는 우리의 일상,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집안에 어떤 상품들이 중국산인지부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전자제품부터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에 식당에서 먹는 김치까지, 거의 대부분이 중국산 제품일 겁니다. 생필품의 90%가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중국, 中華로 돌아오다]“세상에…” 알고보니 생필품 90% ‘메이드 인 차이나’ (경향신문, 2011. 2. 7)

고속도로휴게소 김치 알고보니…95% 이상이 중국산 (스포츠경향, 2014. 10. 27)

그런데 중국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저렴하게 사용하던 상품들이 더 이상 공급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순식간에 상품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겁니다. 당연히 모든 물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중국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커져만 가는 중국 디플레이션 우려… 강력한 부양 필요 (이데일리, 2015. 2. 11)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하는 것은 물가가 낮다는 뜻인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각종 상품가격이 낮게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미 중국에서 공급 기반이 무너지기 위한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중국의 공장들이 문을 닫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웃돈을 주고도 물건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히 가격은 급등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가격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장가격은 공급기반이 무너지고 공급이 급감하면서 크게 오를 겁니다. 여기에 독점이나 과점 현상까지 겹쳐지면 가격은 더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가격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가격만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요와 공급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가치 하락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가격이 단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이라는 것은, 이 가격에는 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 인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에서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에, 양적완화 등으로 급락한 화폐 가치까지 반영된 가격이 될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짜장면 한 그릇에 5,000원인데 수요 축소와 공급 감소로 이 가격이 10,000원으로 오르고, 여기에 화폐 가치 하락분(물가 상승분)까지 겹쳐지면 실제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15,000원 혹은 20,000원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임금은 바닥이고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 그릇에 20,000원하는 짜장면을 지금처럼 언제든지 풍요롭게 먹을 수 있을까요. 지금도 짜장면 한 그릇에 20,000원이라고 하면 아마 못 먹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20,000원을 내고 짜장면을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겁니다. 당연히 앞으로의 짜장면은 아주 특별한 날, 1년에 한두 번 먹을 수 있는 정도의 특별한 음식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풍요롭게 먹는 음식들 대부분이 아주 특별한 음식이 될 겁니다. 여기에는 흰쌀밥도 포함됩니다.

사람이나 직업에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수가가 낮게 유지되면서 병원들이 문을 닫고, 수임료가 내려가면서 변호사 사무실이 문을 닫고, 대학교들이 통폐합으로 문을 닫으면, 의료서비스 공급이 줄어들고, 법률 서비스 공급이 줄어들고, 교육 서비스 공급이 감소하게 될 겁니다. 이런 직업들의 공급 시스템이 무너지면, 이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던 서비스의 가격도 급등하기 시작할 겁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병원(내과, 치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하나밖에 없는 변호사 사무실, 시와 도에 하나밖에 없는 대학교 등등…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 만큼 이들 서비스의 가격이 급등하게 될 겁니다.

이미 의료부문 가운데에서 산부인과 분야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수가와 수요 부족(산모수 감소)으로 많은 산부인과가 문을 닫았고 지금도 폐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급 감소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수요 부족으로 산부인과 병원(의사)의 공급이 감소하자,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바로 출산하다가 죽는 산모의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높은 가격이 산모의 목숨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0만명당 산모 사망률은 11.5명이지만, 산부인과의 수에 따라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병원이 많은 서울은 3.2명인데, 산부인과 병원이 적은 강원도는 서울의 10배인 32명으로 중국이나 스리랑카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공급 감소에 따른 값비싼 비용을 우리는 이미 치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 산부인과가 사라진다… 산모 사망률 심각 (SBS뉴스, 2015. 3. 19)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자녀들 교육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을 아이들 교육에 적용해보면, 공급이 크게 줄어든 이후 교육 서비스 가격도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의 수가 지금보다 현저히 줄어들고 등록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싸진 상황에서, 대학 졸업장은 예전처럼 다시 그 가치가 크게 올라갈 겁니다. 대학 졸업생 수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쯤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 수준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겁니다.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대학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중고등학교 졸업시키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이때쯤에 배출되는 대학 졸업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예전에는 대학교만 졸업하고도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사회의 중요한 직책에 오르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 수도 워낙 적었지만, 대학교 졸업한 사람 수는 더더욱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기성세대 중에서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그런 사회가 된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따라서 현재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현재의 대학 입시, 현재의 대학 수 등을 고려하며, 아이들 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가 사회의 인재 배출 시스템이 무너진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대접 받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간 지속될 이번 경제 침체기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또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할 때쯤 크게 오른 등록금을 지원해줄 만한 경제적 여력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경기 침체기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며,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어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부(富)의 축소에 따른 구매력 감소, 그에 따른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 그리고 그 공급 과잉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장에서의 조정이 시작되면 글에서 언급한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제 글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작은 부분까지 모두 적은 것은 아닙니다. 이해가 쉽도록 일부의 사례를 경제 이론에 적용해본 것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부문에서 제 글에서 언급도 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아마도 제가 이야기한 것들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면, 지금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혹은 상상하는 비참함과 비극 또한 훨씬 더 심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은, 실제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어 이 이야기를 기억할 만큼의 여유도 찾기 힘들어질 겁니다. 지금 제 글을 읽으시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계시겠지만, 실제 제 글에서 언급했던 그런 상황에 떨어지게 되면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 될 겁니다. 제 글을 통해 공급 과잉이 얼마나 무서운 미래를 가져올 지 조금이라도 감을 잡으셨기를 희망합니다.

 

29. 선택을 강요받는 중국과 강대국의 조건

최근 일본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환율전쟁 혹은 통화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고 있습니다. 일본의 양적완화 이후, 유럽중앙은행(ECB)도 계속되는 디플레이션 압박과 경기 침체 추세를 이기지 못하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하였습니다. 이에 자국 통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할 것을 우려한 스위스가 환율 하한을 없애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움직임 이후, 덴마크가 금리를 네 차례나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고, 곧이어 스웨덴이 자국 통화인 ‘크루나(krona)’의 가치 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림과 동시에 양적완화를 실시했습니다.

ECB, 3월∼내년 9월까지 1조1천400억 유로 푼다 (연합뉴스, 2015. 1. 22)

스위스가 불 지핀 통화전쟁…北유럽·신흥국으로 확산 (한국경제, 2015. 1. 20)

이제 주요 경제권 가운데 통화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국가는 중국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통화전쟁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사실 유럽이나 일본은 핵심 주체가 아니고, 중국과 미국이 핵심 플레이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지 궁금해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과연 중국은 어떤 정책을 취하게 될까요.

중국은 아마도 두 가지 방향을 두고 고민에 빠졌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나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하여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에 참여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기축통화로써의 위안화 역할을 강화하여 달러와 대등한 위치로 올라가는 방안입니다. 만약 중국이 첫 번째 방안을 선택한다면, 그 동안 준비를 많이 해왔음에도 아직까지 준비가 덜 되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한다면 그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온 ‘굴기(崛起)’를 본격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계경제 또한 크게 요동을 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들처럼, 중국이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중국은 금리를 인하하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도입하게 될 것입니다. 강(强)달러를 용인하면서 위안화를 약세(弱勢)로 가져가는 방안입니다. 중국이 이 방안을 선택하게 되면, 위안화 가치가 지금보다 크게 떨어지면서 중국 수출이 일시적이나마 회복될 것이고, 그에 따라 중국 경제도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하락하는 경제성장률도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올리거나 하락 속도를 줄일 수 있고, 중국 내 실업률도 어느 정도 억제가 가능해질 겁니다. 실업률의 하락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천안문 사태와 같은 사회 혼란이 발생하는 시기도 다소 늦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 좀더 구체적으로는 달러의 힘이 빠지길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중국 내 부동산 등을 포함해 경제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허용해야 하고, 부실기업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을 용인해야 합니다. 중국이 통화전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경제가 침체되는 속도를 다소 줄일 수는 있지만, 대신 중국 경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공격에 더욱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품이 더 커진 상황에서의 금리 인상은 중국 경제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부동산 거품은 심각한 상황이고, 여기에 과도하게 많은 지방정부의 부채, 중국 경제 주체들 사이를 촘촘히 엮고 있는 그림자 금융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중국이 통화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런 부동산 거품과 지방정부 부채와 그림자 금융 등의 규모를 지금보다 더 키우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동산 거품과 지방정부 부채와 그림자금융이 이전보다 더 커진 상항에서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하면, 중국 경제는 급속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중국 내부적으로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달러 패권주의를 인정하는 꼴이 돼버립니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생사 여탈을 결정할 수 있는 금리 인상이라는 주도권을 완전히 미국에 넘겨주게 됩니다. 물론, 10여년 이상 차분하게 준비해왔던 여러 가지 수단들도 당분간은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위안화 패권도 당분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통화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달러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러 패권에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면서 위안화만의 독자적인 패권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중국은 금리를 소폭 인하하고 양적완화도 소규모로 하는 등, 시장 상황에 맞춰가며 미세 조정 방식으로 대응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한다고 곧바로 위안화를 금과 연계시키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중국이 위안화를 금과 연계하는 순간, 위안화는 초강세로 전환되면서 달러의 지위를 추월하고 바로 최고 가치의 화폐로 올라서게 될 겁니다. 대신, 위안화를 실물 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 또한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할 겁니다. 따라서 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금 본위제를 채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제 지표들을 미세 조정해가면서,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위안화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금본위제를 채택하지 않고,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실물 금의 양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중국은 2013년 11월 1조 3167억 달러를 최고점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미 국채 보유량을 줄여왔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는 1조 2443억 달러입니다. 1년여에 걸쳐 무려 724억 달러를 줄였습니다. (참고로, 2014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미 국채 보유 규모는 683억 달러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시장에 충격을 줄 만큼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투매하게 되면, 중국이 미국에 빌려준 모든 돈들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무리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중국, 작년 미국 국채 보유고 대폭 줄여 (연합뉴스, 2015.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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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면, 중국이 얻는 것도 있지만 대신 희생해야 할 것도 많이 있습니다. 위안화가 강세가 되면, 중국은 미국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제조업을 점진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아마도 중국 내 제조업의 대부분은 베트남, 인도, 캄보디아 등 인접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위안화가 달러에 버금가는 강한 화폐로 전환되면 이런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 경제위기의 본질 (8) 또 다른 딜레마의 출현]

대신, 중국은 제조업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미국이 했던 것처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채워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부(富)는 빠르게 줄어들 뿐 아니라, 취업률이 급감하면서 실업자도 급증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중국이 달러에 버금가는 혹은 달러를 초월하는 패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1) 미국이 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와 (2) 늘어나는 실직자들을 위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면서 두 가지를 통해 빠져나가는 부(富)를 채워나갔습니다. 하나는 금융, 항공기, 의약, 법률, 영화, 우주 등 첨단 및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전환이었고, 다른 하나는 석유와의 연계를 통한 새로운 부의 창출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 또한 이러한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중국이 일시적으로 패권을 잡을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패권을 결코 길게 가져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중국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중국 내 안정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부가가치산업의 성장과 높은 실업률은 엄청난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런 불평등 속에서도 사람들이 큰 불만 없이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내부적으로 엄청난 사회 불안을 겪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한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요.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전환 준비는 되어 있는 걸까요. 페트로달러(petrodollar)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부 창출 방안은 가지고 있는 걸까요. 미국의 3억명의 네 배가 넘는 13억명의 인구를 먹일 수 있는 방안은 있는 걸까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중국이 아무리 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정치적인 아닌 경제적인 패권국가가 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패권국가 혹은 초강대국은 결코 금 보유량의 많고 적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와 그 부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먹고 즐길 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잠깐은 패권을 잡을 수 있어도 장기간 패권을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정으로 이야기한다면, 지속적인 소득원이 있어야 하고, 그 소득으로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두 가지 대응 전략에 따라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먼저 중국이 통화전쟁에 뛰어들면서 달러 패권을 당분간 더 용인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미국은 달러 강세가 더 유지되고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도 안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금리를 인상하는 시기도 뒤로 더 미뤄질 수 있습니다. 대신,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자국 화폐의 가치 하락, 그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제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국가 부도상황에 놓이는 국가들도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에 따라,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나라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겁니다. 하지만 현 세계경제 체제가 당장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으로 통화전쟁이 시작되면, 환율이 급변하고 주가가 급변하는 등의 경제 변동성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엔화 약세에 이어 위안화 약세까지 겹쳐지면서, 수출이 급감하고 국내 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될 겁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첫 번째 쓰나미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도 있습니다. [==> 경제위기의 본질 (24) 첫 번째 쓰나미(1/3)]

널뛰는 환율에… 금융 당국 속이 탄다 (서울신문, 2015. 2. 17)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기로 결정한다면, 금 보유량을 밝히거나 미 국채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노력들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위안화의 국제 결제를 확대하면서 달러 수요를 줄이는 노력도 계속 해나갈 겁니다. 당장 중국이 금 보유량을 공개하기만 해도 달러 가치는 큰 폭의 하락이 불가피합니다.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 국채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 미 국채 매입량을 줄여나가면, 미국은 중국의 수요를 대체할 새로운 수요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중국 물량을 받아줄 주체가 없다면, 국채 금리가 급등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새로운 양적완화를 실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달러 가치는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달러 가치가 폭락하게 되면 미 국채 투매현상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국채 금리가 급등하게 될 겁니다.

또한, 달러 가치 하락으로 미국 내 물가도 급등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금리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할 겁니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도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바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을 채택하게 되면, 세계경제의 붕괴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어떤 전략을 채택하게 될까요. 미국의 패권을 당분간 더 수용할까요, 아니면 과감하게 굴기(崛起)를 시작할까요.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일단은 미국의 패권을 더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통화전쟁에 뛰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번 기회에 미국 패권에 도전해보자는 주장도 중국 내부에서 강하게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중국 정치권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이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경제 또한 크게 출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지준율 50bp 깜짝인하…경기둔화에 돈풀기 (이데일리, 2015. 2. 4)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아래의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고의적으로 떨어뜨릴 지, 아니면 이 기회에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보여줄 지, 어느 방향으로 갈 지를 두고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강 달러를 용인하면서 통화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달러에 대한 도전을 한 번 해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 정부로써도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일 겁니다.

中 위안화 급등에도 ‘환율평화’ 속내는 (머니투데이, 2015. 2. 22)

위안화의 의도적 절하는 중국의 위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미국이 중국의 환율 조작을 걸고넘어질 빌미를 주는 행위이자, 달러화에 맞먹는 국제적 통화로 위안화 위상을 높이려는 중국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기사 중에서)

중국은 시간을 벌면서 두 가지 전략의 가운데쯤을 채택하여 기회를 보자는 입장이겠지만,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는 중국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어찌보면, 중국의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처럼 비쳐지기도 합니다. 중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부양이냐, 환율 안정이냐”…커지는 中 통화당국 딜레마 (이데일리, 2015. 3. 2)

최근 지지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 인하라는 카드를 번갈아 빼들고 있는 중국 통화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통화부양으로 수출 경쟁력 강화를 강화해 제조업 기(氣)를 살릴 수는 있겠지만, 위안화 가치 하락에 단기성 자금(핫머니) 유출 걱정까지 겹치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중에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의 세계경제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단지 중국의 선택에 따라, 붕괴 시점이 미뤄지거나 앞당겨질 뿐입니다. 중국은 부를 만드는 국가가 아니라, 미국이 창출한 부를 소비하는 국가에 불과합니다. 중국의 선택으로 현재 경제위기의 방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30.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금융 냉전 (Financial Cold War)

[1] 이전 글에서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카드 두 장은 (i) 미 국채 대량 투매와 (ii) 금 보유량 공개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중국이 미 국채를 투매하면,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여 미국 경제가 무너지게 됩니다.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세계경제 전체가 무너지게 되고, 여기에서 중국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국채 대량 투매라는 수단은 중국이 미국과 공멸(共滅)하겠다고 결정하지 않는 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일종의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 포고와 비슷하기 때문에, 금융 핵폭탄(financial nuclear bomb)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중국이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도 국채 대량 투매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그에 버금가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이 적을 때는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금 보유량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저인 의견입니다.

[3] 중국이 실제 금 보유량을 공개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금 매입량을 늘리게 됩니다. 따라서 금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게 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에 따라, 국제 자본이 중국 위안화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의 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 미국은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게 됩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중국 경제 또한 충격이 불가피해집니다. 따라서 중국이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은 미 국채를 대량 투매하는 것만큼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지만, 결국엔 현재의 경제 상황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채 대량 투매 못지 않은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대량 투매하든, 금 보유량을 공개하든, 두 가지 모두 미국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중국 자체도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카드는 세계 경제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예전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고 냉전(Cold War)을 벌였지만 끝까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듯이, 이번에도 미국과 중국이 금융시장에서 핵폭탄급 수단을 가지고 경쟁을 하겠지만, 양국 모두 무너질 만큰 파급력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그 수단을 쉽게 사용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5] 그렇다면, 중국은 미 국채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고, 실물 금은 또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까요. 국채 보유액은 매달 미 재무부(Department of the Treasury)가 발표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12월 현재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1조 2,443억 달러로 나타나 있습니다. 최고 많이 보유할 때와 비교하면, 700억 달러 이상 감소한 규모입니다. 최근 수년 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6] 문제는 중국의 금 보유량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은 금 보유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들어 갑자기 금 보유량을 600톤으로 늘렸다고 공개를 했습니다. 이후 금 보유량을 공개하지 않다가, 2009년 4월에, 중국 관영 통신 신화사(新華社)가 당시 국가외환관리국 국장의 말을 인용해 금 보유량을 간접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이때 공개한 중국의 금 보유량이 1,054톤이었습니다. 이때 국제 금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대폭 늘린 금 보유량을 공개하면 국제 금값은 이번에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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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09년 4월 공개한 이후 중국은 금 보유량에 대해서는 추가로 공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개를 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6년이란 기간 동안 중국은 과연 얼마나 많은 금을 늘려왔을까요. 중국의 금 보유량 공개가 미치는 영향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현재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8] 중국이 공식적으로 금 보유량을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나도는 여러 가지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의 금 보유량을 추측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다음의 기사를 보면, 중국이 금 보유량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2002년 12월 이후 600톤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인 2006년쯤 경부터 금 매입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때의 움직임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외환 보유액의 다변화 차원에서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중국 주요 인사들의 언급을 보면,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 보유량을 적절히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금 보유량을 2,500톤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대 외환 보유국 중국 금 사재기 나선다 (세계일보, 2006. 5. 23)

[9] 중국이 금 보유량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2009년입니다. 그해 4월 23일에 중국이 1,054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한 인사는, 앞으로 중국은 3~5년 내에 금 보유량을 6,000톤으로 늘리고, 8~10년 내에는 10,000톤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中 “금 보유량 5년내 6,000톤으로” (서울경제, 2009. 12. 1)

[10] 하지만 그 이후 중국은 자국의 금 보유량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공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3~4월 사이에 중국의 금 생산량과 소비량 사이에 400톤 이상의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됩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의 금 공급량은 홍콩을 통해 수입한 1,158.2톤과 자체 생산한 428.2톤을 합해 1,585.4톤입니다.

  • 공급량: 1,586.4톤 (2013년 기준)

               = 1,158.2톤(수입) + 428.2톤(생산)

[11] 하지만 중국이 금 소비량을 보면, 장신구, 금괴, 금화, 공업용 등을 모두 합해 1,176.4톤밖에 되지 않습니다.

  • 소비량: 1,176.4톤 (2013년 기준)

              = 716.5톤(장신구) + 375.73톤(금괴) + 25.03톤(금화) 

                 + 48.74톤(공업용) + 10.4톤(기타) 

[12] 따라서 단순히 공급량과 소비량만을 비교해보면, 무려 410톤의 물량이 비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4.4톤입니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이 물량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금고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中 정부 통계서 사라진 황금 410톤… 어디로? (헤럴드경제, 2014. 3.9)

위의 자료를 근거로 계산하면, 중국은 매년 적게는 300톤, 많게는 500톤 이상의 금을 추가적으로 늘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금 보유량을 공개한 지 6년이 지났다는 점을 고려하여 추산해보면, 중국은 2009년 이후 대략 1,800톤에서 3,000톤 이상의 금을 추가적으로 늘리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13] 그 사이 국제 금값은 낮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중국으로써는 금 보유량을 늘리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써도 굳이 금 보유량을 공개해 금값이 상승하도록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은 금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금 매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까지 합니다. 한 마디로, 중국은 겉으로는 금 매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면서도, 뒤로는 저가로 대량의 금을 매입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 금 대량 매입에 부정적 입장 (연합뉴스, 2013. 3. 14)

[14] 최근 6년 동안 모은 금에, 2009년에 발표한 물량까지 합하면, 중국의 금 보유량은 적게는 3,000톤에서 많게는 4,500톤 이상이 될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물량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실제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5,000톤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2009년 당시 앞으로 3~5년 내에 금 보유량을 6,000톤으로 늘리겠다고 했던 주장을 상당히 충실하게 진행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8,133.5톤 수준까지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15] 따라서 중국이 실제 금 보유량을 대외에 공개하면, 시장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실물 금의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금 가격은 폭등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금 가격이 급등하게 되면, 미 달러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더욱이 국제자본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급격하게 이전하게 되면 달러 가치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6] 이미 상당수의 금 전문가들은 서방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의 상당량이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이 실제 5,000톤 이상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금 보유량은 미미한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2008년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를 하면서 4조 달러 이상의 화폐를 시장에 공급했음에도 금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이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던 실물 금을 임대 형태로 시장에 공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을 활용하여 금 가격을 낮추었을 가능성을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련 글 ==> 경제위기의 본질 (13) “양적 완화 이후 금 가격을 올랐을까”]

[17] 따라서 중국이 금 보유량을 공개했을 때, 그 양이 일반이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물량이라면, 이것은 서방 국가의 금이 바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금 가격은 지금까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다큐: 비밀스러운 금의 세계>를 보면, 금이 서방 중앙은행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다큐의 34분 부분). 아마도 중국이 본격적으로 금 보유량을 늘리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되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18] 하지만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이 중국의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금 보유량을 공개하면 중국 또한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순간 위안화 가치는 폭등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중국의 수출은 급감하게 되고, 중국은 지금보다 더 극심한 경제 침체에 빠져들게 됩니다. 전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감함에 따라 중국의 저렴한 상품을 수입하여 사용하던 많은 국가들이 생필품 부족과 그에 따른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금리가 인상되게 됩니다. 중국이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도 일종의 금융 핵폭탄(financial nuclear bomb)과 같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9] 따라서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거나 금 보유량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금융 핵무기를 중국이 선뜻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예전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고 냉전을 치렀지만 끝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냉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중국과 미국 사이의 금융 냉전 또한 금융 핵무기들을 사용하지 않은 채 다른 방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어떤 식으로 대처해나가는가에 따라, 두 번째 쓰나미의 크기도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31. 우리나라의 위태로운 외줄 타기

우리나라가 요즘 많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가계부채나 자영업 문제 등의 내부적인 문제로도 위태롭지만, 대외적으로도 많이 위태롭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소규모 개방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라고 하는 것은 독자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개방경제’라고 하는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의 의미가 크게 다가온 적도 없었던 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경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데 의존하는 국가가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은 미국, 일본, 유럽계 자금에 영향을 받고, 실물시장의 핵심인 제조업은 절대적으로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습니다.

금융시장을 통해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경제변수는 주가, 환율, 금리, 외환보유액 등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혹은 유럽계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게 되면, 주가가 폭락하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금리가 상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외환 부족으로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험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 자본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1997년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에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도, 100억 달러 정도의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생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실물시장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구조를 보면, 예전에는 미국으로의 수출이 절대적으로 많았었으나, 지금은 역전되어 중국으로의 수출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미국으로의 수출항이 있던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 울산, 대구 등 영남권 경제가 위축되고, 인천과 평택 등을 중심으로 한 서해권 경제가 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출 주도권이 중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부산, 울산, 창원, 마산, 대구, 포항 등 영남권 도시들이 예전처럼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조업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수출이 막히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큰 어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또한 하락하는 일이 이미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령, 2015년에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이전보다 낮은 7% 내외로 내리자,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급속하게 나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실물부문에 대한 중국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7% 중성장’중국, 한국경제엔 ‘최악의 수’…소재부품 등 악영향 (이투데이, 2015. 3. 6)

금융부문은 미국을 비롯한 일본과 유럽 쪽 의존도가 높고, 실물부문은 중국 쪽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 두 세력 사이에서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특히, 최근과 같이, 중국과 미국이 대결 구조로 가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일이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물부문을 고려하면 중국 쪽에 서야 하지만, 그렇다고 국내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금융부문을 고려하면 미국이나 일본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내 정책을 결정해야 하지만, 실물부문을 잡고 있는 중국 쪽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좋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는 중간에서 이쪽에도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FTA(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s)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1년 11월에 한-미FTA를 정식으로 발효시킵니다. 한-미 FTA를 추진하겠다고 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2006년 2월 이후 5년 9개월만의 일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고려한 매우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보기에는 양보를 아주 많이 한 매우 불평등한 협정이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고려했을 때 꼭 필요했던 협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이 우리나라와 FTA를 하자고 나섭니다. 2012년 5월 공식 협상을 시작해, 2015년 2월 마침내 한-중 FTA에 서명하기에 이릅니다. 한-미 FTA의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면, 한-중 FTA는 중국이 많이 서두르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는 미루거나 연기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고려하면 중국의 요구를 회피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협상 내용에서 차이는 나겠지만, 중국과의 FTA도 결국 최종 타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여러 국가가 동시에 FTA를 추진하는 협상에서도 나타납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싸고는 중국 중심의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과 미국 중심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RCEP을 발전시켜 FTAAP(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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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美의 TPP냐 中의 FTAAP냐…韓·日 아슬아슬한 줄타기 (매일경제, 2014. 12. 31)>

당초 우리나라는 RCEP에만 참여하면서 TPP는 관망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미국이 TPP에 참여하면서 TPP의 중요도가 빠르게 올라갔고, 2013년 3월에는 일본까지 TPP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됩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도 2013년 11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TPP에 관심이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공식적으로 TPP 참여를 선언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일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과 관련해서도 또 다시 벌어지게 됩니다. 그동안 아시아지역에서의 금융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ADB(아시아개발은행, Asian Development Bank)이 중심이 되어 왔었습니다. 중국은 ADB에 대항하는 대체은행으로 AIIB의 설립을 추진하였고, 우리나라에게도 AIIB에 참여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AIIB에 참여하지 말도록 공식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우리나라는 당초 아시아지역에서의 정치·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 AIIB 참여를 적극 고려하던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 미국은 한국 가입 제동 (중앙일보, 2014. 6. 28)

우리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또 얼마나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실물시장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이 외국자본들의 움직임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1997년과 같은 국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나라와의 통화 스왑(Currency Swap)을 많이 활용해왔습니다. 통화 스왑이라는 것은, 체결국 가운데 한 나라가 외환 부족 사태를 겪을 경우 외환을 당초 계약에 따라 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한 나라가 외환 부족으로 국가 부도상황에 몰릴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대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욱이 통화스왑을 활용하면 평시에는 외환을 많이 보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외환 보유에 따른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가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관련 글 보기 ==> 생활경제 (12) 외환보유액 감소].

한 나라가 외환 부족을 경험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 달러입니다. 우리나라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의 통화스왑을 통해 외환시장에서의 안정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10년 2월 국내 외환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미국과의 통화스왑을 종료합니다. 일본과의 통화스왑도 2011년 10월에는 700억 달러까지 늘어나지만, 이후 조금씩 종료되면서 올해 2월에는 남아있던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왑도 모두 종료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는 통화스왑을 통해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크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중국,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등과의 통화스왑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위기상황이 오면 우리나라보다 먼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입니다. 즉, 우리가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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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주목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 국내에 들아와있는 금융자본의 움직임입니다. SC은행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축소하더니 올해 2월에는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신세계에 매각하기로 결정합니다. 씨티은행 또한,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를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올해 2월 말 본점을 마스턴투자운용의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에 매각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국내에 투자돼 있던 외국자본이 우리나라를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SC은행, 옛 본점 건물 신세계에 매각키로 (연합뉴스, 2015. 2. 12)

씨티은행 본점 마스턴 리츠에 매각‥2000억 미만 (머니투데이, 2015. 3. 1)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초에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네덜란드, 캐나다, 스웨덴, 호주, 말레이시아, 태국과 함께 우리나라를 가계부채 부문 ‘잠재적 취약국가’로 우리나라를 분류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국제 컨설팅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맥킨지 “한국, 가계빚 더 악화‥7대 취약국가” 경고 (이데일리, 201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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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hart of the Day, 10 February 2015: Debt As an Existential Threat?>

이상을 정리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미국과 일본계 자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요? 은행자금들이 우리나라를 떠날 채비를 하고, 미국과 일본과의 통화 스왑은 모두 종료되었고, 맥킨지는 우리나라를 가계부채 7대 취약국 가운데 하나로 분류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일관된 움직임이라는 느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제 걱정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그 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목적이 우리나라 길 들이기이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든, 제 추측이 맞다면, 빠르면 올해 중에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한 번 출렁거릴 듯합니다. 그것이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본격적인 첫 번째 쓰나미로 발전할 지는 좀더 두고봐야 합니다만, 미국과 일본계 자금의 유출이 크게 한 번 있을 듯합니다.

중국을 포기할 수도 없고, 미국과 일본을 포기할 수도 없는, 중간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참으로 위태로워 보이기만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련한 정치가 혹은 경제 관료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명분만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실리만을 좇을 수도 없는 참으로 선택하기 힘든 상황인 듯합니다. 명분만 좇다가 실리를 잃고 국가 경제 전체를 극심한 침체에 빠뜨린 우크라이나의 사례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듯합니다. 부디 제 걱정이 기우(杞憂)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32. 경기침체의 골, 얼마나 깊을까

이번 경제위기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요. 우리 말에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만큼 이번 위기의 깊이를 잘 표현한 문구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제위기의 골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가진 자산이 얼마나 줄어들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시장가격이라는 것으로 평가되는 내 자산의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것이 바로 경제위기의 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산에는 주식도 포함되고, 부동산도 포함되고, 각종 펀드나 ELS 혹은 DLS와 같은 파생상품도 포함됩니다. 경제위기가 오면 이런 자산들의 평가액이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됩니다.

개인으로 보면, 자신이 투자한 상품의 평가액이 줄어드는 것이고, 국가로 보면 국가 경제가 얼마나 위축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됩니다. 또, 세계경제 측면에서 보면, 세계경제 전체가 얼마나 침체에 빠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의 골은 얼마나 깊을까요. 우리 자산은 얼마나 줄어들고, 우리나라 경제는 얼마나 위축되고, 세계경제는 얼마나 침체에 빠지게 될까요. 골의 깊이를 사전에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과 약간의 가정을 합하면, 대략적으로 얼마나 세계경제가 충격을 받을 지 추산할 수는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현재의 위기는 1973년 석유와 연계하면서 금을 대신해 새로운 부의 축적수단으로 등장한 달러가 그 구매력을 상실하면서 시작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1973년 이후 최근까지 달러의 가치 변화를 달러 인덱스로 나타낸 것입니다. 달러 인덱스(U.S. Dollar Index)는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네, 스위스 프랑)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다른 나라의 화폐와 비교할 때, 달러 가치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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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istorical Chart Gallery: Market Indexes>

달러 인덱스의 변화를 보면,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했던 1980년대 초반 달러는 초강세로 전환했다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가치가 하락하고, 2000년대 초반에 다시 잠깐 강세를 보인 후, 200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는 최저치까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의 장기적인 추세는 분명 하락세입니다. 이것은 미국 달러가 다른 나라의 화폐와 비교하더라도 장기적인 약세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2008년 이후의 시기입니다. 미국의 대규모 양적완화로 시중의 달러 공급은 더 늘었는데 달러 가치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유지될 뿐만 아니라, 2015년 들어서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2008년 이후 양적완화로 달러 공급이 더 늘었기 때문에 달러 인덱스 또한 추가 하락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 시기에 다른 국가의 화폐도 가치가 함께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물 부문 대비 화폐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미국 양적완화의 중단과 함께 시작된 일본과 EU의 양적완화 시작, 그리고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화폐 사이의 강세 혹은 약세의 문제이지, 실물부문에 대한 강세 혹은 약세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물부문 대비 달러의 강세 여부를 보기 위해서는, 실물 가운데 실제 화폐 역할을 하는 금(gold) 가격의 변화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1980년부터 현재까지 미 달러 $1,000로 얼마만큼의 금을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2000년 이전까지 미 달러 $1,000면 대략 2온스 이상의 금을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달러 가치는 2000년 이후 급격하게 떨어져 2008년 하반기에는 $1,000로 1온스의 금도 사지 못하는 수준까지 하락하게 됩니다. 미국의 양적완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에는 0.56온스 수준까지 달러 가치가 하락합니다. 2012년부터 금의 양으로 표현된 달러 가치는 다소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1,000로 1온스의 금도 사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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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후에도 달러의 공급량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1,000로 살 수 있는 금의 양도 추가로 줄어들었어야 합니다. 달러의 양은 늘어난 반면, 금의 양은 달러가 늘어나는 것 이상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매입할 수 있는 금의 양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약간 상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러한 금의 가격 변화가, 시장 내부의 수급과 화폐량의 측면에서 검토할 때,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관련 글 보기 ==> 경제위기의 본질 (13) 양적 완화 이후 금 가격을 올랐을까시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거품’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거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부터 거품이 과연 존재하느냐의 여부까지, 거품과 관련된 주제는 거의 항상 많은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거품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의해 이루어집니다. [관련 글 보기 ==> 경제위기의 본질 (12) 양적 완화는 왜 답이 아닐까하나는 시장 내부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의한 가격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양의 변화에 의한 가격의 변화입니다. 물론, 화폐를 실물과 연계해 평가하려면, 화폐 양이 아니라, 황금 양의 변화로 평가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해당 상품의 가격에는 거품이 끼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달러 가치를 보면, 달러 수요가 감소하고 달러 공급은 증가했기 때문에, 달러 시장 내부적으로 보면, 달러 가치는 더 하락해야 맞습니다. 또한, 그러면 금의 양이 대규모 금광 개발 등으로 크게 증가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즉, 현재의 달러 가치는 시장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실물부문인 금의 수량 변화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지금의 달러 가치는 거품이 많은 상황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달러 가치의 거품은 이미 시장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달러 강세가 시장 상황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美연준 “양적완화 정책 지속”.. IMF “거품 빠지면 더 위험” (파이낸셜뉴스, 2014. 10. 9)

월가, 강달러-자산거품 글로벌 금융 위기 ‘경고’ (한국증권신문, 2015. 4. 8)

“달러 거품 심각.. 美 또 한번의 금융위기 직면” (파이낸셜뉴스, 2015. 04. 15)

그렇다면, 앞으로 거품은 얼마나 빠지게 될까요. 달리 이야기하면, 자산 가치는 얼마나 떨어지게 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는 부(富)의 축적수단이었던 달러 가치가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자산 가치의 하락입니다. 가령, 1971년 이전에는 금의 양이 전세계 자산의 총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달러의 수요에 의해 달러 가치가 늘어났고, 세계의 자산의 총량도 달러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함께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고 달러 가치가 급락하게 되면, 이렇게 늘어난 세계의 자산 또한 급격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관련 글 보기 ==> 경제위기의 본질 (10) 미 달러 패권 쇠락의 의미].

하지만 더 큰 자산의 축소는 다른 측면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신용창출’ 과정입니다. 신용창출은 은행의 지급준비율(cash reserve ratio)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지급준비율은 쉽게 이야기해, 예금 가운데 얼마를 두고 얼마를 대출해줄 것인가 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지급준비율이 10%라고 하면, 예금의 10%만 은행에 보관하거나 중앙은행에 보관하고, 나머지 90%의 돈은 대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지급준비율이 r이라고 하면, 예금과 대출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총자산 규모는 (1/r)이 됩니다. 지급준비율이 10%라고 하면, 신용창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총자산은 1/0.1, 즉 처음 자산의 10배가 됩니다. 지급준비율이 5%라고 하면,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자산은 20배(=1/0.05)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재산 혹은 자산이라고 하는 것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즉,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총자산도, 일본이 가지고 있는 총자산도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한국 내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도,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도, 모두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자산들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늘어난 자산을 각국가가, 그리고 각개인과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용창출의 기본이 되는 자산이 줄어들게 되면, 신용창출을 통해 만들어진 자산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일본의 자산이 줄어들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자산이 줄어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줄어들게 됩니다. 즉, 부동산 평가액이 줄어들고, 주식시장 평가액이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의 축소는 두 가지 과정, 달러 가치의 하락과 신용창출 과정의 축소라는 두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실제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자산의 축소 정도는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간단한 숫자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달러 가치 축소 이전 자산의 규모가 100억 달러고 지급준비율이 5%였다면,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총자산은 2,000억 달러(=100/0.05)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이제 자산이 50억 달러로 줄었다고 하면, 자산은 얼마로 줄어들게 될까요. 네, 맞습니다. 1,000억 달러(=50/0.05)로 줄어들게 됩니다. 자산이 1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면, 자산은 200억 달러(10/0.05)로 줄어들게 됩니다. 자산 자체는 10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90억 달러 줄었지만, 실제 시장에서 줄어드는 자산은 1,800억 달러(=$2,000-$200)에 이릅니다. 즉,신용창출의 기초가 되는 기본자산이 줄어들면,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게 되는 자산의 축소 정도는 훨씬 더 크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산이 얼마나 줄어들 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종류에 따라, 각자산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 등에 따라 구체적인 자산 축소 정도는 달라지게 될 겁니다. 자산이 줄어드는 정도는 작게는 1/2, 많게는 1/10까지 줄어들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1/20 이상 자산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10억짜리 아파트를 예로 들면, 가격이 적게는 5억원, 또는 1억원까지 하락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5,000만원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자산마다 특성이 다르고,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자산은 더 떨어질 테고, 어떤 자산은 덜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상당폭의 자산 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페트로 달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재 경제체제가 무너진다는 것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자산을 만들었던 신용창출 과정에,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산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국채 형태로 미래에 사용할 자산까지 현재에 빌려다 사용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현재에 우리가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초자산도 그만큼 늘어났고, 우리의 자산도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즉, 페트로 달러를 통해 만들어진 부가 100억 달러였다면, 미국은 국채 발행을 통해 이것을 200억 달러로 만들었습니다. 미래세대의 자산까지 끌어와 만든 자산으로, 우리의 자산은 4,000억 달러로 늘어났고, 이것을 우리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달러가 붕괴되면 미국 국채도 휴지조각이 됩니다. 따라서 국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자산도 사라지게 됩니다. 기초자산 100억 달러에 국채를 통한 자산 100억 달러로 총 4,000억 달러의 자산을 만들었는데, 기초자산이 10억 달러로 줄어들고 국채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최종적으로 200억 달러의 자산만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1,800억 달러의 자산을 잃는 것이 아니라, 총 3,800억 달러(=$4,000-$200)의 자산을 잃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자산을 다시 기초상품으로 하여 만들어진 금융 파생상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파생상품 시장 또한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확대되어 있습니다. 금융상품은 활용하는 단계가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수백 배까지 확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용창출을 통해 자산이 수십 배 불어나고, 그 불어난 자산을 다시 기초자산으로 하여 수십 혹은 수백 배의 파생상품 시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최종 자산규모는 최초의 기초자산에 비해 수백 배 혹은 수천 배까지 늘어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늘어난 자산이 대대적으로 축소되려는 초입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용창출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신용창출로 만들어진 자산의 일부만 줄어들고, 파생상품 또한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파생상품 시장의 일부만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지금 줄어들려고 하는 자산이, 파생상품이나 신용창출 자체가 아니라, 파생상품과 신용창출의 기초가 되는 달러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모든 자산 확장의 기본이 되었던 자산이 줄어들면, 그 자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모든 자산 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가 심각하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 자산이 본격적으로 축소 과정에 진입하게 되면, 엄청난 규모의 자산 축소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전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수천 년 역사 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수십 년 동안 인류는 엄청난 부를 만들어왔고, 그 부가 가져다 준 풍요로움을 누려 왔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조선시대 왕보다도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고 또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의 축적수단으로써 달러 가치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 이렇게 인류가 쌓아왔던 많은 자산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렇게 많은 자산을 만들고 보유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는 세계경제, 국가 경제, 그리고 작게는 개개인이 받게 될 충격 또한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겁니다. 1930년대의 경기 축소를 ‘대공황’으로 부릅니다만, 이번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경기 축소에 비교하면, 아마도 아이들 소꿉장난 정도 수준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을 확인해보시려면, 1930년대 미국의 주가와 지금의 미국 주가를 비교해보시면 됩니다.

경제 자체도 문제이지만, 정말로 큰 문제는, 엄청난 자산 축소에 직면해 사람들이 받게 될 충격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맞았습니다. 전재산을 송두리째 날리고, 길거리에 나앉고, 구걸하고, 자살하고, 아이들을 팔고… 1930년대 대공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이번 침체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비극에 노출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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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급매로 나온 롤스 로이스. 출처: AMERICAN EXPERIENCE: The Crash Of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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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를 배급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아이들. 출처: 1929 REDIS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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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출처: Must-See Historical Photos>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부디 천재적인 누군가가 나타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될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현재와 같은 상황이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게 부탁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제발,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봄의 연한 초록빛 새잎이 돋아나는 것도 놓치지 말고 즐겨 보시고, 흩날리는 벚꽃의 흐트러짐도 느껴보시고, 가끔 고개 들어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도 즐겨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날씨 좋은 날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커피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커피 한 잔도 해보시고, 자녀들이 고기 먹고 싶다 하면 고기 한 번 더 사주시고, 아이가 잘못을 해도 허허 하고 한 번 넘어가 주시고, 아내가 힘들다 하면 한 번 더 안아주시고 사랑한다 한 번 더 말씀해주시고, 가족이 덥다 하면 큰 맘 먹고 에어콘 한 번 시원하게 틀어주시고, 어디가 좋다 하면 여행도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면,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행복은 지금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큰 위기가 온다고 하더라고 결국은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지금 그런 작은 행복을 누릴 줄 모르면, 정말로 힘든 세상이 되었을 때도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힘들어집니다. 지금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도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누리셔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서 전하는 소식 [email protected]